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명에 사랑(love)을 품은 국가, 슬로베니아(Slovenia)로 떠나보겠습니다. 슬로베니아라는 국명은 ‘슬라브인의 땅(Land of the Slavs)’, 즉 언어(Slovo)가 통하는 사람들이 사는 땅이란 의미입니다. 이웃한 게르만족(독일인)을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 '네메츠(Nemec)라고 부른 것과 대조됩니다. 국명에 love가 포함된 것은 우연이지만, 슬로베니아어는 학자들에게 사랑의 언어(Language of Love)라 불리는 독특한 드보이나(Dvojina)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곳은 ‘인류 최고(最古)의 악기’ 디비예 바베 피리(Divje Babe Flute), '세계에서 가장 큰 동굴 성' 프레드야마(Predjama Castle), 세계 최대의 수은광산 스페인 알마덴(Almadén)과 함께 공동 등재된 슬로베니아 이드리야(Idrija)에 이르기까지……. 구석기 시대의 문명과 율리안 알프스의 진주(Pearl of the Julian Alps)가 공존하는 문명의 교차로입니다. 비교적 최근인 1991년 유고슬라비아 전쟁(Yugoslav Wars, 1991~2001)으로 독립한 젊은 공화국, 슬로베니아로 떠나보시겠습니까? I FEEL S‘LOVE’NIA!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세상에 단 둘뿐인 우리, 관계의 미학 드보이나(Dvojina) : 슬로베니아를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는 바로 언어, 그중에서도 드보이나(Dvojina, Dual Grammatical Number, 雙數)라는 독특한 문법 체계입니다. 전 세계 대부분의 언어는 세상을 '하나(단수)'와 '여럿(복수)'으로 구분합니다. 그러나 슬로베니아어는 이 사이에 '둘(Dual)'이라는 독립적인 문법 범주를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 매우 희귀한 언어입니다. 고대 인도유럽어족(Proto-Indo-European)에는 본래 이 양수(Dual) 개념이 존재했으나, 언어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역사적 진화 과정에서 대부분 소멸하였습니다. 현대 유럽어 중 국가 단위의 표준어(Standard Language)로서 명사, 대명사, 형용사, 동사 변화 전반에 걸쳐 드보이나를 완벽하게 사용하는 언어는 슬로베니아어가 거의 유일합니다. 이는 슬로베니아인들이 얼마나 자신의 언어적 유산을 끈질기게 지켜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생소한 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친구'라는 단어와 '가다'라는 동사의 변화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슬로베니아어에서는 주어가 두 명일 때, 단어의 어미뿐만 아니라 동사의 활용 자체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Midva greva(우리 둘이 간다)"라는 문장은 "Mi gremo(3인 이상의 우리들이 간다)"와는 전혀 다른 문법적 층위를 가집니다.
▶ 닿을 수 없는 별을 향한 영혼의 갈망, 흐레페네니예(Hrepenenje) : 두 번째 키워드는 흐레페네니예(Hrepenenje, Yearning/Longing, 渴望)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그리움', '동경', '열망' 등으로 번역되지만, 슬로베니아 문화와 문학 속에서 이 단어가 차지하는 위상은 훨씬 심대합니다. 흐레페네니예는 단순한 욕구 불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 혹은 현실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영혼이 앓는 아름다운 열병을 의미합니다. 슬로베니아는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주도적인 제국이 되어본 적이 없습니다. 로마 제국, 합스부르크 왕가, 나폴레옹, 나치 독일,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이르기까지 항상 타자의 지배를 받거나 거대한 제국의 변방에 머물렀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슬로베니아인들은 현실의 고단함을 이겨내기 위해 내면에 이상적인 세계를 구축했고, 그곳에 닿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흐레페네니예'라는 정서로 승화시켰습니다.
▷ 이반 찬카르와 '커피 한 잔'의 미학 : 슬로베니아 모더니즘 문학의 거장이자 '국민 작가'인 이반 찬카르(Ivan Cankar, 1876~1918)는 이 흐레페네니예를 문학적으로 완성한 인물입니다.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슬로베니아인의 마음을 읽는 지름길입니다. 특히 그의 자전적 단편 소설인 『커피 한 잔(Skodelica kave)』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한 정서적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난한 집안의 아들(작가 자신)이 글을 쓰느라 예민해져 있을 때, 어머니가 떨리는 손으로 어렵게 마련한 블랙커피 한 잔을 타서 방으로 들어옵니다. 그러나 신경이 날카로워진 아들은 어머니에게 소리를 지릅니다. "날 좀 내버려 두세요! 지금은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요!"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슬픈 눈빛으로 커피 잔을 들고 조용히 방을 나갑니다. 아들은 그 즉시 후회하며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낍니다. 그는 훗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죄책감과 그리움을 평생의 흐레페네니예로 안고 살아갑니다. 이 이야기는 한국의 효(孝) 사상, 그리고 자식이 부모에게 갖는 '불효에 대한 뒤늦은 후회'라는 정서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그러나 차이점은 슬로베니아의 흐레페네니예가 이 슬픔을 단순히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창작의 동력이나 실존적 성찰의 계기로 삼는다는 점입니다.
▶ 내 손으로 일구는 땅, 브르티츠카르스트보(Vrtičkarstvo) : 세 번째 키워드는 브르티츠카르스트보(Vrtičkarstvo, Urban Gardening/Allotment Gardening, 都市園藝)입니다. 이는 도시 거주자들이 자신의 주거지 근처나 교외에 작은 텃밭(Vrtiček)을 마련하여 농작물을 가꾸는 문화를 일컫습니다. 슬로베니아 통계청 및 관련 조사에 따르면, 슬로베니아 가구의 약 60% 이상이 어떤 형태로든 자신만의 텃밭을 소유하거나 경작하고 있으며, 이는 유럽 내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합니다. 슬로베니아인들에게 텃밭은 단순한 취미나 여가 생활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이자, "나의 먹거리는 내가 책임진다"는 강렬한 독립성(Independence)과 자급자족(Self-sufficiency)의 표현입니다. 역사적으로 잦은 외침과 경제적 불안정을 겪으면서, 슬로베니아인들은 국가나 시장 시스템에 온전히 의존하기보다 내 땅에서 난 감자와 채소로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을 가장 확실한 생존 방식으로 체득했습니다.
▷ 나무로 지은 농업의 신전, 코졸레츠(Kozolec) : 이러한 농경 문화와 땅에 대한 애착을 가장 시각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코졸레츠(Kozolec, Hayrack)입니다. 코졸레츠는 곡물이나 건초를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며 자연 건조시키기 위해 만든 목조 구조물로, 전 세계에서 오직 슬로베니아(와 인접한 소수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고유한 건축 양식입니다. 코졸레츠는 슬로베니아 장인 정신의 결정체이자, 농촌 풍경의 미학적 정점입니다. 지붕이 있는 이중 코졸레츠(Toplar)는 마치 신전과 같은 위엄을 자랑합니다. 슬로베니아인들은 코졸레츠를 "농부들의 갤러리"라고 부르기도 하며, 현대 건축가들은 이 전통 양식을 현대적인 건물 디자인에 차용하기도 합니다. 한국의 정자가 자연을 감상하기 위한 휴식의 공간이라면, 슬로베니아의 코졸레츠는 노동과 수확을 위한 생산의 공간이면서도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코졸레츠를 직접 확인해 보고 싶으시다면? 류블랴나에서 동쪽으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센트루페르트(Šentrupert)에는 세계 최초의 '코졸레츠 야외 박물관(Land of Hayracks/Dežela kozolcev)'이 있습니다.
▶ 세 가지 키워드로 완성하는 슬로베니아 여행 : 지금까지 우리는 드보이나, 흐레페네니예, 브르티츠카르스트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슬로베니아의 내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이 세 단어는 각각 관계(Relationship), 정서(Emotion), 삶의 터전(Land)을 상징하며, 슬로베니아인들의 삶을 지탱하는 삼각편대를 이룹니다. 드보이나(Dvojina)를 통해 우리는 슬로베니아인들이 집단보다는 '단둘만의 친밀한 관계'를 중시하는 로맨틱하고 독립적인 성향을 가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흐레페네니예(Hrepenenje)를 통해 우리는 그들의 눈동자 속에 서린 멜랑콜리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더 나은 세계를 꿈꾸는 숭고한 갈망임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브르티츠카르스트보(Vrtičkarstvo)를 통해 우리는 그들이 아무리 현대화된 도시에 살지라도, 흙을 만지고 생명을 키워내는 농민적 뿌리를 잊지 않는 건강한 자연주의자들임을 확인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류블랴나의 거리에서 "Midva"라고 속삭이는 연인들을 볼 때, 안개 낀 블레드 호수에서 종소리를 들으며 무언가를 갈망할 때, 그리고 기차 차창 밖으로 스쳐 가는 코졸레츠와 텃밭을 볼 때, 독자 여러분은 이 작은 나라가 품고 있는 거대하고 따뜻한 영혼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화려함보다는 깊이를, 자극보다는 여운을 주는 여행을 원하신다면, 지금 바로 슬로베니아로 떠나십시오. 그곳에서 우리는 잃어버렸던 낭만과, 자연과, 그리고 '나 자신'을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Srečno!(행운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