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동서양의 문명이 뜨겁게 포옹하는 형제의 나라(Brother's Country), 튀르키예(Türkiye)로 떠나보겠습니다. 튀르키예란 국명은 튀르크(Türk)와 접미사 이예(iye)가 결합된 것으로 '튀르크인의 땅(Land of the Turks)'을 의미합니다. 2022년 국제연합(UN)의 공식 승인을 거쳐, 칠면조를 뜻하는 영어 단어 '터키(Turkey)' 대신 '용맹한'이라는 뜻을 지닌 '튀르크'의 자부심을 담아 '튀르키예'로 국호를 바로잡았습니다. 튀르키예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아나톨리아(Anatolia, 태양이 떠오르는 곳) 반도를 무대로 히타이트부터 고대 그리스, 로마, 비잔틴, 그리고 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고스란히 간직한 '지붕 없는 박물관(Open Air Museum)'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네 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병한 혈맹(Blood Alliance)이자, 고대와 현대, 기독교와 이슬람이 공존하는 모자이크(Mosaic)의 땅, 튀르키예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수만 년의 시간이 빚어낸 문명의 층위, 센테즈(Sentez: The Multi-Layered Civilization) : 튀르키예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가슴에 새겨야 할 단어는 바로 '센테즈(Sentez, 綜合)'입니다. 이 말은 서로 다른 요소들이 합쳐져 새로운 통일체를 이룬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튀르키예의 역사는 그 자체가 거대한 센테즈의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나톨리아 반도는 신석기 시대부터 히타이트, 프리기아, 리디아, 그리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거쳐 비잔틴(Byzantine)과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 1299~1922)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의 주역들이 끊임없이 교체된 땅입니다. 하지만 튀르키예인들은 앞선 문명을 파괴하고 지우는 대신, 그 유산 위에 자신의 색깔을 덧입힘으로써 인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다층적인 문화를 완성했습니다. 이러한 센테즈 정신의 정수를 가장 완벽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에페스(Ephesus, 2015)입니다. 기원전 7,000년경 신석기 시대의 추쿠리치 퓌위크(Cukurici Mound)에서 시작된 이 도시는 지질학적 변화로 인해 해안선이 뒤로 밀려날 때마다 도시의 위치를 옮겨가며 끈질기게 생존해왔습니다.
▶ 신이 보낸 손님은 왕보다 귀하다, 미사피르페르베를리크(Misafirperverlik: The Divine Guest is Greater Than the King) : 두 번째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튀르키예만의 특징은 '미사피르페르베를리크(Misafirperverlik, 歡待)'입니다. 이 말은 손님을 뜻하는 '미사피르(Misafir)'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을 의미하는 '페르베르(Perver)'가 결합된 단어로, 직역하면 '손님을 극진히 사랑하는 마음'이 됩니다. 튀르키예 사람들에게 환대는 단순한 친절이나 예의를 넘어선 일종의 신성한 의무(義務)와도 같습니다. 아나톨리아의 척박한 땅에서 살아온 이들은 예부터 "문 앞에 서 있는 손님은 신이 보내주신 귀한 선물"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처음 본 이방인일지라도 "탄르 미사피리(Tanrı Misafiri, 신이 보내신 손님)"라고 부르며 자신의 집에서 가장 좋은 자리와 가장 맛있는 음식을 기꺼이 내어줍니다.
▷ 이러한 환대의 문화를 가장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매개체가 바로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튀르키예 커피 문화와 전통(Turkish coffee culture and tradition)'입니다. 16세기 이스탄불에 첫 커피하우스(Kıraathane, 智慧의 집)가 문을 연 이래, 커피는 튀르키예인의 사교와 소통을 상징하는 음료가 되었습니다. 튀르키예식 커피는 잘 볶은 원두를 미세한 가루로 만들어 '제즈베(Cezve)'라는 전용 용기에 넣고 천천히 끓여내는데, 이때 생기는 풍부한 거품은 주인(主人)의 정성을 상징합니다. 커피를 다 마신 후 잔을 거꾸로 엎어 남은 찌꺼기의 모양으로 운세를 점치는 '타세오그라피(Tasseography)'는 손님과 주인이 더 오랜 시간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하는 아름다운 핑계가 되어줍니다.
▷ 하지만 그 표현 방식에는 튀르키예만의 독특한 결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튀르키예의 인접국인 이란에는 '타아로프(Ta'arof, 에티켓)'라는 정교한 예법이 있는데, 이는 체면을 중시하여 진심과는 다른 사양을 반복하는 다소 복잡한 형식을 띠기도 합니다. 반면 튀르키예의 환대는 상대적으로 더 투박하면서도 즉각적입니다. 길을 가던 나그네가 밥때를 맞추면 주인은 묻지도 않고 자리를 내어주며, 설령 그가 원수일지라도 내 집에 발을 들인 이상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아나톨리아의 기사도 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지요. 또한, 튀르키예 커피를 마실 때 잔 옆에 반드시 놓이는 물 한 잔은 손님이 배가 고픈지 아닌지를 묻지 않고 배려하기 위한 소리 없는 장치입니다. 손님이 커피보다 물을 먼저 마시면 주인이 눈치껏 식사를 준비하는 이 세심한 배려는 튀르키예식 환대가 얼마나 성숙한 인간 존중의 철학을 담고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오늘날 튀르키예를 여행하다 보면 이름 모를 시골 마을에서 처음 본 노인이 건네는 '차이(Çay, 튀르키예 홍차)' 한 잔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여행자의 국적이나 종교, 사회적 지위를 묻지 않습니다. 그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한 인간이 편안히 쉬어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지요.
▶ 춤추는 수행자가 전하는 사랑의 메시지, 호슈괴뤼(Hoşgörü: The Whirling Dervish’s Message of Universal Love) : 튀르키예를 상징하는 마지막 키워드는 '호슈괴뤼(Hoşgörü, 寬容)'입니다. 이 말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인정한다는 의미로, 단순한 참을성(Tolerance)보다는 훨씬 더 능동적이고 따뜻한 포용력을 뜻합니다. 튀르키예의 이러한 관용 정신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바로 13세기의 신비주의 시인이자 철학자, 그리고 인류의 위대한 스승인 메블라나 잘랄웃딘 루미(Mevlana Jalaluddin Rumi, 1207~1273)입니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 지역에서 태어나 몽골의 침입을 피해 서쪽으로 이동하여 튀르키예의 코냐(Konya)에 정착한 그는, 인종과 종교의 벽을 허물고 보편적 인류애를 노래한 관용의 화신(化身)이었습니다.
▷ 루미의 가르침을 가장 시각적으로 구현한 유산이 바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메블레비 세마 의식(Mevlevi Sema ceremony)'입니다. 이 의식에서 수행자들인 데르비시(Dervish)들은 하얀 치마와 같은 옷을 입고 높은 갈색 모자를 쓴 채 음악에 맞춰 제자리를 회전합니다. 수행자의 모자는 자신의 아집(我執)을 묻는 묘비를, 하얀 옷은 자아의 수의를 의미하는데, 이는 자신의 에고를 죽이고 신과 하나가 되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지요. 수행자가 한 손은 하늘을 향해 펼치고 다른 한 손은 땅을 향해 내리며 빙글빙글 도는 모습은 하늘로부터 받은 신의 사랑과 축복을 땅 위의 모든 생명에게 차별 없이 전하겠다는 숭고한 약속입니다. 이 춤에는 그 어떤 차별도 없습니다. 오직 우주(宇宙)의 섭리에 몸을 맡긴 채 만물을 사랑으로 품으려는 거대한 정신의 소용돌이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 튀르키예의 '호슈괴뤼(Hoşgörü)'는 역사적(歷史的)으로도 매우 놀라운 성취를 보여주었습니다. 중세 시대 유럽이 종교적 박해와 마녀사냥으로 몸살을 앓을 때, 튀르키예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은 피정복 민족의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는 '밀레트(Millet)' 제도를 운영했습니다. 그리스 정교회 신자, 아르메니아 기독교도, 유대인들이 각자의 신앙을 지키며 이스탄불의 하늘 아래서 공존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관용의 정신이 제국의 통치 철학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늘날 다문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단순히 타인의 존재를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다름이 우리 사회를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자양분임을 인정하는 성숙한 태도야말로 튀르키예가 인류에게 건네는 가장 값진 선물입니다.
▶ 경계를 허물고 마음을 여는 여행, 튀르키예가 우리에게 건네는 마지막 지혜(The Journey to Dissolve Borders and Open Hearts, The Last Wisdom of Türkiye) : 지금까지 우리는 '종합(Sentez)', '환대(Misafirperverlik)', 그리고 '관용(Hoşgörü)'이라는 세 가지 보물 같은 키워드를 통해 튀르키예라는 거대한 문명의 숲을 거닐어 보았습니다. 튀르키예는 단순히 지정학적으로 아시아와 유럽의 끝자락에 걸쳐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들은 인류가 수만 년 동안 쌓아 올린 수많은 문명의 층위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품어 안았으며, 낯선 이방인을 신의 이름으로 극진히 대접하고, 다름을 틀림으로 보지 않는 숭고한 정신적 성숙을 이루어냈습니다. 이러한 튀르키예의 가치는 유네스코가 인정한 수많은 세계유산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오늘날 갈등과 분쟁으로 얼룩진 지구촌에 평화와 공존이라는 가장 절실한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습니다.
▷ 한국과 튀르키예는 비록 대륙의 양 끝에 위치하여 지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불국사와 석굴암이 보여주는 고도의 예술적 종합이나 김장 문화에 담긴 나눔의 정, 그리고 연등회의 화합 정신은 튀르키예의 그것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두 나라 모두 시련의 역사 속에서도 고유한 정신적 가치를 잃지 않고 타인과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을 견지해왔다는 사실은, 우리가 왜 서로를 '형제의 나라'라 부르는지를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에페스의 대리석 길 위에서, 튀르키예 커피의 진한 향기 속에서, 그리고 세마 수행자의 부드러운 회전 속에서 우리는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조화의 경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Bir fincan kahvenin kırk yıl hatırı vardır.(A cup of coffee commits one to 40 years of friendship.)” 한 잔의 커피에는 40년의 정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