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성사에서 전무후무한 다산성의 비평가-학자”인 김윤식 교수의 문학평론집. 2005~2014년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김윤식의 문학 산책’ 중 2010년 이후의 칼럼 일부를 단행본으로 엮어 낸 책이다. 공통 주제로 묶은 작품들의 개괄적인 이야기를 풀어낸 제1부, 작품을 대하는 작가들의 다양한 양상을 논한 제2부, 저자만이 가진 고유한 시각으로 대상에 대한 해석과 비평을 펼친 제3부로 구성되었다. 『문학을 걷다』를 통해 우리는 비평가로서의 감각을 잃지 않으려 한평생 자신을 채찍질해 온 한 노장의 지적 열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평론가 김윤식이 만난 문학, 그 삶과 꿈의 이야기!
한평생 문학과 걸어온 원로학자, 그가 읽은 문학의 표정을 그리다!
79세의 나이에도 매일 ‘200자 원고지 20장 글쓰기’에 몰입하며, 각종 문예지에 발표되는 소설을 모두 읽고 꾸준한 월평 쓰기를 이어 가고 있는 원로 국문학자이자 비평가 김윤식 교수의 문학평론집 『문학을 걷다―김윤식이 만난 문학 이야기』가 그린비에서 출간되었다. 2005~2014년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김윤식의 문학 산책’ 중 2010년 이후의 칼럼 일부를 엮어 펴낸 책이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에는 한평생 비평가로서의 감각을 잃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해 온 한 노장(老將)의 지적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문학의 여정에서 만난 작품들을 나름의 주제로 묶어 그에 대한 개괄적인 이야기와 관련 역사, 일화를 담담하게 풀어냈으며(제1부 ‘악마와의 결탁 없이도 창작이 가능할까’), 자신과 동시대를 겪거나 그보다 조금 앞선 시대를 살아 낸 작가들의 문학적 고뇌와 양상, 스타일에 대해 칭찬과 충고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고(제2부 ‘세계를 업고 다니는 대리운전사’), 그만의 고유한 시각으로 문학 문화 역사 인물에 대한 해석과 비평을 펼치기도 했다(제3부 ‘아직도 월평을 쓰고 있는가’). 글 한 편당 원고지 8매 남짓한 짧은 분량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오랜 세월 현장에서 문학 비평을 해온 김윤식 교수의 저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품론과 작가론을 가리지 않는 방대하고 깊이 있는 그의 글쓰기에는 평생 문학을 걸어온 자만이 그 연륜과 경험을 바탕으로 말할 수 있는 메시지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가 걸어온 지적 여정, 그리고 그 안에서 만난 문학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 문학을 이야기하다―이 책의 구성
『문학을 걷다』를 구성하는 51편의 칼럼은 꼼꼼한 작품 정독을 통해 탄생한 노력의 산물로, 평생을 텍스트 읽기에 집중해 온 김윤식의 안목과 스타일이 녹아 있다. 우선 저자의 전공이자 관심사(한국 근대문학)에 따라 작품의 범위가 근대와 현대로 집중됨을 알 수 있다. 길어야 200년 남짓한 근대라는 한정된 기간에 탄생한 작품들을 주제에 따라 그 역사적 배경과 함께 설명한 것이 특별하다. 한국전쟁과 피난민 후송선 LST라는 상징적인 소재로 분단문학의 발자취를 찾고(「LST 체험과 분단문학」), 4·19가 문학사에 남긴 흔적을 살피며(「4·19와 말라르메」), 입양 고아라는 근현대의 화두가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입양 고아에 대한 문학적 성과」) 등을 분석한다. 또한 주목할 만한 현대 작가들의 스타일을 비교하고 그들이 가진 양상의 공통점을 들여다보는 것(「어째서 신진 작가에겐 아비가 없는가」)도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다.
김윤식이 바라보고 있는 세계가 한·중·일 삼국에 주로 관련되어 있다는 것도 또 하나의 특징이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가장 비중 있게 다루어졌다. 이광수, 염상섭, 김동인 등의 소설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며 시인이자 작가인 이상을 그린 글에서 이러한 측면을 좀더 발견할 수 있다. 루쉰과 저우쭤런, 충칭 임시정부와 『돌베개』(장준하, 1971), 『장정』(김준엽, 1987~2001) 등 중국과의 경위를 찾아볼 수 있는 작품도 비중 있게 다루어졌다. 물론 세계문학의 흔적도 적잖이 발견된다. 플로베르와 도스토옙스키를 통해 ‘운명’을 이야기하고(「도스토옙스키와 하루키」), 레이먼드 카버의 전기(傳記)로 그의 삶과 글쓰기를 탐구하며(「단편으로 일관했던 레이먼드 카버」), 작품을 개작하는 것에 대한 보르헤스의 충고에 진심으로 공감한다(「작품 개작에 대한 보르헤스의 우정 어린 충고」).
『문학을 걷다』에 실린 문화 비평 역시 김윤식의 지적 심연을 뒷받침하고 있다. 동양의 수월관음도와 서양의 「카드놀이하는 사람들」(폴 세잔, 1960)에 담긴 메시지(「서당개 삼 년의 변」, 「서울에 온 세잔이 만나고 싶은 사람들」), 국보 제100호의 가치(「국보 제100호는 어떻게 있어야 하는가」), 역사의식이 담긴 문학관의 의미(「문학관은 어떻게 있어야 하는가」), 야나기 무네요시가 세운 일본 민예관의 풍경(「『미의 법문』과 인간다움」) 등 시공을 초월한 문화적 관심은 과연 그를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이라 부르기에 아깝지 않게 만든다.
아직도 월평을 쓰고 있는가?―월평 쓰기의 몇 가지 원칙
이처럼 문학과 역사, 문화에 통달한 비평가로서의 감각을 유지하려는 김윤식의 노력은 실로 대단하다. 비평의 현장성을 잃지 않고자 수십 년 동안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월평 쓰기’에 쏟아부었는데, 여기에는 자신만의 확고한 원칙이 존재한다. 『문학을 걷다』에서 밝힌 원칙은 바로 해박한 지식만큼이나 공감의 능력을 갖추는 것. 여기서 그가 말하는 공감은 “마음에 없는 것을 참을 수 있는 일반적 무관심”에 그치지 않는다. 철학이나 심리학, 자기 나라의 전통 등에 해박해야 함은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각양각색의 것에 대한 활기 있는 기쁨에 근거를 두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이야기한다(본문 중에서). 또한 작품과 작가를 구별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즉 누구의 자식으로 어디에서 태어나 어느 골짜기의 물을 마셨는가를 문제 삼지 않고 오직 작품만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대가와 신진 작가를 가리지 않고 각종 문학 계간지, 월간지에 실리는 작품을 모두 찾아 읽고 의미를 발견하는 작업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원칙은 그가 생각하는 월평의 ‘목적’과 관련되어 있다. 비평은 세상이나 남을 칭찬하고 기려야 한다는 것이 그것. 비평이란 원래 그래야 한다는 것마냥 ‘까기’에 바쁜 글은 결코 좋은 글이 될 수 없음을, 그 작품을 기리고 감동함으로써 나와 남을 감동시키는 것이 좋은 글임을 믿는다고 적고 있다.
좋은 작품과 좋은 글에 매달려 하루 10시간 이상 서재에 박혀 연구하는 열정과 인내의 이 노학자에게 혹자는 어째서 세상 속으로 나오지 않느냐고, 작가와 현실, 역사와 대면하지 않으냐고 묻는다. 이에 김윤식은 담담하게 대답한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고 하면 어떨까. 그러나 작품 속에서 만나는 세계가 현실의 그것보다 한층 순수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소..”(본문 중에서) 문학과 시대성 사이의 고민, 문학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 속에서도 묵묵히 작품 속에서 시대의 감수성을 찾고 자기의식의 싹을 틔우려 했던 한 원로학자의 고백이 유독 경건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