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마야 문명의 심장(Heart of the Maya World), 과테말라(Guatemala)로 떠나보겠습니다. 과테말라란 국명은 나우아틀어(Nahuatl)로 '나무가 많은 곳(place of many trees)'을 뜻하는 '콰우흐테말란(Cuauhtēmallān)'에서 유래했습니다. 과테말라는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후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Federal Republic of Central America, 1823~1841)을 거쳐 현재의 독립국이 되었으며, 인구의 절반 이상이 마야인의 혈통을 이어받아 20여 개의 원주민 언어가 공존하는 독특한 문화적 모자이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안개에 싸인 정글 속에서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내는 티칼 국립공원(Tikal National Park)의 거대한 피라미드부터, 1773년 대지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안티구아 과테말라(Antigua Guatemala)에 이르기까지, 이곳은 마야 문명(Maya civilization )의 위대한 발자취가 살아 숨 쉬는 박물관입니다. 화산이 품은 에메랄드빛 아티틀란 호수(Lake Atitlán)를 찾아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차핀: 상처를 꿰매어 지은 정체성의 태피스트리(Chapín: The Tapestry of Identity Woven by Stitching Wounds) : 과테말라의 첫 번째 키워드는 단연 ‘차핀(Chapín)’입니다. 본래 이 단어는 과거 스페인 사람들이 즐겨 신던 창이 두꺼운 특정 형태의 구두, 혹은 식민지 시절 유럽 본토 출신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태어난 이들을 다소 얕잡아보는 의미로 사용되던 비속어(Slang)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구한 시간이 흐르면서 과테말라 사람들은 이 단어를, 스스로를 지칭하는 가장 자랑스럽고 친근한 대명사로 탈바꿈시키는 놀라운 언어적 전복을 이루어냈습니다. 공식적인 스페인어 단어인 과테말테코(Guatemalteco)가 여권이나 관공서의 서류상에만 존재하는 건조한 명칭이라면, 차핀은 과테말라 사람들의 핏속에 도도하게 흐르는 유쾌함, 강인함, 그리고 공동체를 향한 뜨거운 유대감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차핀의 가장 핵심적인 정체성은 바로 ‘혼합(Fusion)’과 ‘공존’에 있습니다. 이웃 국가인 멕시코의 아스텍(Aztec) 제국이나 페루의 잉카(Inca) 제국과 달리, 과테말라에 뿌리내린 마야 문명은 단일하고 거대한 중앙집권적 제국(中央集權的帝國)을 형성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강력하고 독립적인 여러 도시국가(City-state)들로 나뉘어 느슨한 연맹 형태를 유지했습니다. 이러한 지정학적, 정치적 분절성은 16세기 스페인 식민 지배 당시, 정복자들과 원주민 간의 일률적인 지배-피지배 관계를 넘어서서 끊임없는 국지적 마찰, 복잡다단한 전략적 동맹, 그리고 점진적이고 다층적인 동화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과테말라 특유의 원주민 문화와 유럽의 가톨릭(Catholic) 문화가 거미줄처럼 정교하게 얽히고설킨 오늘날의 라디노(Ladino) 문화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 쿸스: 만물에 깃든 우주적 생명력의 기원(K'ux: The Origin of Cosmic Vitality Dwelling in All Things) : 과테말라 사람들의 내면 깊은 곳을 이해하기 위한 두 번째 핵심 키워드는 마야어파 언어들, 특히 퀴체(K'iche')어와 카크치켈(Kaqchikel)어 등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며 핵심적인 은유로 사용되는 단어 ‘쿸스(K'ux)’입니다. 쿸스는 스페인어나 영어로 번역할 때 일차적으로 '심장(Heart)'이나 '가슴'을 뜻하지만, 마야인들의 형이상학(Metaphysics, 존재의 근본과 세계의 궁극적 원리를 탐구하는 철학)적 세계관 안에서는 만물의 본질, 우주의 중심, 조상의 영혼, 그리고 대자연을 관통하는 생명력을 포괄하는 매우 심오하고 범신론적인 영적 개념입니다.
서구의 근대적 사고방식과 달리 마야인들은 단순히 피가 흐르는 인간이나 동물에게만 쿸스가 존재한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구름이 걸린 험준한 산맥과 고요한 호수, 타오르는 불과 흩날리는 바람, 심지어 고대 선조들이 남긴 성스러운 문자나 어머니들이 한 땀 한 땀 짜낸 낡은 직물(Textile) 속에도 쿸스가 깃들어 맥동하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대자연을 함부로 파괴하거나 조상들의 기록을 훼손하는 것은 끔찍한 금기였습니다. 이러한 쿸스의 철학은 수천 년 전의 유물로 박제된 것이 아니라, 과테말라 출신의 위대한 현대 지성인들의 삶과 저작 속에서도 변함없이 맥동하며 세상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1992년 노벨 평화상(Nobel Peace Prize)을 수상한 리고베르타 멘추 툼(Rigoberta Menchú Tum, 1959~)은 마야 계통의 퀴체족 출신으로, 과테말라 내전 당시 부모와 형제가 군사 정권에 의해 잔혹하게 고문당하고 학살당하는 뼈아픈 참극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폭력과 증오의 늪에 매몰되지 않고, 국가 폭력에 억압받는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의 인권과 사회 정의를 위해 국제 사회에 호소하며 평화로운 방식으로 처절하게 투쟁했습니다. 유네스코 친선대사(Goodwill Ambassador)로도 활동하며 전 세계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가 된 그녀의 위대한 저항의 밑바탕에는, 쿸스의 숭고한 정신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마야의 신화적 세계관과 초현실적인 상상력을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마술적 리얼리즘(Magic Realism)으로 결합하여 1967년 노벨 문학상(Nobel Prize in Literature)을 수상한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 로살레스(Miguel Ángel Asturias Rosales, 1899~1974)의 문학 세계 역시 쿸스의 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들은 고도로 세련된 서구의 스페인어라는 외피 속에 과테말라 대지의 신화적 원형과 원주민들의 피 끓는 저항 정신이라는 쿸스를 문학적으로 완벽하게 이식한 탁월한 성취로 평가받습니다.
▶ 가리푸나: 카리브해의 파도를 타고 넘은 저항과 흥의 영혼(Garífuna: The Soul of Resistance and Rhythm Riding the Waves of the Caribbean) : 마지막으로 살펴볼 세 번째 키워드는 과테말라의 주류 사회를 이루는 마야계 원주민이나 스페인계 혈통과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완전히 다른 독자적인 궤적을 지닌 ‘가리푸나(Garífuna)’ 공동체입니다. 전 세계의 많은 분들이 과테말라를 안데스산맥의 연장선에 있는 고산 지대와 울창한 열대 밀림, 그리고 판초를 입은 원주민의 나라로만 단순하게 인식합니다.
하지만 과테말라 동부, 카리브해(Caribbean Sea)의 푸른 물결과 맞닿은 작은 항구 도시 리빙스턴(Livingston)으로 시선을 돌리면, 마치 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의 어느 활기찬 해변 마을로 공간 이동을 한 듯한 극적인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가리푸나의 기구하고도 위대한 역사는 1635년경, 카리브해의 세인트빈센트(St. Vincent) 섬 인근의 험악한 암초에서 침몰한 두 척의 스페인 노예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서아프리카 출신의 흑인들로부터 시작됩니다.
참혹한 바다에서 목숨을 건진 이들은 섬의 토착 원주민이었던 카리브-아라와크(Carib-Arawak) 족과 통혼하며 빠르게 융화되었고, 백인들의 가혹한 노예제와 제국주의적 식민 지배에 맞서 밀림을 은신처 삼아 치열한 무장 투쟁을 벌였습니다. 수 세기에 걸친 영국의 잔혹한 탄압과 온두라스 얕은 바다의 로아탄(Roatán) 섬으로의 강제 추방이라는 비극적인 시련을 겪으면서도, 이들은 결코 자신들의 핏속에 흐르는 자유에 대한 갈망과 존엄성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들은 기나긴 유랑 끝에 온두라스, 벨리즈, 니카라과를 거쳐 과테말라의 리빙스턴 해안에 닻을 내렸고, 그곳에서 그들만의 고유한 흑백혼혈 문화를 화려하게 꽃피웠습니다.
이방인으로 취급받던 이들이 자신들의 고난에 찬 역사를 기억하고, 세대 간의 단절을 막으며 집단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방식은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가리푸나의 언어, 무용, 음악(Language, dance and music of the Garifuna)’을 통해 선명하고 역동적으로 드러납니다. 가리푸나 문화를 대표하는 푼타(Punta)라는 전통 음악과 춤은, 세 개의 크기가 다른 둥근 전통 타악기(Drum)와 거북이 등껍질 등이 뿜어내는 심박수와 같은 최면적인 리듬에 맞춰, 남녀가 해변 모래밭 위에서 자유롭고 격렬하게 골반과 맨발을 흔드는 관능적이고도 제의적인 춤을 동반합니다.
더불어 그들이 축제나 장례식에서 집단으로 부르는 ‘우라가(Uraga, 노래로 전해지는 옛이야기)’의 가사 속에는 주식인 카사바(Cassava, 열대지방의 주요 식량 작물)를 재배하고 진흙을 구워 집을 지으며 바다로 나갈 카누를 만들던 조상들의 실용적인 전통 지식뿐만 아니라, 특정 개인의 이기적인 행동이나 사회적 모순을 풍자한 유머, 그리고 죽은 조상의 영혼이 결코 먼 곳으로 떠나지 않고 후손들과 함께 일상을 영위한다는 깊고 애틋한 믿음이 끈적하게 녹아 있습니다.
▶ 요동치는 강물 위를 떠가는 오리의 지혜(The Wisdom of the Duck Floating on a Turbulent River) : 수천 년의 시간을 가로지르고 험준한 산맥에서 푸른 바다까지 이어지는 과테말라를 향한 우리의 여정은, 서로 다른 문명과 시련이 피흘리며 충돌한 뒤 아물어 탄생한 ‘차핀(Chapín)’이라는 거대한 문화적 융합의 용광로에서 시작했습니다. 이어 우리는 마야인들이 뼛속 깊이 경외했던 대자연과 조상의 영혼, 그리고 만물에 깃든 우주의 심장인 ‘쿸스(K'ux)’의 깊고 영적인 지층을 탐험했으며, 마지막으로 카리브해의 거친 파도와 식민주의의 가혹한 차별을 흥겨운 리듬과 생명력으로 거침없이 이겨낸 ‘가리푸나(Garífuna)’의 뜨거운 심장 박동에 이르렀습니다. 이 세 가지 키워드는 과테말라라는 나라가 단순히 지도상에 표시된 화산과 호수로 이루어진 평면적인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서로 다른 피부색과 언어, 그리고 아픈 역사가 끈적하게 뭉쳐 상상할 수 없는 경이로운 조화를 이뤄낸 인류애의 위대한 생존 실험실임을 증명합니다.
A veces el pato nada, y a veces ni agua toma.
Sometimes the duck swims, and sometimes it doesn't even drink water.
오리는 가끔 헤엄을 치고, 가끔은 물조차 마시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