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보헤미아의 땅(Land of Bohemia), 체코 공화국(Czech Republic)으로 떠나보겠습니다. 체코란 국명은 고대 슬라브족을 이끌고 립 산(Říp Mountain)에 오른 전설적인 지도자 '프라오테츠 체흐(Praotec Čech)'에서 유래했으며, '보헤미아(Bohemia)'는 고대 켈트족의 일파 '보이족(Boii)'의 땅이란 뜻입니다. 체코는 로마네스크부터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를 거쳐 아르누보에 이르기까지 유럽 건축 양식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독보적인 문화유산 보유국으로, 우리에게는 2005년을 강타한 SBS드라마 프라하의 연인(Lovers in Praha, 2005) 촬영지로 친숙하죠. 유럽의 심장(Heart of Europe)이자 백탑(百塔)의 도시(City of a Hundred Spires), 프라하(Prague)를 품은 체키아(Czechia)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하늘이 무너져도, 땅이 꺼져도, 지구 백 바퀴를 돌아도, 내 마음은 언제나 밀루유떼(Miluju te)!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지리적 교차로를 넘어 정신의 중심이 된 '스르드체 에브로피'(Srdce Evropy: Beyond a Geographical Crossroads to a Spiritual Center) : 체코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흔히 '스르드체 에브로피(Srdce Evropy)', 즉 '유럽의 심장(Heart of Europe)'이라고 부릅니다. 이 표현은 단순히 북위 48도에서 51도, 동경 12도에서 19도 사이에 위치한다는 물리적 거리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조가응 역사적으로 신성 로마 제국(Holy Roman Empire)의 수도이자 정치적 중심지였으며, 동유럽과 서유럽을 잇는 경제적, 지질학적, 그리고 사상적 교차로(Crossroads) 역할을 해왔다는 자부심의 표현이지요. 체코는 서쪽으로는 독일, 남쪽으로는 오스트리아, 동쪽으로는 슬로바키아, 북쪽으로는 폴란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유럽의 문화적 혈류가 펌프질하듯 끊임없이 순환하는 곳입니다. 카렐 차페크(Karel Čapek, 1890~1938)와 같은 대문호는 체코를 '민주주의의 섬'이자 유럽의 모든 사상이 모여드는 거대한 광장으로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이 '심장'이라는 키워드는 체코 세계유산의 밀도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체코의 총 면적은 약 77,240 제곱킬로미터로, 대한민국 본토(약 98,500 제곱킬로미터) 보다 약 20%가량 작은 크기입니다. 인구 역시 1,060만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놀라운 점은 바로 이 아담한 국토 안에 응축된 엄청난 문화적 밀도입니다. 체코 공화국은 총 17개(2025)의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Sites)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의 17개(2025)와 동일한 수치입니다. 국토 면적이나 인구 등을 고려했을 때, 체코는 유럽에서 단위 면적당 유네스코 유산 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로 꼽힙니다.
▶ 체코인의 기발한 지혜가 담긴 '즐라테 체스케 루체'(Zlaté české ruce: The Ingenious Wisdom of Czech Golden Hands) : 체코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어떤 민족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많은 이들이 자랑스럽게 '즐라테 체스케 루체(Zlaté české ruce)', 즉 '체코의 황금 손(Czech golden hands)'이라는 표현을 꺼낼 것입니다. 이 표현은 단순히 손재주가 좋다는 의미를 넘어,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발한 임기응변으로 문제를 해결해 내는 체코인들의 창의적 엔지니어링 능력을 상징합니다. 체코의 인기 애니메이션 『패트와 매트(Pat & Mat)』에서 두 주인공이 엉뚱해 보이지만 결국에는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내는 모습은 바로 이 '즐라테 체스케 루체'의 유머러스한 반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강대국의 지배와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의 물자 부족을 겪으면서, 체코인들은 고장 난 기계를 직접 고치고 필요한 물건을 주변의 재료로 만들어 쓰는 'DIY(Do It Yourself)' 능력을 생존 본능처럼 키워왔습니다.
이 '황금 손' 정신은 체코의 전통 공예에서 빛을 발합니다. 특히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無形文化遺產)으로 등재된 '포니클라의 불어서 만든 유리 구슬 장식 제조(Handmade production of Christmas tree decorations from blown glass beads in Poniklá)'는 그 정수를 보여줍니다. 리베레츠(Liberec) 주에 위치한 작은 산간 마을 포니클라(Poniklá)에서는 19세기 말부터 유리관을 입으로 불어 얇은 구슬을 만들고, 이를 은도금한 뒤 다채로운 색을 입혀 정교한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조립하는 기술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모든 과정은 오늘날까지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철저히 수작업으로 이루어집니다. 유리를 불어 모양을 잡는 것부터 구슬을 자르고 실로 꿰어 별이나 천사 모양을 만드는 것까지, 하나의 장식품이 완성되기까지는 최소 6명의 숙련된 장인의 손길을 거쳐야 하죠.
▶ 삶의 무게를 내려놓는 마법의 단어 '포호다'(Pohoda: The Magic Word to Lay Down the Weight of Life) : 체코 여행을 하다 보면 '포호다(Pohoda)'라는 단어를 종종 듣게 됩니다. 이 단어는 영어의 'Comfort'나 'Well-being'보다 훨씬 넓고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체코 문화의 핵심적인 정서적 키워드입니다. 마음의 평화, 조화,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완벽하게 느껴지는 상태를 뜻하는 이 단어는 체코인들의 삶의 태도를 가장 잘 보여줍니다. 덴마크의 '휘게(Hygge)'나 독일의 '게뮈틀리히카이트(Gemütlichkeit)'와 유사해 보이지만, 포호다는 좀 더 개인의 내면적 안정과 소박한 즐거움을 강조하며,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거부하는 태도를 내포합니다. "To je pohoda!(이거 정말 편안하네!)"라는 말 한마디면 복잡한 세상사도 잠시 잊을 수 있지요. 체코인들에게 이 포호다를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은 바로 펍(Hospoda, Pub)입니다.
체코는 전 세계에서 1인당 맥주 소비량이 가장 많은 국가로, 2021년 기준 연간 143.3리터에 달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체코인들에게 맥주는 단순히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 아닙니다. 퇴근 후 동네 펍에 들러 '슈탐가스트(Štamgast, 단골손님)' 테이블에 앉아 이웃과 대화를 나누거나, 혼자 조용히 신문을 읽으며 맥주 거품을 바라보는 시간 자체가 포호다의 완성입니다. 맥주잔을 부딪치며 나누는 이야기는 정치, 사회, 철학을 넘나들며, 이 공간은 일종의 '평민들의 살롱' 역할을 합니다. 최근 체코 문화부는 '체코 맥주 문화(Czech beer culture)'를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며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맥주 양조 기술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공동체의 유대감과 사회적 가치를 인정한 결과입니다.
▶ 시간이 멈춘 듯한 평온 속에서 마주하는 내일의 희망(Facing the Hope of Tomorrow in the Tranquility Where Time Seems to Stand Still) : 지금까지 우리는 '스르드체 에브로피(Srdce Evropy)'라는 지리적·건축적 자부심부터, '즐라테 체스케 루체(Zlaté české ruce)'로 대변되는 창의적 근면성, 그리고 '포호다(Pohoda)'라는 단어 속에 녹아든 삶의 여유와 치유의 철학까지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체코 공화국은 인구 천만의 작은 나라지만, 그 문화적 밀도와 깊이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신성 로마 제국의 영광과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 나치 독일의 점령과 공산주의의 압제라는 격동의 역사를 거치면서도, 그들은 결코 자신들의 언어와 예술, 그리고 웃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고난의 시간들을 켜켜이 쌓아 프라하의 아름다운 골목길을 만들고, 깨지기 쉬운 유리로 영원히 빛나는 구슬을 빚으며, 시원한 라거 맥주 한 잔에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녹여냈습니다.
한국과 체코는 유라시아 대륙의 양 끝에 위치하고 있지만,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고유의 문화를 지켜내기 위해 분투해 온 역사를 공유합니다. 우리가 안동(安東)의 하회탈춤에서 해학을 보듯 그들은 인형극에서 자유를 보았고, 우리가 정성 어린 천연 염색 옷감에서 자연을 느끼듯 그들은 모드로티스크의 푸른 무늬에서 대지의 평온을 찾았습니다. 한국의 '장인 정신(匠人精神)'과 체코의 '황금 손'은 서로 다른 재료를 다루지만, 그 속에 담긴 혼은 쌍둥이처럼 닮아 있습니다. 이러한 서로의 문화적 자산에 대한 존중과 이해는 앞으로 두 나라가 더욱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는 튼튼한 다리가 되어줄 것입니다. "Kolik jazyků znáš, tolikrát jsi člověkem."(As many languages you know, so many times you are a human being.)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이 곧 새로운 시각과 자아를 얻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