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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의 야인 조지 오웰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인문

수정의 야인 조지 오웰

박홍규의 호모 크리티쿠스
소장종이책 정가14,000
전자책 정가30%9,800
판매가9,800

수정의 야인 조지 오웰작품 소개

<수정의 야인 조지 오웰> 우리의 삶은 자유롭고 정직한가, 우리는 자발적으로 연대하고 항거하는가?
작가이자 정치사상가로서 삶과 글의 완벽한 일치를 추구했던 조지 오웰의 진면목을 탐색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웰을 『동물농장』과 『1984』의 작가로만 생각한다. 번역되어 나온 작품도 이 두 타이틀이 가장 많다. 오웰 사상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것은 사실 비판적 에세이들인데, 정작 이것들은 오랫동안 간과되거나 무시당했다. 게다가 국내에서의 오웰은 운신의 폭도 좁았다. 애초 반공작가로 소개되는 바람에 작품의 다양함과 깊이에도 불구하고 곧잘 정치적으로 해석되기 일쑤였다. 오웰은 실제로 이해하기가 매우 복잡한 작가다. 우익도 좌익도 노동자도 지식인도 그를 좋아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삶과 사상이 입체적이었다는 반증일 터다. 오웰이 강조했던 가치는 자유와 자치, 그리고 자연이다. 그는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밝히며, 동료와 다른 의견을 내세울 수 있으며,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읽을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은 어디에나 갈 수 있기를 희망했다. 다양한 개성을 지닌 자유로운 개인들이 스스로 자치하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었다. 누구보다 명석하게 20세기를 비판했고, 권력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자발적으로 선택한 최하층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런 밑바닥 삶에서 나온 ‘수정의 정신’으로 전체주의적인 공산주의만이 아니라 자본주의까지 비판했고,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반(反)전체주의 세상을 구상했다. 바로 억압과 통치와 획일적인 허위를 넘어서는 새 세상이다. 오웰은 그런 삶을 추구하기 위해 정치와 예술을 합일시키는 것을 평생 작가로서의 이상으로 삼았다. 저자가 강조하는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오웰과 그의 작품을 단순히 반공주의로 규정하는 풍토에 이의를 제기함과 동시에 오웰이 지닌 사상가로서의 면모에 방점을 찍은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오웰의 교훈은 삶과 글의 완벽한 일치다. ‘나의 삶이 나의 메시지’라는 말은 간디가 남겼지만, 간디에게 비판적이었던 오웰도 꼭 그렇게 살았다. 그의 글은 자신의 삶에 대한 완벽한 고백이자 삶 속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생각의 정직한 표현들이다. 그런 점에서도 오웰은 마땅히 우리의 스승이어야 한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적 허영심에 가득 찬 가정, 교육,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국제질서와 그 식민지적 피지배 상황에 놓여 있는 우리에게 오웰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책은 『동물농장』과 『1984』의 작가 오웰을 ‘다시’ 보고 ‘새로’ 탐색한다. 먼저 반공작가의 틀을 걷어낸 다음 ‘작가이자 사상가’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삶과 글을 심층적으로 다룬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세계문학전집에 작품을 올린 유명 작가 이상의 오웰, ‘그 무엇으로도 부수지 못할’ 맑고 단단한 정신을 삶과 글을 통해 구현한 인간 오웰을 만나게 될 것이다.


모순을 인정함으로써 모순을 넘어선 오웰
오웰은 자발적인 가난을 선택했고, 밑바닥 삶에서 만난 사람들을 사랑했고, 민중이 느끼는 문제점들을 글 작업으로 승화했다. 작가 중에서 오웰만큼 정확하고 분석적인 시각으로 사회상을 비판하고 논한 작가는 없을 것이다. 당시 정부는 물론 문단에서조차 오웰의 작품을 반기지 않았던 이유이자 오웰이 평생 야인으로 살아가야 했던 배경이기도 하다. 그는 과거의 사회를 당시보다 인간적이며 다양하고 능동적인 사회로 여겼다는 점에서, 비주류와 소수자를 옹호하면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 인간적 품위라고 생각하는 것에 배치되는 게 보일라치면 가차 없이 싸움을 걸었다는 점에서 종종 돈키호테와 비교된다. 그러나 오웰 자신은 돈키호테와 대조적인 캐릭터인 산초 판사도 자신 안에 있다면서 함께 옹호했다. 자신의 인생관은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 양쪽 모두에 속해 있으며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듯 본인 역시 모순적인 인간이라고 털어놓았다. 스스로 인정한 이러한 모순성은 오웰의 소박하고 인간적인 심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강박적으로 남에게 비쳐질 자신의 모습을 어느 한편으로 특화하여 규정하는 사람들, 즉 위대한 사상가로, 천재적인 작가로, 혹은 섬세하고 예민한 예술가로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와 진실을 추구하는 삶이었다. 이처럼 일체의 허영과 담을 쌓았던 그는 삶과 사상이 일치하지 않았던 대부분의 사회주의자들을 경멸했다.

오웰은 민주적 사회주의자다
오웰은 인간성의 깊은 곳에 숨겨진 연대와 유대에 대한 갈망, 즉 같은 편에 서서 싸워야 한다는 연대의식이 진정한 사회주의를 가능하게 해준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는 노동계급을 이해하기 위해 모든 사람이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공감대만 형성되면 변화는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억압자에 대한 피억압자의 동맹으로 사회주의를 완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마르크스주의들과 다른 지점이다. 오웰은 도리어 “나는 무산계급자들처럼 되기 위해 말투며 취향 그리고 신념을 바꿀 수 없다.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 나는 다른 사람에게 나와 같은 말투로 이야기하라고 하지 않는데, 왜 다른 사람이 나에게 그와 같이 이야기하라고 말해야 하나”라고 자문한다. 그리고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밝히며, 동료와 다른 의견을 내세울 수 있으며,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읽을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은 어디에나 갈 수 있는 자유를 강조했다. 그가, 획일적이고 중앙집권적인 계획에만 몰두하여 ‘근본적으로 세계를 바둑판처럼 만들기를 바라는’ 사회주의에 반대했던 배경이다. 오웰은 또한 가난이 위로부터 폐지되는 것을 거부했다. 힘 있고 영리한 소수가 권력을 잡는 것, 엄격하고 이기적인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것도 거부했다. 그는 피억압자들이 자발적으로 연대하여 억압자들에게 항거하는, 자유를 추구하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열망했다.


『동물농장』과 『1984』를 통해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융합하다
오웰은 개성을 지닌 자유로운 개인들이 자연과 호흡하며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었다. 위로부터의 혁명도 권력에의 의지도 모두 거부했다. 그런 세상을 추구하기 위해 몸소 밑바닥 삶에 몸을 던졌고, 전장의 한복판으로 나아갔으며, 삶과 글의 합일과 정치와 예술의 합일을 위해 평생 노력했다. 무엇보다 오웰은 그의 삶과 글이 완벽한 일치를 이루었던 유일한 작가라는 점에서 오늘날까지 우리의 스승으로 불릴 만하다. 자신의 삶과 배치되는 글을 쓰는 대다수 지식인들과 달라도 너무나 다른 탓이다. 또 하나, 오웰의 삶을 위대하면서도 참신하게 만들어주는 근거는 그가 정치적인 저술을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점이다.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기어이 성공시켰다. 오웰은 “지난 10년간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저술을 하나의 예술로 만드는 것이었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어떤 당파적인 감정, 즉 부정을 감지하는 것이다. 내가 앉아서 책을 쓰기 시작할 때, 나는 자신을 향하여 ‘지금부터 예술작품을 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쓰는 것은 무엇인가 폭로하지 않으면 안 될 거짓이 있고,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다는 사실이 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그런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의 전체로 융합한 최초의 책이 『동물농장』”이라고 말한다. ‘자신만의 개성’이라는 환각을 거부하고, 자유롭고 정의로운 삶을 추구하는 공공의식의 발현을 위해 글을 썼던 오웰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큰 울림을 주는 이유다.

『조지 오웰; 수정의 야인』 이렇게 읽자
제1부 1장은 오웰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2장에서는 오웰의 성장 배경과 교육을 중점적으로 소개한다. 출생부터 이튼 시절까지의 이야기다. 이어지는 3장은 인도에 가서 1922년부터 6년간, 당시 인도에 속한 버마(현재의 미얀마) 경찰서에 근무하면서 식민지를 경험했던 내용이다. 당시의 경험은 소설 『버마의 나날』에 묘사된다. 따라서 제1부는 반제국주의 작가로서 오웰의 탄생을 알리는 서곡이라 할 수 있다. 제2부 1장은 사회주의 작가로서 오웰의 탄생을 보여준다. 파리와 런던에서 자진 선택했던 밑바닥 생활의 이야기가 배경인데, 이를 바탕으로 그는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과 『목사의 딸』을 집필한다. 2장은 오웰이 반파시즘 사회주의 작가로 다시 태어나는 배경과 아일린과 결혼하는 시점까지를 다룬다. 3장은 갓 결혼한 신랑임에도 스페인 시민전쟁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고 돌아와 『카탈루냐 찬가』를 쓰기까지의 이야기다. 제3부 1장은 오웰이 독립노동당에 가입하고, 모로코에서 요양하면서 에세이 『숨 쉬러 올라오기』를 쓸 때까지를 다룬다. 2장은 다시 영국에 돌아온 그가 독립노동당을 탈당하고, 에세이집 『고래 뱃속에서』와 『사자와 일각수』를 집필하고, 1942년부터 2년간 BBC 방송에서 일하는 내용이다. 3장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출간한 『동물농장』이 이듬해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위, 아내와의 사별을 다룬다. 마지막 4장은 1946년부터 거주한 주라 섬에서 『1984』를 쓰지만 결핵이 악화되어 1950년 1월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오웰 삶의 마지막 부분을 다룬다.


출판사 서평

<본문 중에서>

사실 오웰의 작품은 문학이나 학문이나 예술의 차원에서 그다지 높이 평가되지 못한다. 나는 이 점을 너무나도 유감으로 생각한다. 독자 여러분에게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시키고자 잘 알려지지 않은 오웰의 삶과 글을 이 책에서 탐색하는 이유다. 오웰의 삶과 작품은 그가 스페인 시민전쟁에서 만난 무명의 시민 용사를 노래한 다음 시로 집약된다.
그래도 내가 그대 얼굴에서 본 건
어떤 권력으로도 빼앗을 수 없고
어떤 폭탄으로도 부수지 못할
수정 같이 맑은 정신
(…) 오웰은 정치와 예술을 합일시키는 것을 평생 작가로서의 이상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민중적 설화를 사용하여 그러한 합일을 특히 완벽하게 형상화했다. 나는 이 책에서 나름으로 세심하게 읽은 오웰의 삶과 문학을 새롭게 분석하려 한다. 오웰의 작품이 세계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된다는 것은 곧 단순히 정치성을 강조한 문학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_〈저자의 말〉 중에서

오웰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매우 특이하다. 평생 성공하고자 노력하기는커녕 도리어 성공하지 않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삶과 작품에 대해서도 늘 불만이 많았다.
당시에는 실패만이 유일한 미덕처럼 보였다. 조금이라도 자기 발전을 생각한다면, 심지어 한 해 몇 백 파운드를 버는 정도의 ‘성공’이라도 바란다면 비열한 짓 같았다.(위건, 201)
이러한 인생관은 오웰이 어린 시절 치열한 계급적 경쟁을 경험하면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제국주의의 앞잡이인 식민지 경찰을 지내면서 더욱 확고하게 뿌리박았고, 어렵게 작가 생활을 하는 동안 그의 인생 자체를 지배했다. 오웰은 학교에 다닐 때 속물이 되는 공부를 혐오했다. 19세에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뒤에는 그곳에 있는 식민지 경찰시험 준비 학원을 다녀 식민지 경찰이 되었지만 다시금 그 속물적 생활을 혐오했다. 그래서 24세에 경찰을 그만두고 작가가 되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자 교사를 비롯한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작품을 썼다. 하지만 그는 끝내 자신을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실패는 그에게 인간성에 대한 깊은 통찰의 길을 열어주었다. 오웰은 인간을 이중적인 존재로 여겼다. 그래서 완벽한 도덕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항의했다. “인간은 대체로 착하려고 하지만, 너무 착하려고 하지도 않고, 언제나 착하지만은 않다”라고 하면서._〈오웰의 인생관〉 중에서

오웰은 최하층 사람들의 생활을 이해하고 싶어 빈민굴을 찾았다. 처음에는 더럽고 소란한 분위기에 놀랐으나, 어느 막일꾼이 차를 한잔하자고 권하여 그와 함께하면서 금방 분위기에 적응했다. 당시 느낌을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것은 일종의 세례식이었다. 그 뒤부터 두려움은 사라졌다. 아무도 내게 질문을 던지지 않았고, 아무도 공격적인 호기심을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공손하고 친절했으며 나를 당연한 존재로 받아들였다.(위건, 205)
이어 그는 부랑자들과 함께 방랑생활을 한다. 그 동기에 대해 그는 위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실업에 대한 통계를 본 적은 있었으나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무엇보다 ‘부끄러울 것 없는’ 빈곤도 늘 최악의 수모를 당한다는 너무나 중요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평생토록 꾸준히 일해 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길바닥으로 내쫓기는 착실한 노동자의 끔찍한 운명, 이해할 수 없는 경제법칙 때문에 그가 겪는 모진 고통, 가족의 해체, 그의 마음을 갉아먹는 수치심—이런 것은 내 경험의 범위 밖에 있는 일이었다. 나는 빈곤이라고 하면 끔찍한 기아의 차원으로만 생각했다. 때문에 당장 나의 마음은 극단적인 경우, 부랑자나 걸인이나 범죄자나 창녀처럼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이들 쪽으로 쏠렸다. 그들은 ‘하층 중에서도 최하류’였으며, 그런 그들이야말로 내가 접촉하고 싶었던 부류였다. 그때 내가 진심으로 원한 것은 번듯한 세계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길을 찾는 것이었다.(위건, 202)
오웰은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모든 형태’를 거부하면서 ‘피압박자들 사이로 내려가 그들 중 한 사람이 되어 그들의 편에 서서 압제자에 항거’하고 싶었던 것이다._〈최하층 인간을 만나다〉 중에서

노동자의 세계란 작가가 쉽게 자신이 그 일부인 척할 수 없는 세계이지만, 인간성에는 공통의 유대가 있고, 같은 편에서 서서 싸워야 한다는 연대의식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작가가 그들 편에 서고자 해도 꼭 그들과 같을 필요는 없다. 누구나 공통의 관심사를 갖고 있다는 공감대만 형성되면 변화는 가능하다. 오웰은 그런 유대와 연대를 위해서 반드시 모든 사람이 노동자처럼 변할 이유는 없다고 보면서 “나는 무산계급자들처럼 되기 위해 말투며 취향 그리고 신념을 바꿀 수 없다.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왜 그렇게 해야 하나? 나는 다른 사람에게 나와 같은 말투로 이야기하라고 하지 않는데, 왜 다른 사람이 나에게 그와 같이 이야기하라고 말해야 하나”라고 자문한다. 도리어 오웰은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밝히며, 동료와 다른 의견을 내세울 수 있으며,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읽을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은 어디에나 갈 수 있기를 희망했다. 따라서 그는 획일적이고 중앙집권적인 계획에만 몰두하여 ‘근본적으로 세계를 바둑판처럼 만들기를 바라는’ 사회주의에 반대했다. 가난이 폐지된다고 해도 위로부터 폐지되는 것을 거부했다. 힘 있고 영리한 소수가 권력을 잡는 것, 엄격하고 이기적인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것도 거부했다._〈인간성의 유대와 연대의식〉 중에서

오웰은 총도 없이 해발 1,500피트 고지에 배치되었다.(카탈루냐, 18) 사흘 후 지급된 총은 1896년에 만든 총이었으나 아무도 다루는 법을 몰라 오발 사고가 터지곤 했다.(카탈루냐 20, 24) 그리고 넉 달 동안 전투도 없었다.(카탈루냐, 27) 전선은 너무나도 추웠다. 오웰은 뒤에 자신이 추위를 이겨낸 것은 홉킨스의 다음 시를 외웠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병자들을 보니 그들에게 애정이 느껴지고, 우리도 또한 그들에게 그렇게 보이리.
내 혀는 당신에게 위안을 가르쳐주었고, 내 손은 당신의 눈물을 그치게 했다.
오웰은 카탈루냐 말을 빨리 익혀 육군하사로 진급한다.(카탈루냐, 30) 그러나 장교와 사병 사이에는 완전한 ‘사회적 평등’이 이루어져 “누구나 똑같은 봉급과 똑같은 식사 제공과 똑같은 군복을 입었고, 그들은 완전한 평등을 유지하며 함께 생활했다. 만약 누군가가 부대를 지휘하는 장군의 등을 툭툭 치며 담배를 달라고 하고 싶으면 그럴 수도 있었”다. “계급 명칭이나 계급장 등이 없었고, 부동자세를 취하거나 경례를 하는 법도 없었”으며, “기합이나 욕설 등이 전혀 없었”다. 오웰은 그런 군대를 ‘어느 누구보다도 믿음직한 군대’라고 보았다.(카탈루냐, 31-33)_〈전선에서 보낸 날들〉 중에서

오웰은 1937년 스페인에서 돌아온 뒤부터 구상하여 《트리뷴》에 들어간 1943년 11월부터 집필하기 시작한 『동물농장』을 1944년 2월 말에 완성한다. 4개월 만에 쓴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밝히는 것으로 시작되는 『동물농장』의 서문은 1945년에 출판된 그 책의 초판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1972년에 〈뉴욕타임스〉가 처음으로 공개하면서 드러났다. 오웰이 1937년부터 『동물농장』을 구상했다는 것은 앞에서 말했듯이 그가 스페인에서 스탈린 신화를 목격했음을 뜻한다. 그 신화는 스페인 혁명가들만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선의의 사회주의자를 유혹했는데, 오웰은 우크라이나 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난 10년간 나는 사회주의 운동의 부활을 원한다면 소련 신화의 파괴가 결정적으로 필요하다고 확신해왔다. 스페인에서 귀국하자 나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되고 다른 나라 말로도 쉽게 번역될 수 있는 이야기를 통해 소련 신화를 폭로하고자 생각했다. 그러나 이야기의 세부는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당시 나는 작은 시골에 살고 있었다)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년이 좁은 길에서 짐마차 말을 몰고 가는 것을 보았다. 말이 길에서 벗어나려고 하자 소년은 채찍을 휘둘렀다. 나는 돌연 이러한 동물들이 자신의 힘을 자각했다면 인간은 동물에 대해 권력을 가질 수 없게 되리라, 인간은 부자가 프롤레타리아를 착취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동물을 착취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동물의 관점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분석으로 나아갔다.
우리는 위 글에서 오웰이 “사회주의 운동의 부활을 원한다면”이라고 말했다는 데 주의해야 한다. 이는 사실 “사회주의 운동의 부활을 원하므로”라고 이해해야 하는데, 그것은 이 책을 반공산주의 책으로 보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오웰이 규정하는 적은 ‘축음기와 같은 심성(gramophone mind)’이라고 하는, 즉 자동적으로 돌아가는 기계적 심성을 갖는 전체주의다. 그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내용에 동의하든 말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며,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들려주는 심성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오웰의 창작 의도였다. 그 레코드가 마르크스주의든, 파시즘이든, 심지어 자본주이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소련이든 스페인이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 소설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소련 신화’에 대한 비판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기이고 소재일 뿐 전부는 아니었다. 문제는 ‘신화 자체’, 즉 합리적 사유를 억제하고 핏대를 세우며 슬로건을 외치는 것으로 모든 실질적 논쟁을 없애려는 야만이었다. 이러한 핏대와 슬로건은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 지금 한국에서도 심하게 나타나는 현상이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동물농장』이야말로 고전이며 걸작이라 생각한다. 20세기 초 구소련에도, 21세기 초 한국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니까 말이다._〈스탈린 신화에 도전하다〉 중에서

그러나 혁명은 처음부터 극단적인 양상을 보였다. 인간의 것은 모두 불살라지고, 특히 동물들을 학대하던 도구들은 모두 파괴된다. 혁명 뒤에 이러한 행위가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아야 할 테지만, 뒤에 이어질 행위들에 대한 불안한 예상도 짐작 가능하다. 혁명에 대해 메이저가 당부한 것, 즉 인간을 닮지 말라는 당부를 최초로 위반한 것은 돼지들이 지난 3개월간 “존스 씨의 아이들이 쓰다가 쓰레기통에 버린 낡은 철자 교본을 가지고 독학으로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라고 하는 점이다.(동물, 351) 이는 혁명에 불가피한 것일지는 몰라도 결국 돼지들에게 지배권을 확립하게 하는 근거가 되어준다. 여하튼 농장의 이름도 매너에서 동물로 바뀐다.(동물, 351) 그리고 혁명 헌법에 해당되는 다음 ‘7계명’이 제정된다.(동물, 352)
1. 두 발로 걷는 자는 적이다.
2. 네 발로 걷거나 날개가 있는 자는 친구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혁명 직후 제정되는 헌법과 같은 ‘동물주의’의 본질을 밝힌 ‘7계명’은 “모든 동물들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영구히 목표가 되는 불변의 율법”이었다.(동물, 351) 그러나 바로 그때부터 혁명은 배반되기 시작한다. 돼지들이 우유를 먹어치웠는데도 그 사실이 밝혀지지 않는 것처럼.(동물, 353) _〈혁명의 성공과 실패〉 중에서

특히 오웰은 작가가 글을 ‘잘못 쓰는 것’은 미학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정치적, 도덕적으로도 잘못을 범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작가의 책임을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잘못 쓴’ 글이란 당의 노선에 따르는 글로서, 자신의 생각을 개성적이고 독창적으로 표현하려 하지 않고, 케케묵은 단어나 구절을 이용하여 믿을 만한 목소리로 대화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오웰은 작가는 당의 노선이 아니라 개인 의견을 표출하는 반란자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규칙을 내세웠다.
1. 당신이 인쇄물에서 흔히 보는 은유나 직유 또는 다른 비유적 표현을 쓰지 말 것
2. 짧은 낱말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에는 긴 낱말을 쓰지 말 것
3. 낱말 하나를 삭제해도 좋다면 언제나 삭제할 것
4. 능동형을 쓸 수 있으면 수동형을 쓰지 말 것
5. 그 말에 해당하는 일상 영어를 생각할 수 있으면 외국 표현이나 학문적 용어나 전문어를 쓰지 말 것
6. 아주 조잡한 말을 쓸 바에야 위의 모든 규칙을 버릴 것(Essays, 359)
이상의 규칙은 우리의 글쓰기에서도 반드시 최고의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들이다._〈글쓰기의 규칙〉 중에서

『1984』는 소설이 쓰인 1948년의 48을 84로 뒤집은 숫자에 불과하다. 무슨 심오한 의미를 갖는 게 아니다. 오웰이 소설을 쓰던 당시보다 수십 년 뒤면 충분했고, 그것이 우연히 1984년으로 자리 잡았을 따름이다. 그러니 1984년에 오웰이 다시 논의되고, 우리나라에서도 『1984』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느니 하는 것은 우스운 현상이다. (…) 스미스는 전쟁(언제, 무슨 전쟁인지는 모른다)에서 가족을 잃어 죄의식을 갖고 있다. 과거를 간직하고자 일기를 쓰지만 그것은 사상범죄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는 ‘진리부(Minitrue)’에서 일하며 역사를 국어인 뉴스피크(Newspeak)로 고쳐 쓴다. 인구의 13%를 차지하는 ‘외부당’의 당원인 그는 나머지 85% 대중과 전혀 접촉하지 않는다. 정사는 인간 감정의 연결을 회복시키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므로 당원에게 섹스는 금지되고, 대중을 위해서는 외설문학이 대량으로 생산된다. 윈스턴은 줄리아와 섹스를 하지만 그것은 하반신만의 반역에 불과하고, 결국 윈스턴은 모든 인간적인 연관을 단절당하고, 오직 최고 독재자 빅 브라더만 매일 TV로 마주본다. 그 후 윈스턴은 체포되어 ‘내부당(Inner Party)’ 오브라이언의 지휘 아래 고문을 당하고 반항 의지를 상실한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침묵의 복종도 범죄에 해당한다. 따라서 체제에 대해 침묵할 수 없었고, 오히려 체제를 열광적으로 지지해야 했다. (…) 이처럼 『1984』는 권력의 소설이다. 한편 『1984』는 사랑의 소설이기도 한다. 권위주의가 철저히 통제하는 섹스는 유일한 해방구이자 저항이며 자유의 추구인데, 외부당 당원들은 성행위를 육욕적 쾌락이나 상상적 유희와 분리시키기 위해 성욕을 극소화하고 부인하도록 조직적인 훈련을 받는다. 여기서 사랑, 특히 섹스는 권력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소설에는 학교 시절의 추억도 나타난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예비학교에서 어린 그가 교활한 교장 부인을 증오하면서도 그것에 대한 죄의식을 가졌던 경험은 『1984』에서 윈스턴이 강력한 권력에 대해 증오심을 포기하고 도리어 사랑하려는 유혹에 빠지는 이중심리로 묘사된다. 나아가 강력한 식민지 경찰의 지배, 정부가 POUM을 탄압한 스페인 시민전쟁, 전시 동안의 검열 등에서 권위주의적 권력의 모델을 찾기도 했다. 물론 소설에 묘사된 권위주의는 그런 경험보다 더욱 과장되어 있다. 소설에 나오는 고문 장면은 그가 예비학교에서 당하고 미얀마에서 목격한 것에 근거한다. 폭탄이 매일 터지는 장면은 제2차 세계대전의 공습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식량 부족과 나쁜 음식에 대한 묘사는 1940년대 영국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다._〈『1984』 중에서〉


저자 프로필

박홍규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52년 9월 9일
  • 학력 일본 오사카시립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영남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영남대학교 법학 학사
  • 경력 영남대학교 기초교육대학 교양학부 교수
    영남대학교 법과대학 법학부 교수
    1998년 영남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1995년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회장
  • 수상 1997년 제38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2014.12.31.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_ 박홍규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저술가이자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이다. 인문·예술의 부활을 꿈꾸는 르네상스맨으로 현재 영남대학교 교양 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자전거 타기와 걷기를 사랑하며, 자유·자연·자치의 삶을 실천하고자 늘 노력한다. 그동안 쓴 책으로 니체는 틀렸다, 자유란 무엇인가, 함석헌과 간디, 내 친구 톨스토이, 가거라 아들아 용감하게;루쉰의 외침을 듣다,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라만차의 돈키호테, 독학자 반 고흐가 사랑한 책, 독서독인, 까보고 뒤집어보는 종교, 이반 일리히,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 메트로폴리탄 게릴라, 야만의 시대를 그린 화가 고야, 아나키즘 이야기, 플라톤 다시 보기, 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 등이 있다. 함께 쓴 책으로는 거꾸로 생각해봐! 세상도 나도 바뀔 수 있어, 세상을 바꾼 창조자들, 청년 인생 공부 등이 있다.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목차

저자의 말
일러두기
여는 글
한국의 오웰 | 이 책의 특징 | 왜 이 책을 쓰는가? |오웰은 중요하다 | 오웰 삶의 구분

제1부 인간 오웰
오웰은 누구인가?
수정처럼 맑은 눈을 가진 사람 | 오웰에게는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공존한다 | 야인 오웰 | 오웰의 인생관 | 오웰의 정치관 | 오웰은 이해하기 까다로운 인물이다 | 애국심과 민족주의, 그리고 영국적인 것 | 오웰의 스승 또는 선배 | 에피그라프
가정과 학교의 속물성
왜 영국인가? | 영국의 자연과 코벳 | 오웰이 사랑한 자연 | 대영제국 식민지의 가계 | 오웰의 가족은 어떤 사람들일까? | 어린 시절의 회상 | 아이들의 계급의식 | 학교에서 억압을 경험하다 | 아이들의 허영심 | 오웰은 어떤 책을 읽으며 자랐을까? | 이튼의 국왕 장학생이 되다 | 섹스와 스포츠
식민지의 속물성
식민지 경찰이 되다 | 미얀마 식민지의 역사 | 「교수형」과 「코끼리를 쏘다」 | 『버마의 나날』 | 『버마의 나날』에 대한 평가

제2부 사회주의 작가 오웰
밑바닥 경험
최하층 인간을 만나다 | 파리의 밑바닥 생활 | 교조적인 마르크스주의에 잠시 기울다 | 오웰은 왜 밑바닥 생활을 계속했을까? | 런던의 밑바닥 생활 | 다시 영국으로 | 《아델피》 | 영국에서 호프 이삭을 줍다 | 고등학교 교장이 된 오웰 |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과 『버마의 나날』을 출판하다 | 『목사의 딸』 | 런던에서 서점 점원으로 일하다 | 아일린을 만나다
사회주의 작가 오웰
사회주의를 선언하다 | 『엽란을 날려라』 |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인간성의 유대와 연대의식 | 오웰의 사회주의는 어떻게 다른가? | 오웰의 사회주의 인식 수준 | 진보 지식인들의 친소 경향 | 시골 생활, 그리고 아일린과의 결혼 |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출판하다 | 골란츠와 갈등을 겪다 | 좌익독서클럽 | 좌익 책들의 문제점 | 우익독서클럽 | 작가와 조직
스페인 시민전쟁
시민전쟁의 발발과 지식인 | 헨리 밀러를 만나다 | 스페인의 현대사 | 카탈루냐 | 전선에서 보낸 날들 | 「스페인 시민전쟁의 회고」 | 공산당의 배신과 탈출 | 스페인 시민전쟁에 대한 오웰의 평가 | 모로코 문제 | 스펜더의 경우

제3부 반권력의 작가 오웰
휴식
오웰 삶의 인터미션 | 독립노동당 입당 | 마라케시에서 요양하다 | 『숨 쉬러 올라오기』 | 아버지의 죽음 | 「찰스 디킨스」 | 「소년 주간지」
차악의 선택
반전에서 참전으로 | 사회주의를 위한 애국 | 전쟁 기간 | 영화평을 쓰다 | 영화와 민중 | 『사자와 일각수』 | 인도 방송 | 「나 좋은 대로」 | 《트리뷴》의 문학 편집자로 일하다 | 가정과 사교 생활
『동물농장』
스탈린 신화에 도전하다 | 소련의 현대사 | 메이저의 연설 | 〈영국의 동물들〉 | 동물주의 | 혁명의 성공과 실패 | 혁명의 확대와 갈등 | 반항, 학살, 숭배 | 체제가 바뀌다 | 『동물농장』과 실제 역사 | 동물과 인간의 묘사 | 우여곡절이 따른 『동물농장』 출판 | 『동물농장』의 현대적 의미는 무엇일까? | 『비판적 에세이』 | 종군 특파원으로 활동하다 | 자유방어위원회 | 『동물농장』 을 출판하다
『1984』
정직한 에세이들 | 글쓰기의 규칙 | 오웰의 작가론 | 주라 섬 | 『1984』 | 소설의 시작이 보여주는 분위기 | 황금의 나라 | 옛것과 옛 노래의 상징성 | 오웰의 보수주의 | 『1984』에 나타난 전체주의 문화 | 전체주의 문화 속의 민중 | 오웰은 반공주의자인가? | 『1984』의 출판 | 『1984』에 대한 최근의 평가 | 「작가와 리바이어던」 | 「간디에 대한 성찰」 | 재혼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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