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

송진권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2017, 걷는사람)가 발간되었다. 송진권 시인은 2004년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시집 『자라는 돌』(2011, 창비)을 펴내며 ‘슬픔과 허무를 견디는’ 자신만의 리듬으로 개성적인 활동을 전개해 온 시인이다. 이번 시집을 통해 그는 “계절마다 피고 지고 살고 죽는 마을을 가득 채우는 그 모든 느낌표, 물음표, 말줄임표, 따옴표, 쉼표들”을 선보인다. 슬픔과 허무의 세계를 붙잡던 시인의 품은 한층 넓고 깊고 따스해진 셈이다. 무한한 살핌의 시선으로 삶의 안팎을 더듬은 56편의 시가 그것을 증명한다.

송진권 시인은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고향에서 철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원 생활을 시작한 그는 교대근무를 하며 시골 도서관에서 시를 썼고 천리안 pc통신을 통해 시 쓰는 동료들을 만났다고 한다. 그 당시 같이 시를 썼던 동료들은 문학에 대한 목마름으로 자연스럽게 문학 동호회에 몰려들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조정 시인, 제주의 이종형 시인, 광주의 조석구 시인은 지금도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철도원으로 근무하는 도중 신인상을 수상한 송진권 시인은 대전에서 김병호 시인, 정덕재 시인, 김광선 시인, 조용숙 시인, 이미숙 시인과 함께 <젊은시> 동인 활동을 하기도 했다. 모두들 빠른 속도로 시의 언어를 바꾸려고 할 때 그는 등단작 이후 사라져 가는 고향의 풍경을 신화적으로 표현해 왔다. 그의 작품에 대해 정덕재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시인의 언어는 자신의 몸과 일치를 이루어야 하는데 송진권 시인이 꼭 그런 분입니다. 자신의 몸에서 육화되어 나오는 그의 시를 보면 자기 목소리로 노래하는 음유시인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사라져가는 소리꾼의 목소리, 아무도 듣지 않는 판소리를 혼자 밤새 노래하는 시인이 송진권입니다. ”

송진권 시인의 언어에서 풀려나오는 운율감과 사투리, 토속적 장면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민속학적 자료가 될 수 있다. 그의 시는 동화적이며 동시에 그로테스크하고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송진권 시인이 고향의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목가적 향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낙원에서 추방된 설움을 노래한다. 그것은 추방된 자의 노래이며 동시에 스스로 떠나온 자의 비애이다.

어느 날이가
나는 나만큼 둥근 방에 엎드린 한 마리 송아지를 보았습니다
송아지를 친구 삼아 살았습니다
송아지는 내 방까지 다리를 뻗으며 꼬리를 휘휘 돌렀습니다
너무 비좁다고 했습니다
여기가 좁아진 게 아니라 네가 큰거야
송아지를 따라 밖으로 나왔습니다
엄마 아부지는 소의 배 속에 두고 나왔습니다
- 「소의 배 속에서」 부분

김중일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지직거리며 잘 안 나오는 이야기, 자꾸만 희미해지려는 이야기를 되살리려 시인이 온 힘으로 높이 들어 올리고 있는 ‘안테나’가 이 시집이다”라고 말한다. “시인이 내민 그 안테나에 주파수를 맞추려 했던 지난 몇 날 밤에 들은, ‘죽은 줄도 모르고’(「죽은 줄도 모르고」) 사는 것들의 희미한 이야기가 여태 내 온몸에서 공명하며 떠돈다.”고 말한다.

지푸라기 엮어 할머니는 불을 붙인다
한 손에 불 들고 여기저기 항아리 안을 비추던 할머니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신다
여기 누가 기시는가
여기 누가 기시는가
항아리 속에 들어앉는다

(중략)

아가 어여 먹어라
배고프지 어여 어여 먹어라
할머니 몸이 곰삭아 들어간다
어여 먹어라 내 새끼야
어여 먹어라 내 새끼야
항아리 속에 잘 삭은 할머니가 떠오른다

- 「항아리 속 할머니」 부분

죽은 줄도 모르고 사는 것들. 삶의 근저에 ‘숨어’ 있는 것들. “항아리 속에 잘 삭은 할머니”와 같은 존재들을 ‘찾는’ 일은 이번 시집에서 시인이 행하는 주요한 시적 행위이다. ‘숨어 있는’ 존재, 사람이든 사물이든 반드시 그를 찾아내주고야 말겠다는 마음. 그 마음에는 깊은 애정이 깃들어 있다. “세상 돌멩이란 돌멩이 다 들춰내고/ 물속이란 물속 다 들여다보고/ 꽃이란 꽃 다 찾아가서 쥐어뜯으며 을러서/ 끝내 널 찾아내고 말 거다 (중략) 기필코 내 너를 찾아 내고 말 거다”(「숨바꼭질」)하는 것. 이것이 곧 시인의 마음이다.

시의 안팎에 스민 무한한 ‘살핌’의 시선
“이 한 권에 오래된 미래에서 얻은 공존과 순환의 철학이 숨쉬고 있다”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기다란 그늘이 드리울 때까지
할머니랑 이야기를 하지요
느티나무가 이만큼 해묵을 때까지
이 동네에서 나고 자라 타지로 떠난 이들과
이 동네에서 나고 한 동네로 시집가 눌러사는 이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겨’로 끝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지요
- 「느티나무슈퍼」 부분

해설을 쓴 안서현 평론가는 “송진권 시인의 시 속에는 꼭 할머니의 그것과도 같은 부드러운 시선이 있다”고 말한다. “아궁이 안에 불씨가 살아 있는지, 외양간 안의 소는 여물 이나 잘 먹고 있는지 안쪽을 살피는 시선” 혹은 “길가에 이웃이 지나가지 않는지, 문밖에 내다 판 소가 제집을 찾아와 있지 않은지 바깥을 탐문 하는 시선”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정감 어린 눈길은 여러 시의 안팎에 고루 미쳐 있다. 말하자면, 상대를 향한 무한한 ‘이끌림’과 ‘살핌’, 그것이 바로 시인의 세계에 다름 아니다.
아울러 시인의 세계는 “대상의 안쪽을 살피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시인은 먹고 던진 “올뱅이 껍질” 안 에서 숨겨진 생명력을 발견하기도, “물 가둔 논” 안에서 일어나는 일의 진짜 의미, 즉 “우리가 온밤 내 찾아 헤맨 곳이 여기” (「물 가둔 논」)였음을 불현 듯 알아차리기도 한다.

이런 시인의 ‘찾아내는’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꼽자면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과 생명의 ‘연속성’의 원리. 올뱅이 껍질 안에 ‘우리 동네’가 다 들어 있음을 재삼 확인하는 것이다.

올뱅이 껍질 속 같은 꼬부랑길을 걸어 밭에 가던 할머니가
즘잖은 양반이 왜 여기서 이랴 하며
길 잘못 든 두꺼비를 물 쪽으로 타일러 돌려보내는 때
해바라기는 환하게 불을 켜며 길 밝히고요

올뱅이 껍질을 타고 내려가다 헛디뎌 미끄러진
제일 깊고 후미진 데에는
단단하니 영롱한 올뱅이 새끼들이 꼬물대고요
밝은 빛의 씨앗이 움트기도 할 것이지요

- 「우리 동네」 부분

시인은 작은 것 안에 가족과 이웃의 내력, 즉 지나온 삶의 곡절이나 ‘내림’, 부모나 조상으로부터 이어져 오는 어떤 것이 숨겨져 있음을 즉시 발견해낸다. 안서현 평론가는 “시 속에 ‘숨은’ 것이 가족과 이웃의 삶의 곡절이라면,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시인과 독자의 눈길이고 또 마음이다”고 강조한다.

이렇듯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들여다보고 또 내다본다. 그로써 삶과 죽음이라는 세상의 이치까지 두루 섭렵해낸다. 들여다보고 내다보는 일, 그 ‘들고 남’의 관계론, 시론, 존재론이 이 시집 안에 모두 펼쳐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한 권에 오래된 미래에서 얻은 공존과 순환의 철학이 숨쉬고 있다. 그리하여 이 시집 읽기는 독자로 하여금 오랫동안 잊고 지낸 어떤 균형 감각을 되찾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