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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목록

창비시선 381

  • 관심 0
창비 출판
소장
종이책 정가
8,000원
전자책 정가
30%↓
5,600원
판매가
5,600원
출간 정보
  • 2022.05.27 전자책 출간
  • 2015.02.06 종이책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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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 EPUB
  • 약 2.6만 자
  • 9.5MB
지원 환경
  • PC뷰어
  • PAPER
ISBN
9788936404154
ECN
-
비의 목록

작품 정보

상처와 고독의 자리에서 피워낸 성찰의 노래

199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낯선 이미지로 상상의 세계를 펼쳐온 김희업 시인의 두번째 시집 『비의 목록』이 출간되었다. 첫 시집 『칼 회고전』(천년의시작 2009)에서 상처로 얼룩진 고독한 몸의 세계와 존재에 깃든 고통과 억압의 역사를 탐색했다면, 5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는 한층 시야를 넓혀 다양한 사물을 포괄하고 삶의 이면을 내밀한 시선으로 응시하는 ‘리얼리스트적’ 태도를 견지하면서 언어적 기지를 살려 사물과 삶의 중핵을 파고드는 관조와 성찰의 시편을 선보인다. “한국 서정시의 리얼리즘적 전통에 새로운 용기를 불러넣”으며 “상처와 고독을 오래 감수한 자가 ‘외마디 비명도 없이’ 그것을 담담한 ‘생의지(生意志)’로 전환시키는 건강하고 감동적인 힘”(함돈균, 해설)이 뭉클한 공감을 자아낸다.

30도의 기울기란/마음이 먼저 쏟아지지 않는 경사/알 수 없는 자력이 몸을 곧추세운다/그냥 밟고만 있어도/높이가 커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굳이 거슬러 내려가지 않고/계단의 물결에 발을 맡길 것이다/거슬러 오르는 멋진 오류는 연어의 일/한계단씩 베어 먹은 사람들의 높은 입/그들은 먹이를 얻기 위해 날마다 입을 벌린다/외마디 비명도 없이 공중에 떠 있는 현기증/어떤 뒷모습이라 할지라도 바라보면 쓸쓸하고/꼭 그만큼만 보여주는 생의 짧은 치마/넘치지 않는 저울질로 평등하게 내려놓고/빈 계단만 층층이 접히는 지평선/맞물린 관계 속에/서로 먹고 먹히는 다정한 세계/기울어진 생계를 떠안고/마음이 쓰러지지 않게/흙이 묻지 않는 보법으로 반복되는 생성 소멸/오늘밤/달은 발자국 남기지 않고 가던 길을 갈 것이다(「에스컬레이터의 기법」 전문)

김희업의 시에는 욕망의 억압 구조에 얽매인 존재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시인 또한 ‘세계 내에서 세계를 응시하는 비평적 시선’으로 어둠에서 빛을, 죽음에서 삶을, 과거에서 미래를 읽어내려 한다. “말 못할 사연과 복잡한 서사”(「무너지는 얼굴」)를 간직한 채 “기울어진 생계를 떠안고”(「에스컬레이터의 기법」)서 “저마다 고군분투하”(「출생의 비밀」)는 가여운 존재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시인은 ‘아픈 사람 곁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수 있으리라’(시인의 말)는 소박한 마음으로 “불안을 껴안다보니 불안도 포근해졌다”(「날아라 풍선」)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시인이 보기에 “실체 없는 그림자”(「실업」) 같은 존재들에게 “건너야 할 하루는 매번 아득하기만”(「실업」) 하고 삶은 고통일 따름이다.

생각하지 않으면 아프지 않을 수도 있다//좁힐 수 없는 거리가 세상에 존재하듯/아프고 안 아프고의 차이는 아픈 차이//통증은 쪼그리고 앉아 오래오래 버티다가도 정들 만하면 어느새 날아가는 바람둥이 새//순간을 제치고 몸속 한획을 긋는 통증/먼 길 돌고 돌아 까마득한 새벽 어디서 왔을까//종종 통성명 없이 불쑥 나타나/평소에 없던 수많은 감정을 들춰내 죽이고 살리길 거듭/이대로라면 자멸에 평안히 도달할 것인가//내가 아니었으면, 해서 몸을 떠나고 싶은 떳떳한 출가//(…)//오늘도 추운 곳에서 빙하가 녹는다 진리처럼 모순처럼/따뜻한 통증을 동반한 채//그러니/멀리 근처에도 통증은 있어/언젠가 상쾌할 거라는 가설은 미완성으로 남겨놓는다(「통증의 형식」 부분)


삭막한 일상에 뿌리는 조그만 혁명의 씨앗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풍경에서도 시인은 삶의 정황과 세태를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맞물린 관계 속에/서로 먹고 먹히는”(「에스컬레이터의 기법」) 무한경쟁의 비정한 현실을 비판하기도 하고, “옷깃만 스쳐도 악다구니를 퍼붓는 세상”(「어떤 싸움」)의 각박함과 “밝은 눈으론 서로를 보지 못”하고 “거리를 오가다 몸을 부딪쳐야만/마지못해 인사를 건넬 뿐”(「태양의 열반」)인 무관심한 사회의 비정함을 들추어내기도 한다. “누구나 이 세상에 잠시 세 들어 사는 것”(「세입자」)일 뿐이라고 여기는 시인에게 세상은 “추운 사막 도시”(「전갈」)나 다를 바 없다.

그 관(棺)은 공포를 열심히 실어나른다/제 발로 태연히 관 속에 들어가는 혼령들/(…)/오늘도 혼령들은 쓸쓸했지/3층, 아이 혼령이 장난치며 사라지고/9층, 노인 혼령이 기침과 함께 사라지고/12층, 부부 혼령이 말없이 사라졌다/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할 때 무섭지/서로 같은 관에서 숨을 쉬건만/알고 보면 온통 낯선 혼령들/저 혼령은 또 몇층으로 승천할 텐가/직립인 그 관은 지상과 천국을 반복해 운행한다/44층,/허공에서 문득문득 발이 멈추게 되면/죽음의 포로가 되어/오금 저린 하관을 앞두고/이런 생각이 든다/누구나 죽으면 하늘로 솟거나 땅으로 내려갈 뿐/달리 뾰족한 수는 없을 거라고(「이상한 나라의 엘리베이터」 부분)

이렇듯 삭막하고 “컴컴한 백지의 세계”(「천둥소리」)를 냉철히 직시하면서 시인은 제 의지만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을 움켜쥐고”(「리어카의 신앙」) “생의 바닥을 긁”(「대리운전」)으며 살아가는 이웃들의 불행한 삶과 암울한 현실 쪽으로 시선을 옮겨간다. “집채만 한 허기에 떠밀려온 무료배식 긴 행렬”을 쓸쓸히 바라보며 “언제까지 그들을 줄 세워놓을 것인가”(「전갈」) 탄식하기도 하면서 시인은 “삶은 여전히 망망대해”(「통영」) 같지만 언젠가는 “가난을 벗어날 거라 믿는 게 신앙”(「리어카의 신앙」)이고 “혁명이 뭐 별거 있”는 게 아니라 “목마른 자 가까이 샘물 가득 준비해놓는 일”이 다름 아닌 “혁명”(「거짓말」)이라는 인식에 이른다.

두문불출한 채 낯빛이 누렇다/수행하는 걸까//숨죽인 채 덮어쓴 이불/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띄운 지 얼마나 되었을까/추위에 갈라터져/메마른 표정에 금이 갔다/너무 오래 묵힌 건가/햇볕도 쬐어야 하건만/방치된 늙은 세월//짚이라도 엮어 자신을 달아매고 싶다던 독거노인//소식 없는 자식들/오지 않는다/흰 곰팡이 검게 피어도//동안거 해제를 알리려는지/닫혔던 방문이/활짝 열렸다//이윽고//낯선 사람들 손에/노인의 관이 들려 나왔다//시취가 노인의 죽음을 제일 먼저 알렸다//모처럼/노인은 햇볕 쬘 수 있는/호사를 누리게 되었다(「메주」 전문)

그러나 “전지가위로도 끊어지지 않을 질긴 궁핍의 가지”(「전갈」)에 걸린 세상의 어둠은 쉽게 걷히지 않는다. “앞날이 흐릿하더니 절망이 뚜렷하게 보”(「실업」)인다. “까닭도 없이 가난한 가슴이 내려앉”(「종소리를 따라가다」)고, “삶은 바로 서려 할 때마다 엎어”(「대리운전」)지고 만다. 그래도 안간힘으로 버티며 “살아 있는 것은 움직이지 않고도 살아 있”(「변명」)는 법이고, “내일은 선택하지 않아도 내일이면 온다”(「선택」)는 것을 시인은 알고 있다. 그래서 “꿈은 오랜 세월 두고두고 보는 것/공유하는 것”(「통영」)이기에 시인은 애써 ‘거짓 없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멋진 삶을 꾸려볼 생각”(「이런 밥통」)도 하면서 나지막이 속삭이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견딜 만하다고”(「공」). “간절함 속에 담긴 누추한 살림을 보면 눈물겹다”(「물품보관함」)고.

손바닥에 닿으면 부러지는 연약한 비/비가 거리의 목록에서 노점을 지웠다 오늘은/가난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우산을 펴자 비가 우산 위로 사납게 달려들었다/우산은 우산 크기만큼만 비를 가려주었다/(…)/비에 쫓겨난 봄꽃은 어디서 보상 받을는지/생계가 막막해진 봄꽃이/뿔뿔이 자취를 감추었다/손바닥에 닿으면 부러지는 연약한/바퀴의 노동은 멈추지 않고, 내일도 모르고 앞만 향해 자꾸/달려간다 이런 날, 바퀴도 없이 미끄러지는 사람이 꼭 있더라/저만치 자신을 내팽개치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비가 거리의 목록에서 이제 웃음조차 지우려 한다/오늘은 비의 목록에 따뜻한 위로가 추가되어야 할 것 같다(「비의 목록」 부분)


추천사
“부레의 공기가/물고기를 물에서 자유롭게 하듯”(「날아라 풍선」) 시의 공기로 세상에서 자유롭게 된 시인이 있다. 그가 바로 시로써 ‘자수성가한 민들레’ 시인 김희업이다. 그 역시 시라는 위독한 병을 철저히 앓는 고립치라는 생각이 든다. 그에게 ‘무엇이 당신을 지배하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고독’이라고 답할 듯하다.

종(鐘)은 “전생에 종〔奴〕”이어서 “소리를 보면 겹겹”(「종소리를 따라가다」)이고 “달의 근육이 구부러졌다 펴지기도”(「모서리의 사랑」) 한다는 발견은 언어의 심장을, 그리고 우리의 심장을 움직이게 한다. 그것만으로도 “문득이 어디 있는지 궁금”(「문득」)하다는 그가 마치 살아 있는 말의 거부(巨富)처럼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그의 몸은 ‘그림자를 옮겨 적는 서체’ 같고, 그의 혼은 ‘팽창을 멈출 수 없어 날아가는 새’ 같다. “바퀴도 없이 미끄러지는”(「비의 목록」) 것이 세상이라는 대목에선 주저앉고 싶지만, “달이 높아 보이는 건 우리를 굽어보기 때문”(「달과 내비게이션」)이라는 대목에선 불안도 금방 포근해진다. “좁힐 수 없는 거리가 세상에 존재”(「통증의 형식」)한다고 해도 그의 시와 독자의 거리는 분명 좁혀질 것이다. 이제 그는 그냥 시인이 아니라 시의 일부가 되었다.
- 천양희 시인

작가

김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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