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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묵

    이종묵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61년 5월 20일
  • 학력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
    서울대학교 학사
  • 경력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역임

2014.11.19.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김인후 (金麟厚, 1510~1560년)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후지(厚之), 호는 하서(河西)이다. 어린 시절 김안국(金安國)에게 『소학』을 배우고, 성균관에서는 이황(李滉)과 함께 공부했다. 1540년 문과에 급제하고 사가독서에 선발되었다. 시강원 설서에 임명되어 세자로 있던 인종(仁宗)을 가르쳤으며, 기묘사화에 희생된 선비들을 신원하도록 건의하기도 했다. 인종이 승하하자 옥과 현감(玉果縣監)을 끝으로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성리학 연구에 몰두했다.
문집 『하서전집(河西全集)』이 전한다. 중국 명시의 명구를 가려 뽑아 편찬한 『백련초해(百聯抄解)』는 조선 시대의 아동 한시 학습 교재로 널리 읽혔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저자 - 이정 (李楨, 1512~1571년)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강이(剛而), 호는 구암(龜巖)이다. 구암이라는 호는 그의 고향 사천 구암리에서 따온 것이다. 1536년(중종 31년) 문과에 장원 급제 해서 선산 부사, 청주 목사, 경주 부윤 등을 역임했다. 만년에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물러나 구암정사(龜巖精舍)를 짓고 후진을 양성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절친한 사이였으며, 성리학에도 밝았다. 문집 『구암집(龜巖集)』을 비롯해 『성리유편(性理遺編)』, 『경현록(景賢錄)』 등의 저술을 남겼다.

저자 - 윤현 (尹鉉, 1514~1578년)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용(子容), 호는 국간(菊磵)이다. 1537년(중종 32년) 문과에 장원 급제 하고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다. 황해, 충청, 경기 삼도 관찰사를 거쳐 호조 판서를 역임했다. 문집 『국간집(菊磵集)』이 전한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윤현이 지은 198구의 오언 고시 「영남탄(嶺南歎)」은 도탄에 빠진 영남 백성의 실상을 묘사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저자 - 박전 (朴全, 1514~1558년)
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면부(勉夫), 호는 송파(松坡)이다. 1546년(명종 1년) 문과에 급제해 전적, 감찰 등을 거쳐 호조 정랑을 역임했다. 문집 『송파일고(松坡逸稿)』가 전한다. 문집에 수록된 「구병가(九病歌)」, 「팔애시(八哀詩)」, 「감흥(感興)」, 그리고 「충효책(忠孝策)」과 「절비자설(折臂者說)」 등의 시문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저자 - 노수신 (盧守愼, 1515~1590년)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과회(寡悔), 호는 소재(穌齋)이다. 1543년(중종 38년) 문과에 장원 급제 하고 사가독서(賜暇讀書) 했으며 정언, 이조 좌랑을 거쳤다. 1545년(인종 1년)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순천(順天)으로 유배되고, 곧이어 양재역 벽서 사건에 연루되어 진도(珍島)로 이배되었다. 그의 유배 생활은 무려 19년이나 이어졌으며 1567년 선조의 즉위와 함께 풀려난 뒤로는 승승장구해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이황(李滉), 김인후(金麟厚) 등과 학문적 토론을 벌였으며, 두시(杜詩)에 정통했다. 정사룡(鄭士龍), 황정욱(黃廷彧)과 함께 16세기 문단의 최고봉으로 손꼽혀 ‘호(湖, 정사룡)·소(穌, 노수신)·지(芝, 황정욱)’로 일컬어졌다.

저자 - 이지함 (李之菡, 1517~1578년)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형백(馨伯), 형중(馨仲)이며 호는 토정(土亭)이다. 고려 말의 문호 이색(李穡)의 후손이며 영의정을 역임한 이산해(李山海)의 숙부이다.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이었으며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않다가 1573년(선조 6년) 천거를 받아 포천 현감이 되었다. 백성을 구제할 방도를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듬해 사직했다. 1578년 아산 현감이 되어 시폐를 개진하는 상소를 올렸다. 문집 『토정유고(土亭遺稿)』가 전한다. 『토정비결(土亭祕訣)』의 저자로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은 후대의 위작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저자 - 허엽 (許曄, 1517~1580년)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태휘(太輝), 호는 초당(草堂)이다. 허균과 허난설헌의 아버지이다. 조광조(趙光祖)의 문인 나식(羅湜), 이언적(李彦迪), 서경덕(徐敬德) 등 당대의 저명한 유학자들을 찾아가 공부했다. 1546년(명종 1년) 문과에 급제해 사가독서(賜暇讀書) 하고, 성균관 대사성이 되어 조광조의 신원을 주장하다가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황(李滉)과 조식(曺植)을 등용하고 향약(鄕約)을 시행하도록 건의하는 등 사림에 가까운 정책을 펼쳤다. 1568년(선조 1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설선(薛宣)의 『독서록(讀書錄)』을 구하여 돌아와 간행했다. 대사간, 경상도 관찰사를 역임했다. 문집 『초당집(草堂集)』이 전한다.

역자 - 이종묵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있다. 옛사람의 운치 있는 삶을 사랑하여 우리 옛 시와 글을 읽고 그 아름다움을 분석하여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한시 마중』, 『부부』, 『한국 한시의 전통과 문예미』, 『우리 한시를 읽다』, 『조선의 문화공간』(1~4)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누워서 노니는 산수』, 『부휴자담론』, 『사의당지, 우리 집을 말한다』, 『글로 세상을 호령하다』, 『양화소록 - 선비 꽃과 나무를 벗하다』 등이 있다.

역자 - 장유승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을 거쳐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조선 후기 서북 지역 문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에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정조의 비밀어찰, 정조가 그의 시대를 말하다』가 있으며, 한국고전번역원의 번역위원으로 『정조어찰첩』, 『영조 승정원일기』 등을 옮겼다.

편자 - 안대회
현재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밀한 해석과 깊이 있는 사유를 바탕으로 옛글을 분석함으로써 선인들의 삶을 풀어내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편자 - 이종묵
현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있다. 옛사람의 운치 있는 삶을 사랑하여 우리 옛 시와 글을 읽고 그 아름다움을 분석하여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편자 - 정민
현재 한양대 국문과 교수다. 무궁무진한 한문학 자료를 탐사하며 살아 있는 유용한 정보를 발굴하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편자 - 이현일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에서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시인인 신위(申緯)를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 조교수이다.

편자 - 이홍식
현재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에는 연구 영역을 확장하여 연행록과 통신사행록을 기반으로 동아시아 문화 교섭의 구체적 양상을 밝히는 데 집중하고 있다.

편자 - 장유승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을 거쳐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조선 후기 서북 지역 문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에 재직 중이다.

<안대회ㆍ이종묵ㆍ정민의 매일 읽는 우리 옛글> 저자 소개

이종묵 작품 총 8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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