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 발전을 원동력으로 하는 미디어 환경은 퍼스널 미디어와 컨버전스(convergence) 미디어의 등장으로 본격적인 진화의 길을 걷고 있으며, 특히 디지털 융합으로 인하여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와 서비스를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미디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있다. 즉, 인터넷과 모바일 플랫폼이 주도하는 디지털 시대라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은 이로 인해 패러다임의 전환이라 할 만큼 미디어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미디어 지형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등장한 뉴미디어들은 급속도로 세력을 확대하며 기존 미디어들을 위협하는 한편, 기존 미디어들은 이런 도전에 직면해 생존을 위한 변화를 부단히 모색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이 갖는 의미는 방송 시장의 환경이 변화함을 의미하는데, 기존 방송의 개념, 시청의 개념, 수용자의 개념의 변화를 동반하게 된다. 특히, 미디어 환경 변화의 중심에 상호작용성과 이동성의 개념이 강하게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 최근의 상황을 정리해 보면 지상파DMB의 전국화와 양방향 데이터 서비스 실시, WiBro 서비스의 실시와 지상파DMB와의 결합, 그리고 IP-TV 시범서비스 실시 등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은 융합미디어로의 진화를 확인시켜 주고 있으며, 향후에도 이러한 서비스들은 방송통신의 융합 환경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하리라 예상된다.
지금의 융합 미디어 환경의 조성과 이의 상용화를 통한 선순환구조의 조기 실현을 위한 가장 큰 걸림돌은 법제도 정비와 정부기구의 개편 문제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순차적으로 잘 정리된다는 가정 하에서 볼 때, 광대역과 상호작용성은 IPTV를 중심으로, 이동성과 상호작용성은 각각 DMB와 WiBro의 결합형 모델이 대표적인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플랫폼들은 기존의 플랫폼들과 컨텐츠 산업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결합하면서 유비쿼터스 미디어 환경에서 합종연횡의 진화를 계속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은 그리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결국 구조가 본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구조는 산업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성장잠재력을 파괴하며,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 몫으로 돌아오는 결과는 낳는다. 앞서서 산업을 이끌어야 할 정부 스스로가 이미 산업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방송통신 융합을 둘러싼 다양한 논쟁의 중심에는 부처 이기주의나 법제도의 낙후성과 같은 단골 의제들이 어떤 해결책도 내놓지 못한 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할 뿐이다.
지금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적지 않은 현안들이 민감한 시간의 추를 벗어나 여전히 표류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광대역 통신망 기반의 양방향 방송통신 융합서비스인 IPTV가 아닌가 한다. IP-TV 산업은 이미 선진국에서 보편화되고 있는 방송통신 융합 미디어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할 정도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콘텐츠의 삼위일체를 구현하는 산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방송법상의 ‘종합유선방송사업’에 준하는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방송위원회의 입장과 광대역 융합서비스로 규정하여 사전규제를 최소화하자는 정보통신부의 입장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격돌하는 사이에 관련 산업은 출발선에 서보지도 못하고 있다. 이러한 논쟁을 둘러싼 문제의 본질은 분명해 보인다. 공정한 게임을 이끌어 줄 심판도 없으며, 게임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규정도 변변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 그리고 책임감과 비전을 통해 적극적인 중재의 역할을 수행할 주체의 상실 등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의 최선책은 결국 제 3의 입법을 통한 해법이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통신과 방송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 시장형성의 초기단계에 접어들었으며, 통신과 방송은 단순한 결합에서 벗어나 융합의 길로 가속화되고 있다. 이처럼 산업에서 자생적으로 태동한 본격적인 방송통신 융합의 물결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낙후된 우리의 법제도를 개선하는 일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된 것이다. 가장 현실적으로는 대대적인 행정규제 조직의 구조조정 없이 별도의 특별법 제정만으로 문제를 해결한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일본 등의 해법을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언제 가시화되고 결론에 도달할지 모르는 방송통신 구조개편 논의에 모든 것을 미루는 현재의 상황은 정부로서 취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국회 방송통신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제출한 인터넷(IP)TV 도입법안의 통합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국회 상정과 법안 통과라는 절차가 남아 있지만 대통령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현 시점이 IPTV 법제정을 위한 최선의 기회라는 점과 차세대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육성하려면 IPTV 도입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절실함이 반영됐다고 보인다.
분명한 사실은 IPTV가 제공되면 플랫폼 선택과 콘텐츠 선택으로 이루어진 소비자 선택권이 확대될 것이다. 플랫폼 선택의 자유를 통해 제한된 채널 시대는 마감하고 콘텐츠 선택의 자유를 통해 나만의 맛있는 디자인TV 시대가 올 것이다. IPTV 도입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기준은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소비자의 선택권 향상과 방송 산업 도약을 통한 국가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 IPTV를 조속히 법제화해서 소비자 선택권 확대라는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그동안 이와 관련된 이슈에 관심을 갖고 있는 몇몇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디지털정책 연구팀도 구성하고 정책포름도 개최하면서 시급하고 중대한 현안들에 대해 다양한 의견도 나누고 뜻을 모아 관계 부처나 업계에 전달도 하고 적지 않은 세미나와 컨퍼런스를 개최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움직여왔다. 특히 정책포름 모임에는 학자들 뿐만 아니라 산학연 차원에서 통신 방송에 관련된 3개 지상파 방송 책임자들과 연구소 책임연구원 및 통신관련 간부급들이 열심히 참여해왔다. 이 책은 지난 3~4년에 걸쳐 그동안 발표, 논의해왔던 논문 중 일부를 정리한 결과물임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