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르세세트(Mirë SS erudite, 환영합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독수리의 땅(Land of the Eagles), 알바니아(Albania)로 떠나보겠습니다. 알바니아는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의 500년 지배와 20세기 혹독한 공산주의 고립을 거치면서도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지켜낸 불굴의 국가로, 국기 중앙에 새겨진 검은 쌍두독수리가 그들의 강인한 정체성을 대변합니다. 알바니아인들은 자국을 '슈키퍼리아(Shqipëria)'라고 부르는데, 그 자체로 '독수리(Shqiponja)가 사는 땅'을 의미합니다. 알바니아 국토 곳곳에 부트린트(Butrint)의 고대 유적부터 '천 개의 창문(A Thousand Windows)' 베라트(Berat), '돌의 도시(City of Stone)' 지로카스터(Gjirokastër) 등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오스만 건축의 정수가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빈자의 어머니(Mother of the Poor)’ 마더 테레사(Mother Teresa, 1910~1997)의 고향, 알바니아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목숨보다 무거운 약속, 베사(Besa : A Promise Heavier Than Life) : 알바니아를 여행하다 보면 유난히 따뜻하고 깊은 환대에 놀라게 됩니다. 단순히 친절한 수준을 넘어, 마치 오래전 헤어진 가족을 만난 듯한 환대. 그 비밀을 푸는 열쇠가 바로 알바니아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도덕률, ‘베사(Besa)’입니다. ‘명예를 건 맹세’ 혹은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를 지닌 이 단어는 알바니아 문화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주춧돌과 같습니다.
▷ 신과 손님, 그리고 나의 집(The Home of God, the Guest, and then Myself) : 알바니아에는 “알바니아인의 집은 신과 손님의 것이고, 그다음이 내 것이다(The Albanian's home is of God and of the guest)”라는 오래된 속담이 있습니다. 이 한 문장이 알바니아의 환대 문화(Mikpritja)를 완벽하게 설명합니다. 손님은 단순히 방문객이 아니라 신이 보낸 사람으로 여겨지며, 집주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손님을 보호하고 대접할 신성한 의무를 집니다. 가장 어려운 시절에도 알바니아인들은 “빵과 소금, 그리고 마음(bukë, kripë dhe zemër/bread, salt and heart)”으로 손님을 맞이했는데, 이는 가진 것이 없어도 진심을 다해 대접한다는 그들의 정신을 보여줍니다. 베사의 뿌리는 기독교나 이슬람보다 훨씬 더 깊은 곳, 고대 이교(paganism) 신앙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알바니아인들은 태양, 달, 하늘, 땅, 불, 돌과 같은 자연물을 신성시하며 맹세의 증인으로 삼았습니다. 이처럼 종교를 초월하는 원초적인 믿음에 기반했기에, 베사는 훗날 이슬람과 기독교가 공존하는 사회에서도 종파를 넘어 모든 알바니아인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종교적 신념 이전에 ‘알바니아인’으로서 공유하는 가장 근본적인 정체성, 그것이 바로 베사인 셈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어질 이야기가 더욱 놀랍게 다가올 것입니다.
▷ 어둠 속의 등불 : 홀로코스트, 그 경이로운 기록(A Light in the Darkness : The Holocaust and an Astonishing Record)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역이 나치의 광기에 휩싸여 있을 때, 발칸반도의 작은 나라 알바니아에서는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기적이 조용히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 바로 ‘베사’가 있습니다. 당시 알바니아는 유럽에서 유일하게 무슬림이 다수인 국가였지만, 그들은 종교와 민족을 넘어 유대인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습니다. 전쟁 발발 직전 알바니아에 거주하던 유대인은 약 200명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히틀러의 박해가 시작되자, 알바니아는 독일, 오스트리아, 세르비아 등지에서 탈출한 600명에서 1,800명에 이르는 유대인 난민들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1943년, 나치 독일이 알바니아를 점령하고 유대인 명단을 넘기라고 요구했을 때, 알바니아 정부와 국민들은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이는 곧 죽음을 의미하는 명령이었지만, 그들은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실로 기적적이었습니다.
▶ 보이지 않는 헌법, 카눈(Kanun : The Invisible Constitution) : 알바니아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두 번째 열쇠는 ‘카눈(Kanun)’입니다. 베사가 알바니아의 ‘심장’이라면, 카눈은 그 심장이 뛰는 방식을 규정해 온 ‘뼈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카눈을 ‘피의 복수’라는 자극적인 단어와 연관 짓지만, 이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카눈은 사실상 수 세기 동안 알바니아 사회를 지탱해 온 비공식 헌법이자, 삶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정교한 생활 규범의 총체입니다.
▷ 산맥이 빚어낸 법전(The Law Code Forged by Mountains) : ‘레커 두카지니의 카눈(Kanuni i Lekë Dukagjinit)’으로 알려진 이 관습법은 15세기 귀족인 레커 두카지니(Lekë Dukagjini, 1410~1481)에 의해 성문화되었다고 전해지지만, 그 기원은 청동기 시대 혹은 고대 일리리아 부족의 법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수 세기 동안 구전으로만 전승되다가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문자로 기록될 만큼, 카눈은 알바니아인들의 삶에 깊숙이 뿌리내린 유산입니다. 카눈은 총 12권, 1,262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교회, 가족, 결혼, 재산, 노동, 명예, 범죄 등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을 규정합니다. 예를 들어, “내 벌통에서 나간 벌이 다른 사람의 땅으로 들어가면 그것을 되찾기 위해 그 땅에 들어갈 권리가 있다”와 같은 아주 구체적인 재산권 규정까지 포함할 정도입니다. 이처럼 정교한 규범 체계는 중앙 권력의 부재 속에서 알바니아인들이 스스로 질서를 유지하고 공동체를 운영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 피의 복수, 자크마랴의 두 얼굴(Gjakmarrja : The Two Faces of Blood Vengeance) : 카눈에서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단연 ‘자크마랴(Gjakmarrja)’, 즉 ‘피를 받아낸다’는 의미의 피의 복수 관습입니다. 카눈에 따르면, 살인, 강간, 또는 집의 신성함을 더럽히는 등 가문의 명예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을 경우, 피해자 가문은 가해자나 그 가문의 남성을 살해함으로써 명예를 회복할 의무를 집니다. 이를 ‘머리에는 머리로(koka për kokë/head for head)’ 원칙이라고 부릅니다. 이 복수의 의무는 대를 이어 계속될 수 있으며, 복수를 피하는 것은 가문의 수치로 여겨졌습니다. 야만적으로 보이는 관습이지만, 자크마랴는 마냥 무분별한 살육이 아니었습니다. 전통적인 카눈에는 엄격한 규칙이 존재합니다. 여성, 어린이, 노인은 복수의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며, 집 안에 있는 사람은 공격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있습니다.
▶ 전 국토의 요새화, 벙커럿(Bunkerët : The Fortress Nation) : 알바니아의 풍경 속에서 가장 기이하고 초현실적인 존재를 꼽으라면 단연 ‘벙커(Bunkerët)’일 것입니다. 해변의 모래사장에도, 포도밭 한가운데에도, 도시의 공원과 주택가에도, 심지어 공동묘지에도 버섯처럼 솟아 있는 이 콘크리트 구조물들은 알바니아의 아픈 현대사를 온몸으로 증언하는 거대한 기념비입니다. 이 수십만 개의 벙커는 한 독재자의 편집증적인 공포가 낳은 산물이자, 동시에 오늘날 알바니아인들의 놀라운 창의력과 회복력을 보여주는 캔버스가 되고 있습니다.
▷ 독재자의 편집증이 빚어낸 콘크리트 버섯(The Concrete Mushrooms Born of a Dictator's Paranoia) : 이 기이한 풍경을 만든 장본인은 40년 넘게 알바니아를 철권 통치한 공산주의 독재자 엔베르 호자(Enver Hoxha, 1908~1985)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집권한 그는 극단적인 고립주의 노선을 걸으며 전 세계를 적으로 돌렸습니다. 그의 망상 속에서 알바니아는 미국의 나토(NATO), 소련의 바르샤바 조약기구, 그리고 이웃 나라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동시에 침공당할 위기에 처한 외로운 요새였습니다. 이 편집증적인 공포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어진 대대적인 ‘벙커화(bunkerizimi)’ 프로젝트로 이어졌습니다. 전국 모든 곳에 방어 진지를 구축한다는 목표 아래, 알바니아 전역에는 무려 75만 개가 넘는 벙커가 건설되었습니다. 이는 국토 1제곱킬로미터당 평균 5.7개의 벙커가 존재하는, 그야말로 전 국토의 요새화였습니다. 1인용 작은 총안구부터 당 지도부를 위한 거대한 지하 핵 방공호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가난한 나라 알바니아의 경제를 완전히 파탄시켰습니다.
▶ 베사(Besa)라는 목숨보다 무거운 약속, 카눈(Kanun)이라는 보이지 않는 헌법, 그리고 벙커럿(Bunkerët)이라는 독재자의 기이한 유산. 이 세 가지 열쇠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알바니아의 진짜 얼굴과 마주하게 됩니다. 깊은 명예와 신의를 지키면서도, 거친 역사의 상처를 창의적으로 보듬고 미래로 나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땅을 여행하는 것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한 나라의 영혼과 깊이 교감하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알바니아인들이 수 세기 동안 지켜온 약속처럼, 그들은 당신을 기꺼이 신이 보낸 손님으로 맞아줄 것입니다. 알바니아의 오래된 격언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알바니아인의 집은 신과 손님의 것이다(Shtëpia e shqiptarit është e Zotit dhe e mikut/The Albanian's home belongs to God and to his fri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