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와 한반도 문제를 집중적으로 보도, 논평해온 저널리스트가 평화와 공존의 대상으로서 북한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를 새로운 시각에서 제시한 책. 남북관계의 현장을 쭉 지켜온 저자는 선악 이분법의 잣대로 북한을 재는 분단논리로는 ‘평화 한반도’의 길이 열리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쓴 신문 칼럼과 시평, 잡지와 전문저널 기고문, 논문 등을 주제별로 짜임새 있게 재구성한 것이다. 지난 10여년간의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책 제목 <차라리 소가 되고 싶다>는 판문점을 거쳐 북녘 땅으로 가는 소 떼를 부러워하던 이산가족들의 절규에서 따온 것이다.
저자는 무엇보다 열린 사고를 요구한다. 동해의 뱃길로는 금강산 관광유람선이 북으로 가는데, 그 건너편 서해에서는 남북 함정이 치열한 교전을 벌이는 ‘이중적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남북화합, 더 나아가 통일을 앞당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북의 변화는 ‘속셈’과 ‘음모’로 깎아 내리고, 남의 시도는 ‘포용’과 ‘선의’로만 해석하는 자기 정당화의 주술에서 해방될 것을 요구한다.
굳어진 이념의 껍질을 벗기고 가슴으로 분단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 그 상처와 아픔으로 남북공존의 토대를 마련하고 마침내 평화와 통일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자는 것이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다. 그래서 저자는 일관되게 ‘마음의 포용’을 강조한다. 이념의 장벽, 군사적 대립, 이질화된 문화, 정치적 이해득실 등 분단이 만든 상흔들을 야멸찬 이해타산으로는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 이 책이 강조하는 것은 사실에 기초한 냉정한 현실인식이다. 저자는 철저한 현실분석과 실증자료를 토대로, 냉전적 통념과 분단고착화 세력의 이기적인 주장을 예리하게 비판한다. 이분법적 편견과 선악설의 독단에 갇히지 않는 객관적 시각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관계는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무너진 ‘가공된 신화’의 세계다. 그동안에는 일방적 ‘미화’와 ‘매도’가 끝없이 반복된 관계이기도 했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런 신화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의 메스를 들이댄다. 남북 군사력 비교나 미국의 한반도 전략에 포함된 ‘미국 이기주의’의 정체에 대한 해부 등이 바로 그런 대목이다.
이 책은 전체 10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 ‘우리는 만나야 한다’는 저자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면서 만난 북녘의 산하와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을 담고 있다. 남과 북은 만남과 교류의 과정에서 서로 ‘핏줄’임을 진하게 느끼게 됨을 체험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2장 ‘부시의 패권주의, 그리고 한반도’는 북핵 문제로 ‘전쟁 위기설’까지 나오는 한반도의 불안한 현실에 대해 그 원인과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적 일방주의와 북한의 모험주의가 가져온 뜻하지 않은 긴장 국면에 대한 분석이 펼쳐진다.
3장 ‘마음의 포용이 먼저다’는 남북관계와 한반도 주변상황을 둘러싼 남한사회 내부의 논쟁, 이른바 ‘남남갈등’에 대한 해부를 시도한다. 저자는 ‘주장’만 있고 ‘토론’은 없는 소모적 갈등을 끝내고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는 토론의 광장으로 모두 나올 것을 요구한다.
4장 ‘북한의 선택과 남북관계’는 6.15 남북 정상회담 이전의 일그러진 남북관계를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북한의 판문점 무력시위가 1997년 대선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 북한 식량난에 대한 남쪽의 ‘배부른 흥정’ 등에 대해 저자는 안타깝다는 심경을 숨기지 않는다.
5장 ‘분단, 그 지울 수 없는 상처’는 분단으로 인해 고통 받고 삶이 파괴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념 과잉’의 시대는 사회 집단과 조직을 얼마나 맹목적으로 만들 수 있는가도 보여준다. 수지 김 사건, 성혜림 망명설,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씨 이야기 등이 담겨있다.
6장 ‘그래도 희망은 버릴 수 없다’는 정치, 사회 문제를 주로 다룬다. 한국 정치의 파행, 이념 공세의 선봉에 선 언론의 행태, 정치인들에 대한 색깔론 시비 등 우리나라 특유의 정치 및 사회 현상들은 분단 상황과 하나의 고리로 연결돼 있음을 알게 된다.
7장 ‘젊은 장병들에게’는 저자가 국방일보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은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군대시절 체험을 바탕으로 21세기에 맞는 군인 상을 제시한다.
8장 ‘항일 빨치산 여전사, 이민’은 북한 김일성 주석과 함께 항일 빨치산 운동을 했던 조선족 이민 여사에 대한 기록이다. 이민 여사는 1940년대 소련령 하바로프스크에 있던 ‘김일성 부대’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했던 기억을 저자에게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9장 ‘사민주의 복지국가, 북유럽을 가다’에는 우리 사회의 이념적 지평을 넓히려는 저자의 고민과 모색이 담겨 있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스칸디나비아 3국의 사회민주주의 정책들을 다뤘다.
10장 ‘평화 한반도를 위한 모색’은 남북관계와 관련해 저자가 각종 심포지엄이나 전문 저널에 기고한 논문 등을 담고 있다.
본문 소개
“부시 대통령이 대북 압박기조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북한이 이에 반발하고 있어, 가운데 끼인 우리는 갈수록 난감한 처지로 몰리고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더 강조해야 한다. 한국, 미국, 일본의 공조에 매달리다 보면 미국의 일방적 강경책에 끌려가지 않을 수 없게 돼 있다. 민족의 운명이 걸린 문제이니만큼 관계가 껄끄러워지더라도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2장, 본문중에서)
“이념의 껍질로 단단히 에워싸인 답답한 현실을 깨는 돌파구가 필요하다. 그것은 메말라 황량해진 가슴에 뜨거운 감동을 불어넣는 일로부터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얽힌 매듭을 푸는 실마리는 차가운 머리보다 뜨거운 가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3장, 본문중에서)
“대북송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분명히 밝혀야 한다. 남북관계에 왜곡된 부분이 있다면 바로잡고 무거운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실정법 잣대로만 재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잡초와 덩굴로 뒤얽힌 곳에 새 길을 내는 과정에서 생긴 생채기는 그것대로 고려해야 할 터이다.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3장, 본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