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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곤

    이하곤 프로필

  • 출생-사망 1677년 - 1724년

2016.05.16.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이하곤 (李夏坤, 1677~1724년)
18세기 초에 활동한 문인화가이자 서화 비평가로 본관은 경주, 자는 재대(載大), 호는 담헌(澹軒)이다. 좌의정 이경억(李慶億)의 손자이자, 문형(文衡)을 지낸 이인엽(李寅燁)의 맏아들이다. 1708년 진사시에 급제했지만 벼슬에 나가지 않고 고향 진천으로 내려가 은거했다. 이후 음직(蔭職)으로 익위사(翊衛司) 세마(洗馬) 등을 제수받았지만 사양했고, 오직 산수를 유람하고 서화와 서책을 모으는 벽(癖)을 즐기며 일생을 보냈다.
그림과 시문에 두루 능했다.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1651~1708년)의 영향을 많이 받아 한유와 구양수 중심의 당송 고문을 추숭했으며, 모의와 표절을 배격하고 앎(識)에 기반을 둔 진문(眞文)을 지으려 노력했다.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명말 청초의 문장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특히 짧은 문장 속에 예술적 감상을 절묘하게 녹여내는 제발문(題跋文)에 재능을 보여 당대에 높은 평가를 받았다.
동계(東谿) 조구명(趙龜命, 1693~1737년)은 그를 위한 애사(哀辭)에서 “분방한 필력이 힘차고 생기가 있는데, 특히 산수 서화를 평하는 데 더욱 특장이 있어서 명나라 문인의 제지(題識)와 아주 비슷하다.(其放筆澹蕩活動, 尤長於評論山水書畵, 絶似明人題識.)”라 했고, 운와(芸窩) 홍중성(洪重聖, 1668~1735년)은 그에게 보낸 시에서 “그림을 펼쳐 보니 그윽한 뜻이 많고, 시문을 품평하니 속된 마음 없구나. 원중랑은 다시금 만나기 어려우니, 훌륭한 재목을 어느 누가 알아줄까.(閱畵多幽意, 評詩不俗心. 中郞難再遇, 誰識爨桐音.)”라고 평했다. 앞서 동계가 말한 명나라 문인이 바로 운와가 일컬은 원중랑이다.
문집으로 『두타초(頭陀草)』 18권이 남아 있다.

저자 - 김석주 (金錫胄, 1634~1684년)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사백(斯百), 호가 식암(息庵)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대동법을 실시한 영의정 김육의 손자로 부친은 병조 판서 김좌명이고, 어머니 신씨는 오위도총부 도총관 신익성(申翊聖)의 딸이다. 그는 현종의 처사촌이자 숙종의 외종숙으로 외척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제2차 예송 논쟁 당시 서인으로서 남인 허적 등과 손잡고 우암 송시열과 문곡 김수항 등 대동법에 반대했던 산당(山黨)을 축출하는 데 앞장섰다. 이후 권력 독점을 위해 남인을 역모로 몰았다가 역풍을 맞아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서는 계기를 만들었다.
김석주는 범의 관상을 타고나 범은 산이 있어야 좋다며 생가 터에 재산루(在山樓)란 이름을 짓기까지 했다. 어린 시절 조부인 김육의 문하에서 배웠고, 우암 송시열의 문하에서 배웠다. 1662년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했고 성균관 전적, 이조 좌랑,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 홍문관 부교리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1674년 제2차 예송 논쟁 이후 수어사(守禦使), 승정원 도승지(都承旨) 등을 거쳐 병조 판서와 홍문관, 예문관 양관의 대제학(大提學)을 지냈다. 1682년(숙종 8년) 병조 판서로 있을 때 국가 재정을 줄이고 왕권 호위에 도움이 되게 하려고 금위영을 설치한 뒤 대장(大將)을 겸했다. 1682년 5월 우의정이 되었고, 호위대장(扈衛大將)을 겸직했다. 1683년 사은사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이 되었다. 1684년 9월 병으로 물러나 사망했다. 향년 50세였다.
저서에 『식암집(息庵集)』과 『해동사부(海東辭賦)』 등이 있고 고문에도 조예가 있어 『고문백선(古文百選)』을 엮었다. 김창협은 「식암집서」에서 “공의 문장은 비록 천성의 면에서는 계곡만 못하지만 인공의 면에서는 택당과 맞겨룰 만하다. 아름답고 기이하며 드넓고 맑은 운치와 언어를 구사하고 다듬는 절묘한 솜씨는 또 독보적으로 빼어나다 할 만하다.”라 적고, “소장(疏章)과 차자(箚子)는 특히나 더 정밀하고 핵실하며 공교로웠다. 사건을 지적하고 실정을 진술하여 이해를 논하고 득실을 따져 남들이 말하지 못하는 것을 곡진하게 묘사해 내니, 왕왕 폐부를 찌르면서도 옛사람의 격조를 잃지 않았다.”라고 높인 바 있다.

역자 - 정민
현재 한양대 국문과 교수다. 무궁무진한 한문학 자료를 탐사하며 살아 있는 유용한 정보를 발굴하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연암 박지원의 산문을 꼼꼼히 읽어 『비슷한 것은 가짜다』와 『고전 문장론과 연암 박지원』을, 다산 정약용이 창출한 새로운 지적 패러다임과 그 삶에 천착하여 『다산 선생 지식 경영법』, 『다산의 재발견』, 『삶을 바꾼 만남』을 펴냈다. 더불어 18세기 지식인에 관한 연구로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과 『미쳐야 미친다』 등이 있다. 또 청언소품에 관심을 가져 『마음을 비우는 지혜』, 『내가 사랑하는 삶』,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돌 위에 새긴 생각』, 『다산 어록 청상』, 『성대중 처세 어록』 『죽비소리』 등을 펴냈다. 이 밖에 옛글 속 선인들의 내면을 그린 『책 읽는 소리』, 『스승의 옥편』 등의 수필집과 한시 속 신선 세계의 환상을 분석한 『초월의 상상』, 문학과 회화 속에 표상된 새의 의미를 찾아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 조선 후기 차 문화의 모든 것을 담은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를 썼다. 아울러 한시의 아름다움을 탐구한 『한시 미학 산책』과 어린이들을 위한 한시 입문서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사계절에 담긴 한시의 시정을 정리한 『꽃들의 웃음판』을 썼다.

역자 - 이홍식
한양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사유와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 특히 박제가, 이옥, 홍길주 등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독자적인 세계를 개척한 인물들에 더 큰 애정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연구 영역을 확장하여 연행록과 통신사행록을 기반으로 동아시아 문화 교섭의 구체적 양상을 밝히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홍길주의 꿈, 상상, 그리고 문학』, 『한시로 읽는 경기』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상상의 정원』, 『호걸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등이 있다.

편자 - 안대회
현재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밀한 해석과 깊이 있는 사유를 바탕으로 옛글을 분석함으로써 선인들의 삶을 풀어내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편자 - 이종묵
현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있다. 옛사람의 운치 있는 삶을 사랑하여 우리 옛 시와 글을 읽고 그 아름다움을 분석하여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편자 - 정민
현재 한양대 국문과 교수다. 무궁무진한 한문학 자료를 탐사하며 살아 있는 유용한 정보를 발굴하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편자 - 이현일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에서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시인인 신위(申緯)를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 조교수이다.

편자 - 이홍식
현재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에는 연구 영역을 확장하여 연행록과 통신사행록을 기반으로 동아시아 문화 교섭의 구체적 양상을 밝히는 데 집중하고 있다.

편자 - 장유승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을 거쳐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조선 후기 서북 지역 문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에 재직 중이다.

<안대회ㆍ이종묵ㆍ정민의 매일 읽는 우리 옛글>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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