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한국사상선 제17권 『김옥균·유길준·주시경: 조선의 근대를 개척하다』는 한반도가 쇄국에서 개방으로 전환하던 시기에 근대화 방안을 제시하고 구태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 근대 지성인 셋의 글을 담은 책이다. 한반도 바깥에서 자국의 이익을 탐하며 조선을 속국화하려 한 청나라와 일본 사이에서 조선의 근대화와 독립을 꿈꾸었던 김옥균, 유길준, 주시경이 나아간 길은 조선의 운명 그 자체였다. 편저자 최원식은 이 책을 펴내며 단순히 그들의 글을 엮는 데 그치지 않고, 20세기 초 한반도 근대 지식인들의 계보를 무척 선명하게 그려 보인다. 그는 “서재필의 근본이 김옥균임을 절감했고 주시경 역시 이 계열에 드는데, 이승만이 정치적 후계자라면 주시경은 언어사상적 상속자인 셈”(43면)이라면서, 김옥균과 유길준을 뿌리로 두고 각각 뻗어나간 계보를 이야기해준다. 이 같은 계보를 머릿속에 그리며 이 흥미진진한 책을 읽다보면 바로 “이 출중한 사상가들이 서양 및 아시아 근대와 부딪친 그 특이한 접촉 속에 비맑스주의적 근대극복의 사유가 숨쉬고”(15면) 있음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구한말 조선의 대표적 지성 3인의 엇갈린 삶
‘갑신정변의 혁명가, 고균 김옥균.’ 세간의 평가는 그의 섣부르며 성급했던 결정, 부득불일지언정 한반도에 일본을 끌어들여 그 영향력을 키워준 오판 등을 주로 언급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갑신정변이 단순히 김옥균 무리의 독자적인 쿠데타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을 뒤흔든 대격동의 출발점이었다고 못 박는다. 편저자는 갑신정변의 출발점으로, 멀리 베트남에서 일어난 청불전쟁(1884~85)을 꼽는다. 청이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어수선한 틈을 타 김옥균이 대사를 감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알듯 김옥균의 시도는 실패로 끝이 나고, 그 뒤 청이 프랑스에 패하면서 청나라의 권력이 양무파에서 변법파로 넘어간다. 일본 역시 기존에 내걸었던 ‘아시아 연대’의 깃발을 내리고 ‘아시아에서 벗어나 서구사회를 지향한다’는 기조의 탈아입구를 선언하며 본격적인 침략의 길을 걷는다. 한마디로 갑신정변이 향후 동아시아 갈등과 분쟁의 씨앗이 된 셈이다. 김옥균 사상의 열쇳말 중 첫번째는 ‘조선프랑스론’이라 할 수 있다. 김옥균은 당시 영국과 프랑스가 각각 입헌군주제와 공화제를 따르는 것을 면밀히 비교했고, 특히 일본이 영국을 따라 입헌군주제를 선호한다는 것을 참고했다. 조선을 ‘아세아의 불란서’로 만들자고 했던 김옥균의 꿈은 곧 그가 “일본과 대결할 다른 조선”(16면)을 꿈꾸었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두번째 열쇳말은 ‘삼화론(三和論)’이다. 여기서 삼(三)은 조선·청·일본을 가리킨다. 갑신정변 이전까지 김옥균은 반청(反淸)을 분명히 했지만 그 뒤로는 삼화론을 통해 조선을 중립국으로 만들 것을 꿈꿨다. 즉 김옥균의 꿈은 “그 간신한 독립을 견지하면서 궁극에는 일본에도 청에도 당당한 프랑스 같은 강국을 세우는 꿈”(18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