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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퇴직했어요 상세페이지

남편이, 퇴직했어요

  • 관심 0
소장
전자책 정가
12,000원
판매가
12,000원
출간 정보
  • 2026.05.04 전자책 출간
듣기 기능
TTS(듣기) 지원
파일 정보
  • EPUB
  • 약 4.8만 자
  • 3.4MB
지원 환경
  • PC뷰어
  • PAPER
ISBN
9791199290105
UCI
-
남편이, 퇴직했어요

작품 정보

일반적으로 퇴직은 근로자의 의사표시에 따른 근로계약의 해지를 말하며, 사직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퇴직 후에는 재취업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와 비교하여 은퇴는 정년 등의 이유로 직업이나 일이 종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원래부터 하는 일이 없이 지내다가 나이가 들어 일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게 되는, 은퇴하지 않은 은퇴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긴 시간 자신이 구축해 온 사회적 영역과 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본인들에게는 만감이 교차하기 마련이다.

요즘은 정년이 되어 은퇴한 후에도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는 형식으로 부분적인 일을 계속하기도 하고, 전혀 다른 영역의 일을 배워 새롭게 인생 2 막을 시작하는 사례도 늘고 있지만 은퇴는 은퇴다.
그래서 ‘은퇴기’는 오랜 기간 일하던 것을 멈추게 된 배경이나 심경, 혹은 일을 하면서 보낸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고 새로운 계획을 하는 것 등을 은퇴한 당사자가 적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남편의 은퇴를 맞는 나의 심경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운동 경기를 할 때 경기에 참여하던 선수가 자신의 몫을 다 하고 교체되면 선수 대기석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대기석에 앉아있던 동료들은 손바닥을 마주치거나 등을 두드리며 맞아준다. 그리고 대기석에 함께 앉도록 자리를 내어주면서 다음 경기를 위해 서로 의논도 하고 힘도 비축한다.
은퇴도 이와 비슷하다. 운동선수가 한 회전을 마치는 것이 모든 경기의 종결이 아니듯이 은퇴는 직업으로서의 일의 종결일 뿐 삶의 종결이 아니다.

운동선수들에게 동료가 있듯이 퇴직하거나 은퇴한 사람 곁에는 그의 가족이 있다.
그 가족 중에서 더 이상 가까울 수 없는 한 사람이 바로 배우자이다.
그 배우자가 직업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사실 모든 부부는 맞벌이 부부였다.
평생 주부였던 많은 아내들은 대체 불가능한 인적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가정생활을 위해서는 목록을 작성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가사노동들이 필요하다. 이 노동의 가치를 굳이 숫자로 환산해 보지 않아도 주부는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준 셈이다.
남편은 경제활동을 하고 아내는 그 소출이 효율적으로 쓰이도록 관리하면서 베스트 케미를 보여준 것이다. 이만하면 가장 좋은 파트너라고 할 수 있다.

은퇴의 사회적 정의가 하나의 사회적 역할에서 다른 사회적 역할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라면, 남편이 역할을 옮길 때 그 파트너인 아내에게도 당연히 역할의 이동이 발생한다. 이것은 불안한 이동이 아니다. 나이가 들고 신체가 변하듯이 생애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니 이후의 시간을 함께 구상하고 실행해 나가는 것도 아주 자연스럽다. 매일 출근하던 관성의 법칙이 멈춘 남편도, 함께 보내는 시간과 약간의 가사 업무가 증가하게 된 아내도 어색할 일은 없다. 두 사람 앞으로 찾아온 시간을 함께 살아 나갈 뿐이다.
오래 살다 보면 부부 사이에 사랑이나 연민이나 뭐라고 정의해야 할 지 모르는 어떤 느낌이 있다.
물리적으로는 분명 두 사람인데 남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다.

남편과 함께 그의 은퇴를 맞으면서 한 가지 깨닫게 된 것은, “은퇴”라는 단어가 주는 중압감의 상당 부분이 대중매체를 통해 혹은 다른 이들의 말을 통해 미리 학습된 선입견이었다는 것이다. 마치 어릴 때 예방 주사를 맞기 위해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이 실제로 주삿바늘이 주는 잠깐의 따끔함보다 더 긴장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주사를 다 맞고 나면 바늘이 찌르고 간 얼얼한 부위를 문지르며, 조금 전까지 겁을 먹고 있었던 것 때문에 서로 어색하게 웃고 말았었다.
은퇴 후의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긴장하면서 시작할 수 있겠지만 곧 우리의 일상으로 부드럽게 흡수될 수 있다.
원칙은 그렇고, 이제 약간의 사고의 전환, 적응하고 실행하기 위한 가벼운 연습 정도만 남았다.

부분적 은퇴든, 완전한 은퇴든 은퇴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나는 지금 비슷한 심정으로 이 시간을 채워나가는 아내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한마당 하는 중이다.
나는 그저 작은 나의 이야기를 하고, 또 누군가는 그의 이야기를 해 주면서 우리는 이 길을 서로 도울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은퇴자들은 새로운 일상에서 고요와 평정을 찾기 위해 보이지 않는 분투를 할텐데, 그러다가 혹시라도 곁에 있는 반려자의 분투는 어떤지가 문득 궁금해진 이가 있다면 이 이야기의 장에 한자리를 기꺼이 내어 드릴 용의가 있다.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작가 소개

글쓴이는

평범한 주부다.
생각을 정리할 때 글을 쓴다.
남은 길이 걸어온 길보다 짧게 남았다.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여러 사람 틈에 있으면 찾기 어렵다.
섬유디자인을 전공했고, 지금은 사라진 어느 대기업 섬유무역 디자인 부문에서 10여 년 근무했다.

퇴직 후 간간이 EBS와 대학, 공공기관 등에서 주부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변화와 가정경영에 대한 특강을 했다.
기억하는 힘보다 잊는 힘이 더 강해져서 기록을 남기는 중이다.
필명은 글 쓰는 이웃, '글린'이다.

낸 책으로는 자전적 에세이 “언 사과”, "며느리, 밥풀을 입에 물다", "친애하는 그대들과", 김소월의 시를 재구성한 시집 “소월의 꽃”, 도보 여행기 "뚜벅뚜벅"(이현복 저, 출간 대행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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