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약 600년간 유럽을 지배한 합스부르크 왕가(House of Habsburg), 오스트리아(Austria)로 떠나보겠습니다. 오스트리아란 국명은 996년 고문서에 처음 등장한 고대 독일어 '오스타리키(Ostarrîchi)'에서 유래했습니다. 뜻은 '동쪽의 제국(Eastern Realm)'. 우리에게 친숙한 비엔나소시지(Vienna Sausage), 비엔나커피(Vienna Coffee), 비너슈니첼(Wiener Schnitzel)의 비엔나는 수도 빈(Vienna)의 영어식 발음입니다. 오스트리아는 1955년 국가 조약(Austrian State Treaty)을 통해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은, 세계적으로도 몇 안 되는 영세중립국(Permanent Neutrality)입니다. 빈에 세계 3번째 UN 본부를 비롯해 OPEC(석유수출국기구), IAEA(국제원자력기구) 등의 국제기구가 밀집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동유럽의 연방공화국(Federal republic)이지만,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지 않은(앞으로도 하지 않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Austro-Hungarian Monarchy, 1867~1918)의 심장, 오스트리아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멈춰진 시간 속, 고독(孤獨)과 연대(連帶)의 미학, 그무틀리히카이트(The Aesthetics of Solitude and Solidarity in Suspended Time, Gemütlichkeit) : 오스트리아, 특히 수도 빈(Vienna)을 이해하는 첫 번째이자 가장 본질적인 키워드는 바로 '그무틀리히카이트(Gemütlichkeit)'입니다. 독일어 사전은 이를 '아늑함', '편안함', '안락함' 등으로 번역하지만, 이는 이 단어가 가진 사회문화적 맥락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합니다. 한국어의 '정(情)'이나 '흥(興)', 혹은 '한(恨)'을 외국어로 완벽히 번역할 수 없듯이, 그무틀리히카이트는 오스트리아인들만의 고유한 정서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무틀리히카이트는 서두르지 않는 태도, 타인과의 적당한 심리적 거리감을 유지하면서도 느껴지는 따뜻한 유대감, 그리고 무엇보다 '생산성'에 얽매이지 않고 시간을 향유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이것은 한국 사회가 추구하는 '효율'과 '속도'의 정반대 지점에 서 있는 개념입니다. 한국의 '방(房)' 문화가 폐쇄적인 공간에서의 끈끈한 친밀함을 추구한다면, 오스트리아의 그무틀리히카이트는 개방된 공간에서 타인의 존재를 배경 삼아 즐기는 '군중 속의 고독'을 허용합니다. 이 추상적인 개념이 가장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공간으로 구현된 곳이 바로 '빈의 카페하우스(Viennese Coffee House)'입니다.
▷ 유네스코가 인정한 '제2의 거실', 빈의 카페하우스 문화(UNESCO-recognized 'Second Living Room', Viennese Coffee House Culture) : 빈의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독자 여러분은 시간이 멈춘 듯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19세기의 화려함이 남아있는 벨벳 소파, 차가운 대리석 테이블(Marmortische), 그리고 곡선이 아름다운 토넷(Thonet) 의자는 지난 세기의 이야기를 속삭입니다. 이곳에서는 웨이터인 '헤어 오버(Herr Ober)'가 멜랑주(Melange-에스프레소와 따뜻한 우유, 거품을 섞은 빈 스타일 커피) 한 잔과 함께 반드시 은쟁반에 물 한 잔을 내어줍니다. 이 '물 한 잔'의 의미는 매우 상징적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이 자리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당신을 쫓아내지 않을 것이며, 추가 주문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니, 필요한 만큼 시간을 보내도 좋다"는 암묵적인 환대(歡待)의 선언입니다. 한국의 일부 카페가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콘센트를 없애거나 의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빈의 카페는 손님이 최대한 오래 머물며 신문을 읽고 사색에 잠기기를 권장합니다. 물잔 위에 숟가락이 뒤집혀 얹혀 있다면? 그것은 방금 수도에서 받아온 신선한 물이라는 자부심의 표현이랍니다. 식당 어디에서나 물은 공짜로 제공하는 한국인에게는 황당하지만, 물 한잔도 공짜로 먹을 수 없는 유럽에서는 분명한 환대의 의미입니다.
▶ 대지(大地)의 선물, 찰나(刹那)와 영원(永遠)의 건배, 호이리거(Gift of the Earth, A Toast to the Moment and Eternity, Heuriger) : 두 번째 키워드는 오스트리아의 미식(美食) 문화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호이리거(Heuriger)'입니다. 한국인들에게 '술자리'가 소주와 삼겹살, 그리고 조직의 단합을 위한 '회식'의 역동성을 의미한다면, 오스트리아인들에게 호이리거는 '계절'의 순환과 '자연'에 대한 순응, 그리고 삶의 무게를 내려놓는 해방구입니다.
▷ 1784년, 황제의 칙령(勅令)이 빚어낸 문화(1784, Culture Created by the Emperor's Decree) : '호이리거'라는 단어는 두 가지 중의적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는 '올해 수확한 포도로 만든 햇와인'을 뜻하며, 다른 하나는 '그 와인을 파는 선술집'을 의미합니다. 전 세계 어느 수도를 가도 빈(Vienna)처럼 도시 행정구역 내에 700헥타르에 달하는 광활한 포도밭이 존재하는 곳은 없습니다. 이 독특한 문화의 시작은 계몽군주 요제프 2세(Joseph II, 1741~1790)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1784년 8월 17일, 요제프 2세는 칙령을 내려 포도 재배 농가들이 직접 생산한 와인과 간단한 음식을 별도의 식당 영업 허가 없이 연중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이 역사적인 조치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와, 빈 외곽의 그리칭(Grinzing), 노이슈티프트(Neustift am Walde), 누스도르프(Nussdorf) 같은 지역에 독특한 와인 마을을 형성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독창성을 인정받아 '빈의 호이리거 문화(Viennese Heuriger Culture)'는 2019년 유네스코 오스트리아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 자연(自然)으로의 회귀, 황제(皇帝)가 사랑한 피난처, 좀머프리셰(Return to Nature, The Emperor's Beloved Refuge, Sommerfrische) : 세 번째 키워드는 '좀머프리셰(Sommerfrische)'입니다. 직역하면 '여름의 신선함' 정도가 되겠지만, 이는 단순한 단어가 아니라 오스트리아인들의 여름 라이프스타일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문화적 용어로 도시의 찌는 듯한 무더위를 피해 시원한 알프스 산간 지방이나 호숫가로 이동하여, 며칠이 아닌 몇 주, 길게는 몇 달간 머물며 심신을 재충전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한국의 피서와 유사해 보이지만, 좀머프리셰는 단순히 더위를 피하는 것을 넘어, 도시의 사회적 관계를 자연 속으로 옮겨와 '문화적 향유'를 지속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 소시지의 두 끝을 기억하며(Remembering the Two Ends of the Sausage) : 지금까지 살펴본 그무틀리히카이트(카페-휴식), 호이리거(와인-미식), 좀머프리셰(자연-여행)는 각각 오스트리아인들의 삶을 지탱하는 세 가지 기둥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세 가지 키워드가 한국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과 묘하게 겹치면서도 대조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기록 문화에 있어서도 두 나라는 놀라운 공통점을 가집니다. 한국이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나 '훈민정음(訓民正音)' 같은 세계적인 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듯이, 오스트리아 역시 앞서 언급한 슈베르트 컬렉션, 쇤베르크 유산, 빈 디오스코리데스 외에도 1815년의 '빈 회의 최종 의정서(Final Document of the Congress of Vienna)'(1997년 등재), '타불라 페우팅게리아나(Tabula Peutingeriana)'(2007년 등재, 고대 로마의 지도) 등 15건 이상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두 나라 모두 '기록'과 '역사'를 중시하는 문명국임을 증명합니다. 우리의 여행도, 우리의 고민도 언젠가는 끝이 납니다. 하지만 그 끝이 두 개나 있는 소시지처럼, 하나의 끝은 또 다른 시작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부디 이 아름다운 나라에서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그무틀리히(gemütlich)하게 머물다 가시길 바랍니다. Gute Reise!(즐거운 여행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