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아드리아해의 진주(Pearl of the Adriatic), 크로아티아(Croatia)로 떠나보겠습니다. 전 세계 남성들의 필수품 넥타이(Necktie)가 30년 전쟁(Thirty Years' War, 1618~1648) 당시 크로아티아 용병들이 목에 두른 스카프, ‘크라바트(Cravat)’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크로아티아란 국명은 6~7세기경 발칸반도로 이주해 온 남슬라브족 크로아트인(Hrvati)에서 유래했으나, 크로아티아인들은 자국을 ‘흐르바츠카(Hrvatska)’라 부릅니다. 크로아티아 국가 도메인이 .cr(코스타리카)이 아니라, .hr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전 세계를 열광시킨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 2011~2019) 속 ‘킹스 랜딩(King's Landing)’의 실제 무대! 지중해의 숨은 보석(Hidden Gem of the Mediterranean), 크로아티아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돌과 땀으로 엮은 시간의 그물망(A Web of Time Woven from Stone and Sweat), 수호지드(Suhozid, Dry Stone Wall) : 크로아티아의 달마티아(Dalmatia) 해안이나 이스트라(Istria) 반도를 달리다 보면, 언덕과 들판을 끝없이 가로지르는 돌담의 행렬을 마주하게 됩니다. 마치 대지를 거대한 바둑판 삼아 누군가 신의 한 수를 둔 것처럼 기하학적인 무늬를 그리며 뻗어 나갑니다. 이것이 바로 크로아티아 풍경의 DNA, ‘수호지드’입니다.
▷ 아드리아의 돌과 제주의 돌(Adriatic Stone and Jeju Stone) : 이쯤 되면 한국의 여행자라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풍경이 있을 겁니다. 바로 바람과 돌의 섬, 제주도의 ‘밭담’입니다. 제주의 밭담 역시 척박한 화산 지형을 개간하며 나온 돌로 쌓은 건식 석축으로, 밭의 경계를 나누고 흙의 유실을 막으며 거센 바람을 막아주는 등 수호지드와 놀랍도록 유사한 목적을 가집니다. 그 총 길이가 무려 22,000 킬로미터에 달한다고 하니, 그 규모 또한 경이롭습니다. 하지만 두 돌담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하는데, 바로 돌의 재질입니다. 크로아티아의 수호지드는 퇴적암인 석회암으로, 비교적 납작하고 각진 형태가 많습니다. 반면 제주의 밭담은 화산암인 현무암으로, 검고 구멍이 많으며 둥글둥글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 지질학적 차이가 건축 기술과 미학, 나아가 그 안에 담긴 철학까지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크로아티아의 석회암은 정교하게 맞물려 ‘돌로 짠 레이스(stone lace)’ 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섬세하고 치밀한 벽을 만들 수 있게 했습니다. 이는 척박한 자연에 인간의 질서를 꼼꼼하게 새겨 넣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반면, 제주의 현무암 밭담은 일부러 구멍을 내어 쌓습니다. 이 구멍으로 바람이 통과하게 만들어, 담이 바람의 힘에 맞서기보다 슬쩍 흘려보내며 스스로를 지키도록 한 것입니다. ‘약점’을 ‘강점’으로 승화시킨 놀라운 지혜죠. 거칠고 검은 돌담이 구불구불 끝없이 이어진 모습은 ‘흑룡만리(黑龍萬里)’라는 장대한 은유를 낳았습니다. 자연을 길들이려 한 크로아티아의 의지와 자연과 더불어 살려 한 제주의 지혜가 돌담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입니다.
▶ 목에 맨 작은 깃발, 크라바타(The Small Flag Tied Around the Neck, Kravata) : 오늘날 전 세계 비즈니스맨의 옷장을 점령하고, 격식 있는 자리의 상징이 된 넥타이. 이 작은 천 조각이 크로아티아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넥타이는 크로아티아가 세계에 선물한 가장 성공적이고도 가장 비밀스러운 문화유산입니다.
▷ 30년 전쟁의 멋쟁이들 : 크라바타의 탄생(The Dandies of the Thirty Years' War : The Birth of the Kravata) : 이야기는 17세기 유럽을 피로 물들인 30년 전쟁(Thirty Years' War, 1618~1648)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프랑스 군에 고용된 크로아티아 용병들은 용맹함으로 명성이 자자했는데, 이들의 군복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목에 멋스럽게 매듭지어 두른 스카프였습니다. 이 스카프는 옷깃을 여미고, 전투 중 땀을 닦거나 상처를 감싸는 등 실용적인 목적도 있었지만, 파리 사람들의 눈에는 그 무엇보다 세련된 장식품으로 보였습니다. 특히 패션에 민감했던 프랑스의 왕 루이 13세(Louis XIII)가 이 스타일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크로아티아 용병들의 스카프를 왕실 패션으로 채택했고, 이는 곧 당시 유행하던 뻣뻣하고 거추장스러운 레이스 칼라(ruffled collar)를 대체하며 프랑스 귀족 사회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됩니다. 뒤를 이은 어린 루이 14세(Louis XIV)가 1646년경 레이스로 만든 크라바타를 착용하면서, 이 새로운 목 장식은 명실상부한 권위와 품격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 "흐르바트"에서 "크라바트"로 : 이름에 담긴 역사("Hrvat" to "Cravate" : A History in a Name) : 크라바타의 기원이 크로아티아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그 이름 자체에 있습니다. 프랑스어 ‘크라바트(cravate)’는 ‘크로아티아인’을 뜻하는 크로아티아어 ‘흐르바트(Hrvat)’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당시 프랑스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H’ 소리를 피해 ‘크르바트(Krvat)’라고 부르던 것이 오늘날의 ‘크라바트’로 굳어진 것입니다. 이 언어적 흔적은 유럽 전역에 남아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크라바테(Krawatte)’, 이탈리아에서는 ‘크라바타(Cravatta)’, 스페인에서는 ‘코르바타(Corbata)’로 불리며 그 뿌리가 크로아티아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 물이 빚어낸 살아있는 풍경, 세드라(A Living Landscape Sculpted by Water, Sedra) : 크로아티아의 심장부에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한 마법의 공간이 있습니다. 1979년 크로아티아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Plitvice Lakes National Park)이 바로 그곳입니다. 에메랄드빛 호수와 수백 개의 폭포가 빚어내는 비현실적인 풍경의 비밀, 그것이 바로 세 번째 열쇠 ‘세드라’입니다.
▷ 거꾸로 흐르는 시간 : 닳지 않고 자라나는 풍경(Time in Reverse : A Landscape that Grows, Not Erodes) : 세드라(또는 투파, tufa)는 물에 녹아 있던 석회 성분이 굳어져 만들어진 다공성 암석, 즉 석회화 퇴적층을 말합니다. 플리트비체의 핵심은 바로 이 세드라가 댐과 같은 ‘장벽(barrier)’을 만들어 16개의 계단식 호수와 폭포를 형성했다는 점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풍경이 침식으로 깎여나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보통 그랜드 캐니언처럼 장구한 세월에 걸친 침식 작용이 자연의 걸작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플리트비체는 그 반대입니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후 약 6,000~7,000년 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비교적 젊은 지형이며, 지금도 1년에 약 1~3센티미터씩 세드라 장벽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닳아 없어지는 풍경이 아니라, 스스로를 창조하고 더해가는 ‘살아있는 풍경’인 것입니다.
▷ 피로 물든 부활절 : 상처와 치유의 땅(Bloody Easter : A Land of Wounds and Healing) : 하지만 이 천상의 풍경에도 현대사의 깊은 상처가 새겨져 있습니다. 1991년 3월 31일 부활절 일요일, 이곳에서 크로아티아 독립전쟁의 첫 총성이 울렸습니다. ‘플리트비체 피의 부활절(Krvavi Uskrs na Plitvicama)’이라 불리는 이 사건으로 크로아티아 경찰 요십 요비치(Josip Jović)가 전사하며 전쟁의 첫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플리트비체는 1995년까지 세르비아계 반군에게 점령당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이 빨치산의 은신처가 되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투쟁의 역사가 펼쳐졌던 것처럼, 플리트비체 역시 인간의 갈등이 할퀴고 간 기억을 품고 있는 땅입니다. 그러나 지금 플리트비체에서 전쟁의 흔적을 찾기란 어렵습니다. 물은 변함없이 흐르고, 세드라는 멈추지 않고 자라나며, 생명은 계속해서 새로운 터전을 일굽니다.
▶ 수호지드, 크라바타, 세드라. 이제 이 세 개의 열쇠는 독자 여러분의 손안에 있습니다. 척박한 땅에서 걷어낸 돌로 삶의 터전을 일군 끈기(수호지드), 목에 두른 작은 스카프 하나로 세계의 패션을 바꾼 미적 감각(크라바타), 그리고 물과 미생물의 합창으로 살아있는 풍경을 빚어내는 자연과의 교감(세드라). 이 세 가지 이야기 속에는 공통적으로 흐르는 크로아티아의 정신이 있습니다. 바로 평범하고 작은 것들로부터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을 창조해내는 인내와 지혜입니다. 크로아티아에는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Zrno po zrno pogača, kamen po kamen palača(Grain by grain, a cake, stone by stone, a palace).” “한 알 한 알 모아 빵을 만들고, 돌 하나하나 쌓아 궁전을 짓는다”는 뜻입니다. 작은 노력들이 모여 위대한 결과를 이룬다는 이 말처럼, 크로아티아는 거대한 힘이 아니라 꾸준한 인내로 자신의 역사를, 문화를, 그리고 아름다움을 쌓아 올린 나라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크로아티아 여행이 그 위대한 인내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잊지 못할 여정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도비덴냐!(Doviđen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