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하이네, 사토 하루오
하루오는 다이쇼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소설가·평론가·번역가로서 일본 근대 문학가 중에서도 손꼽히는 문인이다.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으나 그중에서도 시는 그의 문학의 본질을 이루는 핵심이었다.
그의 시는 일본의 전통적인 시어와 서구적인 기법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루오가 주로 활동했던 1910년대에서 1920년대 초반 일본 문학계는 메이지 말기 주류를 이루던 자연주의 문학이 퇴조하고 서구를 수용하여 낭만주의·사실주의 그리고 모더니즘이 등장하고 있었다. 이런 흐름 속에 일본 시단에서는 이미 구어 자유시가 확립되고 있었다. 그러나 하루오는 주류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일본의 고전적인 시 정신과 전통적 아름다움을 계승하려 했다. 정갈한 미감과 리듬을 가지고 있는 문어 정형시를 통해 일본 문학의 전통을 잇고자 한 것이다. 그는 첫 시집 《순정시집》에서 정형화된 구조 안에 고도의 상징성과 함축성을 담아냄으로써 자신만의 시적 정체성을 선언한다. 이 시집으로 우수에 찬 감정을 정교한 언어로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일본의 하이네(Heine)라 존칭되었다.
하루오의 시 세계를 한 권에 담다
1부 〈초기 시〉는 상경 이후 1911년부터 《스바루》나 《미타문학》 등에 투고하여 발표한 작품들을 모았다. 시기적으로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으로써 요사노 뎃칸과 이쿠타 조코에게 사사받던 때다. 특히 나가이 가후에게 경도되어 있던 시절로 일견 정돈되지 않은 듯하면서도 세속을 비웃는 날카로운 표현 방식과 재기 넘치는 운율이 돋보인다. 시인이 60세가 되던 해에 직접 골라 간행한《사토 하루오 전 시집》(1952)을 원전으로 삼아 번역했다. 이 책으로 하루오는 제4회 요미우리문학상(読賣文學賞)을 수상했다.
2부의 《순정시집》(1921)은 유년 시절부터 초기의 습작 시들을 포함하여 15년에 걸쳐 쓴 시들을 모아 펴낸 시집이다. 하루오가 이 시집을 펴낸 1921년은 일본 근대시의 흐름 속에 낭만파가 퇴조를 이루던 시기였다. 그러나 하루오는 시단의 흐름을 거스르면서 문어 정형시를 발표하여 자신만의 시 세계를 지키고자 했다.
3부의 《나의 1922년》(1923)은 당시 시대적 변화와 하루오의 개인적 경험을 체화한 중요한 시집으로 평가받는다. 청년 하루오가 시인으로 성장하며 겪은 갈등과 시대의 혼란 그리고 존재에 대한 성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4부의 《사토 하루오 시집》(1926) 서문에서 하루오는 “시를 쓰는 일이 단순한 기예나 소일거리였다면 목숨을 바쳐 시를 써 오지 않았을 것”이라 고백한다. 이를 비추듯 이 시집에는 복잡한 감정과 존재의 본질에 대한 투시가 밀도 있게 전개된다.
5부의 《마녀》(1931)는 하루오가 야마와키 유키라는 여성과 만난 것을 계기로 보름 만에 완성한 시집이다. 마녀로 불리는 한 여인과 그에게 매혹되어 비뚤어진 길을 걷는 한 남자의 천국과 지옥의 경계에 선 관계가 그려진다.
6부의 《한담반일》(1934)은 본래 수필집이나 몇 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일상 속 사소한 순간들이 심도 있게 형상화된 시들로, 독자로 하여금 현실과 과거를 넘나들며 일상 속 순간들을 철학적 성찰로 확장하게 한다.
7부의 《작은 정원의 노래》(1936)는 150부 한정 판매한 시집으로서 특이하게도 시 〈작은 정원의 노래〉 한 편만을 싣고 있다. 이 시는 자연의 변화를 통해 인간의 무상함을 묘사하며 존재의 덧없음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다.
8부의 《참빗살나무 선집》(1948)은 전쟁을 피해 나가노의 깊은 산속에서 거주하던 중 간행한 시문집이다. 섬세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서정적인 시들로 일본의 아름다움과 현대적인 감각을 조화롭게 담아내고 있다.
마지막 《서정신집》(1949)은 하루오가 만년에 간행한 시집이다. 이 책〈서시〉에서 그는 “자신의 시가 물결처럼 자연스럽게 흐르기를 원하며 길가에 핀 작은 풀꽃처럼 소박하고 일상적인 아름다움이기를 추구한다”라고 밝혔다.
“밤이 깊도록 나 홀로 / 내 생명을 갉아먹으며 까닭 없이 시와 놀고”
60세 때 하루오는《사토 하루오 전 시집》을 발표하며, 50년 가까이 시를 썼지만 자신의 재능은 보잘것없는 것이었으며 시를 창작하는 것은 본질적인 고통과 삶을 살아 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는 그의 시에 대해 “그의 시정(詩情)은 무엇보다 섬세하고 아름다우며(纖婉), 어렴풋하고 신비로운 정취가 거듭된다”라고 말하며 “사토 하루오는 무엇보다 먼저 시인”이라며 하루오에 대해 존엄을 표했다. 이쿠다 조코(生田長江)는 또 《나의 1922년》의 서문에서 “본성에 맞지 않는 모든 것을 벗어 버리고 모든 것을 물리쳤다. 스스로 실을 짜고, 자르고, 바느질하여 그 자신다운 비단을 걸치고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라고 상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