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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자

    이성자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 학력 명지대학교 대학원 문학 박사
    광주대학교 대학원 석사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학사
  • 경력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광주교육대학교 아동문학 교수
  • 수상 아동문학평론 동시부문 신인상
    계몽사아동문학상
    눈높이아동문학상
    광주문학상
    한정동아동문학상

2014.12.15.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이성자
나는 1949년 전남 영광군 홍농면 월암리 226번지에서 아버지 이대복과 어머니 표귀순 사이의 4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당시 경찰이던 아버지를 따라 정읍에서 1962년 동초등학교, 1965년 정읍여자중학교를 마쳤다. 원래는 미술부 활동을 했는데,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투병 생활을 시작한 아버지의 반대로 더 이상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림을 그릴 수 없었던 나는 밤을 새워가며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숙부님이 근무하시는 중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들이었는데, 주로 세계명작이었다. 그때 읽은 ≪장발장≫과 ≪소공녀≫의 감동은 오래도록 잊을 수가 없었고, 김소월 시집도 내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광수, 김동인의 소설 등도 즐겨 읽었는데, 아동문학 쪽에 더욱 흥미를 느꼈다. 아마도 그때가 내 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중요한 시기가 되었던 것 같다.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했던 할아버지는 상당히 부농이었지만 여자들이 교육받는 걸 절대 반대하는 고루한 분이셨다. 심한 반대에도 어머니는 나를 고등학교에 진학하도록 도왔는데, 그 당시 마을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여자는 나 혼자였다. 진학 후 도서관에서 책 읽는 일과 공부하는 일에만 매달렸으며 학교 백일장에서 몇 번 장원을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자 할아버지로부터 남편 잡아먹은 며느리라고 구박을 당하면서도, 어머니는 내 공부를 끝까지 뒷바라지했다. 1969년 어렵게 법성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 초등교육부설초등교원양성소 시험에 합격하여 초등교사의 길에 들어섰다. 1970년 3월에 발령을 받아 영광 홍농서초등학교·동명초등학교에서 5년 2개월 근무했다. 그때, 여자도 교육을 받으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게 된 할아버지는 그동안 내게 모질게 대했던 일들을 몹시 후회하셨다. 할아버지는 내게 사람의 바른 도리에 대해서 늘 말씀하셨고, 돌아가실 때까지 주변에 손녀 자랑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스물여섯에 고등학교 교사인 정무웅과 결혼 후 사표를 내고 남편을 따라 광주로 올라왔다. 그림 그리는 일, 글 쓰는 일을 다 잊은 채 1남 2녀 아이들을 키우며 살다가 인연이 닿아 학원을 운영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큰 아이가 6학년 때 광주서초등학교 학생회장을 하게 되면서 광주시민종합예술제 글쓰기 부문 학부모 대표로 참석하게 되었다. 백일장 제목인 ‘어머니’로 금상을 받았는데, 시어머님의 실제 이야기였다.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서 기도하는 어머님, 29세에 남편을 나라에 바친 유가족으로 살면서 주변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그 모습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 내용이었다. 어머님은 하찮아 보이는 작은 것들에도 애정을 쏟고 배려하였으며, 가족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부처님 같은 분이셨다. 매사 긍정적인 어머님의 모습은 내 삶과 문학의 바탕이 되었다. 한편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견디는 인내와 도전은 친정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 두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이 오늘의 나를 키워 낸 자양분이었다.
그 무렵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던 막내 시동생이 나이 마흔넷에 위암말기 판정을 받고 가족들 곁을 떠났다. 병원에서 걸어 나오던 중 평생을 욕심 부리며 살아 봤자 별거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 허무를 느끼기 시작하자 혈압이 최고 70, 최저 40까지 내려가는 위험한 상황이 반복됐고 급기야 응급실에 실려 가게 되었다. 그때 나는 나를 흔들어 깨우는 가족들에게 뜻밖에도 그림이 아닌 글이 쓰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문학이 바로 내 운명의 끈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운명적인 문학의 길을 찾아 YMCA 문예창작반(지도교수 전원범)을 찾게 되었고 아동문학가 서향숙, 양인숙, 안영옥, 시조시인 서연정 등과 금초문학동인을 결성하면서 문학 활동을 펼쳐나갔다. 당시 아동문학 밭의 큰 별이 되겠다는 통 큰 다짐을 하며 창작에 몰두했다.
계몽아동문학상에 당선된 걸 기회로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조태일 시인과 배봉기 동화작가를 교수로 만나게 되었다. 조태일 시인은 내 첫 동시집 ≪너도 알 거야≫의 추천사에서 “우리의 삶을 바탕으로 하여 끝 간 데 없이 펼쳐지는 풋풋한 상상력, 짜릿하면서도 시리고 포근한 꿈의 세계, 누구나 끊임없이 찾아나서 껴안고 싶어 하는 원초적인 생명력, 하찮아 보이는 작은 것들에게도 한량없이 쏟는 모성적 사랑 등이 작품마다 소박하면서도 명쾌하게 잘 드러나 있으며, <오동잎을 따서>와 같은 동시는 동화적인 내용을 완벽하게 담아 낸 동화시다”라고 했다. 내 동시 속에 동화적 상상력이 풍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부분이다.
1980년대부터 서서히 일기 시작한 동화의 열기는 1990년대에 들어서 점차 확산되는데 나도 그 대열에 합세한다. 가족, 배려 등을 주제로 한 사실동화와 판타지동화 창작에 최선을 다하며 계몽아동문학회, 광주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등 각종 문학단체에서도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그러면서 석 박사 과정을 마치고, 모교인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에 겸임교수로 서게 된다. 등단 이후 10년 동안 끊임없이 고속도로를 달리는 승용차처럼 내 문학 인생도 쉬지 않고 달린 셈이다.
나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제자라 부르지 않는다. 함께 문학을 공부하는 도반들이라 불렀으며, 그 도반들은 나를 중심으로 열심히 동시와 동화 창작에 몰두했다. 2005년 이점구를 시작으로 조경희, 심명자, 안점옥, 최유정, 김영미, 김해등 등 신춘문예와 문학상에 당선된 도반들이 40여 명에 달한다. 마흔이 훌쩍 넘어버린 나이에 시작한 문학이 내게 이토록 넘치는 기쁨을 선물할 줄은 미처 몰랐다. 반신반인이라며 내 문학 인생을 미리 점쳤던 조태일 시인의 예지가 놀랍기만 하다. 우리 집 막내는 학생들 가르치는 일보다 엄마 작품 쓰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라고 불만을 터트린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가르치는 일과 글 쓰는 일 중에 하나만 택하라고 하면 가르치는 일을 택하겠다고 말한다.
내게 바람이 있다면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 더 많은 도반들과 열심히 문학 활동을 하는 일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어린이들 가슴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줄 좋은 동시와 동화를 창작하는 일이다. 더 욕심을 부려 본다면 고향을 배경으로 한 장편동화를 한 편 쓰고 싶다. 몇 년 전부터 자료 조사는 하고 있지만 언제쯤 작업이 끝나서 세상에 얼굴을 내밀게 될지는 나도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중이다.

약력과 작품 및 수상 연보

1992년 광주·전남아동문학인회 제1회 ‘어머니가 쓴 동시 동화 공모전’에서 동시 <목련꽃>으로 최고상 수상. <시계와 밤과 아이> 외 세 편으로 아동문학평론 동시 부문 신인상 당선.
1994년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입학. <빈 가지마다> 외 열두 편으로 제13회 계몽사 아동문학상 동시 부문 당선.
1996년 <오동잎을 따서>로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 당선. 2월 13일 KBS <생방송 토요마당> ‘신춘문예당선 늦깎이 이성자 씨의 동심’ 방영.
1998년 광주·전남문단의 질적 향상에 기여한 공로로 광주·전남 아동문학상 수상.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조태일 예술대학장의 권유로 대학원 진학과 박사 과정을 결심. 동시집 ≪너도 알 거야≫(창비) 출간. ≪너도 알 거야≫로 광주문학상 수상.
1999년 동시집 ≪너도 알 거야≫ 초등학교 필독 권장 도서 선정. <작은아버지>로 전주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
1999년 광주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입학.
2000년 동시 <친구와 싸운 날> 외 여섯 편으로 제32회 한정동아동문학상 수상.
2001년 광주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석사 논문 <신현득·전원범 동시의 은유형태 연구>). <엄마의 거울>로 제3회 어린이문화신인상 동화 부문 당선. 명지대학교 일반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입학. <벚나무> 외 세 편으로 제9회 눈높이아동문학상 동화부문 당선. 3월 ≪굿뉴스피플≫ ‘화제의 인물 아동문학가 이성자 문단활동’ 게재.
2002년 단편동화집 ≪내 친구 용환이 삼촌≫(대교) 출간. ≪내 친구 용환이 삼촌≫으로 한국문화예술진흥회 창작지원 수상.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출강.
2004년 장편동화집 ≪형이라고 부를 자신 있니?≫(대교출판) 출간. 명지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박사논문 <한국현대판타지동화 연구−마해송·김요섭·김은숙 동화를 중심으로>).
2005년 동시집 ≪너도 알 거야≫ 서울특별시교육청 추천 필독도서 선정.
2006년 동시집 ≪키다리가 되었다가 난쟁이가 되었다가≫(문원), 그림책 ≪함께 놀고 싶어요≫(한국헤밍웨이) 출간. ≪키다리가 되었다가 난쟁이가 되었다가≫로 제5회 우리나라 좋은동시문학상 수상. 수필부문 대한문학상 수상. 2월 8일 <TV 남도문화> ‘아동문학가 이성자’ 편 방영.
2007년 동시 <목련꽃> 외 일곱 편으로 제24회 한국불교아동문학상 수상. 그림책 ≪넌 멋쟁이야≫(한국비젼북), 장편동화집 ≪두레실 할아버지의 소원≫(해피북스), 단편동화집 ≪쉿! 특급비밀이에요≫(은하수미디어) 출간.
2008년 장편동화집 ≪물의 여행−5학년 과학동화≫(효리원) 출간. 단편동화 <족두리 할머니> 광주문인협회 우수작품상 수상
2009년 동시집 ≪입안이 근질근질≫(청개구리), 단편동화집 ≪뭐가 다른데?≫(문원), 장편동화집 ≪최고는 내 안에 있어≫(은하수미디어), 장편동화집 ≪아빠도 시간이 필요해≫(와이즈아이), ≪뭐가 다른데?≫로 제19회 방정환문학상 수상.
2010년 장편동화집 ≪못 말리는 까미, 황마훔≫(중앙) 출간.
2011년 장편동화집 ≪딱 한 가지 소원≫(채우리), 장편동화집 ≪마법을 걸고 싶은 날≫(형설아이), 그림책 ≪황금가면을 찾아서≫(한국톨스토이) 출간. ≪입 안이 근질근질≫(청개구리)에 동시 <송두리째 다 내놓았어> 초등학교국정교과서 6-1 국어 읽기에 수록. 장편동화집 ≪행복한 우울바이러스≫(글고운) 출간.
2012년 장편동화 ≪딱 한 가지 소원≫으로 제8회 국제펜광주문학상 수상.

해설 - 윤삼현
1953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출생했다. 주로 광주에서 성장했으며 목포교육대학을 거쳐 방송통신대 중어중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전남대 교육대학원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했고 조선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문학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문학적 연구 성과물로 박목월의 유고동시 24편을 대상으로 한 <박목월 동시세계 연구>, 윤동주의 동시를 대상으로 한 <윤동주 동심세계 연구>, 윤극영의 동요를 대상으로 한 <일제강점기 동요연구> 등이 있다. 그밖에 논문으로 정지용기념사업회 초청 발제강연 자료인 <정지용 동시 연구>, 박사 논문인 <김수영 시 연구> 등이 있다.
각종 문예지 등에 ‘현대 동시의 흐름’, ‘아동문학 작가작품론’, ‘계간평’ 등을 집필했다. 또 이성자 동화, 김옥애 동화, 안영옥 동화, 배병수 동화, 최상옥 동화 등을 분석하여 자료화했다. 시조 장르에도 관심을 가져 ≪월간문학≫, ≪현대시조≫, ≪전남문학≫지 등에 시조평론을 발표하기도 했다.
평론 외에 동시, 동화, 시조, 수필 작품도 창작해 동시집 ≪유채꽃 풍경≫, ≪겨울새≫, ≪엄마휘파람새≫, 동화집 ≪눈사람과 사형수≫, ≪붕붕이의 여행≫, 시조집 ≪뻐꾹소리를 따라가다≫, 수필집 ≪백두산 가는 길≫, 연구서 ≪아동문학 창작론≫ 등을 발간했다. 순천대 겸임교수를 거쳐 현재 광주교육대학교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으며 문산초등학교 수석교사로 근무 중이다.

<이성자 동화선집> 저자 소개

이성자 작품 총 3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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