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 접속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강제 새로 고침(Ctrl + F5)이나 브라우저 캐시 삭제를 진행해주세요.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리디 접속 테스트를 통해 원인을 파악하고 대응 방법을 안내드리겠습니다.
테스트 페이지로 이동하기
2015.02.04.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게오르크 카이저(Georg Kaiser)
게오르크 카이저는 1878년 11월 25일 마그데부르크에서 상인 프리드리히 카이저와 부인 안토니 안톤의 여섯 아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그는 교사와 교육과정에 대한 불만으로 김나지움을 중퇴한 후 3년간 상업 수업을 받았다. 서점과 수출입상에서 수습사원으로 일하면서도 항상 플라톤과 니체를 읽고, 바흐와 베토벤의 음악을 듣기를 좋아했다. 1898년에 카이저는 석탄 운반 인부로서 화물선을 타고 남아메리카로 가서 3년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아에게(AEG) 지사의 경리 사원으로 일한다. 그러나 말라리아에 걸려 스페인, 이탈리아를 거쳐 다시 독일로 돌아와서는 주로 마그데부르크에 머물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 25세에 첫 작품으로 희비극 <클라이스트 교장>을 발표했다. 1908년 10월에 카이저는 부유한 상인 가문 출신의 마르가레테 하베니히트(Margarethe Habenicht)와 결혼해 제하임 안 데어 베르크슈트라세로 이사했으며, 1911년에는 바이마르에도 겨울을 날 별장을 갖게 되었다. 1915년에 처음으로 그의 작품 <학생 페게자크 사건>이 빈에서 공연되었다. 1917년 <칼레의 시민들>과 <아침부터 자정까지>의 초연으로 카이저는 극작가로서 최초의 성공과 명성을 얻는다. 이후 카이저의 작품 중 40편 이상이 세계 각국에서 초연됨으로써 명실상부한 세계적 극작가로 부상한다.
극작가로서의 이 같은 성공에도 불구하고 카이저는 경제적으로는 오히려 압박받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경제적 무지나 세상사를 몰랐던 탓으로 야기된 것인지, 아니면 작가로서의 왕성한 체험 욕구나 낭비벽에 의한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차츰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 법정 투쟁에까지 이르게 된다. 1920년 6월 카이저는 가족과 함께 뮌헨 근교 투칭에서 가구가 비치된 호화 별장을 빌려 생활하던 중, 자신의 창작 활동을 계속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임의로 이 집의 가구 집기 등을 저당 잡히거나 매각·처분한다. 이 일로 카이저는 횡령 및 사기죄로 구속되어 뮌헨 지방법원의 법정에 서게 됨으로써 처음으로 세상에 자신의 사적 존재를 드러낸다. 원래 성격이 내성적이고 세상을 기피하는 그에게 이 사건은 치욕과 불명예를 안겨 주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사생활을 일반에 낱낱이 공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 카이저는 담당 판사에게 창조하는 인간의 불가침성을 주장하면서 이미 치유할 수 없는 정신적 상처를 입고 있는 인간에게 더 이상 고통을 안겨 주지 말 것을 탄원한다. 결국 1921년 2월 횡령죄로 1년의 징역을 선고받지만 2개월 후인 4월 중순에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카이저는 이러한 자신의 체험을 <아침부터 자정까지>의 은행원과 <산호>의 억만장자를 통해 재현해 보인다. 1921년부터 1938년까지 카이저는 베를린 근교 그륀하이데에 머물면서 극작 활동을 계속했는데, 이 기간 중 1933년은 카이저의 창작 기간에서 중간 시기를 마감하는 결정적인 해였다. 즉 이해 2월 라이프치히에서 <은빛 호수>의 초연이 있은 후, 카이저의 작품들은 나치스에 의해 유대적 성향의 타락한 예술로 규정돼 출판 및 공연이 금지된다. 뿐만 아니라 카이저는 프러시아 예술 아카데미로부터 회원 자격을 박탈당한다. 그 후 5년 동안 온갖 고초를 겪으며 그륀하이데에 계속 머무르다가 1938년 가족과 이별한 채 홀로 암스테르담을 거쳐 스위스로 망명한다. 그는 이때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륀하이데에선 다음 선택밖에 없었다. 아사(餓死) 아니면 자살. 그러나 나는 작품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난 나의 작품에 의무를 지고 있다. (…) 난 살아남았다. 작품을 위해서.”
이후 7년 동안 스위스 각지를 전전하며 고독한 망명 생활을 보내는 가운데서도 카이저는 한시도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1944년에 세 편의 그리스 희곡들 중 마지막 작품인 <벨레로폰>을 끝내고 소설 ≪아르트≫를 집필하던 중 1945년 6월 4일에 혈관이 막히는 색전증으로 아스코나에서 6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독일에 있던 그의 아내 마르가레테는 라디오를 통해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사후 반세기 이상이 지난 오늘날 표현주의의 가장 위대한 극작가로 지칭되고 있는 카이저의 전성기는 1917년 이후의 몇 년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917년 1월 19일에 <칼레의 시민들>이 프랑크푸르트의 초연에서 최초의 성공을 거둔 후, 같은 해에 <산호>를 비롯한 세 편의 드라마가 출간되고, <아침부터 자정까지> 등 다섯 편의 드라마가 초연되었다. 1918년엔 <가스> 등 여섯 편의 새로운 드라마가 발표되고, <오페라 극장의 화재> 등 일곱 편의 드라마가 초연되었다.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드라마들이 잇따라 출판되고 초연을 하게 된 결과, 카이저는 1919년에 이미 게르하르트 하웁트만과 함께 독일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작가가 되었다. 단시일에 걸친 카이저의 급속도의 성장은 독일 연극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가 어렵다. 이 같은 작품의 대량생산과 구약성서에서부터 현대 산업사회에 이르는 작품 소재의 다양성, 그리고 독특한 극의 형식과 문체 등은 작가를 베일에 싸인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만들고 있다. 때문에 카이저는 표현주의 문학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면서 이중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그는 한편으로는 새로운 인간상의 주창자, 새로운 드라마 형식의 창조자로 칭송받는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노련한 무대 및 드라마 제작 기술자로 폄하되기도 한다.
혼란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소재들과 극 형식에도 불구하고 카이저의 전 작품에 면면히 흐르는 일관된 주제는 새로운 인간과 새로운 인간에 의한 인류와 세계의 개혁이다. 인간과 인류의 개혁에 관한 이념은 카이저의 독창적인 개념은 아니다. 이미 이러한 이념은 기독교의 구원론이나 니체의 사상에서 발견되고 있다. 희생과 박애의 정신이란 면에서 그리스도와 카이저의 새로운 인간 사이에 현저한 유사성이 나타나고 있으며, 카이저의 새로운 인간의 전제인 참회와 고백, 개전과 각성 역시 기독교 사상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카이저의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구제해야 하는 반면에 기독교 사상은 메시아의 구제 행위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이와 관련해 카이저가 <칼레의 시민들>이나 <아침부터 자정까지> 그리고 <가스> 3부작에서 사용하는 성경의 구절이나 기독교적 메타포는 그의 기독교 신봉에서 비롯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개혁에 관한 자신의 이념과 비전을 표현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카이저의 인간의 개혁에 관한 이념은 20세기의 예언자였던 니체에게서 영향 받은 바 크다. 니체는 대단한 철학적, 작가적 영감으로 새로운 야성의 인간, 도덕과 종교의 금기를 대담하게 깨뜨려 버리는, 그리고 강하고 자유로운 생을 향유하는 인간의 이상으로서 초인을 제시했다. 이러한 초인은 카이저를 비롯한 표현주의자들이 찾고 있었던 새로운 인간의 대개념이 되었다. 그러나 카이저의 이념과 니체의 사상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니체의 사고는 항상 초인의 사상을, 즉 민중과 양극적 위치에 서서 그들 위에 군림하는 특출한 한 개인의 이상을 추구하는 반면에, 카이저는 개개인의 인간 그 자체를 문제시하며, 나아가 모든 인간의 개혁과 완성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카이저에게 인간의 개혁이란, 초인과 같은 완전히 새로운 존재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본래의 인간성을 깨워 일으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카이저의 이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작품들이 <아침부터 자정까지>, <칼레의 시민들> 그리고 <가스> 등이다. <아침부터 자정까지>는 해설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므로, 여기서는 나머지 두 작품에 대해서 간략히 언급함으로써 카이저의 작품 세계에 대한 개관을 대신하고자 한다.
카이저는 <칼레의 시민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상의 특징을 로댕이 조각한 기념 동상에서, 작품의 소재는 프루아사르(Froissart)의 연대기에 나오는 영불 간의 백년전쟁에서 얻었다. 그러나 카이저에게 역사적인 기록은 ‘새로운 인간’에 관한 자신의 이념을 구현하는 보조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극이 아닌 이념극이었기 때문이다.
칼레 시를 점령한 영국 왕은 여섯 명의 선택된 시민들이 죄인의 옷차림으로 목에 밧줄을 두르고 자신에게 칼레 시의 열쇠를 갖다 바친다면 이 도시를 파괴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제 시민들은 항구와 도시의 파괴냐, 아니면 선택된 여섯 시민들의 수난의 길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 있다. 근위대 대위 뒤게스클랭은 끝까지 항쟁할 것을 주장하는 반면에, 70세의 노시민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는 영국 왕의 조건을 수락할 것을 촉구한다. 여기서 카이저의 인간 개혁의 이념에 의해 옛 인간인 뒤게스클랭과 새로운 인간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대립하는 바, 전통적인 옛 영웅은 자멸하는 일이 있더라도 프랑스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 즉 승리 아니면 죽음이 자신의 의무임을 확인하고, 새로운 인간은 공동체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비록 굴욕적이라 할지라도 스스로를 희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책무임을 인식한다. 이에 외스타슈는 첫 번째 인질을 자원하면서 시민들에게 희생을 촉구한다. 잇따라 다른 여섯 명의 시민들이 자원하고 나선다. 이제 일곱 명 중에서 한 명이 물러서야 하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아무도 포기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외스타슈는 추첨으로 결정하고자 한다. 최후의 만찬을 연상케 하는 일곱 명의 회동에서 추첨이 행해지지만, 모두가 희생을 의미하는 푸른 알을 뽑게 된다. 추첨 항아리에는 처음부터 푸른 알만이 들어 있었다. 외스타슈는 우연이 인간의 생사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하면서 결정을 다음 날 아침으로 미룬다. 모두들 새벽 첫 종소리에 각자 집에서 시장터를 향해 출발해야 하며, 맨 마지막에 도착하는 사람이 희생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외스타슈를 제외한 여섯 명이 모두 시장터에 나타났을 때, 시민들은 그의 배신을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외스타슈는 다른 동료들을 삶이냐 죽음이냐 하는 선택의 부담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기 위해 먼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는 이 같은 자신의 희생을 통해 나머지 동료들을 확고한 하나의 공동체로 결속시켜 주었다. 그의 관 앞에서 눈먼 아버지가 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포고한다. “걸어 나가시오. 빛 속으로. 이 밤에서 벗어나서. 숭고한 밝은 빛이 비추기 시작했소. 어둠은 흩어졌소. (…) 나는 새로운 인간을 보았소. 간밤에 그가 태어났소!”
카이저의 새로운 인간은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와 인류의 유산을 위해 어떠한 보상을 기대함이 없이 순수한 희생을 치러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는 진지하고 사려 깊은 태도로써 새로운 공동체를 구현하고자 하는 실천적 인간이다. 그는 직면한 현실에서 자신의 의무를 분명히 인식하고서 동료들을 명예욕과 이기심, 물질적·육체적 욕구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해 진정한 의미의 희생적 행위, 영웅적 행위로 이끌어 간다. 여기서 카이저는 전쟁에 광분했던 동시대의 군국주의적 사고와 전쟁 자체에 대한 자신의 거부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카이저는 1918년을 전후한 사회 개혁에 관한 드라마들에서 사회질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작가의 목표는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순수한 이념적인 것이다. 카이저에게는 사회질서의 물질적 변화보다 인간의 정신적·윤리적 변화가 우선적인 관심사다. 그는 일차적으로 개개인의 변화를 추구하고, 나아가 이에 뒤따르는 사회의 변화 및 개혁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 같은 사회개혁극의 중심을 이루는 드라마가 바로 <가스>다. 카이저는 이 작품에 나타난 억만장자 아들의 운명을 통해 현대 산업사회의 인간이 새로운 인간이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가스>에서 억만장자 아들은 사회적 책임을 의식하고서 행동하는 새로운 인간으로 등장한다. 이제 그는 물려받은 아버지의 거대한 개인 기업을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려 한다. 억만장자 아들은 “우리는 일하고 우리는 분배한다!”라는 기업의 기본 원칙을 설정하고 모든 노동자가 다 함께 기업의 이윤에 참여토록 한다. 이 같은 노동자의 소득 증대를 위한 새로운 경영 체제는 노동자들의 쉼 없는 노동으로 인해 그들 자신의 혹사라는 결과를 초래한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를 착취함으로써 이익의 균등한 분배는 결과적으로 그들의 인간성을 상실케 하는 원인이 된다. 최대의 능률, 노동에의 전력투구, 노동을 위한 노동은 하나의 새로운 산업화 단계인 노동의 분업화 현상을 촉진시키며 인간의 기계화 현상을 초래한다. 따라서 노동자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억만장자 아들의 인간적인 착상은 그 본래의 의의를 상실하게 된다. 거기에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가스의 폭발로 공장은 잿더미로 화한다. 억만장자 아들은 공장을 재건하는 대신 폐허로 변한 공장 부지에 전원풍의 집단 주택단지를 건설한다. 그의 새로운 시도는 루소적 의미의 낙원을 건설해 모든 노동자들을 자연으로 복귀시키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노동자들로 하여금 가스의 생산을 잊고, 진정한 새로운 인간, 기계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풍요한 대자연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이제 노동자들은 집회를 통해 자연으로의 이주냐 아니면 가스냐 하는 문제를 결정해야 한다. 결국 노동자들은 자연으로의 이주를 거부하고 기술과 생산력 증대가 모든 산업노동자의 의무라는 기사의 주장에 설득당해 그를 새로운 지도자로 택하고, 다시 가스를 생산함으로써 계속해서 기계의 노예로 머물러 있고자 한다. 이에 억만장자 아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가스 공장의 휴업을 통고한다. 그러나 임박한 전쟁 때문에 방위산업체의 휴업을 허용치 않는 정부는 공장을 인수해 가스의 생산을 재개한다. 결국 억만장자 아들은 민중과 국가 권력에 굴복함으로써 그의 인도주의적 관점에 바탕을 둔 사회 개혁 의지는 좌절당하고 만다.
역자 - 김충남
김충남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본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뷔르츠부르크대학 및 마르부르크대학교 방문교수, 체코 카렐대학교 교환교수를 지냈다. 1981년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재직하면서 외국문학연구소장, 사범대학장,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세계의 시문학≫(공저), ≪민족문학과 민족국가 1≫(공저), ≪추와 문학≫(공저), 역서로는 게오르크 카이저의 ≪메두사의 뗏목≫, 페터 슈나이더의 ≪짝짓기≫,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헤르만 전쟁≫ 등이 있으며 독일 표현주의문학과 카프카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명예교수로 있다.
<아침부터 자정까지> 저자 소개
본문 끝 최상단으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