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유럽의 빵바구니(Breadbasket of Europe) 우크라이나(Ukraine)로 떠나보겠습니다. 우크라이나라는 국명은 고대 동슬라브어(Old East Slavic)로 '가장자리' 혹은 '경계 지방'을 뜻하는 단어 '크라이나(krajina)'에서 유래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최초의 동슬라브 국가 키예프 루스(Kyivan Rus, 880~1240)를 계승한 동유럽국 중 하나로, 1991년 소비에트 연방(USSR, 1922~1991)의 해체와 함께 독립하였습니다. 세계 3대 흑토(Chernozem) 지대 중 하나가 끝도 없이 펼쳐진 황금빛 밀밭의 제국(Empire of Golden Fields), 우크라이나로 떠나보시겠습니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Russia-Ukraine War, 2014~)의 종전을 기원합니다.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꺾이지 않는 자유의 의지, 볼랴(The Unconquerable Will, Volya) : 우크라이나를 설명하는 첫 번째이자 가장 강력한 키워드는 단연 '볼랴(Volya)'입니다. 흔히 '자유(自由)'로 번역되지만, 이 단어에는 단순한 신체적 구속의 부재를 넘어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강인한 '의지(意志)'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한반도 역사에서 수많은 외침에 맞서 들불처럼 일어났던 의병(義兵)들의 정신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다. 우크라이나의 국장(國章)인 '트리주브(Tryzub)'가 '볼랴(Volya)'라는 단어의 철자(В, О, Л, Я)를 형상화했다는 해석이 있을 정도로, 이 단어는 국가의 존재 이유 그 자체입니다. 광활한 스텝(Steppe) 지대에서 생존하기 위해, 그리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오스만 제국, 러시아 제국 등 주변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우크라이나인들은 피로써 '볼랴'를 쟁취해야만 했습니다.
▷ 자유인의 표상, 코사크(Cossack) : 우크라이나의 역사에서 '볼랴'를 가장 극적으로 대변하는 존재는 바로 코사크(Cossack)입니다. 15세기 말부터 18세기에 걸쳐 드니프로 강(Dnipro River) 하류의 거친 들판, 즉 '와일드 필드(Wild Fields)'를 무대로 활동했던 이 자유로운 전사 집단은 우크라이나 민족 정체성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코사크들은 단순한 도적 떼나 용병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포리자 시치(Zaporizhian Sich)라는 독자적인 요새를 중심으로, 군사 민주주의에 가까운 자치 공화국을 형성했습니다. 그들의 지도자인 헤트만(Hetman)은 선거로 선출되었으며, 모든 코사크는 평등한 권리를 가졌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현대 우크라이나인들이 권위주의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DNA로 이어졌습니다.
▷ 드니프로 로드의 메아리(Echoes of the Dnipro Road) : 2016년, 유네스코는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 지역의 코사크 노래(Cossack’s songs of Dnipropetrovsk Region)'를 긴급보호가 필요한 무형문화유산(List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in Need of Urgent Safeguarding)으로 등재했습니다. 이 노래들은 단순한 민요가 아니라, 전장에 나가는 전사의 비장함, 고향에 두고 온 연인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를 향한 갈망이 절절히 녹아 있는 역사적 기록물입니다.
▶ 생명을 잉태하는 검은 대지(The Generous Earth, ZEMLYA) : 두 번째 키워드는 '젬랴(Zemlya)'입니다. 이는 '땅', '대지', '흙'을 의미합니다.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흑토(Chernozem)의 3분의 1 이상을 보유한 세계적인 곡창 지대입니다. 비옥한 검은 흙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단순히 작물을 키우는 토양을 넘어, 생명의 원천이자 어머니와 같은 존재입니다. 이 '젬랴'에서 피어난 문화는 자연을 경외하고, 자연의 색을 사랑하며, 함께 밥을 나눠 먹는 공동체 정신으로 발현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땅은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라, 조상들의 피와 땀이 서린 신성한 공간입니다. "땅이 없으면 빵도 없고, 빵이 없으면 삶도 없다"는 그들의 오래된 믿음은, 흙을 만지고 가꾸는 행위를 통해 인간의 존엄을 확인하는 태도로 이어집니다. 이 비옥한 젬랴 위에서 피어난 두 가지 유네스코 유산을 소개합니다.
▷ 꽃으로 피어난 흙의 영혼 : 비옥한 젬랴 위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집 안으로 들이고 싶어 했습니다. 그 욕망이 예술로 승화된 것이 바로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페트리키브카 장식 그림(Petrykivka decorative painting)'입니다. 이 예술은 우크라이나 중부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 주(Dnipropetrovsk Oblast)의 작은 마을 페트리키브카(Petrykivka)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초기에는 하얀 회반죽을 칠한 집의 외벽이나 난로(pich)를 장식하기 위해 그려졌으나, 점차 식기, 가구, 악기 등 생활용품 전반으로 확대되었습니다.
▷ 고양이 털 붓의 마법, 코탸치카(The Magic of Cat Hair Brushes, Kotyachka) : 페트리키브카 그림의 가장 독창적인 특징은 도구에 있습니다. 장인들은 놀랍게도 고양이의 가슴 털로 직접 만든 붓, 일명 '코탸치카(Kotyachka)'를 사용합니다. 이 붓은 시중에서 파는 어떤 붓보다도 부드럽고 탄력이 좋아, 아주 미세한 선부터 풍성한 꽃잎까지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작고 섬세한 묘사가 필요한 부분에서 코탸치카의 진가가 발휘됩니다. 이러한 기법으로 그려진 꽃, 새, 열매 등은 실제 자연을 모방하면서도 환상적인 요소를 가미합니다. 특히 '칼리나(Kalyna, 불두화 열매)'와 '양파(Tsibula)' 모양의 꽃은 우크라이나의 번영과 가족의 행복을 상징합니다.
▶ 고난 속에 빛나는 영혼(The Deep Soul, DUSHA) : 마지막 키워드는 '두샤(Dusha)'입니다. '영혼', '마음', '정신'을 뜻하는 이 단어는 우크라이나인들의 깊은 종교성과 예술적 승화, 그리고 고난을 견뎌내는 내면의 힘을 상징합니다. 우크라이나의 대지는 수없이 짓밟혔지만, 그들의 '두샤'는 결코 정복당하지 않았습니다. 이 영혼의 힘은 찬란한 건축물과 정교한 공예품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두샤'는 단순히 종교적인 개념을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손님을 맞이할 때 빵과 소금을 내어주는 환대(Hospitality), 슬픔을 노래로 승화시키는 예술성, 그리고 불의에 맞서는 용기 모두가 이 '두샤'에서 비롯됩니다.
▷ 흙으로 빚은 영혼의 색 : 우크라이나 서부, 카르파티아(Carpathian) 산맥의 깊은 품 속에는 후츠룰(Hutsul)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산악 민족인 그들의 자유분방하고 예술적인 영혼은 201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코시우 전통 채색 도자기(Tradition of Kosiv painted ceramics)'에 담겨 있습니다. 이 도자기의 가장 큰 특징은 독특한 색채입니다. 오직 세 가지 색상, 즉 녹색(Green), 노란색(Yellow), 갈색(Brown)만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립니다. 제작 방식 또한 독창적입니다. '스그라피토(Sgraffito)' 기법을 사용하여, 흰 점토 위에 얇게 칠한 흙물을 긁어내어 무늬를 만듭니다. 그 후 세 가지 색의 유약을 입혀 구워내는데, 가마 속에서 녹색 유약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며 번지는 효과(Watercolor effect)는 코시우 도자기만의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냅니다. 흰 점토 위에 후츠룰 사람들의 일상, 사냥 모습, 종교적 의식, 그리고 민담 속의 동물들을 해학적으로 그려 넣은 이 도자기는 단순한 그릇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기록한 그림책입니다.
▶ 끝나지 않는 여정(A Journey That Never Ends) : 우리는 지금까지 볼랴(자유), 젬랴(대지), 두샤(영혼)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드니프로 강변에서 울려 퍼지는 코사크의 노래에서 우리는 단순한 음악이 아닌,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던 꺾이지 않는 자유의 의지(Volya)를 들었습니다. 페트리키브카의 화려한 꽃 그림과 보르시 한 그릇에서는 검은 흙(Zemlya)이 주는 풍요와 그것을 이웃과 나누려는 따뜻한 공동체 정신을 맛보았습니다. 그리고 키이우의 황금 돔과 코시우의 도자기에서는 숱한 고난 속에서도 신앙과 예술을 통해 자신을 지켜온 숭고한 영혼(Dusha)을 목격했습니다. 이 모든 문화유산들은 박물관 유리 진열장 속에 갇힌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의 포화 속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이 서로를 지탱하고, 무너진 건물을 다시 세우며, 미래를 꿈꾸게 하는 살아있는 힘입니다. 그들의 노래는 방공호에서 다시 불리고 있고, 그들의 보르시는 전선의 군인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