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보면 대통령이 보인다
역사상 수많은 대통령이 있었고, 그들의 성격과 통치 스타일을 분석하려는 시도는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시도들은 주로 사회적 차원에서 추상화된 개념으로만 대통령을 분석했다. 우리와 같이 살아 숨 쉬는 한 인간으로 대통령을 보고 생물학적 차원에서 그들을 분석한 경우는 별로 없었다. 운동은 육체적 존재인 인간이 자신을 가장 솔직히 표현하는 도구다. 운동을 하는 동안 사람은 자신의 본성을 숨길 수 없다. 그중에서도 골프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의 삶과 닮은 운동이다. 이 책은 한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각국 대통령의 골프 스타일을 알아보고 이를 통해 그들의 성격과 통치 스타일을 분석한다. 또 골프를 둘러싼 대통령의 일화를 흥미롭게 풀어 역사 속에 숨겨진 소소한 비사를 보는 재미를 제공한다.
대통령이 골프를 하는 이유
대통령이 골프를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스트레스 해소, 정치활동의 일환, 자기과시를 위해 등. 그러나 많은 경우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 중압감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골프를 한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골프를 너무 좋아해서 구설에 오르자, 전임자인 부시는 “대통령직 수행에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따르는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골프장을 자주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로 오바마를 옹호했다. 박정희나 노무현도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골프를 했다. 박정희는 퍼팅을 스트레스로 여겨 ‘원퍼팅OK’로 게임을 마무리했다. 한순간 골치 아픈 일들을 벗어나 정신을 긴장 상태에서 놓아준 것이다. 또한 그는 골프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골프장 회동을 통해 정치적 입지를 다지고, 군을 위무하기 위해 태릉CC를 만들었다. 미국의 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순수 오락형’ 골퍼였다. 그의 골프 로컬룰은 ‘정치 이야기 금지’였다. 한 기자회견에서 “왜 그렇게 골프를 좋아하십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재미있어서요”라고 답했다. ‘자기과시’를 위해 골프를 하는 대통령도 있다. 미국의 제럴드 포드와, 한국의 전두환이 그랬다. 포드는 골프로 운동 만능인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려 했고, 전두환은 골프를 매개로 결속을 모아 자신의 위세를 확인하려 했다.
골프로 보는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
골프 행태에 따른 분류: ‘장쾌한 골프형’과 ‘전략적 플레이형’, ‘점수 관리형’
전두환은 장쾌한 골프형이다. 안전하게 정확하게 앞뒤 재면서 가는 형이 아니다. 기분도 내고 주변에 과시도 하고 그러면서 골프를 하는 형이다. 이런 골프를 하는 정치인은 기회가 왔다고 판단되면 모든 것을 걸고 도박을 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대통령 중에는 존 F. 케네디가 장쾌한 골프형이다. 이명박은 전략적 플레이형이다. 이명박은 정치도 매우 전략적인 루트를 따랐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주목을 받을 만한 일이 어떤 것인지를 면밀히 생각해 실행했다. 청계천 복원 사업, 교통체계 개선 사업이 대표적이다. 결국 이것 하나로 이명박의 주가는 크게 치솟았다. 점수 관리형의 대표는 노태우다. 그는 장타보다는 정확성을 추구했다. 연습도 드라이버샷보다는 숏게임 위주로 했다. 이런 유형은 실익은 챙기지만 획기적인 일은 못한다.
동반자 유형에 따른 분류: ‘네트워크형’과 ‘친구 동반형’
네트워크형이 골프를 하는 목적은 말 그대로 네트워크를 넓히기 위해서다. 골프를 하면서 협상도 하고, 은밀한 거래도 한다. 박정희는 네트워크형이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도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골프를 하면서 기업인을 만나고, 주변의 정치인들을 만나 자신의 활동 반경을 넓혔다. 클린턴도 네트워크형이다. 그의 주요 골프 파트너는 그에게 기부금을 낼 수 있는 기업인들이었다. 친구 동반형은 정치인 골프 행태로는 드문 경우다. 오바마가 그런 유형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주변의 가까운 참모들과 주로 골프를 했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도 친구 동반형이었다.
골프 규칙 준수 여부에 따른 분류: ‘규칙 무시형’과 ‘규칙 준수형’
대표적 규칙 무시형은 클린턴이다. 아무리 타수를 많이 쳐도 더블보기 이상은 적지 않았다. 멀리건을 많이 치고도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하고 규칙 위반이 아니라고 간주했다. 닉슨도 골프공을 발로 툭툭 차곤 했다. 이 둘은 결국 거짓말로 정치 커리어에 치명상을 입었다. 규칙 준수형은 알아서 벌타 받고, 알아서 정직하게 타수 계산하는 유형이다. 오바마는 한 홀에서 10타를 치면 이걸 다 적는다. 디보트도 메우고, 벙커 모래도 정리한다. 케네디, 하딩, 쿨리지도 룰대로 골프를 했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과 골프
‘골프 외교’ 이승만
주한 미군이 골프 때문에 주말마다 한국을 비우는 것은 문제라 여기고, 군자리골프장을 복원했다. 정작 자신은 골프를 치지 않았다.
‘골프 대신 테니스’ 윤보선
영국 유학파였지만, 골프에 대해서 무지했다. 대신 테니스를 쳤다. 유학 시절, 윔블던 테니스 대회 입장권을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했다.
‘막걸리 골프’ 박정희
국가원수가 고개를 숙이는 게 품위 없어 보인다는 이유로 퍼팅을 싫어했다. 주로 ‘원퍼팅OK’식으로 게임을 마무리했고, 라운딩이 끝나면 막걸리를 즐겼다.
‘대통령 골프’ 전두환
역대 대통령 중 최고의 골퍼이자 골프정치의 달인이었다. 앞뒤 한 팀씩 비우고 치는 ‘대통령 골프’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관리형 골프’ 노태우
어프로치와 퍼팅이 좋았다. 꼼꼼한 성격답게, 비거리에 집착하지 않고 정확하게 치는 타입이었다. 소리 소문 없이 골프를 쳐서 ‘용각산 골프’라 불렸다.
‘골프 금지령’ 김영삼
김종필과의 골프 회동을 통해 3당 합당에 합의했으나, 이 회동에서 엉덩방아를 찧은 뒤로 골프를 끊었다. 공무원들에겐 ‘골프금지령’이 내려졌다.
‘골프 대중화’ 김대중
IMF 이후 침체된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산업적인 측면에서 골프를 보고, 골프 대중화에 적극 힘썼다.
‘기분 전환 골프’ 노무현
정치 입문 후 주변의 권유로 골프를 쳤고, 그 뒤로 무척 좋아했다. 드라이버샷이 수준급이었다. 진보 대통령이었지만 골프에 반감이 없었다.
‘전략 골프’ 이명박
전략적 플레이형으로, 코스의 길이, 벙커와 워터해저드의 위치 등을 사전에 정확히 파악한 뒤 게임에 임했다. 골프 실력도 좋았다.
책 속으로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은 대부분 골프를 한다. 안 하는 사람이 왕따를 당한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다. “운동하세요?”라고 물으면 골프를 하느냐는 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국회의원 선수選數에 비례해 골프 실력이 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국에서 정치와 골프는 너무 친한 사이가 되었는데, 그 이유를 국회의원 우상호가 세 가지로 요약한 적이 있다. 첫째는 어느 정도 익명성이 보장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테니스, 축구, 배드민턴 같은 것을 한다고 해보자. 동호회에 들어야 하고, 얼굴 서로 익히고, 서로 속속들이 개인 사정도 알게 되는 불편함이 있다. 그런데 골프는 필요할 때 약속이 만들어지는 대로 운동을 하고 헤어진다는 것이다. 깔끔하고 홀가분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둘째는 소풍 가는 기분으로 가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골프장은 보통 산속에 있고 멋있는 풍광과 맑은 공기도 제공한다. 산을 오르내리면서 운동도 할 수 있다. 산에서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이니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셋째는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골프를 하기 때문이다. 정치인 치고 골프를 안 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고 한다. 게다가 요즘은 기자들도 대부분 골프를 한다. 그러니 골프를 해야 언론과 접촉할 일이 많아진다. 후원자들도 골퍼들이 많아서 골프장에서 모임을 갖기가 쉽다고 한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정치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통상은 골프를 함께 시작하는 것이다.
(「왜 정치인 골프에 부정적인가」 중에서)
클린턴의 골프 행태는 오래전부터 그야말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규칙을 잘 지키지 않는 골프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된 것이다. 우선 멀리건을 너무 많이 받는다. 동반자에게 묻지도 않고 스스로에게 멀리건을 주는 식이다. 티샷만 멀리건을 받는 게 아니라 페어웨이에서 하는 아이언샷, 그린 주변의 칩샷까지 수없이 멀리건을 쓴다. 그래서‘빌리건’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러면서도 동반자들의 미움은 받지 않는다. 그때마다 재미있는 농담을 잘 했기 때문이다. 통상‘빌리건’을 칠 때는 “대통령이 사면을 허하노라!”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1993년 취임 후 첫 휴가를 얻었을 때, 전설의 골퍼 잭 니클라우스를 초대했다. 물론 골프를 같이 했다. 이때‘빌리건’을 50개나 쳤다. 멀리건의 황제라 할 만하다. 홀에서 1.5미터 떨어진 것도 기브를 달라고 할 정도로 스스로에게 관대하다. 국정에 대한 애착이 강하지만, 동시에 권력투쟁에 능하고 권력을 획득하는 데 관심이 많으면서, 윤리 의식은 높지 않은 야수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골프 규칙상 플레이 도중 연습 샷을 하면 2벌타다. 하지만 클린턴은 벌타를 계산하는 법이 없었다. 클린턴 정도의 거물에게는 골프 규칙 정도는 아주 사소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소아마비에 걸리기 전 프랭클린 루스벨트도 라운딩을 하면서 멀리건을 1~2개 정도씩 쓰기는 했다고 한다. 클린턴에 비하면 양반이다. 야수형인 클린턴과 승부사형인 루스벨트의 윤리 의식 차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골프로 모금한 클린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