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향기 동서문학상은 2년마다 시행되는 아마추어 여성 문인 대상 문학상으로서, 시 부문/수필 부문/소설 부문/아동문학 부문(동화, 동시)의 총 4개 분야 / 자유 주제로 작품을 공모하여 여성 문인 발굴 및 후원으로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문인의 산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대상 및 금상 수상작은 ‘월간문학’ 12월호 발표를 통한 등단 및 한국문인협회 입회자격이 부여되는 특전도 있다.
제13회 삶의향기 동서문학상 대상은 추영희의 『달을 건너는 성전』이 선정되었으며, 소설 부문 임정은의 『손』, 수필 부문 김진순의 『단아한 슬픔』, 아동문학 부문은 김원선의 『마이 네임 이즈 상우 킴』이 금상 수상작품으로 선정되었다.
문학은 오죽하면 살아있겠느냐는 사람들을 한없이 토닥거리는 찬란한 행위입니다.
우리 어렸을 적에 달걀귀신을 비롯하여 귀신, 도깨비가 참 많았는데 지금은 그 많던 귀신들이 다 사라졌습니다. 바로 전깃불로 세상이 환해져서 귀신이 다 사라진 것입니다. 문학은 인간 정신사의 전깃불이기에 불멸하는 존재입니다.
이번 제13회 삶의향기 동서문학상에 어김없이 1만 9천여 편을 응모해 주신 전깃불 같은 문학도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시 부문에서 대상과 은상의 3편 작품은 주제가 참신하고 내공의 깊이가 느껴질 정도로 우수한 작품이었다. 「달을 건너는 성전」은 전개 기교와 제목 등에서 신선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내용에서 달과 여성과 여성 생리 중 인간 생성의 기원에서 시적 상징, 발달되어온 전 과정을 축약 간명하게 제시했으며 한국 정서 문화의 정체성을 제시해 주었다.
「우화를 기다리며」 「벽화가 있는 마을」 등은 시적 전개와 읽는 이의 희망적 감동에서는 「달을 건너는 성전」보다 약한 듯했으나, 시적 전개나 전개 기교, 감동에서는 매우 우수했다. 그러나 작품 한 편에 너무 많은 것을 얘기하려는 의욕이 지나쳐서, 간명한 시 본래의 특성을 약화시킨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사」는 발상이 매우 참신했다. ‘새 거울을 벽에 걸자’ ‘연못이 생겼다’는 상상적 세계가 인상적이었다. 물속 세계와 육상의 세계가 교직된 구성이 돋보였다.
「고래 엄마」는 한국 여인, 특히 어머니의 신산한 삶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아픔 위에 피어나는 사랑의 꽃을 보는 듯했다. 「팔마나무」는 인생을 장중하고 심각하게 들여다보면서 시적 상념을 전개시킨 작품이다. 인류의 영원한 철학적 화두인 삶과 죽음의 문제를 차분하고 안정된 포즈로 바라보고 있는 지은이의 역량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소설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한 「손」은 요리전문가로 TV방송에 출연하는 여성의, 손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직 생존을 위해 맨손으로 자갈밭을 일구느라 ‘특별한 형태’를 갖게 된 손이 매체의 상술과 부박한 세태에 의해 어떻게 미화되고 추락하는가를 보여주는 소설로서 가독성과 현장감이 뛰어나다. 이 세태에 길들여지고 순응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서술하면서 비판과 역설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요양병원 간호조무사의 일상을 소재로 한 「밤의 묘지」는 고령화에 이른 한국사회의 단면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한 장의 풍속화라 할 수 있겠다. 고아 출신으로, 홀어미로 자식을 기르면서 살아야 하는 고달픔과 불안이, 살아남기 위해 가장 수치스럽고 저열한 방식을 수락하며 세상과 타협한다는 작가의 서술이 쓰라린 여운을 남긴다. 죽어가는 노인의 ‘싸녀’라는 무력한 욕설이 세상을 향해, 우리 모두를 향해 날리는 강펀치처럼 통쾌하고 후련하기도 하다.
「어떤 이별」은 드물게 순정하고 ‘사람 냄새’나는 소설이다. 우리가 이미 잊고 잃어버린 단순하고 선한 본성을 양순 할매라는 노인을 통해 보여주면서 인간 사이의 끈끈한 정이나 애틋함을 서술하고 있다.
「기린 보는 밤」은 동물원이라는 공간과 동물사육사의 시선을 통해 살아가는 일, 소멸해가는 것들에 대한 쓸쓸함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죽음을 앞둔 노모와 그 죽음, 노인병원이라는 공간을 거의 버려지다시피 한 동물원과 역시 노쇠하여 미구에 죽음을 맞을 기린과 겹쳐놓으며 따뜻한 슬픔의 세계를 보여준다. 군더더기 없이 단정한 문장과 절제된 감정의 서술이 돋보인다.
「전쟁 같은 사랑」은 가정 있는 남자를 사랑하여 그 남자의 아이를 낳고 평생 그 사랑을 지키며 그늘에서 살아가는 엄마의 인생을 딸의 시각에서 보여주면서 ‘사랑의 본질과 속성은 무엇인가’를 묻는 소설이다. 비록 오래도록 헤어져 살다가 인생의 끝에 이르러 죽음의 길까지 동행한다는 순애보가 청승스럽거나 감상에 빠지지 않고 일정한 격을 잃지 않은 점에 호감이 갔다. 그러나 절대적 사랑을 추구하던 화자가 남편에 대한 오해로 자살해버린다는 결말 부분이 사족이라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꼬리 달린 여자」는 응모작 중에서 단연 특이하다. 하룻밤 사이에 많은 여자들의 엉덩이에서 꼬리가 생겨나고, 처음에는 수치심과 절망감으로 자취를 감추거나 온갖 방법으로 꼬리 감추기에 급급하다가 빠른 시일 내에 꼬리 감추기-꼬리 자르기-꼬리 성형-꼬리 패션-꼬리 문화로 발전, 급속도로 대중들의 삶을 지배하게 되는 수순이 성찰 없이 요동치는 사회현상의 패러디 같기도 하다. 꼬리가 생겨난 원인이 다이어트약 복용이라는 것도 현 세태를 보여주는 재치 있는 발상이다.
수필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한 「단아한 슬픔」(김진순)은 교통사고로 사망한 아들에 대한 슬픔으로 삶을 영위해야 하는 어머니의 아픔이다. 그러나 이 수필의 가치는 감내하기 어려운 슬픔을 견디어 ‘단아한’ 삶의 의미로 펼쳐내고 있는 극복 의지이다. 암이라는 중병의 작가가 이처럼 초연하게 맞이하는 생과 사의 의미가 아름답게 전개되고 있다.
「아침밥」(정옥경)은 가세가 어려워 생활 전선에 뛰어든 주부가 함께 아침 식사를 못 해본 것을 아쉬워한다. 나이 들어 자녀를 성장시키고 자신의 제2 인생 ‘일러스트’ 공부를 하다, 이제 매일이 생일 밥상 같은 아침밥을 대하며 화목하다. 질곡한 정서로 승리와 성취의 기쁨을 준다.
「글자를 품은 나무」(이정화)는 우선 소재의 선택이 일반 여성의 경우와 차별화되어 관심을 모았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다뤄 작품의 완성도나 문학성, 주제를 형상화하는 솜씨도 뛰어났으나 관념적이어서 순위가 밀렸다.
「연꽃 소묘」(이광순)는 단아한 작품인데 덜 세련된 표현이 반복된 부분이 있었고, 동상 「항아리」(박순자)는 어머니의 노고를 잘 담아냈다. 동상 「섬」(박영희)은 비유와 표현이 뛰어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