지리적 상상력으로 문학의 세계를 들여다보다
문학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작품 속의 인간을 이해하는 것 아닐까? 문학작품 속에서 인간은 특정한 시대와 공간을 살아숨쉬고 있다. 그래서 그 인간이 어떤 시대, 어떤 공간에 처해 있느냐 하는 점은 작품을 이해하는 필수적인 정보이다.
그런데 작품은 인물과 인물의 관계, 사건, 장면과 묘사로 말할 뿐 독자의 이해를 위한 정보를 그리 쉽사리 내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 상식적인 선에서의 이해와 해석, 또는 좀더 문학적으로 읽더라도 언어 분석이나 구조적인 분석을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조금 다른 시선으로 문학을 보면 어떨까? 『문학 속의 지리 이야기』에서는 지리학으로 문학을 읽어 냈다.
지리교사 조지욱은 어떻게 하면 좀더 학생들이 재미있고 흥미롭게 지리학을 공부할 수 있을까를 오랫동안 고민해왔으며, 다수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지리책을 내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문학과 지리를 엮어 흔히 볼 수 없는 지리적 상상력을 문학 읽기로 펼쳐 냈다.
통념을 깨는 ‘문학 속의 공간’ 이해하기, ‘공간 속의 인간’ 이해하기
이 책에서는 동화에서부터 소설까지 20가지 문학 작품을 지리적 시각으로 읽었다. 저자는 지리 지식이 문학과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유용한지 보여준다. 이솝 우화인 「양치기 소년과 늑대」를 지리학의 눈으로 보면 어떤 것이 보일까?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가 그동안 우리에게 준 교훈은 ‘거짓말을 자꾸 하면 정말 필요할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그러니 거짓말 하지 말자’ 정도였을 것이다. 많이 봐주어도 얼마나 심심했으면 그랬을까 정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저자는 그리스와 알프스 산지 주변에서 행해졌던 이목의 현실을 들려준다. 연중 오랜 시간을 산지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양을 치던 이목은 마을에서 가장 불우한 처지의 소년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돌봐줄 부모도, 사랑해 줄 형제도, 함께 놀 친구도 없는 소년은 너무나 사람이 그립고 관심이 필요해 그렇게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 단순한 교훈을 주는 우화라고 여겼던 통념은 지리적 해석으로 이렇게 슬쩍 금이 간다.
또 다른 문학작품을 살펴보자. 이청준의 『매잡이』이다. 『매잡이』는 매잡이 곽돌이 근대화해가는 시대에 매잡이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며 살려고 애쓰다가 스스로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을 택한다는 내용이다. 이 유명한 단편소설은 읽기가 무척 어렵다. 무엇보다 매잡이 곽돌은 자기 속마음을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행동은 묘사되지만 전혀 해설되지도 않는다. 과연 곽돌은 그저 자존심 강한 매잡이, 시대를 읽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을까? 요즘처럼 직업의 의미가 대개 안정적인 삶이거나 보수가 좋은 것을 최우선으로 치는 시대에 곽돌의 행동은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자는 우선 이 작품에서 시대와 사회의 변화 속에서 다양하게 전개된 직업의 명멸을 읽어낸다. 그리고 매를 잡아 길들이기까지 오랜 숙련의 시간을 쌓아올려야 그 시대 최고의 놀이였던 매사냥의 주인공 매잡이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 과정에서 매잡이와 매는 하나가 될 수밖에 없음을, 그리고 직업의 의미란 돈벌이에만 있지 않고 삶 그 자체이기에 매잡이가 아닌 자신은 생각할 수 없었던 고수 곽돌의 심리를 세심하게 짚어 낸다.
이 밖에도 저자는 「아기돼지 삼 형제」를 통해 ‘안전한 집’에 대한 고정관념을 밝혀 주고, 「메밀꽃 필 무렵」에서는 강원도 산지에 메밀밭이 펼쳐져 있는 이유를, 『15소년 표류기』에서는 뉴질랜드 바다에 있던 요트를 칠레의 무인도로 이끌고간 해류가 무엇인지를, 「성냥팔이 소녀」에서는 소녀가 왜 성냥팔이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해 준다. 그뿐 아니다. 문학 속의 등장인물이 꾸는 꿈도 지리적이다. 「플란더스의 개」에서 네로가 화가의 꿈을 꾼 것은 그곳이 ‘화가들의 천국’ 플랑드르였던 데 근거가 있다.
이렇게 저자는 지리적 사고와 상상력을 확장시킴으로써 문학작품을 새롭게 읽고 이해하려는 시도에 성공하고 있다. 문학은 특정한 자연과 사회 속에 놓인 인간의 삶을 비춰 준다. 그러므로 자연 공간과 사회 공간이 개개인의 삶에 영향을 주고, 인간이 역동적으로 그것에 도전함으로써 현재의 모습으로 형성되었음에 주목하는 지리학이 문학 속의 공간과 인간 해석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자연스럽다. 또한 문학의 공간이 단순한 배경으로 치부되지 않고 작품 안에서 어떤 결정적 역할을 하는지 살펴봄으로써 지리학뿐 아니라 문학의 지평 또한 넓힐 수 있다. 문학과 지리 읽기라는 통합적인 시도는 문학이나 지리에 관심 있는 모든 청소년과 인문 독자들에게 강력한 상상력의 자극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