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래의 시를 향하여』 간략한 소개
현장 평론 활동을 꾸준히 해온 문학평론가 이성혁의 평론집 『미래의 시를 향하여―노동시와 아방가르드』가 다중지성총서 여섯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문학의 잠재성과 가능성을 탐구하며 활발한 평론을 해오고 있다. 그는 이번 평론집에서 아방가르드 예술운동과 노동시에 대한 새로운 분석을 시도하며 우리 시대의 시, 문학, 예술과 혁명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제시하고 있다.
평론집 제목인 ‘미래의 시를 향하여’는 “19세기의 사회 혁명은 과거로부터는 그 시를 얻을 수 없고 오직 미래로부터만 얻을 수 있다.”(「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라는 맑스의 말에서 빌려온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맑스가 말했던 ‘미래의 시’가 우리에게 더욱 절실해졌다고 말한다. ‘미래의 시’에서 ‘미래’는 관념적으로 설정되어 있는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구축해나갈 미지(未知)의 시간을 의미한다. 미지의 시간을 창조적인 것으로 구축해나가는 과정에서 시적인 것은 창출된다. 맑스의 말을 변형한다면, 21세기의 사회 혁명은 미지의 시간을 시적인 것으로 구축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시’란 시 작품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인들이 감행한 미지에로의 모험의 산물이 작품으로서의 시라고 할 때, 한 편의 시 작품은 사회 혁명을 응축하고 예시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노동시’와 ‘아방가르드’의 관계를 고찰한다. 아방가르드는 삶과 분리된 제도 예술을 비판하면서, 예술을 통해 삶을 시적인 것으로 고양하려고 했다. 그래서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은 삶을 화폐에 종속시키는 사회와 문화에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러한 면에서, 삶의 존엄을 지키고자 고도의 착취 체제에 대한 저항에서 탄생한 한국의 노동시 운동은 아방가르드와의 삶정치적(biopolitics) 접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우리 시대의 사회 혁명이 다중의 예술적 창조성에 의해 미지의 미래를 시적인 것으로 구축해나가는 삶정치 과정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할 때, 두 운동이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더 탐색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출간은 이러한 필요성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다.
2. 『미래의 시를 향하여』 상세한 소개
미래의 시를 창출해온 노동시
20세기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 이후, 미래를 창조적으로 구축할 ‘미래의 시’는 삶과 세상을 바꾸고자 원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칼 맑스는 혁명기 부르주아 정치세력이 자신의 시-이미지를 과거에서 빌려오는 것을 지적하고 비판했다. 동구 사회주의 국가는 창조력을 상실한 채 과거를 상기시키는 동상의 아우라를 통해 노동자들을 통치하려고 했다. 이처럼 과거의 이미지를 미래에 투사하여 미래를 협소하게 한정짓는 양태는 맑스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평론집은 이러한 맑스의 통찰을 계승하며 미래를 자유롭게 하고 미래의 삶을 속박하고 노예화하는 자본의 세상에 저항하는 ‘미래의 시’ 이미지를 탐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래의 시 이미지’란 어떤 것인가? 저자는 만인의 자유가 쟁취되지 않는다면 자유로운 미래도 도래할 수 없다고 말하며, 19세기 시인 로트레아몽이 “시는 만인에 의해 써져야 한다.”는 문구에서 미래의 시 이미지를 포착한다. 제도 교육으로부터 차단된 노동자들이 시를 쓰기 시작했을 때, 그것이 바로 로트레아몽이 말한 ‘미래의 시’의 실현에 다가가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미래의 시와 노동시의 밀접한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그간의 노동시는 미래의 시를 창출하고자 하는 전통을 일구어 왔다. 노동자들의 시는 그들의 온 삶을 교환가치를 창출하는 데 복속시키려고 하는 자본에 저항하는 징표였으며, 그래서 미래를 열기 위해 현재의 벽에 파열을 내는 행위이기도 했다. 이 평론집은 백무산, 박영근, 송경동, 최종천, 강병길, 김광선, 조성웅, 하종오, 황규관 등을 포함한 여러 명의 시인들의 성과를 살펴보며, 노동시의 현재와 미래의 가능성을 짚어본다.
노동시와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의 공명을 밝힌다!
20세기 초반에 당대 급진적 예술가와 사회운동 세력이 참여한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은 삶과 분리된 제도 예술을 비판하면서 예술을 통해 삶을 시적인 것으로 고양하려고 했다. 저자는 한국의 노동시에 이러한 아방가르드적 측면들이 뚜렷하게 있음을 새롭게 조명한다. 그는, 노동시의 시와 삶을 결합하고자 하는 부단한 시도, 삶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직접적인 저항, ‘만인에 의한 시 쓰기’라는 문화혁명적인 측면들이 모두 삶을 시적인 것으로 고양하려한 아방가르드 운동과 공명하고 있음을 밝혀낸다. 그간 문학계에서는 노동시의 이러한 아방가르드적 측면들이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다.
또 이 책에서는 시가 삶을 속박하고 물신화하는 체제로부터 탈주하면서 자신의 삶을 되찾고자 하는 삶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시와 아방가르드 운동의 삶정치적 공통 평면에 주목하고 있다. 노동시의 현장성이 시뿐만이 아니라 다른 예술, 노동, 활동과 연결될 때 노동시는 삶 자체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며, 노동시는 이러한 잠재성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확장을 통해 노동시는 미래의 시로 전화(轉化)될 수 있을 것이다.
백무산, 송경동, 박영근 등 우리 시대의 주요한 시적 실험에 대한 진지한 고찰
이 책은 총 5부, 2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필요에 따라 각 장들 사이에는 주제와 맞는 토론문, 시평, 서평 등을 보론으로 삼아 논의의 풍부함을 꾀했다.
1부 「아방가르드와 시적인 것의 정치성」의 글들은 문학 제도나 문학의 종말 같은 근본적인 문제와 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관계 맺는 문제 등을 아방가르드의 관점에서 논하고 있다. 문학 제도와 문학의 정치화 문제(1장, 보론1), 가라타니 고진으로부터 파생된 ‘문학의 종말’ 논쟁에 대한 비평적 개입(2장, 보론2), 아방가르드 운동의 관점에서 고찰하는 ‘정치적인 것’(3장), ‘잉여’와 ‘긴장’이라는 코드로 살펴본 시적인 것에 대한 분석(4장), ‘시와 정치’ 논쟁에서의 미학과 삶정치의 문제 등을 살펴본다.
2부 「‘삶권력’에 저항하는 노동시의 현재성」에서는 1980년대 노동시를 살펴보고 현재의 노동시를 조망하고 있다. 또 현 시기 노동시가 보여주는 정치적 저항성과 제국적인 현실에 대한 인식 등을 살펴본다. 1980년대 노동시에 대한 재해석(1장, 보론3), 최근의 촛불집회와 노동운동에서도 확인되는 삶권력에 저항하는 왕성한 노동시 활동(2장, 보론4, 3장), 다문화주의적 제국과 노동시(4장), 한국 ‘정치시’의 현황 및 특성들(5장)을 2부에서 다룬다.
3부 「노동의 생활과 ‘삶미학’의 구축」과 4부 「잠재성의 발견과 봉기의 이미지들」은 본격적인 시인론과 시집의 작품들을 평한 글들을 모았다. 3부에서는 노동의 생활을 바탕으로 독특한 미학을 구축한 시인들인 박영근(1장), 최종천(2, 3장), 강병길(4장), 김광선(5장)의 시 세계 및 활동을 살펴본다. 4부의 글들에서는 한국 정치현실에 좀 더 직접적으로 발언하고 저항하며 대안을 모색하고 더 나아가 혁명의 이미지를 산출하고 있는 조성웅(1장), 하종오(2장), 황규관(3장), 백무산(4장), 송경동(5장) 시인의 시편들을 살펴본다.
5부 「저항과 생성, 자율의 공간을 향하여」에서는 이 평론집의 이론적 사유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문학예술비평서들의 서평이 실려 있다. 조성훈의 『들뢰즈의 잠재론』은 예술의 잠재성(1장)을, 안또니오 네그리의 『네그리의 제국 강의』(2장), 『다중과 제국』(3장)은 다중미학론과 공통적인 것을, 오철수의 『시로 읽는 니체』는 삶의 예술화를, 프랑코 베라르디[비포]의 『노동하는 영혼』은 인지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시적 신체의 회복 문제를 우리가 더욱더 깊게 사유할 수 있게 해준다.
이처럼 이 평론집은 우리 시대에 실험되고 있는 시적 활동과 미학론, 사회 혁명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며 독자들을 안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