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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

  • 국적 대한민국
  • 출생-사망 1542년 - 1607년

2016.10.20.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유성룡柳成龍, 1542~1607
본관은 풍산豊山이고,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이다. 156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섰다. 전적, 공조좌랑 등을 거쳤으며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壯官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어 이조참의를 거쳐 부제학, 대사간, 우부승지, 도승지를 거쳤다. 1583년 다시 부제학이 되어 「비변오책備邊五策」을 지어 올렸다.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으로 기축옥사가 일어나자 여러 차례 벼슬을 사직하였으나 임금이 허락하지 않았다. 1590년 우의정에 올라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에 녹훈되고 풍원부원군豊原府院君에 봉해졌다. 이후 왜란이 있을 것에 대비하여 형조정랑 권율權慄과 정읍 현감 이순신李舜臣을 각각 의주 목사와 전라도 좌수사에 천거하였으며, 진관법鎭管法을 예전대로 고칠 것을 주장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조판서를 겸하고, 도체찰사로 군무軍務를 총괄했다. 이어 영의정이 되어 선조를 호종했으며 평양에 이르러 나라를 그르쳤다는 반대파의 탄핵을 받고 면직되었다. 그러나 의주에 이르러 평안도 도체찰사가 되었으며 명나라의 장수 이여송李如松과 함께 평양성을 수복한 뒤 충청·경상·전라 3도의 도체찰사가 되어 파주까지 진... 격했다. 이여송이 벽제관碧蹄館에서 패배하고 퇴각하려 하자 이를 만류했으며 일본과 화의에도 반대했다.
유성룡은 전란 기간 내내 군대 양성과 더불어 훈련도감의 설치, 화포를 비롯한 각종 무기의 제조, 성곽의 수축을 건의하여 군비 확충에 노력했으며, 소금을 만들어 굶주리는 백성을 진휼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록되고 다시 풍원부원군에 봉해졌다.


역자 : 이민수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나 예동사숙에서 한문을 공부하고 사서연역회 편집위원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국역위원 등을 지냈으며, 독립운동사 편찬위원회 집필위원, 민족문화추진회 번역위원으로 활동했다. 저서로 『사서삼경입문』, 『논어해설』, 『양명학이란 무엇인가』, 『학계선생약전』, 『윤봉길의사약전』 등이 있고, 역서로는 『삼국유사』, 『명심보감』, 『격몽요결』, 『천자문』, 『동의수세보원』, 『연려실기술』, 양반전』, 『당의통략』, 『연암선집』, 『효경』, 『순오지』, 『부모은중경』, 『공자가어』, 『목련경』, 『오륜행실도』, 『동국붕당원류』, 『주역』 외 다수가 있다.

<징비록>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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