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The empire on which the sun never sets)로 불리던, 본초 자오선(Prime Meridian)의 배꼽! 영국(United Kingdom)으로 떠나보겠습니다. 영국이라는 국명은 5세기경 그레이트브리튼섬(Great Britain)에 정착한 앵글족의 땅을 뜻하는 '앵글란드(Englaland)'에서 유래했습니다. 영국(United Kingdom)은 잉글랜드(England), 스코틀랜드(Scotland), 웨일스(Wales), 그리고 아일랜드 공화국(Saorstát Éireann Irish Republic)을 제외한 북아일랜드(Northern Ireland)라는 네 개의 구성국이 하나의 입헌군주제 체제 아래 공존하는 연합왕국(United Kingdom)입니다.
축구의 발상지(The birthplace of football)로써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에 4개 팀으로 출전하는 유일한 국가이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올림픽에 출전할 때는 '1국 1국가(National Olympic Committee)' 원칙 때문에 팀 구성에 애로사항이 많죠. 명예 혁명(Revolution of 1688)과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의 고향, 영국으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줄 서는 곳에 민주주의 피어난다(Democracy Blooms in the Queue), 큐(Queue) : 영국인에게 ‘줄을 선다’는 행위는 단순한 기다림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이들의 정신 깊숙이 뿌리내린 공정성(fairness), 질서(order), 그리고 평등(equality)에 대한 신념이 일상에서 발현되는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죠. 영국식 영어로 ‘꼬리’를 의미하는 고대 프랑스어 ‘cue’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말 그대로 사람들이 꼬리처럼 늘어선 모습을 형상화합니다. 이는 하나의 불문율이자 사회적 계약으로, 2023년 유고브(YouGov) 설문조사에 따르면 영국인의 76%가 줄 서기 예절을 그 사람의 인격을 반영하는 척도로 본다고 답했습니다. 미국인의 42%만이 그렇다고 답한 것과 비교하면, 이들이 줄 서기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위대한 영국의 줄(Great British Queue)’에도 엄격한 규칙이 존재합니다. 첫째, 새치기는 절대 용납되지 않는 최악의 범죄 행위로 간주됩니다. 누군가 줄을 어지럽히면 대놓고 소리치기보다는, 약속이나 한 듯 나지막한 헛기침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거나 차가운 시선이 느껴질 겁니다. 영국인들은 이를 ‘정중한 훈육(polite discipline)’이라 부르죠. 둘째, 앞사람의 목덜미에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바싹 붙는 것은 금물입니다. 보이지 않는 개인 공간을 존중하는 것이 불문율입니다. 이 모든 규칙의 기저에는 ‘내 차례가 올 것’이라는 깊은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이러한 국민적 습관은 1800년대 초 산업혁명 시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급격한 도시화로 수많은 사람이 좁은 공간에 모여 살게 되면서, 한정된 자원을 놓고 벌어질 혼란을 막기 위한 사회적 질서 유지가 절실해졌습니다. 줄 서기는 이때 탄생한 실용적인 사회 관리 도구였던 셈입니다.
이 문화가 영국인의 정신에 성스럽게 각인된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World War II, 1939~1945)이었습니다. 1940년 1월 8일부터 시작된 식량 배급제(food rationing)는 귀족이든 노동자든 모두가 배급소 앞에 평등하게 줄을 서게 만들었습니다. 이 혹독한 공동의 경험은 줄 서기를 애국적 의무이자 모두가 함께 고난을 이겨내고 있다는 연대감의 상징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심지어 무엇을 파는지도 모르고 일단 줄부터 서는 경우도 흔했는데, 이는 시스템의 공정성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이러한 줄 서기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세계적인 테니스 대회 ‘윔블던(Wimbledon)’의 입장권 대기 줄, ‘더 큐(The Queue)’입니다. 윔블던 조직위원회는 모든 표를 온라인으로 판매할 수 있음에도, 대회 당일 현장 판매분을 남겨둡니다. 이 표를 사기 위해 사람들은 대회 전날부터 텐트를 치고 밤새 줄을 서는데, 무려 30쪽에 달하는 자체 규정집까지 있을 정도로 체계적입니다. 각자에게는 고유 번호가 적힌 ‘큐 카드(Queue Card)’가 발급되고, 화장실 이용 등으로 30분 이상 자리를 비우면 순서가 무효 처리되는 등 엄격한 규칙이 적용됩니다. 이곳에서 줄 서기는 고행이 아니라, 국적과 나이를 불문하고 모인 사람들과 교류하며 즐기는 하나의 축제이자 경험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퉁명스럽기로 소문난 영국인들이 스스럼없이 낯선 이와 대화를 나누는 진기한 풍경도 볼 수 있죠. 이는 영국인들에게 ‘공정하게 기다리는 과정’이 때로는 ‘결과물’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줍니다.
▶ 사랑한다면, 짓궂게 놀려라!(If You Love Them, Tease Them Mercilessly!), 밴터(Banter) : 영국인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져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황스러운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분명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 옷차림이나 말투, 응원하는 축구팀을 걸고넘어지며 짓궂게 놀리기 시작하는 것이죠. 축하합니다. 당신은 방금 영국식 애정 표현의 최고 단계인 ‘밴터(Banter)’의 세계에 입문하셨습니다! 밴터는 17세기 런던의 속어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사전적으로는 ‘유쾌하고 친근하게 놀리는 말을 주고받는 행위’로 정의됩니다. 하지만 이 간단한 정의로는 밴터에 담긴 복잡하고 미묘한 사회적 의미를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밴터는 영국식 유머의 핵심을 이루는 세 가지 요소, 즉 자기 비하(self-deprecation), 풍자(sarcasm),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deadpan delivery)의 절묘한 조합으로 이루어집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자기 비하인데, 영국인들은 자신의 단점이나 실패를 먼저 가볍게 농담거리로 삼음으로써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사람으로 보이게 합니다. “제가 요리 실력은 물도 태워 먹을 수준이라서요”와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죠. 이렇게 스스로를 먼저 ‘공격’함으로써, 상대방을 놀릴 때 발생할 수 있는 공격성을 중화하고 ‘이건 심각한 비난이 아니라 그냥 농담이야’라는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오가는 밴터는 관계의 시금석 역할을 합니다. 영국인들은 매우 정중하기로 유명하지만, 역설적으로 영국인이 당신을 좋아한다는 가장 확실한 신호는 바로 당신을 ‘기분 좋게 공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직도 영화 ‘겨울왕국(Frozen, 2013)’을 안 봤다고요? 대체 당신에겐 무슨 문제가 있는 거죠?!” 혹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과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함께 있는 모습을 보일 수 없어요!”와 같은 말들은 결코 악의적인 비난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런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가까운 사이’라는 신뢰의 표현이자, 서로의 차이점을 유쾌하게 부각하며 유대감을 형성하려는 시도입니다. 즉, 낯선 사람에게는 절대적인 정중함으로 거리를 유지하지만, 친구로 인정한 상대에게는 밴터라는 이름의 ‘계산된 무례함’을 허용함으로써 진정한 친밀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밴터의 정수를 엿볼 수 있는 최고의 무대는 바로 영국 의회에서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 ‘총리 질의응답(Prime Minister's Questions, PMQs)’ 시간입니다. 이곳에서 총리와 야당 대표는 국정 현안을 놓고 치열한 말싸움을 벌이는데, 그 내용은 종종 날카로운 풍자와 재치 있는 밴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를 들어, 테레사 메이(Theresa May, 1956~) 前 총리는 당시 노동당 대표였던 제러미 코빈(Jeremy Corbyn, 1949~)의 리더십을 비판하며 “노동자의 말은 듣지 않고, 업무량은 두 배로 늘리라고 요구하며, 규칙을 악용하는 상사… 혹시 누구 생각나지 않으세요?”라고 말하며 코빈 대표를 교묘하게 조롱했습니다. 이는 국가의 운명을 논하는 최고 정치 무대에서조차 밴터가 얼마나 중요한 소통 도구이자 대중을 사로잡는 기술로 활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 모든 영국인의 마음의 고향(The Spiritual Hometown of Every Briton), 컨트리사이드(Countryside) : 런던의 번잡함을 벗어나 기차로 한 시간만 달리면, 그저 평범한 시골 풍경이 펼쳐집니다. 하지만 영국인에게 ‘컨트리사이드’는 단순한 비도시 지역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들의 국가 정체성과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일종의 ‘정신적 고향’과도 같은 이상향입니다. 15세기 중반에 등장한 이 단어는 ‘나라(country)’와 ‘지역(side)’의 단순한 결합이지만, 그 안에는 수백 년의 역사와 문화가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이러한 이상적인 이미지를 영국인의 집단 무의식 속에 확고히 새겨 넣은 이들이 바로 화가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 1776~1837)과 소설가 제인 오스틴(Jane Austen, 1775~1817)입니다. 컨스터블은 ‘건초 마차(The Hay Wain, 1821)’와 같은 작품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평화로운 전원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냈습니다. 그의 그림은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라, 산업화 이전의 순수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와 찬미였습니다. 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1813)’과 같은 소설에서 컨트리사이드를 배경으로 영국 중산층의 삶과 사랑, 도덕을 그려내며 전원생활을 영국적 가치의 중심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오늘날 관광 안내 책자에 등장하는 ‘그림 같은(picturesque)’ 오두막과 ‘구불구불한(rolling)’ 언덕의 이미지는 모두 이러한 예술적 유산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고향’ 개념과 흥미로운 차이가 발견됩니다. 한국인에게 고향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 ‘나의 조상이 묻힌 곳’처럼 매우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장소와 혈연에 기반한 개념입니다. 하지만 영국의 컨트리사이드는 특정 개인의 소유가 아닌, 국가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추상적이고 집단적인 이상향에 가깝습니다. 맨체스터의 아파트에서 태어난 사람도 코츠월드(Cotswolds)의 어느 마을을 보며 ‘영국적인 것’의 정수를 느끼고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죠.
▶ 영국 사회를 움직이는 세 가지 키워드, ‘큐’, ‘밴터’, ‘컨트리사이드’는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지점을 향합니다. 바로 질서 있는 사회에 대한 열망, 말로 표현하지 않는 깊은 유대감, 그리고 국가의 본질에 대한 낭만적인 이상입니다. 이 세 가지 열쇠를 손에 쥐고 영국을 바라본다면, 무뚝뚝하고 예측 불가능해 보였던 이들의 행동 속에 숨겨진 영국스러운 논리와 따스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좋은 것은 기다리는 자에게 온다(All things come to those who wa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