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카리브해의 숨겨진 보석, 도미니카 연방(Commonwealth of Dominica)으로 떠나보겠습니다. 도미니카란 국명은 1493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이 섬을 발견한 일요일이란 뜻의 라틴어 '디에스 도미니카(Dies Dominica, 주님의 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원주민 칼리나고(Kalinago) 부족은 이 섬을 '그녀의 몸은 높다'는 뜻의 '와이투쿠불리(Waitukubuli)'라고 불렀는데, 이는 섬 전체를 관통하는 험준한 산맥과 울창한 열대우림을 은유합니다. 도미니카 연방은 카리브해 히스파니올라 섬(La Española) 동쪽에 위치한 도미니카 공화국(Dominican Republic)과 오인하기 쉽지만, 197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영연방 국가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모른 트루아 피통 국립공원(Morne Trois Pitons National Park)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화산 호수 '보일링 레이크(Boiling Lake)'와 365개의 강이 흐르는 원시 생태계의 보고로, 우리에게는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Pirates of the Caribbean) 시리즈의 촬영지로 친숙하죠. 서인도 제도의 마지막 원시 정원, 도미니카 연방으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쿠드멘: 상생을 빚어내는 공동체의 마법(Koudmen: The magic of community forging coexistence) : 현지인들의 사회적 구조와 내면을 빈틈없이 파악하기 위해 살펴볼 첫 번째 크레올어 핵심어는 다름 아닌 '쿠드멘(Koudmen)'입니다. '도움을 주다' 혹은 '손을 빌려주다'라는 의미를 내포한 프랑스어 '쿠 드 망(coup de main)'을 어원으로 삼는 이 낱말은, 자본주의 체제 내부에서 흔하게 관찰되는 일회성 선행, 금전적 거래, 혹은 서구식 자선(Philanthropy)의 궤적을 훌쩍 뛰어넘는 독특한 개념입니다. 이는 파괴된 도로 및 다리 등 공공 인프라를 복구해야 할 때, 새로운 집을 건축할 때, 혹은 힘겨운 농사일을 치러야 할 때 지역 구성원 전체가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고 자발적으로 집결하여 서로를 보살피며 노동력을 나누는 전근대적 상호 부조(Mutual Assistance, 相互扶助)의 위대한 전통을 가리킵니다. 평평한 땅을 찾아보기 힘든 가파른 화산 산악 지형과 해마다 내습하는 무자비한 허리케인 등 가혹한 자연 조건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고자, 이곳 주민들은 조상 대대로 이타적 정신을 가장 강력한 생존 무기이자 문화 유산으로 계승해 왔습니다.
▷ 국경일로 승화된 상호 부조의 정신(The spirit of mutual aid sublimated into a national holiday) : 이렇듯 아름다운 풍습이 국가적 핵심 가치로 얼마나 굳게 자리매김했는지는 독특한 국경일 문화를 통해 명백하게 증명됩니다. 현지 정부는 매년 독립기념일 이튿날인 11월 4일을 '지역 사회 봉사의 날(Community Day of Service)'이라는 국가 법정 기념일로 공식 지정해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해당 날짜가 다가오면 온 국민이 국가적 차원에서 주도하는 봉사 활동에 기꺼이 투신하여 이웃의 낡은 가옥을 고치고, 마을 곳곳을 청소하며, 망가진 공공시설을 정비하는 데 구슬땀을 흘립니다.
▶ 부용: 전통과 현대가 충돌하는 음악적 수프(Bouyon: The musical soup where tradition and modernity collide) : 해당 국가의 지칠 줄 모르는 창조적 역량과 뜨거운 심장 박동을 대변하는 두 번째 크레올어 핵심어는 '부용(Bouyon)'으로 명명됩니다. 영어의 '끓이다(boil)'라는 동사 및 고깃국물을 지칭하는 프랑스어 단어에 뿌리를 둔 이 크레올어는, 글자 그대로 다채로운 식재료가 한곳에 뒤섞인 채 '펄펄 끓고 있는 냄비 속 수프(pot of soup)'를 지칭합니다. 허나 현지 주민들에게 이 단어는 결코 저녁 만찬에 오르는 단순한 요리명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는 1980년대 후반 이 자그마한 화산섬에서 혜성처럼 등장하여 오늘날 카리브해 전역을 광란의 춤판으로 이끈, 저항 정신과 폭발적 에너지를 가득 품은 독창적 음악 장르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이 위대한 예술적 혁명의 발단 과정을 이해하려면 시간을 약간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습니다. 1970년대 당시 영국의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 완벽한 주권 독립국을 향해 나아가던 과도기적 상황 속에서, 흑인 의식 운동(Black Consciousness Movement) 추진 및 뚜렷한 국가 정체성 확립이라는 육중한 시대적 과업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격동의 시기를 틈타 핍박받는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태동한 장르가 바로 '카덴스 립소(Cadence-lypso)'입니다.
▶ 모르네: 원초적 숨결을 간직한 대자연의 심장(Morne: The heart of Mother Nature preserving primordial breath) : 글을 관통하는 마지막 세 번째 핵심어는 크레올어로 '거대한 언덕' 내지는 '가파른 산'을 일컫는 '모르네(Morne)'입니다. 대자연을 향한 경외심과 영토의 장엄함을 포괄적으로 상징하는 해당 어휘는, 국가 자존심이자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꼽히는 '모르네 트루아 피통 국립공원(Morne Trois Pitons National Park)'의 명칭에 가장 웅장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세 봉우리를 품은 산'이라는 의미를 내포한 이곳은 1975년 국가 차원의 강력한 환경 보호 의지에 발맞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이후 생태학적·지질학적 보편적 가치를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명부에 등재되는 쾌거를 이룩했습니다. 대략 68.57제곱킬로미터(7,000헥타르 상당)에 육박하는 이 드넓은 구역은, 수많은 분화구와 깊게 파인 협곡, 5개의 거대 화산, 그리고 기적처럼 우거진 열대우림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어 활발한 화산 활동이 현재 진행형으로 관측되는 지구 위 가장 압도적인 대자연의 실험실로 평가받습니다.
▷ 끓어오르는 호수와 지형학적 경이로움(The Boiling Lake and geomorphological wonders) : 공원 경계 내부로 걸음을 옮기는 찰나, 방문객들은 흡사 지구가 처음 탄생하던 태초의 풍경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한 묘한 착각에 휩싸이게 됩니다. 특히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진흙 연못, 형형색색의 빛깔을 띤 채 흐르는 온천수, 그리고 무려 50여 곳에 달하는 분기공(Fumarole)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황 가스의 자태는 이곳이 아직도 살아 숨 쉬는 거대 유기체임을 명백히 증명합니다. 해당 국립공원의 정중앙에는 현지 자연 경관의 최고 백미라 일컬어지는 '보일링 호(Boiling Lake)'가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해발 800미터 높이의 험준한 산악 지대에 위치한 이 호수는 수심 12~15미터, 지름 약 60미터(200피트)에 달하는 웅장한 몸집을 자랑하며, 뉴질랜드 소재 프라잉 팬 호수(Frying Pan Lake)의 뒤를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거대한 '끓는 호수'라는 타이틀을 보유 중입니다.
아울러 이 매혹적이고도 거친 지형학적 과정(Geomorphological Process, 地形學的過程)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증명하는 장소 중 하나인 '티투 협곡(Titou Gorge)'은, 까마득한 과거에 펄펄 끓던 용암이 급격히 식어 굳어지면서 빚어낸 좁고 깊은 천연 풀장입니다. 머리 위로 희미하게 쏟아지는 태양광과 에메랄드빛 맑은 계곡물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이 신비의 장소는, 세계적 흥행 돌풍을 일으킨 할리우드 대작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의 핵심 세트장으로 낙점된 바 있습니다. 극 중 식인종들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던 주인공 윌 터너(올랜도 블룸(Orlando Bloom, 1977~) 분)와 일행이 뼈로 엮어 만든 둥근 새장에 갇힌 채 아찔한 협곡 상공에 매달려 있다가 극적으로 수면 아래로 추락해 탈출을 감행하는 숨 막히는 시퀀스가 바로 이 티투 협곡의 가파르고 비좁은 절벽을 배경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 영문학의 걸작에 투영된 원시림의 은유(The metaphor of the primeval forest reflected in an English literary masterpiece) : 이에 더해, 함부로 인간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 거칠고도 신비로운 대자연의 위용은 세계 문학사 전반에도 결코 지워지지 않을 묵직한 영감을 선사했습니다. 영국의 위대한 소설가이자 수도 로조에서 출생한 진 리스(Jean Rhys, 1890~1979)가 집필한 포스트모더니즘 걸작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Wide Sargasso Sea, 1966)》는 다름 아닌 이 웅장하고 숨 막히는 열대우림을 극의 심리적 배경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속 이른바 '다락방의 미친 여자'로 묘사된 버사 메이슨의 기구한 과거를 식민지 크레올 여성의 시각으로 재창조해 낸 이 작품에서, 주인공 앙투아네트가 남편 로체스터(Rochester)와 신혼 생활을 영위하는 낡은 숲속 저택 그란부아(Granbois)는 섬 내 학살(Massacre) 지역 인근에 자리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 헌 빗자루가 일깨우는 지혜의 시간(Time for wisdom awakened by an old broom) : 지금껏 우리는 '모르네(Morne)', '부용(Bouyon)', '쿠드멘(Koudmen)'이라는 세 가지 독보적 크레올어 암호를 길잡이 삼아, 카리브해의 작은 거인 도미니카 연방이 품고 있는 위대한 연대 의식, 폭발하듯 끓어오르는 문화적 창조력, 그리고 서구의 얄팍한 이성으로 감히 짐작할 수 없는 대자연의 압도적 경이로움을 심도 있게 탐구해 왔습니다. 가파른 화산 절벽 아래 비좁은 땅자락에 기대어 연명하면서도 이웃이 곤경에 빠지면 앞다투어 달려가 손을 내밀며 험난한 기후의 시련을 이겨낸 이들은, 식민 지배가 남긴 뼈아픈 역사의 흉터마저 거대한 용광로 속에 털어 넣고 푹 끓여내 전 세계를 광란으로 이끄는 가장 역동적이고 신명 나는 축제의 리듬으로 승화시켰습니다.
Lè yon bale nèf, li balye byen, men yon vyé bale konnen tout ti kwen yo.
A new broom sweeps well, but an old broom knows all the corners.
새 빗자루는 바닥을 잘 쓸지만, 헌 빗자루는 구석구석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