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프롤로그
♥ 15c~20c의 거장화가 100명, 『마음의 우주, 어머니』를 발간하며
온 국민이 항상 좋아하고 즐겨 부르는 동요(童謠)가 있다. 양주동씨가 가사를 지은 「어머니 마음」이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누구나 이 노래를 부르거나 들으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 노래는 불경 중에서 불설 부모은중경(佛說 父母恩重經)에서 따온 것이다. 주로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은혜를 강조하고 있다. 불경의 부모은중경은 유교에서 말하는 부모에 대한 효도보다도 부모의 은혜(恩惠)를 더욱 강조하였다.
“나를 낳을 때 고통을 받으시며, 마른자리에 아기를 눕히고 진자리에 누우시고(회건취습은 廻乾就濕恩), 젖을 먹이기 시작하여 성인이 될 때까지 길러 주시고, 자식이 멀리 가면 생각하고 염려하시고, 자식을 위해 어떠한 일도 하시면서, 끝까지 자식을 사랑하는 은혜”를 말하고 있다. 이 경전에 대하여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던 조선의 정조는 1876년(정조 20년)에 수원에 용주사를 지어 부모은중경이란 탑까지 세웠다. 또한 김홍도로 하여금 판각화를 새겨 넣은 목판을 발간하여 널리 보급시켰다.
이번의 책은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서구에서 활동한 거장화가 100명이 자신의 어머니를 그린 초상화 작품과 해설을 실었다. 또한 이해를 돕기 위해 그들의 자화상과 더불어 명화작품도 일부가 포함되어 있다. 이들의 출신은 프랑스 27명(쿠르베, 앵그르, 보나 등), 영국 22명(로세티, 호가스 등), 미국 17명(카셋, 휘슬러 등), 네덜란드가 6명(고흐, 렘브란트 등), 러시아 6명(레핀, 수리콥 등), 독일 4명(뒤러, 킨트 등), 이탈리아 4명(티아폴로, 보치오니 등)을 포함한 16개국에서 선정하였다. 그 중에 어려운 시대를 이겨낸 여류화가는 10명이다.
인간에게 시공을 떠나서 가장 그리운 존재는 어머니임에 틀림없다. 아름답고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과 마음을 시인과 음악가는 글과 노래로 읊었다. 화가들은 물론 초상화로 그려서 평생을 간직한 후에 거의 대부분 후손들에게 유증(遺贈)되거나 미술관에 기증되어 소장되고 있다. 이번의 작품을 보면 주로 살아생전에 그린 작품이 많지만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린 작품도 있다. 화가의 어머니들은 자신의 아들이나 딸이 화가가 되려고 할 때에 온갖 어려움을 이겨 내도록 격려와 용기를 심어주었다. 그 덕택으로 영원한 불후의 예술품이 탄생되었다. 자식들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도 초상화를 곁에 두고 살아 계시듯이 그리워했다.
화가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화가가 그린 작품은 대부분 고독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화가는 아름다운 대상을 보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리기도 한다. 그러나 화가의 그림은 모든 관람자에게 삶의 위안을 받기를 원하고 있다. 즉 화가는 고독의 결정체를 작품 속에 남기지만 관람자는 위안을 받는다. 대부분 고독과 고난의 환경에서 생활하는 화가는 고독을 견디어 내는 강인한 정신력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는 인간이다. 인류가 시작되면서부터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옮긴 초상화는 그림의 주제로 가장 비중 있게 다루어져 왔다. 훌륭한 예술품이란 하나밖에 없는 희소성(稀少性)에 있을 것이고 고귀한 인간의 각자마다 얼굴 모습은 최고의 예술품(藝術品)이 되기에 충분하다. 또한 인간은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의 상(像)을 본능적으로 남기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후손에게 자기의 모든 것을 계승하고자 하는 것과 같이 화가는 어머니와 자신의 모습을 초상화로 재현하려고 한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평생토록 탐구한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崔淳雨)는 명언을 남겼다. “아름다움 중에서 인간의 아름다움을 넘어설 아름다움이 어디에 있겠는가? 의(義)롭고 투명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얼굴이야말로 모든 것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일지니 그래서 인간을 그린 초상화는 그저 단순한 얼굴그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구에서 역사적으로 초상화에 유화를 처음으로 사용한 선구자중의 한 사람은 14세기 네덜란드의 얀 반 에이크(1395-1441)였다. 당시 14세기부터 주로 상류층에만 유화가 그려져 왔으나 17세기부터 네덜란드의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는 일반 서민층까지 광범위하게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하여 현재는 서구의 전체 미술관의 약 80%를 초상화 장르가 차지했다.
미국의 초상화가인 존 싱어 서전트는 “나는 초상화를 그릴 때마다 친구 한 사람을 잃게 된다. (Every time I paint a portrait I lose a friend)” 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초상화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사실 초상화 작품은 창작의 어려움도 있으나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각자 인간이라는 예술품을 대상으로 다시 초상화라는 예술로 승화시키기 때문에 더없이 고귀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물론이고 세월이 더해 갈수록 신비한 매력을 지니게 된다.
사실 아름다운 사람이라도 우리는 속마음을 잘 알 수가 없다. 오직 얼굴을 통해서 그나마 읽을 수가 있다. 다른 회화 장르와는 다르게 초상화의 어려움은 대상과 닮은 유사성(Likeness)과 정체성(Identity)이 있어야 한다. 프랑스의 유명한 초상화가인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도 제자들에게 “초상화가는 먼저 인간의 외형적 특징을 발견할 줄 아는 관상가가, 또한 인간의 마음을 뚫어보는 사상가로, 덧붙여 인간의 내면을 연구하는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비극적인 삶을 살아 간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후견인으로 돌보던 의사인 가셰 박사(Dr. Gachet)를 우수(憂愁)어린 표정으로 초상화를 그렸다. 고흐는 “동시대의 애끓는 마음을 표현해 보기 위해서”라고 동료화가인 폴 고갱에게 말했는데 고흐의 간절한 희망이란 자신과 남들이 작품 속에서 당시 암울한 시대정신과 더불어 치유하려는 마음에서 그린 것이었다. 그는 또한 자화상을 많이 남기면서 “자기를 성찰하기 위해서” 라고 독백했다.
우리의 사회전체는 초상화 작품을 통하여 훌륭한 선조를 만나고 있다. 이를 통하여 오랜 역사와 문화를 자연스레 알게 될 뿐 아니라 자라나는 동심(童心)의 세계에서 원대(遠大)한 꿈을 심어준다. 그러니 초상화는 미술품이지만 역사를 가르치는 훌륭한 교사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영국과 미국 및 오스트랄리아 등지에서는 「국립초상화 미술관」이 설립되어 많은 소장품에 대하여 관람객의 줄이 이어지고 있다. 초상화는 위와 같은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데 특히 거장화가들의 어머니를 그린 초상은 말할 나위가 없다.
영국의 유명한 화가 조슈아 레이놀드 경(1723-1792)은 “그림 작품이 걸린 실내는 마치 생각들을 걸어놓은 방과도 같다”라고 하였다. 아름다운 자연이나 인간의 모습을 그리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까지 함께할 수 있는 작품을 화가는 진정 남기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화가들의 ‘어머니의 마음’은 동요 「어머니 마음」 2절과 3절의 가사와 다를 바 없다.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 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마음/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이 땅에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본인은 초․풍전(肖風展)을 열 번 개최한 적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남산의 안중근 기념관에서 개최한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기념 대한독립전」으로 독립운동가 42인의 초상화를 그렸다. 이번의 책은 초상화가로서 오랫동안 작품을 연구하기 위해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펴본 것이다. 15세기부터 600년 동안 서구미술의 대표적인 거장화가 100명이 그린 어머니의 초상화는 각기 특징이 뚜렷하다. 더불어 시대별로 변천된 화풍과 기법을 포함하여 서양미술을 파악할 수 있도록 꾸몄다. 미술을 사랑하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보는 교양도서가 되고, 또한 독자의 어머니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희망해 본다.
2015. 8. 15
스튜디오에서, 조영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