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카피라이터가 일상에서 포착한 101가지의 단어이며,
카피라이터 특유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101가지의 에세이며,
카피라이터가 쓰고 그린 101가지의 삶을 향한 물음이며, 그물질이다!
카피라이터는 수집한 단어로 문장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단어의 연금술사와 같은 직업이다. 카피라이터이자 작가인 김기연의 눈에 비친 단어들은 어떤 모습일까.
인간이 단어에게 걸쳐놓은 인위적인 옷을 벗기고 싶었다. (p4 「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 김기연은 드러나지 않은 단어의 이면을 포착하기 위해 단어의 껍질을 한 겹씩 벗겨낸다. 단어는 그의 섬세한 풀이로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며, 조근조근 말을 건넨다. 작가는 특유의 감각적인 사유와 문체로 단어의 귓속말을 담아내고, 아름다운 캘리그라피로 단어의 표정을 그려낸다.
놀이를 하듯 단어 하나를 입에 넣고 오래도록 굴리다가 삼킨다. (「작가의 말」 중에서)
그는 사전에서 포획한 멍한 표정의 단어에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는다. 뒷모습을 보기 전에 결코 볼 수 없는 단어의 아우라를 벗겨내고, 종국에는 단어가 갖고 있는 본질을 파헤침으로써 단어의 의미와 유희를 찬란한 글귀로 표현해낸다. 그가 읽어낸 단어의 속살은 일상에서의 평범한 의미를 확장시키며 이 시대에 품어야 할 물음을 건드린다. 예컨대 작가 김기연이 포착한 ‘시간’과 ‘유토피아’라는 단어는 이렇게 표현된다.
시간은 소멸하는 생을 재는 눈금자.
그러니 들여다보기 싫을 것이다. 젊은 날에는 버거울 정도로 많은 듯 보이고, 세월이 한참 흘러서는 한없이 부족해 보이는 건 지극히 이기적인 심리다.
재깍거리며 사라지는 생의 파편들은, 우리를 떠나 어디로 갔을까? (「시간」중에서)
불온하고 불완전한 현실의 위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긍정적 부정이 유토피아다. 유토피아는 마음으로부터 빚어지고 세워지기에 존재치 낳으면서 존재하는 세계고,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세계다. 고대하던 마음을 잊어버린 어느 날에 농담처럼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나는 유토피아를 믿는다.
아니, 사람을 믿는다. (「유토피아」중에서)
작가 김기연은 세상의 표면에서 부유하는 단어를 건져내고
마음의 파동으로 이끈다.
그럼에도 존재는 그를 들여다보면서 진실과 그것 너머의 세계와 직면한다. (「거울」 중에서)
그는 거울을 표현주의 배우라고 얘기한다. 거울은 들리지 않는 말을 몸짓으로 표현함으로써 드러낸 존재에게 보는 것이 듣는 일임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의 글쓰기 방식은 거울을 닮았다. 들리지 않는 단어의 속삭임을 표현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단순히 읽고 말하는 것만이 세상을 보는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에 그렇다.
단어와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들은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문장과 문장이 만들어낸 세계는 우리 시대의 사유와 철학이 담긴 우주를 형성해낸다. 그는 ‘눈물, 종이, 별, 만년필’ 같은 사소한 낱말부터 ‘상상, 사랑, 꿈, 시간, 삶’ 등 관념적인 것에 이르며 ‘해커, 바이러스, 결혼, 컴퓨터’ 등 시대적인 단어까지 포용하며 물음을 건져내서, 단어가 품은 뜻을 그물질한다.
그가 단어에게 던지는 물음들은 다소 차갑고 퉁명스러워 보이나 종국에는 인간 지향의 따뜻한 마음과 말씨로 끝을 맺는다. 예건대 그가 독자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몸짓과 섬세한 글귀는 이렇다.
어두워야만 보이는 하늘에 난 구멍.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을 되는 걸 보면, 별이 구멍이라는 확실한 증거다. 힘든 자들은 오늘이 지나기 전에 숙인 고개를 빳빳이 들고 희망의 징표인 저 구멍을 보라. 역시 솟아날 구멍이 있지 않은가. (「별」중에서)
꿈은 탁한 빛깔인 강요의 세계에서 살지 않는다. 누군가의 생생한 의지로 생명을 부여받고 미생에서 완생으로 향한다. 그러니 꿈은 선언적 주장이어야 하며 스스로 책임지는 소신의 기둥 위에 세워져야 한다.
꿈은 삶에 뿌려지는 놀랍고 멋진 씨앗이다.
많은 이가 이것을 햇볕도, 공기도 들지 않는 창고에 가둔 채 썩히고 있다.
어서 태양 아래로 꺼내 당신이란 생의 무대에 뿌려라. (「꿈」중에서)
그가 수집한 단어와 그 단어들로 곱게 엮어낸 문장들을 곱씹어보면 우리는 단어가 숨겨놓은 이면의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들은 잊고 있던 따뜻한 추억일 수도 있으며, 지나쳤던 일상의 순간들일 수도 있고, 때로는 가슴 뜨거운 청춘일 수도 있다.
이 책을 가슴 팍 안쪽에 슬그머니 품고 작가가 한 것처럼 단어를 입에 물고 애무하듯 하나하나 입으로 삼키는 경험을 해보길 바란다.
단어 하나를 골라 나지막이 읊조리면 단어의 음성이 당신의 귓속으로 가닿아 머릿속에 누워있던 세포들이 일제히 서는 경험을 해볼 것을 은밀히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