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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지성계의 여왕’,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 ‘미국 문단의 다크 레이디’…… 평론가, 소설가, 에세이스트, 영화감독, 페미니스트, 정치행동가. 이 모든 말이 수전 손택(1933~2004)을 수식한다. 그녀가 죽은 후 뉴욕타임스는 부고 기사 제목을 ‘여왕이 영면하다’라고 붙였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다방면에 걸쳐 활약한 손택을 이해하려면 길잡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마침 이 책 <수전 손택의 말>을 독서모임에서 다루기로 했다. 이 책은 롤링스톤지 에디터 조너선 콧이 1978년 파리와 뉴욕에서 12시간에 걸쳐 손택을 인터뷰한 녹취록 전문을 편집해 수록했다. 인터뷰는 손택이 유방암으로 수술과 치료를 받은 후 회복해, <사진에 대하여>를 출간해 스포트라이트를 한창 받고 있고, 투병 기간 영감을 받아 쓴 <은유로서의 질병> 출간을 앞두고 이루어졌다. 인터뷰가 1978년 당시 그녀의 삶과 저술을 광범위하게 다루다보니 논리적으로 일관된 흐름을 보여주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말처럼 ‘파편적으로’ 삶과 사상 및 저술에서 중요한 부분을 다룬다. 책을 혼자 읽은 후에는 도저히 정리가 되지 않았다.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눈 후 몇몇 개념을 중심으로 조금이나마 이해가 가능했다. 내가 이해한 과정과 내용을 아래에 정리해본다. 몇 권의 소설과 에세이 <캠프에 대한 단상>으로 여러 지식인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던 손택은 1966년 <해석에 반대한다>를 발표한다. [이 책의 제목으로 삼은 첫 번째 글에서 손택은 해석을 반대한다. 내용 속에 깊이 숨어있는 의미를 찾아내는 반동적이고 보수적인 해석 작업이 예술이나 문학자체를 고갈시키고 예술의 특수성에 폭력을 가하는 것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손택은 해석 작업이 도시의 매연처럼 “우리의 감성에 해독”을 끼치고 “지식인이 예술에 가하는 복수”라고까지 매도한다.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투명성의 경험 즉 “사물의 반짝임을 그 자체 안에서 경험하는 것,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경험”이라고 주창한다. 이래야만 “더 잘 보고, 더 잘 듣고 더 잘 느끼는 법”으로서 감성을 회복할 수 있다. 손택의 유명한 결론. “해석학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술의 성애학(erotics)이다.” 출처 : 교수신문(http://www.kyosu.net)] 모임에서 한 분이 <해석에 반대한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이 나온 1966년은 뒤샹의 ‘샘’(변기에 사인을 하고 미술관에 전시) 이후 현대미술이 발전하던 시기다. 잭슨 폴록(천에 물감을 흩뿌리는 액션 페인팅, 추상표현주의)이나 마크 로스코가 명성을 얻던 때다. 일부 평론가는 현대미술 작품을 설명하며 작품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내용을 억지로 찾아내 의미를 부여하고 작가의 의도로 해석했다. 이것은 중세나 근대 시기 회화에 알레고리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스텐비크, <정물-바니타스의 알레고리>, 1640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 위 그림은 바니타스(Vanitas, 라틴어로 허무, 허영, 덧없음을 의미한다) 주제의 정물화다. 해골은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의미한다. 책은 배움과 지식의 한계, 악기는 세상의 즐거움이 지닌 무상함을 나타낸다. 일본도와 동남아산 조가비, 비단 천은 진귀함과 부를 나타낸다. 그 모두가 허영과 관련이 있다. 불 꺼진 램프와 시계는 생명의 유한함을, 깨지기 쉬운 도기는 인간의 연약함을 의미한다. 인생은 이런 도기에 물이나 소중한 것을 넣어 나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30293.html#csidxe37fbcf479a24f9bcf5f5db9fe01b90 이 그림은 제목에서부터 알레고리를 통해 작품을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아래 마크 로스코 작품은 어떨까? [마크 로스코. Untitled, 1970.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이 작품을 위에 있는 정물화처럼 해석하면서 감상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미묘한 색감이 불러일으키는 느낌에 집중하는게 맞다. 붉은 색은 사회주의를 표현하는 색이니 작가는 사회주의자로서 그의 사상을 작품에 드러냈다고 해석하면 이는 해석을 위한 해석이다. 손택이 반대한 해석이다. 내용이 아니라 형식(스타일)이 예술 감상에서 핵심이다. 이 책 서문에서 조너선 콧은 1930년대에 활약한 독일의 영화감독 레니 리펜슈탈(1902~2003)을 언급한다. 리펜슈탈은 1935년 나치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를 촬영한 영화 <의지의 승리>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기록 다큐멘터리 영화 <올림피아드>를 만들었다. <의지의 승리>와 <올림피아드> 에서 그녀가 선보인 다큐멘터리 형식은 더없이 훌륭했다. 그녀가 활용해 수많은 사람들을 홀린 다큐멘터리 형식은 곧바로 이 장르에 수용되어 전형이 되었다. 영화사에서 그냥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향을 남겼다. 그러나 이 뛰어난 형식이 비춘 내용은 다름아닌 나치 정당과 히틀러의 위용이었다. 그렇다면 이 형식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비슷한 질문을 친일 부역 혐의를 받는 서정주 시인이나, 적극적으로 군부 독재를 찬양한 김춘수 시인의 작품에 대해 던질 수 있다. 작가와 작품을 완전히 별개로 놓고 감상할 수 있는걸까? 직업이 사람의 건강과 몸을 돌보는 일인지라 <은유로서의 질병>과 관련된 인터뷰가 더 다가왔다. 2012년에 읽은 책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주장하는 바가 <해석에 반대한다>와 궤를 같이한다. 손택이 유방암 발병으로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았다고 앞에 말했다. 암은 단순한 질병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우선 환자는 도덕적으로 죄를 지었거나, 몸 관리를 잘못했기에 병에 걸렸다는 죄책감을 느낀다. 암에는 온갖 영적 가치가 따라붙는다. 그때문에 사람들은 원인에 집착한다. 한편으로, ‘사회의 암적인 존재’ 처럼 암은 부정적이면서 치명적인 무언가를 은유한다. 손택은 투병 과정에서 질병을 은유로 사용하는 일을 숙고했다. 그리고 이 작업 또한 <해석에 반대한다>와 일맥상통함을 깨닫는다. “질병을 해석하지 말라,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 만들지 말라. 설명을 하거나 이해하려 노력하지 말라는 뜻은 결코 아니었어요. 그게 아니라 그냥 x의 참된 의미가 y라고 말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 자체로서의 사물을 저버리지 말라는 거죠. 그 자체로 정말로 존재하는 사물이니까요. 질병은 질병이에요.” “병이 들어서 치명적인 질환을 앓는 건 마치 자동차에 치이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앓아눕게 됐나 걱정해봤자 별로 의미가 없다.” 손택의 통찰이 옳다. 사람들은 병에 걸리면 도대체 왜 걸렸는지 묻는다. 원인에 집착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질병은 원인 불명이다. 특히 암이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몸이 약해져 생기는 병은 더욱 그렇다. 진짜 중요한 일은 제대로 잘 치료하는 데에 있다. 질병의 원인이라고 밝혀진 것들은 대개 발병 후 사후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며 해석을 위한 해석을 하는 일과 같다. “종교적 신념의 붕괴 이후로 영적인 가치들이 부착된 두 가지 대상이 바로 예술과 질병입니다.” “18세기 중반 이전에는 질병의 은유를 근대적으로 활용하는 예를 찾을 수가 없더군요. 질병이 인간 조건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쓰인다는 발상 말입니다.” 과학혁명과 계몽사상이 종교적 사유를 밀어냈다. 그렇다고 영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이 사라지지 않았다. 종교적 삶을 대신해 영적 가치가 자리잡은 곳은 손택의 말대로 예술과 질병이었다. 한편, 근대 국가는 국민들의 삶을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통제한다. 산업혁명으로 탄생한 대규모 공장, 모병제, 학교 같은 제도는 국가가 국민의 건강도 돌볼 필요를 만들었다. 근대 의학의 탄생, 즉 국가가 건강을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질병에는 사회적 가치가 스며들었다. 마침내 질병은 그 자체를 넘어 다른 가치를 전유하는 은유가 되었다. 손택은 은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질병을 은유로 사용하는 일을 비판한데서 은유를 부정적으로 본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은유에 극단적인 회의론을 품고 있다고 해야겠죠. 은유는 사유에 핵심적이지만 쓸 때는 은유를 믿으면 안 돼요. 어쩔 수 없이 필요한 허구라는 걸 알아야 하죠. 아니, 필수적인 허구가 아닐 수도 있어요. 은유를 품지 않은 사유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죠. 그러나 바로 그런 사실이 그 사유의 한계를 드러내주는 거예요. 내 마음을 끄는 건 항상 그런 회의주의를 표현하면서 은유를 넘어 깨끗하고 투명한 무언가로 나아가는 담론이에요. 바르트의 표현을 빌리면 0도의 글쓰기죠.” “내 마음은 잔잔한 호수과 같다.” 이 문장의 뜻을 파악하기 어렵지 않다. 마음이 고요한 상태다. 이 상태를 바람이 불지 않아 물결이 일지 않는 호수의 수면 모습에 비유했다. 그런데 마음과 호수는 실제로는 전혀 다른 존재다. 은유는 관심을 돌린다. 달을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머물게 한다. (이것도 비유다) 은유는 오도한다. 은유에 비판적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풍부한 의미를 놓치고 스테레오타입에 머문다. 통념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채 고정된 관념에 매달리게 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손택의 사상은 거짓된 관념과 해석을 비판하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데에 있다. 해석을 위한 해석이나 은유를 통해 오도된 이해를 비판한다. 그녀가 생각하는 있는 그대로 본다는 의미는 어떤걸까? “착시와 허위와 선동을 파괴하려고 애쓰는, 그래서 만사를 더 복잡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해요.” 세상 모든 것은 단순하지 않다. 은유는 대상의 속성 중에서 하나만을 강조하고 가리킨다. 총체적 앎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더욱 관심이 많은 경향이 있으므로 자신의 일은 더욱 단순하게, 타인의 일이나 어떤 대상을 탐구할 때는 더 복잡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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