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대항해시대의 개척자, 포르투갈(Portugal)로 떠나보겠습니다. 포르투갈이란 국명은 고대 로마 시대에 도루강(Douro River) 하구에 있던 항구 도시 '포르투스 칼레(Portus Cale)'에서 유래했습니다. 라틴어로 '항구'를 뜻하는 '포르투스(Portus)'와 켈트족어에서 기원한 '칼레(Cale)'가 합쳐진 이름으로, '칼레의 항구'라는 뜻입니다. 포르투갈은 스페인(Spain)과 이베리아반도(Iberian Peninsula)를 공유하지만, 지중해가 아닌 대서양만을 개척한 해양 제국입니다. 특유의 애달픈 그리움을 노래하는 파두(Fado)부터 바다의 영광을 돌에 새긴 마누엘리노(Manuelino) 건축, 그리고 도시 전체를 푸른 도화지로 만드는 매혹적인 타일 예술 아줄레주(Azulejo)까지……. “O mar com fim pode ser grego ou romano: o mar sem fim é português.” 끝이 있는 바다는 그리스나 로마의 것일 수 있지만, 끝없는 바다는 포르투갈의 것이다. 대항해시대의 요람(Cradle of the Age of Discovery)이자 푸른 타일의 갤러리(Gallery of Blue Tiles), 포르투갈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영혼의 심연에 울려 퍼지는 짙은 그리움, 사우다드(Saudade, the Deep Longing Echoing in the Abyss of the Soul) :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Lisbon)의 오래된 거리를 걷다 보면, 특히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알파마(Alfama)나 모라리아(Mouraria) 같은 서민들의 달동네 좁은 골목길에서 구슬프면서도 어딘가 한없이 초연한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포르투갈의 영혼이라 불리는 전통 음악, 파두(Fado)입니다.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人類無形文化遺産)으로 당당히 등재된 파두는 단순한 대중음악의 한 장르를 넘어, 포르투갈인들의 삶과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가장 핵심적인 정서인 '사우다드(Saudade)'를 청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 낸 예술적 결정체입니다.
▷ 19세기 초반, 리스본의 항구 주변과 선술집에서 가난한 노동자들과 선원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태동한 이 음악은, 처음에는 이별의 고통과 바다에서의 험난한 운명, 그리고 삶의 애환을 달래기 위한 소박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파두는 리스본의 도시적 정체성을 대표하는 세련되고 존중받는 예술 형식으로 진화하였고, 오늘날에는 세대와 세대를 잇는 문화적 교량이자 포르투갈의 강력한 국가적 자부심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파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근간이 되는 감정인 '사우다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사우다드는 영어나 한국어 등 다른 언어로는 일대일로 완벽하게 번역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포르투갈만의 독특하고도 복합적인 단어입니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슬퍼하는 우울함이나 멜랑콜리(Melancholy)를 넘어섭니다.
▶ 대항해시대의 영광을 돌에 새기다, 마누엘리노(Manuelino, Carving the Glory of the Age of Discovery into Stone) : 포르투갈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두 번째 키워드는 세계 건축사(建築史)를 통틀어 오직 포르투갈이라는 영토 내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지극히 독창적이고 환상적인 건축 양식, 바로 '마누엘리노(Manuelino)'입니다.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초까지, 인도로 향하는 새로운 바닷길을 개척하며 향신료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던 대항해시대의 절대적인 정점, 포르투갈의 제14대 국왕이었던 마누엘 1세(Manuel I, 1469~1521)의 통치기에 만개한 이 건축 양식은 단순한 예술적 사조를 넘어섭니다. 이는 전인미답의 대양을 정복한 한 해양 제국의 폭발적인 자신감과 국가적 정체성이 단단한 돌로 굳어져 영원성을 부여받은 찬란한 결정체라 할 수 있습니다.
▷ 기본적으로 유럽 전역에서 유행하던 후기 고딕(Late Gothic) 양식을 구조적 뼈대로 삼고 있으면서도, 새롭게 유입되던 르네상스(Renaissance)의 요소와 과거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했던 이슬람 무어(Moorish) 양식의 이국적인 느낌이 혼합된 마누엘리노 양식은 그 장식적 모티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특징을 보여줍니다. 바로 바다와 항해, 그리고 미지의 세계에서 발견한 자연물에서 영감을 받은 요소들을 건축물의 겉과 속에 극단적으로 화려하게 과시한다는 점입니다.
▷ 굵게 밧줄처럼 꼬인 기둥, 거친 파도와 산호초, 진주와 조개껍데기, 심연의 바다 괴물, 배를 정박할 때 쓰는 무거운 닻, 그리고 포르투갈 해양 제국의 영토 확장을 상징하는 혼천의(Armillary sphere)와 항해를 후원했던 그리스도 기사단(Order of Christ)의 붉은 십자가 등 해양을 상징하는 역동적인 모티프들이 건축물의 파사드와 기둥, 창틀과 천장의 아치 형태를 생동감 넘치게 감싸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돌로 빚어낸 한 편의 거대한 항해 일지와도 같습니다.
▶ 시간과 역사를 빚어낸 푸른빛의 마법, 아줄레주(Azulejo, the Blue Magic Forged by Time and History) : 포르투갈의 영토를 북쪽에서 남쪽까지 여행하다 보면, 장엄한 성당의 웅장한 파사드(Facade), 화려한 궁전의 고즈넉한 회랑, 분주한 기차역의 넓은 대합실은 물론이거니와 길거리의 평범한 식당과 서민들의 소박한 가정집 외벽까지, 온통 푸른색과 흰색이 눈부시게 어우러진 매끄러운 타일로 뒤덮여 있는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풍경을 마주하게 됩니다. 도시 전체를 갤러리로 만들어버리는 이것이 바로 포르투갈의 시각적 정체성을 대표하는 세 번째 키워드, '아줄레주(Azulejo)'입니다. 아줄레주는 단순히 빈 벽을 채우는 평범한 장식용 타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포르투갈인들이 외부 세계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문화를 융합해 낸 결과물이며, 자신들의 장구한 역사를 한 폭의 그림으로 기록하고 삶의 깊은 철학을 일상적인 공간에 담아내는 훌륭한 예술적 캔버스이자, 기후적 특성에 맞춘 매우 실용적인 건축 마감재이기도 합니다.
▷ 아줄레주라는 단어는 본래 '작고 광택이 나는 매끄러운 돌'을 뜻하는 아랍어 '알 질리즈(al-zillīj)'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13세기 무렵 이베리아반도의 남부를 장악했던 무어(Moor)인들로부터 처음 전해진 이 타일 제작 기술은, 초기만 하더라도 우상 숭배를 엄격히 금지하는 이슬람교의 교리에 따라 인물이나 동물의 묘사를 배제하고 잎사귀나 별 모양 같은 복잡한 기하학적 문양(알리카타도 및 무데하르 양식)을 무한히 반복하여 정렬하는 추상적인 형태에 머물렀습니다. 이 시기까지만 해도 타일은 부유한 이슬람 왕족이나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역 권력자들의 전유물에 가까웠습니다.
▷ 하지만 16세기를 지나 이 기술이 포르투갈로 본격적으로 넘어가 정착하면서 아줄레주는 그야말로 극적이고 혁명적인 진화를 겪게 됩니다. 가톨릭 국가였던 포르투갈인들은 이슬람의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패턴이라는 좁은 틀에서 과감히 벗어나, 타일 표면에 인간의 삶과 신앙을 구체적으로 그려 넣기 시작했습니다. 가톨릭 성인들의 성스러운 생애와 기적, 대항해시대를 개척한 탐험가들의 스펙터클한 영웅담, 고대 그리스 로마의 신화, 그리고 당시 귀족 사회의 우아한 일상과 풍속 등 구체적인 서사(敍事)를 커다란 타일 패널 위에 한 편의 거대한 벽화처럼 그려 넣은 것입니다.
▶ 파도를 넘어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는 발걸음(Footsteps Stepping Beyond the Waves to New Horizons) : 지금까지 우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무형문화유산, 기록유산이라는 객관적이고 세계적인 거울을 통해 포르투갈이라는 작지만 위대한 나라의 영혼을 떠받치고 있는 세 가지 강력한 기둥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보았습니다. 잃어버린 과거와 떠나간 이들을 향한 처연하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리움의 서정인 '사우다드', 미지의 바다를 정복하고 지구의 절반을 호령했던 두려움 없는 도전의 역사적 앙금인 '마누엘리노', 그리고 외부의 이질적인 문화를 배척하지 않고 부드럽게 흡수해 자신들만의 찬란한 이야기로 푸르게 구워낸 도자 예술 '아줄레주'. 얼핏 보면 감정, 건축, 그리고 공예라는 각기 다른 영역의 산물인 듯한 이 세 가지 키워드는, 포르투갈의 역사를 관통하며 결국 단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대서양'이라는 통제 불가능한 거대한 자연 앞에 선 인간의 작고 연약함, 그리고 그 치명적인 두려움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배를 띄우고 미지의 지평선을 향해 나아가고자 했던 불굴의 의지와 용기입니다.
▷ 비록 아프리카와 아시아, 브라질을 아우르던 대항해시대의 눈부신 영광은 수백 년의 역사 속으로 조용히 저물었고 한때 세계의 바다를 호령했던 제국의 권세는 과거의 페이지로 넘어갔지만, 포르투갈 사람들은 결코 현재를 비관하는 패배주의에 빠지거나 잃어버린 과거만을 쓰라리게 연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파두의 서글프고 아름다운 선율로 서로의 고독한 마음을 따뜻하게 달래며, 아줄레주로 화사하게 장식된 일상의 거리를 활기차게 걸어 나와, 선조들의 영광이 아로새겨진 마누엘리노 양식의 하얀 성벽 너머 저 넓게 펼쳐진 대서양의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묵묵히, 그리고 희망차게 내일의 새로운 항해를 준비합니다. “Quem vai ao mar avia-se em terra.(He who goes to the sea prepares on land.)” 바다로 가는 자는 육지에서 채비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