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탄올(methanol)은 7~8 ml만 음용해도 실명에 이를 정도로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이다. 뿐만 아니라 중추신경계에도 심각한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과거 메탄올에 주로 노출됐던 경로는 자동차 워셔액이었다. 유럽 등 다른 나라에서는 예전부터 메탄올 워셔액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2018년 전까지 사용 가능했으며, 2018년 이후에 공식적으로 메탄올 워셔액을 금지하였다. 실제 운전 중에 워셔액을 가동시키면, 내부 공기순환 모드일지라도, 본네트와 유리 사이에 존재하는 미세한 틈으로 메탄올이 증기형태로 실내에 유입된다. 실제 실험결과 높은 농도의 메탄올이 측정되기도 하였다. 이런 이유로 유럽 등에서는 워셔액에 메탄올의 사용을 예전부터 금지한 것이며,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늦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미리 알고 주행 중에는 워셔액 분사 기능을 작동시키지 않는 등 조심했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무방비로 메탄올 워셔액에 노출됐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특히 하루 종일 운전대를 붙잡고 있는 택시 운전사 같은 분들이 더 많이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다.
과불화화합물(PFAS)은 어떤가? 2024년 초 식약처에서 조사한 국내 수산물 44종 중 무려 42종에서 과불화옥탄산(PFOA)이 검출되었다. 바닷가재는 평균의 17배, 멍게는 평균의 9배였으며, 같은 수산물이어도 부위별로 수치가 달랐다. 식약처는 ‘2020년 재평가된 인체노출안전기준’에 따르면 PFOA/PFOS의 체내 총 노출량은 안전한 수준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과불화화합물의 종류는 4천종이 넘는데, 이 중 2개(PFOA/PFOS)만 가지고서 안전을 논할 수 있을까? 물론 다른 종류의 과불화화합물에 대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도 이해는 가지만, 함부로 안전을 단정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안전하다는 기준치 역시 시간이 지나면 바뀔 수 있다.
2006년 영국의 UKCOT에서는 과불화화합물의 인체노출안전기준을 PFOA에 대해 1500 ng/kg bw/day로 설정했지만, 2018년 유럽의 EFSA에서는 같은 PFOA에 대해서 0.85 ng/kg bw/day로 설정을 했다. 1700배나 더 엄격한 기준을 들이댄 것이다. 2006년 영국의 전문가들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2006년 기준으로는 그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독성 연구결과가 쌓이다 보니, 2018년 EFSA에서 판단할 때는 더 엄격한 기준을 설정하게 된 것이다. 2006년에는 1500 ng/kg bw/day이 진실인 것이고, 2018년에는 0.85 ng/kg bw/day가 진실인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현재의 인체노출기준을 들어 안전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추후에 다른 독성결과(특히 복합독성)가 쌓이게 되면, 그때 기준치를 상향해서 더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든 예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안전하다고 정부가 판단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금까지의 연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추후에 이런 기준치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독성 연구는 단일독성을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추후에 복합독성 등이 밝혀지게 되면, 지금의 기준치보다 더 엄격하면 엄격했지, 더 느슨하게 바뀔 가능성은 적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무조건 공포감에 휩싸인 채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독성이 명확히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모든 화학물질에 대해 막연한 공포감을 가지는 케모포비아가 될 필요는 없다. 다만 독성 결과들이 점점 밝혀져 가고 있는 물질들이 있다. 이들에 대해 완전한 노출을 피할 수는 없지만, 노출을 최소화할 수는 있을 것이다. 담배연기가 몸에 안 좋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는 여러분들이 지나가다가 담배피는 사람을 만나면 약간 떨어져서 지나치거나 숨을 다소 참으면서 지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에서는 이처럼 점점 독성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는 물질들이 관리되고 있는 현황이나 최근의 연구로 독성이 밝혀진 물질들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또 이미 독성이 잘 알려진 물질들에 대해서도 일상 중에서 어떻게 노출되고 있으며, 피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이 책을 통해 과도한 케모포비아에서 벗어나고, 건강한 습관으로 안전한 일상을 영위하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