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발트해와 북유럽의 교차로! 에스토니아(Estonia)로 떠나보겠습니다. 에스토니아란 국명은 서기 1세기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가 저서 '게르마니아(Germania)'에서 발트해 연안의 부족을 지칭하며 사용한 '아이스트(Aestii)'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는 게르만족의 동쪽에 거주하는 '동쪽 사람들(Easterners)' 혹은 '물가에 사는 사람들'을 뜻하는 고대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에스토니아는 흔히 '발트 3국(The Baltic States)' 중 하나로 여겨지지만, 언어적으로 핀란드와 우랄어족(Uralic languages)에 속합니다. 같은 발트 3국이라도 인도유럽어족인 라트비아나 리투아니아와는 뿌리부터 다르죠! 여행자에게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탈린 역사 지구(구시가지){Historic Centre(Old Town) of Tallinn, 1997}가 유명하지만, 전 세계 노마드족에게는 세계 최초의 전자 정부(e-Government, 1997)와 국경 없는 전자 영주권(e-Residency, 2014) 시스템으로 더 유명한 디지털 국가이기도 합니다. 중세의 시간(Time of Middle Ages)이자 미래의 청사진(Blueprint of Future), 에스토니아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태초의 검은 안식처, 영혼을 씻어내는 '수이츠사운'(Black Sanctuary of Origin : 'Suitsusaun' that Cleanses the Soul) : 첫 번째로 제시할 키워드는 에스토니아의 영혼이라 불리는 '수이츠사운(Suitsusaun)', 즉 스모크 사우나(Smoke Sauna, 煙氣桑拿)입니다. 이미 핀란드의 건식 사우나나 러시아의 반야(Banya)를 경험해 보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에스토니아인에게 수이츠사운은 단순한 목욕 문화가 아닙니다. 이것은 800년 이상 이어져 온 신성한 의식(Ritual, 儀式)이며,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에 대한 거대한 서사입니다. 이 독특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버로마(Võromaa)의 스모크 사우나 전통(Smoke sauna tradition in Võromaa)'은 201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UNESCO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으로 등재되었습니다.
▷ 굴뚝 없는 방, 그을음 속에 핀 생명 : 수이츠사운의 가장 큰 특징은 '굴뚝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식 사우나와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입니다. 굴뚝이 없기에 장작을 태운 연기는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사우나실 내부를 가득 채우며 벽과 천장, 그리고 돌무더기인 케리스(Keris, 사우나 스토브)를 검은 그을음(Soot, 煤煙)으로 덮습니다. 이 과정은 무려 반나절, 보통 6시간에서 8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여행자들에게, 사우나를 하기 위해 8시간을 불을 지피며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은 충격적일 수 있습니다만, 이 기다림이야말로 수이츠사운의 핵심입니다. 불을 지피는 동안 나무의 정령이 깨어나고, 돌은 태양과 같은 열기를 머금게 됩니다. 사우나 입욕은 불이 완전히 꺼지고, 연기를 환기시킨 후에야 비로소 시작됩니다. 사우나 내부는 온통 검은 그을음 투성이입니다. 처음 방문한 여행자들은 옷이나 몸에 검댕이 묻을까 걱정하지만, 에스토니아인들에게 이 그을음은 더러움이 아닌 '무균(Sterile, 無菌)'의 상징입니다. 연기의 살균 작용 덕분에 과거 병원이 없던 시절, 에스토니아의 어머니들은 바로 이 수이츠사운에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또한, 생을 마감한 이들의 시신을 염습(殮襲)하는 곳도 이곳이었습니다. 즉, 에스토니아인에게 수이츠사운은 태어남과 죽음이 교차하는, 생의 시작이자 끝인 성소(Sanctuary, 聖所)입니다.
▶ 다섯 번째 계절을 항해하는 지혜, 아스펜 통나무배 '하비아스'(Wisdom Navigating the Fifth Season : Aspen Dugout Boat 'Haabjas') : 두 번째 키워드는 에스토니아의 대자연과 인간의 적응력을 상징하는 '하비아스(Haabjas)'입니다. 이는 한 통의 아스펜(Aspen, 사시나무) 통나무를 깎아 만든 독목주(Dugout Boat, 獨木舟)를 뜻합니다. 이 투박해 보이는 배가 왜 에스토니아만의 고유한 특징일까요? 그것은 바로 '소마 국립공원(Soomaa National Park)'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기후 현상, '다섯 번째 계절(Fifth Season, Viies aastaaeg)' 때문입니다. 이 하비아스를 만들고 사용하는 문화는 그 독창성을 인정받아 2021년 유네스코 긴급보호 인류무형문화유산(UNESCO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in Need of Urgent Safeguarding)으로 등재되었습니다.
▷ 불과 물로 빚어내는 배, 하비아스의 제작 과정 : 하비아스를 만드는 과정은 마치 하나의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적어도 80년 이상 된 곧고 굵은 아스펜 나무를 골라야 하는데, 아스펜은 가볍고 물에 강하며 가공하기 쉬운 특성이 있습니다. 가장 놀라운 기술은 배의 폭을 넓히는 '확장(Expansion)' 과정입니다. 통나무의 속을 파내면 처음에는 폭이 좁아 사람이 타기 어렵습니다. 장인들은 파낸 배 안에 물을 채우고, 배 아래에는 모닥불을 피웁니다. 그리고 뜨겁게 달궈진 돌을 배 안의 물속에 넣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면 나무는 뜨거운 증기와 열기를 머금고 유연해집니다. 이때 장인들이 힘을 합쳐 배의 양쪽 가장자리를 서서히 벌리면, 놀랍게도 통나무는 쪼개지지 않고 부드럽게 펴지며 넓은 배의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 이 기술은 접착제나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직 나무와 불, 물의 성질만을 이용한 친환경적인 공법입니다. 이는 현대 기술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수천 년간 축적된 암묵지(Tacit Knowledge, 暗默知)의 결정체죠!
▶ 노래로 쌓아 올린 자유의 성벽, '라울루피두'(Ramparts of Freedom Built with Songs : 'Laulupidu') : 마지막 세 번째 키워드는 에스토니아인들의 정체성이자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라울루피두(Laulupidu)', 바로 에스토니아 노래 축제(Estonian Song Festival)입니다. 에스토니아인들을 묘사할 때 자주 쓰이는 말이 있습니다. "한 명의 에스토니아인은 시를 쓰고, 두 명의 에스토니아인은 체스를 두며, 세 명의 에스토니아인은 합창단을 만든다.(One Estonian a poet, two Estonians a chess game, three Estonians a choir.)" 그만큼 노래는 이들의 삶 그 자체입니다. 이 거대한 합창의 전통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함께 '발트해의 노래와 춤 축제(Baltic Song and Dance Celebrations)'라는 명칭으로 2003년 유네스코에 의해 걸작으로 선포되었으며,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 피 흘리지 않은 승리, 노래하는 혁명(Singing Revolution) : 라울루피두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80년대 후반의 '노래 혁명(Singing Revolution, Laulev revolutsioon)'입니다. 소비에트 연방의 억압이 극에 달했던 시절, 에스토니아인들은 총과 칼 대신 노래를 들고 광장으로 모였습니다. 소련 당국은 민족주의 노래를 금지했지만, 수십만 명의 군중이 서로의 손을 잡고 <나의 조국은 나의 사랑(Mu isamaa on minu arm)>을 불렀을 때, 그 어떤 탱크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시인 리디아 코이둘라(Lydia Koidula, 1843~1886)가 작사하고 구스타프 에르네삭스(Gustav Ernesaks)가 작곡한 이 노래는 에스토니아의 비공식 국가(Anthem)로서, 듣는 이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합니다. 코이둘라는 ‘에스토니아 민족운동의 아버지’ 요한 볼데마르 얀센(Johann Voldemar Jannsen, 1819~1890)의 딸로, 그녀의 시는 암울했던 시기 에스토니아인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었습니다. 결국 에스토니아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노래의 힘으로 1991년 독립을 되찾았습니다.
▶ 느리게 노 저어, 마침내 멀리 닿다(Conclusion : Rowing Slowly, We Finally Reach Afar) : '수이츠사운(영혼의 정화)', '하비아스(자연과의 공존)', '라울루피두(문화적 단결)'라는 세 가지 키워드는 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하나의 공통된 철학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간을 견디는 힘'입니다. 8시간을 기다려야 비로소 따뜻해지는 사우나, 수십 년 자란 나무를 불과 물로 달래어 만드는 배, 그리고 수백 년의 억압을 노래로 견뎌내고 쟁취한 자유까지……. 에스토니아는 빠름과 효율을 숭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느림'과 '지속 가능성'의 가치를 묵묵히 실천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에스토니아인들의 삶의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속담과 함께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Tasa sõuad, kaugele jõuad.("If you row steadily, you will go far.")" 천천히 노를 저으면, 멀리 간다. 감사합니다!(Aitä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