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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 시인의 사유 깃든 로르카 시 여행
작품 정보
로르카 시의 신비로운 힘, 두엔데
코르도바.
멀고 외로운.
검은 조랑말, 큰 달,
그리고 내 안낭(鞍囊)에 올리브.
비록 나 길을 알아도
나는 코르도바에 가지 못하리.
평원 속으로, 바람 속으로,
검은 조랑말, 붉은 달.
죽음이 나를 보고 있네
코르도바의 탑들에서.
아! 멀기도 하여라!
아! 내 장한 조랑말!
아! 그 죽음이 나를 기다리리
내 코르도바에 가기 전에.
코르도바.
멀고 외로운.
- 「기수의 노래」 전문
로르카의 시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두엔데(duende)이다. 두엔데는 로르카가 스페인 고유의 신비로운 힘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위의 「기수의 노래」는 정현종 시인이 로르카의 시 중에서 두엔데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으로 뽑은 대표적인 시이다. 음악, 문학, 춤, 미술 같은 예술은 물론, 그들에게 또 하나의 예술인 투우에서도 두엔데는 신비로운 힘을 불어 넣는다. 두엔데는 피 속에 녹아 있는 원초적인 힘이고 주술이며 시의 영감이다. 또한 천사와 뮤즈의 이미지와는 다른 어둠이며 검은 물, 즉 죽음의 세계이다. 정현종 시인은 두엔데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순간순간 죽음과 더불어 사는 영혼에게 생기는, 결코 길들지 않는 나머지 항상 날것인 채 있으면서 예술 창조에 새로운 국면을 여는 힘이며, 예술가의 영혼 속에서 운명과도 같이 강력히 작용”하는 신비한 힘이다. 로르카의 작품은 몇 편을 제외하면 모두 이 두엔데의 작용으로 탄생했다는 것이다.
새벽꽃이 벌써
자기를
열었다
(기억하는가
오후의 깊이를?)
달의 감송(甘松)이 내뿜는다
그 찬 냄새를
(기억하는가
팔월의 긴 눈짓을?)
-「메아리」전문
‘새벽’에 핀 ‘꽃’이 오후로 메아리쳐 ‘오후의 깊이’를 감지하게 하고, ‘달의 감송’이 ‘팔월의 긴 눈짓’에까지 미치는 메아리의 파동을 감지한 시인은 시간들과 공간들의 놀라운 공명과 연속성에 대해 깨닫는다. 메아리가 공명할 때 시간과 공간의 우주적 개화를 실현한다는 정현종 시인의 깨달음은 로르카의 시보다 더 시적이다. 모든 꽃은 바로 시간의 깊이에 다름 아니다. 메아리는 우리 안팎에 있는 사물 사이의 조응이며 화창이다. 로르카의 시에서 보듯이 여기와 저기, 이것과 저것 사이의 거리와 심연을 순식간에 뛰어넘는다. 또한 시간이 직선적으로 움직인다는 생각에 익숙한 우리의 시차를 뒤흔든다.
시를 목소리라고 믿은 로르카의 시는 주술처럼 강력한 힘을 가진다. 그의 시에서 보이는 뛰어난 리듬은 가슴속을 진동시키기에 충분하며 그 진동 속에서 세계는 무한한 것이 되고 만물은 내통한다. 우리는 좋은 시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감각이 열리고 평범한 사물이 놀라운 감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정현종 시인의 눈을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된다. 정현종 시인이 로르카의 시를 보며 감탄할 때마다 역으로 정현종 시인이 얼마나 감각적인 시인인가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바로 이 부분이 『정현종 시인의 사유 깃든 로르카 시 여행』을 통해 보여 주는 풍요로운 공명의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