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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자키 도손 Shimazaki Toson

    시마자키 도손 프로필

  • 국적 일본
  • 출생-사망 1872년 3월 25일 - 1943년 8월 22일
  • 데뷔 1897년 시 `약채집`

2015.05.07.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시마자키 도손
도손(1872∼1943)의 본명은 시마자키 하루키(島崎春樹)다. 나가노현(長野県) 신슈(信州)의 기소(木曽)에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에도(江戸)와 교토(京都)를 잇는 교통 요충지 기소에서 대대로 숙박업과 도매업을 운영하는 그 지역 유지이자 촌장을 지낸 유서 깊은 집안이다. 국학자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효경≫이나 ≪논어≫ 등을 읽어 한학적 소양이 잡혔다. 집안은 메이지유신 직후 몰락하고, 열 살이 되던 1881년 봄, 문명의 도시 도쿄로 상경한 도손은 요시무라 다다미치(吉村忠道) 집에 기거하면서 학교에 다녔다.
초등학교 졸업 후 진학한 메이지학원은 기독교 학교로 교사 대부분이 외국인이었다. 이 시기에 셰익스피어나 바이런, 워즈워스 등 서양 문학에 심취하는 한편, 평생 스승으로 존경한 마쓰오 바쇼(松尾芭蕉)나 사이교(西行) 등 일본 문학도 섭렵하며 문학의 꿈을 키웠다. 졸업하던 해에 메이지여학교 교사가 됐다. 이듬해, 시인 기타무라 도코쿠(北村透谷)와 함께 잡지≪문학계≫를 창간해 동인으로 극시와 수필을 발표하며 문학가로 나섰다.
도코쿠의 자살 그리고 여학교 제자이자 첫사랑 사토 스케코(佐藤輔子)의 병사(病死)에 충격을 받은 도손은 1896년 도쿄를 떠나 센다이 도호쿠학원 교사가 됐다. 센다이의 자연을 벗 삼아 시 창작에 전념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와카(和歌)나 하이쿠(俳句) 외에 일본어로 새로운 시를 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신체시인들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심지어 경멸 대상이었던 까닭에 도손은 숨어서 ≪새싹집≫을 쓴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런 극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새싹집≫은 근대인의 감정과 사고를 대변하는 일본 근대시의 모태가 됐다. 이후 ≪일엽편주≫, ≪여름풀≫을 잇달아 발표해 메이지 낭만주의 시인으로 명성을 떨쳤다.
1897년 도쿄로 돌아온 도손은 일본어 시의 한계와 가중되는 경제적 부담에서 벗어나고자 1899년 신슈 고모로의숙 교사가 됐다. 고모로에서 하타 후유코와 결혼해 딸 셋을 키우며 산촌 지방의 낯섦과 현실적 생활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 1901년 마지막 시집 ≪낙매집≫을 끝으로 ‘시에서 산문’으로 전향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문학 양식의 탐색은 외국의 단편 작가, 극작가, 국내외 인상파 화가로 집중된다. 러스킨의 ≪근대 화가론≫이나 다윈의 ≪종의 기원≫,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서 자연과학적 관찰을 배양하는 한편, 투르게네프의 ≪사냥꾼의 일기≫에서 회화를 보는 듯한 신비한 인상을 받았다. 또한 화가와 친밀했던 체호프나 모파상의 작품에 나타난 인상의 ‘청신함’과 ‘단순함’을 통해 인간의 심리 해부에 주목하게 된다. 시대 분위기 역시 문학과 회화, 즉 글과 삽화, 장정의 접목이 활발했고 일본 예술계에서 인상주의 영향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조류에 발맞춰 도손은 같은 시기에 부임한 미술 교사이자 시슬레에게 사사한 수채화가 미야케 가쓰미(三宅克己)에게 사생(寫生)을 배워 사생문을 성공시킨 것이 ≪지쿠마 강 스케치≫다. 훗날 자신의 산문은 ‘이 스케치로부터 출발했다’[≪선집(選集)≫ 상권 서(序)]고 말한 바 있다.
고모로에서 7년 남짓 생활하는 동안, 러일전쟁을 비롯해 딸 셋이 죽고 부인마저 야맹증에 걸리는 등 가혹한 시련을 겪으며 죽을 각오로 쓴 작품이 장편 소설 ≪파계≫(1906)다. 일본 문단을 새롭게 장식한 이 작품을 계기로 도손은 자연주의 소설가로 인정받게 됐다. 곧바로 장편 소설 ≪봄≫(1908)과 ≪집≫(1910)을 잇달아 발표했다. 이후 ≪신생≫(1918)은 넷째 류코(柳子)의 출산 후유증으로 죽은 부인을 대신해서 집안 살림을 도와주던 조카딸 고마코와의 불륜을 소재로 해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만년의 ≪동트기 전≫(1932)은 1853년부터 1886년까지의 사회 변천사를 그린 작품으로, 교토와 에도를 잇는 기소 가도(街道)를 중심으로 그 시대에 살았던 자신의 아버지를 모델로 한 역사 소설이다. 그리고 1936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제10회 국제펜클럽대회에 참가한 여행기 ≪순례≫(1940)가 있다. 마지막으로 1943년 8월 22일 미완성 작품 ≪동방의 문≫을 쓰다가 뇌출혈로 쓰러진 뒤 “시원한 바람이구나”라는 말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말년에 살았던 오이소(大磯) 해변의 지후쿠사(地福寺)에 안치되었고 유해 일부는 고향 마고메(馬込) 에이쇼사(永昌寺)에 있는 가족 묘지에 분장되었다. 도손의 인생은 한마디로 파란만장했다. 시대적으로는 메이지(明治)·다이쇼(大正)·쇼와(昭和)를 거치며,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중일전쟁, 제2차 세계 대전까지 겪어 낸 굴곡 많은 삶이었던 만큼, 도손은 시와 수필, 소설, 동화 등 장르를 초월해 진정한 작가로 자리매김한 일본 근대 문학가다.

역자 - 김남경
김남경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 문학을 전공했고 <시마자키 토오송(島崎藤村)의 수필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명지전문대학 일본어과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도손은 여러 문학 장르를 아우르는 만큼 에세이스트·휴머니스트·모럴리스트로서 매력을 지닌 작가다. 특히 그의 수필은 작가의 단순한 인생 도큐먼트가 아니라 예술적 인생의 증언이라고 간주해 연구 테마로 삼았는데 수확은 제법 컸다. 시에서 산문으로 이행하는 시기의 수필 ≪지쿠마 강 스케치≫가 도손 문학은 물론 일본 근대 수필의 백미로 꼽히는 근원을 찾는 과정에서, 시인이었던 그가 인상파 화가의 기법인 사생(寫生)을 문장에 도입해 문학 양식에 독자적인 새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됐다. 수필 초기에 사생문을 시작으로 기행문, 감상집으로 표현 양식을 변용해 온 도손 문학의 행로를 지금껏 탐구했다. 이후로 시대상을 잘 반영하는 현실성이 짙은 여행 작품을 통해 기행 수필이 대중 문학으로서 갖는 문학적 가치와 필요성을 찾고자 한다.
대표 논문으로는, 산문시에서 수필을 시도한 <시마자키 도손의 <7일간의 한담> 고찰>과 장르 의식의 변화를 살펴본 <시마자키 도손의 <수채화가>론>, 그리고 만년의 감상 수필에 나타난 아포리즘을 분석한 <시마자키 도손의 인생철학> 등이 있다.

<지쿠마 강 스케치> 저자 소개

시마자키 도손 작품 총 13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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