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식과 신식
사실은 이 단어 자체가 아주 구식입니다만, 어느 때가 지나면서부터 내가 하는 말이나 제안에 대한 반응으로 "구식"이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같이 웃을 수 있었는데 계속 웃을 일은 아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는구나 하는 약간은 무거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고, 그 글들을 모아서 가족끼리 돌려 읽을 책을 내 보려고 했는데, 종이책을 만들 만큼 수요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가족이라고 해야 열 몇 명인데 종이책은 적어도 백 권은 인쇄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내 책을 내가 만들어보자는 당찬 포부를 가지고 전자책 프로그램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휴대폰은 누구나 가지고 있고, 전자책 앱을 이용하면 누구나 쉽게 받아 읽을 수 있으니까요.
생각보다 프로그램 배우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전자책이라고 해도 책은 책입니다. 표지도 보기 좋게 만들어야 하니까 "포토샾" 다루기부터 익혔습니다.
흔히 사진을 찍어서 '뽀샾'하면 예쁘게 된다는 말을 하던데, 그게 이 "포토샾" 프로그램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프로그램 배우는 첫 날은 그야말로 "포토샾"과의 상견례를 했습니다.
멋진 화면을 구상해 내는 것은 둘째치고 기능을 하나하나 배워 나가는 것만도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실수도 거듭하니까 공부가 되었습니다.
전자책은 원고를 다 쓴 후에 전자책을 읽을 수 있는 viewer에 맞게 작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sigil"이라는 프로그램입니다.
글을 어떤 글자로, 어떤 배열로 보이게 할 것인지를 지시하는 cording 작업입니다.
이것도 제게는 쉬운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어찌어찌 하면서 이리 저리 부딪치고 물어가며 배우는 동안 본의 아니게 옆자리 짝에게 고생을 많이 시켰습니다.
처음에는 책을 만드는 연습을 하느라고 저작권이 만료된 기성작품을 가져다가 사용했는데, 한 두 권 연습한 후에는 써 놓았던 원고로 드디어 내 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연습할 때는 출판사 이름이나 필명이 신경 쓰이지 않았는데, 정작 내 책을 만들려고 하니까 독자가 가족뿐인데도 이게 어떨까. 저게 나을까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두어 주 고민 끝에 "책누림"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습니다. 책이라는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는 대상을 읽고 누려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출판과 인쇄사업체 이름으로 이미 쓰이고 있는지도 검색을 해 보았고, 다행히 그런 이름은 없었습니다.
필명은 '글 쓰는 할매'를 줄여서 "글.쓰.할."이라고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청년기인 아들이 다 만들어진 책표지를 보더니 필명과 출판사명에 대해 강한 이의를 제기한 것입니다.
출판사라고 하면 '책'이라는 말이 다 들어간다는 것이 너무 낡은 관념 같다고 했습니다. 왜 엄마가 글을 쓰시는지를 생각해 보시라고 했습니다.
'지나온 시간과 기억을 글로 정리하고 싶어서였다, 앞으로도 내 시간을 기록해 보려는 것이다.' 라는 내 대답이 끝나자 마자 "아, 그러면 '글과 시간'이 어때요?" 했습니다. 공감이 되었습니다. 먼저 정한 이름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출판사명일 뿐 나의 개인적인 방향성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꾸는 김에 필명도 다시 고려해 보았습니다. 아무리 줄임말이라지만 '글쓰할'은 어감이 불편하다는 아들의 의견도 한몫 했습니다.
간혹 고운 우리 말 이름도 있긴 하지만 우리 나라 이름에는 아직도 한자가 많이 사용됩니다.
한자는 축약된 의미를 하나의 글자에 담고 있어서 풀어 설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요즘은 그런 경우가 별로 없지만, 옛날에는 자기 소개를 할 때도 "누구누굽니다. 한자로 무슨 자, 무슨 자 입니다." 이렇게 설명을 붙이곤 했습니다.
그런 소개를 들으면 이름의 의미가 어느 정도는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을 좌우하게도 되었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이름을 짓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겼던 것도 그 이름의 의미대로 살아지기를 바랐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이름 중에는 나쁜 뜻이 들어있는 이름이 없습니다.
어쩌다가 더 이상은 딸을 낳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끝 말(末)자를 넣어서 '말숙'이라고 부르거나, 귀한 자손인 것을 누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일부러 '개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지만 이것도 다 옛날 얘기입니다.
부모들은 누구나 자녀들에게 더 좋은 뜻을 가진 이름, 더 부르기 좋고 예쁜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합니다.
나의 부모도 딸들의 이름 끝에 돌림자로 맑을 숙(淑)자를 붙여 주셨습니다. 거친 세상에서 맑고 흠없이 살다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셨을 겁니다.
영어로 자기소개를 하자면 clean이나 fine정도의 말이겠습니다.
그래서 글 쓰는 할매를 글 쓰는 이웃이라고 바꾸고, 이웃 린(隣)자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맑다는 클린과 글 쓰는 이웃 글린은 발음도 비슷해서 중의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에도 착안을 했습니다.
이름을 다 바꾸고 구청에 출판사명 변경신고까지 마치니 뭔가 큰 일을 한 가지 마친 듯 했습니다.
저녁에 아들에게 네 의견을 수렴해서 이름을 이렇게 바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 그 말을 들었습니다.
"엄마, 하하하, 괜히 제가 이러쿵저러쿵 했지요? 그런데 바꾼 이름도 구식이네요."
젊었을 때 나의 부모님께도 똑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분들의 생각이나 말, 옷차림도 참 '구식'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신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릴 때 언젠가 친할머니의 한복을 보신 어머니가 "저건 구식 한복이란다. 요즘엔 저런 걸 안 입지."라고 하신 기억이 났습니다.
그 당시의 어머니에게는 할머니 세대가 입으셨던 한복이 구식이었고, 지금의 우리 아이들에게는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나 행동이 구식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힘이 왕성하고 젊을 때가 가장 신식이라고 느낍니다. 자신의 사고력이 왕성하고 빠르게 새 정보를 흘려 보내니까 신식은 신식입니다.
우리 시대에서 최신식이던 우리는 요즘의 신상에 밀려 구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즘의 이 신상들도 머지않아 구식이 될 것입니다.
출판사명이나 필명을 바꾼다고 나의 생각을 대변하는 글에서 구식의 냄새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아마 할머님께 그 당시 유행하는 옷을 입혀 드렸어도 할머니의 말과 생각은 여전하셨을 겁니다. 오히려 옷과 사람이 어울리지 않아서 보는 이도 불편하지 않았을까요.
여전히 구식 이름이지만 이름을 바꾸는 수고는 그만하고, 이름에 걸맞는 글 쓰는 이웃이 되어 시간을 잘 정리해야겠다고, 글 속에서 진취적이기를 수고해야겠다고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