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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 열정과 자존의 오백년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정치/사회

고려사 - 열정과 자존의 오백년

소장종이책 정가18,000
전자책 정가50%9,000
판매가9,000

고려사 - 열정과 자존의 오백년작품 소개

<고려사 - 열정과 자존의 오백년> 불굴의 민족혼을 떨쳐 일으키다

저자는 고려와 원 제국의 관계에 주목한다. 약소국 고려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원 제국의 강대한 무력 앞에서 무릎 꿇지 않고 오랜 항쟁과 타협, 조정 과정을 거쳐 백여 년 동안의 평화를 구가했다는 것은 실로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다. 오늘날 초강대국 미국의 그늘 아래 안주하면서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상황은 원 제국과 고려의 밀월 관계가 가지고 있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릇 난세에 평화를 향유하려면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상대적으로 작은 희생을 침소봉대하여 더 큰 가치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역사는 승자만의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어받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민족은 동서냉전의 여파로 분단된 남과 북의 불화, 북쪽의 교조주의와 일방주의, 남쪽의 보수와 진보의 대결, 지역 간 갈등을 비롯한 각종 내홍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참담한 현실 속에서 고려인들이 보여주었던 민족 통합 정책과 자주 정신, 민활한 외교정책, 외적에 대한 끈질긴 투쟁의지 등은 우리들에게 최상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우리 민족 최초의 통일국가 고려는 잦은 외세의 침략에 굴복하지 않고 끈질긴 항쟁을 통해 국체를 보존했던 열정과 자존의 제국이었다. 하지만 그 실체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관련 사료가 드물거니와 그나마 남아있는 것들은 후대의 기록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다양한 사료의 발굴과 연구를 통해 저간의 오류가 많이 시정되었다. 이상각의 『고려사』는 기존의 자료에 연구자들의 새로운 해석을 가미한 것으로 역동적인 고려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저작이다.


고려의 건국과 국가 체제의 정비

병산전투는 그동안 후백제에 밀리던 고려가 통일전쟁의 주도권을 되찾은 계기가 되었다. 후백제군이 물러나자 태조는 김선필의 주선으로 서라벌에 가서 신라의 경순왕과 신하들을 위로했다. 그와 같은 왕건의 신라에 대한 배려는 왕족들은 물론이고 그동안 고려에 적대적이었던 호족들까지 감동시켰다. 그리하여 궁예의 축출 이후 태조에 반기를 들었던 강릉의 김순식, 의성의 홍술, 포천의 성달 등이 고려에 귀순하고 울산과 주변 110여 성까지 항복해 왔다.(p.44)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신라가 점점 몰락의 길을 걸었다. 신라의 영향력이 축소되자 각지에서는 새로운 세력들이 등장했고 마침내 고려, 후백제, 신라로 대표되는 후삼국 시대가 정립되었다. 당시 신라는 이미 주도권을 상실한 상태였고, 후백제와 고려는 패권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던 상황이었다.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시킴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삼한일통을 이뤘다. 이는 단순히 무력에만 의지한 결과가 아니었다. 왕건이 통합과 안정을 희구하는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읽어냈기 때문이다. 저자는 태조 왕건에 관련된 설화를 비롯하여 혼인정책, 사성정책 등 다양한 사실을 통해 고려를 건국한 왕건에 주목한다.
연합체적인 성격으로 시작한 고려의 초기 과제는 호족들을 통합하여 중앙집권체제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광종대를 거쳐 성종대에 이르면서 고려의 정치체제는 비로소 안정되었다. 그리고 실리외교를 추구함으로써 불필요한 외교적 마찰은 가급적 피하였다.

성종이 고려의 체제 정비와 문화개혁을 서두르고 있는 동안 요가 발해를 멸망시키고 동아시아의 최강국으로 부상했다. 985년 요가 여진을 정벌하고 발해의 후신인 정안국까지 점령하자 북송은 사신 한국화를 고려에 보내 요를 양면에서 협공하자고 제안했다. 요의 직접적인 위협에 직면하고 있던 북송은 전쟁 중에 노획한 포로나 재화, 병기 등을 모두 고려에게 넘겨주겠다고 유혹했지만 성종은 차일피일 시간을 끌면서 출병하지 않았다.(p.107)

그 무렵 요와 고려는 뜨뜻미지근한 형식적 사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고려의 국력이 비약적으로 강화된 사실을 알게 된 요는 더 이상 침략 의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문종은 요가 강제 점유하고 있는 압록강 동쪽 영토를 되찾고자 했다.
당시 요에서는 흥종 사망 이후 도종 야율홍기(耶律洪基)가 즉위하면서 황실의 내분이 벌어져 문종의 요구에 즉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문종은 새로운 황제의 즉위축하사절단에 항의문을 함께 보내는 등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외교적 압박을 가했다. 1057년에는 중서성을 통해 궁구문 바깥에 있는 우정을 없애고 송령 동북지대에 토지 개간사업을 하는 자들과 이미 설치한 암자들을 철폐하라고 요구했다. 이와 같은 문종의 강수는 요와 일전을 겨루어도 꿀릴 것이 없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문화강국 북송에 대하여 문종은 매우 친밀하게 대했다. 요의 압력으로 인해 양국은 오래전 국교가 단절된 상태였지만 문종은 북송 상인들의 국내 출입을 제한하지 않음으로써 선진문물을 여과 없이 받아들였다. 그 무렵 왕안석의 신법을 통해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북송에서는 매년 주조하는 동전과 철전이 600만 관을 넘었고 남양, 인도양, 아프리카 동해안의 등지에서도 사용되었다.(p.164∼165)


열정과 자존의 불꽃이 지다

요와 금이 등장하자 동아시아의 정세는 급변했다. 이에 고려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군사력을 강화했고 그들의 발전된 문화를 수용하는 등 민첩하면서도 합리적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갈등의 씨앗이 잉태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고려는 초기에 문벌귀족사회를 형성했고 권력에서 배제된 무신들은 홀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갈수록 넘쳐나는 무신들의 불만은 결국 무신정변으로 표출되었고 그 후 100여 년동안 무신집권체제가 유지되었다. 이로 인해 전국 각지에서는 민란이 끊임없이 일어났으나 민중의 사회의식은 성장해 나갔다.

만적은 보잘것없는 벼슬아치였던 주인 최충헌이 정변을 통해 당대의 최고 권력자가 된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그리하여 자신도 비록 천한 신분이지만 거사에 한번 성공하면 권좌에 오를 수 있다는 망상을 품게 되었다.
“정중부와 김보당 이래 고관 중에 천출이 한둘이 아니다. 왕후장상이 어찌 씨가 따로 있겠는가. 때가 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p.272)

본래 고려는 사족과 서인을 구별하는 사서제(士庶制)와 양인과 천민을 구별하는 양천제(良賤制)를 두 축으로 유학자 중심의 귀족사회를 구현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신정권시대와 원 간섭기를 거치면서 평민과 노비의 신분 상승에 따라 사서제 기능이 상실되었고, 양천제도 원의 영향으로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신돈의 노비개혁정책은 시대의 흐름과 맞아떨어졌지만 수백 년 동안 내려온 제도의 벽과 수구세력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p.448)

원의 영향력에서 점차 벗어나기 시작한 고려는 과감한 개혁정치를 시도한다. 특히 공민왕대에 이르러 괄목할만한 개혁이 이루어졌고 더불어 사회체제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정방의 폐지나 토지, 노비에 관한 개혁정책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고려의 역사는 이성계의 등장과 함께 종말을 고한다. 당시 이성계는 요동 정벌 당시 4불가론을 내세우며 정벌의 부당성을 설파했다.

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은 옳지 않다.
둘째, 여름에 군사를 일으킴은 옳지 않다.
셋째, 왜구들에게 빈틈을 보이게 된다.
넷째, 장마철이라 활에 입힌 아교가 풀어지고 전염병이 번질 우려가 있다.(p.478)

결국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을 단행했고 쿠데타는 성공한다. 위화도 회군 이후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와 조민수 등 군부 세력은 우왕을 폐위시키고 창왕을 보위에 올렸다. 개혁파의 독주에 제동을 건 이색, 정몽주 등은 고려의 국체를 보존하려 했으나 끝내 실패했다. 정몽주의 죽음과 함께 반 이성계파의 모든 저항은 끝났고 고려도 함께 멸망했다.


출판사 서평

<본문 중에서>

고려는 건국 이후 삼한을 일통했다는 긍지를 바탕으로 제국 체제를 지향했다. 하지만 통일 이후에는 후당, 후진, 송, 요, 금 등 대륙의 실세들과 조공과 책봉 관계를 통해 사대자소(事大字小)라는 전통적인 외교 관례를 수용함으로써 중원 국가들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보장받았다. 고려는 또 중앙과 지방간에 유기적인 연대를 통해 다양한 종교와 사상을 수용함으로써 민족의 내부 통합을 일궈냈다. 정치적으로는 중앙의 외척과 문벌세력이 등장해 위세를 떨쳤지만 향리 등 지방 세력을 기반으로 하는 사대부 집단도 동시에 형성되어 균형을 맞추었다. 사회적으로는 국적과 종족을 가리지 않고 관리로 임용했던 개방성, 하층민의 활발한 이동에서 비롯된 역동성, 불교·유교·도교·풍수지리·도참사상 등 여러 사상을 공존시킨 다양성을 가지고 있었다.


저자 프로필


저자 소개

이상각

저자 이상각은 충남 태안 출생. 1991년 『시와 산문』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저서 및 편·역서로는 『인간관계를 열어주는 108가지 따뜻한 이야기』『36계 심리학』『중용의 성공학』『생각이 사람을 바꾼다』『화술 123의 법칙』『1910년, 그들이 왔다』 등이 있다. 최근 정사를 바탕으로 한국사의 재해석을 시도하고 있는 그는 역동적인 개혁군주 정조를 전면적으로 재구성한 『이산 정조대왕』, 세종의 업적과 그 이면에 감춰진 인간적인 내면을 다각도로 분석한 『이도 세종대왕』, 불행했던 근대의 한가운데에서 대한제국을 세웠던 고종의 원대한 포부를 담은 『이경 고종황제』, 분열과 절망 속에서도 민족의 뿌리를 지켜낸 역동적인 조선의 역사를 복원한 『조선왕조실록』을 썼다.

목차

머리글

제1장 민족 통합의 새 아침을 열다
-고려의 건국과 국가 체제의 정비

제1대 태조
보육 설화
작제건과 용녀 설화
고승 도선 설화
고려 기원설화에 대한 이제현의 비판
개국 이전
후삼국 시대의 개막
왕건의 등장
궁예의 독주와 태봉의 멸망
개국과 통일
관제의 정비와 북방 정책
변화하는 국제정세
힘겨운 통일 전쟁
대야성 전투
공산 전투
병산 전투
임진 해전
운주 전투
후백제의 내분
최후의 통일 전쟁 일선 전투
통일 이후
거란과의 불화
영웅의 최후
태조의 가족
토성분정과 본관제
지방행정제도의 개편
호족들에 대한 회유와 견제
사심관제도|기인제도
불교 진흥 정책
팔관회|연등회
태조의 유훈, 훈요십조
훈요십조 위조 논란
태조 시대의 주요 인물
고려의 건국을 예언한 도선

제2대 혜종
민활한 외교정책 수행
왕권 분쟁과 혜종의 고립
그날 이후
혜종의 가족

제3대 정종
무일의 시대
서경 천도 계획과 광군 창설
죽음의 징조
정종의 가족

제4대 광종
평화 시대의 개막
노비안검법
과거 제도
공포 시대의 도래
신세대와 귀화인들의 약진
균여의 불교 통합
평주 세력 척결
정수의 균여 고발사건
고독한 독재자의 최후
광종의 가족

제5대 경종
보복 정치의 폐해
전시과
짧은 경종의 치세
경종의 가족
고려 초기 정국의 타파책 근친혼

제2장 불굴의 민족혼을 떨쳐 일으키다
-요의 침공과 원교근공의 삼각 외교

제6대 성종
최승로의 시무이십팔조
중앙관제의 확립과 지방행정제도의 개편
유학의 진흥
요의 1차 침공과 강동 6주 획득
요, 송, 고려의 삼각 외교
성종의 가족
성종시대의 주요 인물
올바른 신하 상 정립한 김심언|냉철한 외교 전략가 서희

제7대 목종
태후의 섭정 시대
김치양의 득세
대량원군 왕순의 반격
강조의 변심과 목종의 최후
거대불상의 출현

제8대 현종
군현제의 확립과 고려의 안정
요의2차 침공
전후복구사업과 무관들의 반발
요의 3차 침공과 강감찬의 귀주대첩
평화시대의 도래
현종의 가족
군현제도의 확립
군사제도의 확립
현종 시대의 주요 인물
귀주대첩의 노익장, 강감찬|현종의 경호대장 지채문

제9대 덕종
요에 대한 공세
과거제 확립과 실록의 복원
덕종의 가족

제10대 정종
평화시대의 유비무환
거듭되는 천재지변과 성군의 요절
정종의 가족

제3장 태평성대의 주춧돌을 심다
-각종 제도의 확립과 선진 문물의 도입

제11대 문종
각종 법률의 정비
경정전시과의 시행
고려, 요, 북송의 삼국시대
북송과의 국교 재개와 벽란도의 융성
군사력의 강화와 여진 정발
유교와 불교의 진흥
분종의 가족
문종 시대의 주요 인물
사립학교의 창시자 최충|문종 치세의 일등공신 이자연

제12대 순종
순종의 가족
과거 제도
음서 제도

제13대 선종
불교와 유교의 발전
동아시아 외교 주도
선종의 가족
선종 시대의 주요 인물
천태종의 시조 대각국사 의천

제14대 헌종
계림공 왕희의 보위 찬탈

제15대 숙종
초기의 태평성대
별무반 편성
숙종의 가족

제16대 예종
윤관의 여진 정벌과 9성 개척
9성의 반환
금의 건국과 북방 정세의 불안
유학의 진흥과 내정의 안정
시인 예종의 낭만
예종의 가족
고려 문화의 꽃 청자의 절정시대
예종 시대의 주요 인물
냉철한 현실주의자 김인존

제4장 머나먼 평화의 길
-금의 압력과 무신정권의 출현

제17대 인종
국제 정세의 변화
한안인의 실각
친위쿠데타의 실패와 인종의 위기
요의 멸망, 금과의 화친
이자겸의 난
서경파의 약진과 천도 계획의 추진
묘청의 난
동북아의 안정과 인종의 죽음
인종의 가족
인종 ㅅ대의 주요 인물
개경 세력의 주역, 김부식|「고려도경」의 주인공 서긍

제18대 의종
연이은 역모와 문신들과의 불화
의종의 사치와 정사의 실종
의종의 방종과 백성들의 눈물
간신들의 득세와 의종의 착각
보현원의 참극과 의종의 최후
의종의 가족
의종 시대의 주요 인물
환관정치의 주역 정함

제19대 명종
이의방의 권력 독점
문신들의 반격
정중부의 집권
망이와 망소이의 난
정중부의 피살, 경대승의 집권5년
명종의 일탈
전주 관노의 난
이의민의 무소불위 13년
효심과 김사미의 난
최충헌과 최충수의 정변
봉사 10조
명종의 퇴위
명종의 가족

제20대 신종
형제간의 권력 다툼
만적의 난
이어지는 민란
신종의 가족
신종 시대의 주요 인물
고려 선종의 중흥조 지눌

제21대 희종
최충헌의 독주와 교정도감의 설치
최충헌 암살 작전
희종의 가족

제22대 강종
강종의 가족
유라시아를 휩쓴 대제국 몽고의 쓰나미

제5장 세계제국의 동반자가 되다
-몽고의 침공과 항쟁, 제국과의 밀월

제23대 고종
급변하는 국제 정세
거란의 침공
최이의 등장과 몽고의 압박
몽고 사신 저고여 피살의 여파
최이의 독재와 사치
몽고의 1차 침공과 귀주성의 혈투
강화 천도와 몽고의 2차 침공
금의 멸망과 홍복원의 반역
몽고의 3차 침공
몽고의 4차 침공
최이의 죽음과 최항의 집권
몽고의 5차 침공
몽고의 6차 침공
최씨 무신정권의 종식
몽고의 7차 침공과 고종의 죽음
고종의 가족
팔만대장경의 판각
고종 시대의 주요 인물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문장가, 이규보

제24대 원종
쿠빌라이와의 만남
쿠빌라이의 등극과 제위 분쟁
무신 정권의 종식
삼별초의 대몽항쟁
공녀들의 눈물
원종의 가족

제25대 충렬왕
제1차 일본 정벌
급변하는 고려사회의 변천
왕실의 분란과 실지 회복
남송의 멸망
제2차 일본 정벌
카다안의 침공
충렬왕의 하야와 복위
기와르기스의 노비제도 개혁
충렬왕과 충선왕의 불화
충렬왕의 가족
정동행성
충렬왕 시대의 주요 인물
「삼국유사」를 쓴 국존, 일연|동방의 주자, 안향
|고려의 대쪽 선비, 이조년

제26대 충선왕
적극적인 개혁 의지
강제 퇴위와 복위
전지 통치
유학의 발전, 고려의 세계화
충선왕의 가족
권문세족의 등장
활발해진 해외 인적 교류

제27대 충숙왕
내정의 혼란과 복국장 공주의 죽음
백응구 사건과 입성책동
충숙왕의 반격
원 황실의 분란과 순제의 등장
충숙왕의 재기와 최후
충숙왕의 가족
농장의 확산과 폐해

제28대 충혜왕
입성책동의 무산
충혜왕의 엽색행각과 조적의 난
원의 실력자 바얀의 실각
충혜왕의 복위
납치, 독살
충혜왕의 가족
충혜왕 시대의 주요 인물
공녀에서 황후가 된 여인, 기씨

제29대 충목왕
유학자와 노비출신 신료들의 대결
덕령공주의 개혁과 좌절
충목왕 시대의 주요 인물
혼란기의 현실주의자 이제현

제30대 충정왕
왜구의 등장과 홍건적의 출현

제6장 열정과 자존의 불꽃이 지다
-명의 건국과 고려의 멸망

제31대 공민왕
은인자중의 초기 개혁
조일신의 난
홍건적의 맹위와 남벌
기씨 일파의 제거와 반원정책의 가동
고려 여인들의 방종과 편조의 등장
홍건적의 1차 침공
홍건적의 2차 침공
3원수의 비극
나하추의 침입
흥왕사의 변란
두 명의 고려 국왕 덕흥군과 공민왕의 대결
신돈의 등장과 후기 개혁의 시작
대대적인 숙청과 신돈의 비상
유학자들의 반발과 내정의 안정
신돈의 개혁과 수구세력의 반동
명의 건국과 원의 축출
새로운 관계
이성계의 요동 정벌
신돈의 제거와 무장들의 약진
최영의 탐라 정벌
공민왕의 최후
공민왕의 가족
공민왕 시대의 주요 인물
가문의 매국 이력을 벗겨낸 이자춘|
고려의 의복 혁명을 이룩한 문익점

제32대 우왕
줄타기 외교 전략
왜구의 침습과 홍산 전투
최무선의 진포구 전투
이성계의 황산 전투
최영의 무진정변
요동정벌과 위화도 회군
우왕의 가족
세계 최고의 금속 활자본「직지심체요절」
우왕 시대의 주요 인물
여말 선초의 풍운아 정도전

제33대 창왕
개혁의 높은 파고
박위의 대마도 정벌
이색의 실각
김저, 김득후 사건, 창왕의 폐위

제34대 공양왕
개혁의 박차
윤이, 이초 사건과 공양왕의 반발
공양왕의 반발
정몽주의 공세와 이방원의 역습
고려 왕조의 최후
공양왕의 가족
공양왕 시대의 주요 인물
단심과 충절의 대명사, 정몽주|고려 선비들의 절개, 두문동 72현

●주
●찾아보기
●참고문헌
●고려 왕실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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