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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문규

  • 국적 대한민국
  • 학력 중국 사회과학원 박사
    숭실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 경력 베이징외국어대학교 솔브릿지 경영대학 파견 교수
    우송대학교 중국학부 교수

2015.03.04.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루쉰(魯迅)
루쉰은 1881년 중국 강남의 문화 명승인 사오싱(紹興)에서 한 사대부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집안은 사오싱의 명문으로, 그의 조부는 베이징(北京)에서 한림원(翰林院) 관리로 있었고 부친 역시 수재(秀才)에 급제한 선비였다. 전통 교육을 받으며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낸 루쉰은, 12세 되던 해 조부가 과거 시험 부정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고 부친이 병환을 얻으면서 집안의 갑작스런 몰락을 경험하게 된다. 집안의 몰락으로 인한 세인들의 냉대와 멸시, 이른바 세상의 ‘진면목’을 체험한 루쉰은 18세 때 ‘새로운 것’을 접하고자 고향을 떠나 난징(南京)으로 간다. 여기서 그는 서양의 근대과학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고, 이후 관비 유학생으로 당시 근대화에 빠르게 적응해 성공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도쿄(東京) 고분학원(弘文學院)에서 일본어 및 기초 지식 과정을 수료한 뒤 그는 의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하고 센다이의학전문학교(仙臺醫學專門學校)에 입학한다. 하지만 재학 중 한 수업 시간에 본 슬라이드에서 스파이 노릇을 했다는 죄목으로 일본 군인한테 공개 처형을 당하는 동포를 멍하니 구경만 하고 있는 중국인들의 모습을 보고 그는 큰 충격을 받는다. 이때 루쉰은 중국인의 몸을 치료하는 일보다 그들의 마비된 정신을 각성시키는 일, 즉 정신 계몽이 더욱 시급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침내 의학 공부를 포기하고 문학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후 그는 도쿄에서 문예 잡지 발간을 기획하며 정신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애국주의적 열정을 호소하는 글들을 발표할 뿐만 아니라, 동유럽의 단편소설을 번역해 출판하는 등 매우 열정적으로 문예운동에 투신한다. 그러나 그가 기울였던 노력과 품어 온 기대와는 달리 반응은 냉담했고, 또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결국 귀국하고 만다.
귀국 후 루쉰은 고향에서 화학과 생물학 교사로 재직하면서 당시 혁명 분위기가 한창 고조되고 있는 중국의 현실을 목도하고 자신도 혁명에 적극 가담하는데, 그 혁명이 바로 1911년의 신해혁명(辛亥革命)이다. 하지만 혁명 후 제도는 바뀌었어도 군벌과 타협한 근본적 한계를 갖고 출범한 혁명정부이기에 개혁의 움직임은 기대 이하였고, 나중에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억압적이어서 다시 그에게 커다란 실망감과 깊은 회의감을 느끼게 했다. 이듬해 중화민국 교육부가 베이징(北京)으로 옮겨 가면서 당시 교육 총장이었던 차이위안페이(蔡元培)의 초빙으로 교육부 첨사(僉使) 발령을 받고 베이징으로 거처를 옮긴 루쉰은, 직무 외 대부분의 시간을 고서(古書) 정리나 비석 탁본, 골동품 수집 같은, 전통 문화를 정리하는 일로 보내며 몇 해 동안 침잠의 시간을 갖는다. 그러던 어느 날 ≪신청년(新靑年)≫이란 계몽 잡지 발간을 준비하던 친구의 부탁으로 단편소설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것이 중국 최초의 현대 소설인 <광인일기(狂人日記)>다. 이 소설은 전통적 인습에 갇혀 좀처럼 변화하기 어려운 중국 사회를 한 ‘광인’의 입을 빌려 폭로한 작품인데, 이후 그는 1918년부터 1925년까지 많은 소설과 산문을 발표하며 중국의 봉건 문화, 그리고 그것이 낳은 중국인의 마비된 국민성, 나아가 서구의 것으로 포장된 중국의 또 다른 봉건 문화에 대한 매서운 비판을 쏟아 낸다. 특히 이 시기에 발표한 소설 <아Q정전>은 루쉰이 중국의 대표적인 작가로서 명성을 확고히 하는 데 기여했는데, 소설에서 반(半)봉건 반(半)식민 사회 속의 ‘아Q’라는 주인공은 자신의 실패를 ‘정신 승리법’이라는 자기기만으로 돌리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그는 혁명의 와중에서 혁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혁명당을 가장하다 도둑의 누명을 쓰고 총살당하는데, 루쉰은 이 ‘아Q’라는 인물의 어처구니없는 비극을 통해 국민정신에 보편적으로 만연해 있는 마비성을 해부하고, 그러한 정신적인 낙후성을 고착시킨 봉건사회와 의식구조를 비판함과 동시에 왜곡된 혁명의 과정을 철저하게 반성하고자 했다.
1926년 돤치루이(段棋瑞) 정부의 시위대 유혈 진압에 항의하는 글을 발표했다가 수배령이 내려지자 루쉰은 베이징을 떠나 아모이(廈門)와 광저우(廣州)로 잠시 피신했다가 그 이듬해인 1927년부터 상하이(上海)에 정착한다. 그는 이때부터 비판적 글쓰기의 방향을 이전보다 더욱 즉각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시사 문제를 논하는 잡문(雜文)을 주로 창작하는 데 두었다. 흔히 ‘투창과 비수’로 비유되는 그의 잡문에는 현시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신경이자 치고 막는 수족(手足)”으로서의 날카로우면서도 투철한 비판 정신이 담겨 있다. 그의 잡문은 빈틈없는 논리 전개와 함께 논적(論敵)의 모순과 맹점을 간결하면서도 생동적으로 부각하는 데 뛰어나, 독자에게 명료하면서도 깊은 인상을 남김으로써 더욱 설득력을 지닐 수 있었다. 그는 상하이에 있는 동안 창조사(創造社)나 태양사(太陽社) 등 혁명문학을 주창하는 급진적인 그룹 및 신월사(新月社) 같은 우익 그룹과 논전한 것은 물론 1931년 만주사변 뒤에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 예술지상주의 및 소품문파(小品文派) 등과도 끊임없는 논쟁을 벌였다. 그는 숨을 거두기 직전인 1936년, 항일 투쟁 전선을 둘러싸고 저우양(周揚) 등과 ‘국방 문학 논쟁’을 벌이는 등 마지막까지 논쟁의 중심에 서서 모든 허위를 거부하며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정신을 보여 주었다. 1936년 10월 19일 55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 그의 장례식은 민중장(民衆葬) 형식으로 치러졌고, 그의 치열했던 작가 정신은 ‘민족혼’이란 이름으로 후대 중국 작가들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루쉰은 창작과 번역 활동 외에도 중국 고전문학의 체계적 연구서인 ≪중국소설사략(中國小說史略)≫과 ≪한문학사강요(漢文學史綱要)≫를 저술했고, 공백에 가까웠던 고서(古書)의 집록 및 교감에도 커다란 업적을 남겨 학자로서의 공력뿐 아니라 연구 방법에서도 오늘날까지 많은 귀감이 되고 있다. 또한 만년에는 ‘문예 대중화’의 일환으로 목판화 운동에도 많은 공을 들여 유럽과 일본의 목판화를 중국에 소개하고, 목판화 전시회와 강습회를 열어 젊은 목판화 작가를 양성하는 등 중국 현대 미술사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역자 - 구문규(具文奎)
구문규는 숭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중국사회과학원(中國社會科學院)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우송대학교 글로벌문화비즈니스학부 중국학 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전공은 현대 중국 문학으로, 루쉰의 문학을 비롯해 현대 중국 지식인의 인문 정신과 문화 심리로 연구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저서와 역서로 ≪한중 고전소설 연구 자료의 새 지평≫(공저, 채륜, 2008), ≪중국의 영화문화≫(공저, 天津大學出版社, 2003), ≪루쉰 잡문 예술의 세계≫(역서, 학고방, 2003) 등이 있다.

<들풀>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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