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염상섭의 장편 소설. 전승주 교수가 그간의 각종 판본을 대조해 오류를 수정하고 정본을 확립했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한 지식인 가정 삼대의 모순을 통해 묘사한 사실주의의 대표작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본 작품이지만 제대로 읽어본 이는 많지 않고, 완전히 이해한 사람은 더욱 드물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100년 전의 식민지 경성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서울은 말도, 사람도, 지리도, 문화도, 모든 것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100년 전의 경성과 그곳에 살았던 덕기와 병화와 경애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김희경 박사의 방대한 곁텍스트와 김종욱 교수의 해설을 더한 완전판 ≪삼대≫이다. 연재 시 게재되었던 안석주 화백의 삽화를 함께 수록했다.
오리지널의 오리지널, “완전 복원 원고”
≪삼대≫를 읽은 사람은 많지만 진짜 ≪삼대≫를 읽은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진짜 ≪삼대≫가 이제야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 동안 우리 문학 독자들은 작가의 원 의도에서 멀어진 틀리거나 모자란 텍스트를 읽어 왔다. 그러던 것이 해방이 되면서 젊은 주인공들이 그리던 사회주의 색채가 대폭 축소되는 방향으로 개작이 된다. 반공주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염상섭은 ≪삼대≫ 연재가 끝나자마자 검열 당국에 출판허가를 신청하지만 거절당한다. 해방 후 반공 이데올로기가 더욱 강화되면서 원전 그대로의 단행본 출간은 더욱 요원해졌다. 그는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 내용을 대폭 수정해 단행본을 출간한다. 그러면서 당시 사회를 비판하던 내용은 순화되고 가족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이 개작이 비록 염상섭 본인에 의해 이루어지긴 했으나 이를 원본으로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작품의 미비한 점을 보충한다는 의미보다는 분단으로 인한 사회적, 정치적 상황에 인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도 그간 개작 과정을 연구하고 여러 판본들의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필요를 느껴 왔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 이번에 전승주 교수가 신문 연재본을 원전으로 삼아 정본을 확정했다. 정본 확정은 연구자들에게는 작품 분석을 위한 기초가 되므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무엇보다 독자에게는 오류 없는 작가의 오리지널 원고를 만날 수 있게 하므로 더없이 중요한 일이다.
전승주 교수는 초판본인 신문 연재본을 기본으로 한 책 3종과 개작된 단행본을 기본으로 한 책 3종을 비교해 총 5000여 곳의 서로 다른 점을 찾아냈다. 이 5000군데의 차이는 개작으로 인한 변화도 있지만 출간 과정에서 일어난 상당한 오자와 오식 등의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 오류들에는 염상섭이 다음날 정정기사를 통해 바로잡겠다고 직접 밝힌 것을 정정하지 않은 것도 꽤 있다. 예를 들면 “그것은 너무나 ‘극단’이오”에서 ‘극단’을 ‘독단’으로 정정한다고 했는데 이후 출간된 모든 판본이 이를 고치지 않은 채 ‘극단’으로 표기하고 있다. 또 “더구나 자네 ‘아버니’께서는”의 ‘아버니’를 ‘아버지’, 심지어는 ‘어머니’로 바꾸어 놓은 경우도 있다. ‘아버니’는 ‘아버지’라는 뜻의 그 시대 말이다. 이전의 책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오류들을 모두 바로잡은 완전 복원 원고가 전승주 교수의 정본이다.
그동안 ≪삼대≫를 읽어 온 독자들은 완전하지 않은 텍스트를 진짜로 알고 있었다. 이제 진짜 ≪삼대≫를 만나야 한다. ‘지만지 ≪삼대≫’는 전승주 교수가 이룩한 정본으로 출간한 책이므로 진짜 ≪삼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회화로 보는 문학
≪삼대≫는 1931년 1월 1일부터 9월 17일까지 9개월 동안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다. 신문 연재소설이 대부분 그렇듯 ≪삼대≫에도 삽화가 함께 실렸다. 삽화가는 석영 안석주다. 안석주는 당시 신문 연재소설의 삽화를 도맡아 그렸던 화가이자, ≪백조≫ 동인으로 활동한 작가이자, ‘토월회’에서 활동한 연극배우이자, 한국 최초의 발성 영화 <심청전>을 연출한 영화감독이기도 했다. 이 다재다능한 이력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면, 그가 그린 ≪삼대≫의 삽화가 소설가의 시각, 화가의 시각, 배우의 시각, 영화감독의 시각을 고루 갖출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삼대≫의 삽화는 안석주가 해석한 소설의 이미지로서, 혹은 연극으로서, 혹은 영화로서의 또 다른 ≪삼대≫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회화로서의 가치는 가히 ≪삼대≫의 문학성에 버금간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염상섭의 ≪삼대≫를 읽은 사람은 많지만 안석주의 ≪삼대≫를 읽은 사람은 당시 신문 독자들 외에는 없다. 90여 년의 세월을 지나 안석주의 ≪삼대≫가 ‘지만지 ≪삼대≫’를 통해 회화로, 무대 위 연극으로, 영화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지만지 ≪삼대≫’의 표지화를 그린 류장복 화백은 안석주의 삽화를 보고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류화백은 그의 단순 조명의 명암 대비, 잉크의 두께가 느껴지는 획의 활기, 속도감 있는 필촉, 드로잉의 거친 흔적들에서 보이는 회화성에 감탄하며 그 모든 것이 영화적이라고 말한다.
“171 컷의 삽화를 연속해서 보면 무성영화처럼 흐름이 잡힌다. 영상 언어로 번역된 것 같은 장면이 줄곧 반복된다. 드라마틱한 영화의 미장센을 방불케 하는 역동적인 구도는 ≪삼대≫의 삽화를 관통하고 있다. 삽화에서 안석주는 마치 영화를 찍듯이 돌담길에 등장인물을 밀어 넣고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기라도 한 것처럼 장면을 연출했다. 줌인과 줌아웃의 구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프레임의 그물망을 던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이처럼 안석주의 회화는 지극히 영화적이고 삽화의 앵글들은 영화 컷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1931년에 그려진 이 삽화들은 또한 당시의 문화와 생활상에 대한 훌륭한 고증 자료이기도 하다. 인물의 의복과 스타일, 그들을 둘러싼 사물들, 그리고 풍경과 장소들은 소설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초판본의 이 삽화들은 독자로 하여금 소설을 동영상으로 즐길 수 있는 효과를 줄 것이다.
‘지만지 ≪삼대≫’에는 총 171개의 삽화가 수록되었다. 삽화는 당시 신문의 낮은 해상도와 세월의 흔적 탓에 거칠다. 당시 느낌을 살리고자 보정을 최소화했다.
1920년대 경성의 로망
≪삼대≫의 무대가 된 1920년대의 경성은 2020년의 서울이 아니다. 독자들이 경성을 서울로 생각하고 작품을 읽는 착각을 바로잡기 위해 ≪삼대≫를 시간적, 공간적으로 설명하는 텍스트가 필요하다. 그것이 ‘지만지 ≪삼대≫’가 착안한 “곁텍스트”다.
고전 작품들과 현대 독자들 사이에는 시공간과 문화의 넓고 깊은 골이 생긴다. 흔히 고전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은 여기서 기인한다. 한국 고전 출판의 관행인 간략한 문학적 해설만으로는 이 골을 메울 수가 없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그것이 ‘지만지 ≪삼대≫’에 수록된 “곁텍스트”다.
≪삼대≫는 식민지로 전락한 1920년대 경성 시민들의 삶의 풍경과 기억을 품고 있는 작품이다. 당시 엄청난 변화 속에 내던져진 경성 시민들의 일상과 감정이 붓으로 그린 듯이 선명하게 묘사되고 있다. 그래서 ≪삼대≫를 한국 리얼리즘 소설의 대표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삼대≫의 리얼리즘적 진면목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지만지 ≪삼대≫’는 소설 출판의 관행을 깨고 파격적으로 풍부한 문헌적 자료와 이미지 자료를 더했다. 작품에도, 작품 뒤에 수록된 곁텍스트에도 자료들을 과감히 배치했다.
≪삼대≫ 전문 연구자인 김희경 박사가 작성한 255쪽에 달하는 곁텍스트는 ≪삼대≫ 이해에 디딤돌이 될 것이다. 오직 ‘지만지 ≪삼대≫’에서만 볼 수 있는 깊이 있는 작품 설명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미지 자료들이다. 이 이미지들은 ≪삼대≫에 나오는 사물과 공간과 생활에 관한 것들이다. 이야말로 ≪삼대≫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공간적 자료다. 수십여 편의 이미지는 90년 전 식민지 수도 경성의 풍경과 생활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작품의 대목들 저마다에 이미지 자료들을 겹쳐 읽다 보면 독자들은 그 시절 경성의 풍경과 문화지리지를 손에 잡을 듯이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청계천을 중심으로 조선인은 빈한한 북촌, 일본인은 부유한 남촌에 모여 살게 되는데, 그 속에서 살아간 ≪삼대≫ 인물들의 행적을 세밀하게 재현하기 위해 1920년대 경성의 지도를 수록했다. ‘지만지 ≪삼대≫’에는 16개의 경성 부분 지도가 실려 있고 지도 위에는 정치적 지리적 공간 지표를 표시했다.
2020년의 광화문은 남산을 바라보지만 1920년대 경성의 광화문은 안국동을 바라본다. 일제가 조선총독부 청사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광화문이 청사 앞을 가린다는 이유로 동문인 건춘문으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비롯해 ‘지만지 ≪삼대≫’의 곁텍스트에 들어 있는 많은 시간적, 공간적 증거 자료들은 1920년대 경성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똑바로 알게 한다. 독자들은 그 시절로 타임 리프해 경성의 한복판에 서 있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지만지 ≪삼대≫’ 곁텍스트는 독자들을 1920년대 경성의 로망 속으로 데려가는 타임머신이다.
문학평론가 김종욱 교수(서울대)는 이 책 곁텍스트에 대해 이렇게 의미를 부여한다. “‘지만지 ≪삼대≫’ 는 90년 전의 경성과 그 안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정밀하게 복원했다. 이로써 우리 민족의 엄혹했던 지난 세월과 삶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한국문학의 힘을 더욱 실감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박영률 지만지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지만지 ≪삼대≫’는 “지난 90년의 세월을 통과하면서 잃어버린 우리 문학의 가독성을 회복하게 할 것이다. 아울러 스마트폰 세대인 21세기의 젊은 세대로 하여금 문학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이해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 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 역할을 이 책에 실린 곁텍스트가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