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회의> 634호(2025.06.20.) 이슈 “계간 <비욘드 로컬> ② 활동”
책의 세계를 탐구하는 출판전문지 <기획회의>는 기후 위기와 신자유주의적 불평등이 심화하는 전 지구적 위기, 그리고 출판·독서 문화의 쇠퇴 속에서 연결과 공생을 통해 출판의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고자 ‘로컬’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해 왔다. 2024년 다섯 차례에 걸친 특집으로 로컬 현장의 담론과 콘텐츠 현황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정리해 『로컬 라이프 트렌드』(북바이북)로 펴냈으며, 그 외에도 1년간 로컬문화를 주도하는 사례들을 심층적으로 살펴보는 ‘로컬×컬처 키워드’ 연재를 진행하는 등 꾸준히 로컬 네트워크와의 접점을 만들고 확장해 왔다.
계간 <비욘드 로컬>은 이러한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잡지 속의 잡지’ 형태로 펼치는 실험적인 시도다. 1년간 계절마다 발행되는 총 네 권의 <비욘드 로컬>에 한국 로컬의 ‘시작, 활동, 성과, 쟁점’이라 할 만한 생생한 장면들을 테마별로 모아, 로컬에서의 일과 삶을 모색하는 데 길잡이가 되는 아카이브를 구성해 보고자 한다.
공간 : 마을의 빈틈을 예술로 채우다
결핍은 더 이상 극복해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고유함을 발견하게 해준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그 전환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였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우리는 마을을, 그리고 우리 자신을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_김신애 탄탄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사라질 거라는 장성마을, 그 안에서 태어난 ‘탄탄마을’」 중
문화와 예술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중요한 매개체다. 특히 예술이 깃든 공간은 연결의 허브 역할을 하며, 지역에서 살아가는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첫 번째 장 ‘공간 : 마을의 빈틈을 예술로 채우다’에서는 마을을 예술로 채운 실험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활동이 관계를 만들어 내는 선순환 구조에 주목한다.
사람 : 함께하면 어렵지 않은 지역살이
주민들이 서로 돌보며 마을의 자치와 진보를 이뤄나가는 미래를 꿈꾼다. 농촌 마을 소멸의 위기가 크다고 하나, 아직은 아니다. 현장에 깊숙이 들어가 주민들과 연대하고 협동하며 함께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미래는 계속 ‘지금, 여기’에 와 있을 것이다.
_이민희 (사)여민동락공동체 이사, 「서로 돌보며 협동하는 마을은 사라지지 않는다」 중
극도로 개인화된 현대사회에서 ‘함께 사는 일’을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지역살이도 마찬가지인데, 도시에서도 그랬듯 ‘홀로서기’를 해야 할 것 같아 아무런 관계없는 지역에 새로 들어와 살 결심을 하기 어렵다. 하지만 로컬에는 고향이 아니더라도 서로 뜻을 연대해 만들어진 거대한 공동체들이 존재한다. 두 번째 장 ‘사람 : 함께하면 어렵지 않은 지역살이’에서는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연대가 만든 공동체와 누구 하나 빠짐없이 서로 돌보며 협동하는 마을의 사례를 통해 ‘함께 사는 일’의 즐거움과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자본 : 로컬의 가치를 파는 상점
냠냠제주가 지켜가는 가치를 지지하는 고객들의 마음이 모여 우리는 버틸 힘이 생기고 여전히 지속 가능하게 된다. 이쯤 되면 냠냠제주가 로컬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로컬의 가치에 기대고 있는 것이 아닐까?
_강은영 냠냠제주 농업회사법인 대표, 「지역과 환경, 식생활로 소통하는 냠냠제주」 중
로컬의 상점은 단순히 ‘핫플레이스’와 ‘줄 서는 가게’를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 이는 결국 레드오션으로 이어지고, 오히려 방문객의 발걸음을 돌아서게 한다. 세 번째 장 ‘자본 : 로컬의 가치를 파는 상점’에서는 로컬의 가치에 기대어 지역과 사람을 잇는 매개체가 된 상점들을 소개한다. 쇠퇴한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과 사람을 연결하는 사례들을 통해 로컬의 상점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기록 : 하나뿐인 내 일상의 기록
감각 경험을 구술하고, 기록으로 사료화하는 작업은 일상의 시민들을 공적인 발화자로 초대한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감각 기억을 공유하고, 공적 영역에 접근하지 못했던 언어들이 발굴된다.
_권근영 『송림1동 181번지』 저자, 「가족 구술로 보는 지역의 기억, <송림1동 181번지>」 중
기록은 지역을 단순한 공간에서 ‘서사’로 기억되도록 한다. 특히 레거시 미디어의 시선에서 한 발짝 벗어나 있는 ‘개인’의 기록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의 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네 번째 장 ‘기록 : 하나뿐인 내 일상의 기록’은 지역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삶이 어떻게 기록되고 있는지 주목한다. 3대에 걸친 가족 구술 연극과 버스로 대표되는 공공 시스템을 사용자 관점에서 재해석한 기록 사례는 개인의 기록들이 지역을 더 깊이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함을 증명한다.
지속 가능성 : 다른 미래를 위한 교육
서로 다독이고 기대면서 더 많은 이웃과 친구들이 함께 오래오래 재미나게 살기 위한 걸음을 이어가다 보면, 한 발짝이라도 더 나은 세상으로 같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_정영은 햇살배움터마을교육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 「햇살배움터, 추억의 힘으로 내일도 함께!」 중
좋은 교육은 곧 지역의 지속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장인 ‘지속 가능성 : 다른 미래를 위한 교육’에서는 미래를 이끌어 갈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지역과 연결되도록 하는 교육 방식을 소개한다.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하는 교육 활동들이 어떻게 지역의 가능성을 만들어 가는지 확인해 볼 수 있다.
지역의 ‘활동’은 곧 전환의 시작이다
행정과 정치가 포착하지 못한 틈을 메우고, 시장이 외면한 영역을 돌보며, 사람들은 활동을 통해 다시 삶을 짓는다. 지금 로컬에서 벌어지는 활동은 단지 특정 지역의 변화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조금씩 바꾸는 실천이며 다음 사회를 상상하는 씨앗으로, 단순히 삶을 유지하는 것이 아닌 삶의 체계를 재설계하는 시도다
_박누리 <월간 옥이네> 편집장·<비욘드 로컬> 기획위원, 「작은 활동이 세계를 바꾼다」 중
<비욘드 로컬> 여름호에서는 생명이 활기를 되찾는 여름을 맞이해 ‘활동’이라는 테마로 지역 내의 크고 작은 실천들을 ‘공간, 사람, 자본, 기록, 지속 가능성’의 관점으로 엮었다. 또 한국 로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진단해 보는 기획위원들의 특별 좌담도 준비했다. ‘로컬 리터러시’부터 ‘로컬 창업’까지, 지금 시대를 관통하는 핵심 담론을 지역 내에서 가장 치열하게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의 시선으로 살펴볼 수 있다. 미디어가 주목하지 않는 지역 내의 작은 목소리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당사자의 눈으로 로컬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획이다.
특별 좌담과 다섯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엮은 사례들에는 로컬 현장의 생생한 활동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활동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조금씩 바꾸는 실천이며 다음 사회를 상상하는 씨앗”이다. 그 활동 하나하나가 지역주민, 로컬의 삶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 사업가, 더 나아가 행정에게 로컬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지도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