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콜럼버스가 극찬한 은총의 땅(Tierra de Gracia)이자 남미 해방자의 조국(Homeland of the Liberator), 베네수엘라(Venezuela)로 떠나보겠습니다. 베네수엘라란 국명은 1499년 마라카이보 호수(Lake Maracaibo)를 탐험하던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 일행이 물 위에 지어진 원주민들의 수상 가옥(Palafito)을 보고 '작은 베네치아(Little Venice)'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베네치올라(Veneziola)'에서 유래했습니다. 베네수엘라는 스페인으로부터 남미 대륙을 독립시킨 영웅 시몬 볼리바르(Simón Bolívar, 1783~1830)가 태어난 해방 운동의 요람이자, 안데스산맥에서 카리브해까지 이어지는 다채로운 지형을 가진 역동적인 국가입니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979m의 앙헬 폭포(Salto Ángel)가 쏟아져 내리는 카나이마 국립공원(Canaima National Park)과 식민 시대의 아름다운 건축 양식이 보존된 코로와 항구(Coro and its Port) 등 경이로운 세계유산을 동시에 품고 있는 인류의 보물창고이기도 하죠! 대자연의 장엄한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잃어버린 세계(The Lost World, 1912), 베네수엘라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신들의 집에서 마주한 태고의 시간, 테푸이(Encountering Primeval Time in the House of the Gods, Tepui) : 가장 먼저 살펴볼 단어는 베네수엘라 그란 사바나(Gran Sabana) 지역에 거주하는 원주민인 페몬(Pemón)족의 고유 언어로 '신들의 집(House of the Gods)'을 엄숙하게 의미하는 '테푸이(Tepui)'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융기된 산을 뜻하는 일반명사가 아니라, 지질학적으로 지구의 가장 깊고 오래된 역사를 원형 그대로 간직한 특수한 '탁자 모양의 산(Tabletop mountain)'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에 가깝습니다. 테푸이는 베네수엘라 남동부 지역을 거대한 요새처럼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기아나 순상지(Guiana Shield) 위에 우뚝 솟아 있습니다. 무려 17억 년 전 선캄브리아대(Precambrian Eon)의 화강암 기반암 위에 수많은 층의 모래가 겹겹이 쌓이고 엄청난 압력으로 압축되어 거대한 사암 고원을 형성했습니다. 이후 아프리카 대륙과 남아메리카 대륙이 분리되는 맹렬한 지각변동과 수억 년의 비바람 속에서 약한 지층은 모두 깎여나가고, 오직 가장 단단한 암석들만이 살아남아 깎아지른 듯한 수직 기둥 형상으로 남게 된 잔해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테푸이입니다.
페몬족 사람들은 이 거대하고 기이한 바위산 꼭대기에 '마와리(Mawari)'라는 초자연적인 영혼들이 살고 있다고 믿었으며, 그 신성한 정상에 오르는 것을 엄격한 금기로 삼으며 오랜 세월 경외심을 표해왔습니다. 이러한 신성한 테푸이들이 대규모로 밀집해 있는 카나이마 국립공원(Canaima National Park)은 압도적인 자연미와 지질학적, 생태학적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4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당당히 등재되었습니다. 국립공원의 총면적은 무려 3만 제곱킬로미터(km²)에 달하며, 이는 베네수엘라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거대한 규모이자 세계적인 수준의 광활함을 자랑합니다. 남쪽으로는 브라질, 동쪽으로는 가이아나와 국경을 맞닿은 채 로라이마산(Mount Roraima)을 3국이 일부 공유하고 있기도 하지만, 카나이마 국립공원 전체 면적의 약 65%를 차지하는 수백 개의 테푸이 군락과 그 생태적 정수는 단연! 베네수엘라 영토 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 잃어버린 세계의 영감과 생태적 보존 과제(Inspiration for the Lost World and Ecological Conservation Challenges) : 특히 베네수엘라 영토에 온전히 속한 '아우얀테푸이(Auyantepui)'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폭포이자 경이로운 자연의 극치인 엔젤 폭포(Angel Falls)를 품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낙차 높이가 979미터에 달하는 이 폭포는, 쏟아져 내리는 거대한 물줄기가 땅에 닿기도 전에 끝없는 수직 낙하 과정에서 대기와의 마찰로 인해 미세한 안개로 부서져 버리는 참으로 신비로운 장관을 연출하죠! 1933년 미국의 탐험 비행사 지미 엔젤(Jimmy Angel)이 경비행기를 몰고 이 일대를 탐사 비행하다 이 거대한 물줄기를 발견하면서 전 세계에 '엔젤 폭포'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으나,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인 현지 원주민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을 '가장 깊은 곳의 폭포'라는 뜻을 지닌 '케레파쿠파이 메루(Kerepakupai Merú)'라고 경건하게 불러왔습니다.
테푸이가 전 세계인에게 남긴 문화적 족적은 대중문화와 고전 문학에서도 매우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영국의 저명한 소설가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은 로라이마산에 관한 탐험기에서 깊은 영감을 받아 1912년 전설적인 공상과학 소설 『잃어버린 세계(The Lost World)』를 집필했습니다. 소설 속 고원은 외부 세계와 수백만 년간 철저히 단절된 덕분에 멸종된 줄 알았던 공룡이 살아 숨 쉬는 생태계로 묘사됩니다. 이는 비록 허구일지라도, 테푸이 정상이 하단부 열대 정글과 완전히 단절된 채 독자적인 진화를 거듭한 고유종들의 천국, 이른바 판테푸이(Pantepui)라는 특수한 고립 생물군을 형성하고 있다는 과학적 사실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꿰뚫어 본 통찰이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디즈니·픽사의 애니메이션 『업(Up, 2009)』의 '파라다이스 폭포(Paradise Falls)' 역시 아우얀테푸이와 엔젤 폭포를 모델로 삼아 그 비현실적인 경관을 스크린 위에 경이롭게 탄생시켰습니다.
▶ 억압을 넘어선 연대와 축제의 미학, 파란다(The Aesthetics of Solidarity and Festivity Beyond Oppression, Parranda) : 베네수엘라의 문화적 영혼을 이해하기 위해 펼쳐볼 두 번째 키워드는 '파란다(Parranda)'입니다. 파란다의 스페인어 사전적 의미는 무리를 지어 노래하고 춤추며 행진하는 축제를 뜻합니다. 하지만 식민의 아픔이 서린 베네수엘라의 역사적 맥락에서 파란다는 가혹한 백인 농장주 중심의 계급 구조 속에서 아프리카계 흑인 노예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고 강인한 연대감을 형성해 온 생존 기제였습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라 파란다 데 산 페드로 데 과레나스 이 과티레(La Parranda de San Pedro de Guarenas y Guatire)'입니다.
이 매혹적인 문화유산은 매년 6월 29일, 미란다주(Miranda State)의 과티레와 과레나스 일대에서 거행됩니다. 이 축제의 기원은 스페인 식민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혹사당하던 여성 노예 마리아 이그나시아(Maria Ignacia)는 어린 딸이 열병으로 사경을 헤매자, 성 베드로(San Pedro)에게 아이를 살려주신다면 매년 축일마다 춤추며 기리겠다고 간절히 맹세합니다. 기적처럼 아이는 병을 털고 일어났고, 마리아는 다른 노예들과 함께 약속을 지켰습니다. 세월이 흘러 마리아가 세상을 떠나자, 그녀의 남편과 이웃 남성들은 그 맹세가 이어지도록 여성의 화려한 옷을 입고 마리아로 분장한 채 아기 인형을 안고 춤추며 행진했습니다. 이것이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위대한 민중 축제의 서막이었습니다.
▷ 아메리카의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의 지적 유산(The Intellectual Legacy of Simón Bolívar, the Liberator of America) : 민중 기저에 깔린 자유와 해방을 향한 원초적 갈망은 19세기 독립 전쟁을 거치며 거대한 변혁으로 폭발합니다. 이 맥락에서 우리는 베네수엘라가 자랑하는 세계기록유산, '시몬 볼리바르의 기록물(Writings of the Liberator Simón Bolívar)'을 짚어보아야 합니다. 시몬 볼리바르(Simón Bolívar, 1783~1830)는 베네수엘라를 필두로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등 광활한 남미 대륙을 스페인의 무자비한 통치로부터 해방시킨 '아메리카의 해방자'입니다.
유럽 유학 시절 계몽주의 철학의 세례를 받은 그는 조국으로 돌아와 무장 독립 투쟁의 선봉에 섰습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그의 기록물에는 전장에서 작성한 문서, 서한은 물론, 독립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창간한 혁명 기관지 『오리노코 우편보(Correo del Orinoco)』 등의 방대한 인쇄물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 문헌들은 유럽의 계몽주의가 라틴아메리카에 어떻게 이식되었으며, 해방된 민중들이 자유민으로서 살아갈 국가 제도로 어떻게 설계되었는지를 명확히 증명하는 지적 자산입니다. 한국의 '훈민정음 해례본'이 문자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한 '지적 해방'의 선언문이라면, 볼리바르의 기록물은 제국주의의 사슬을 끊고 주권 국가의 주인으로 거듭나게 한 '정치적 해방'의 위대한 청사진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의 아픔이 깃든 비밀 언어, 체베레(A Secret Language Steeped in the Pain of the African Diaspora, Chévere) : 베네수엘라 사람들의 일상적 정서와 내면의 회복력을 가장 투명하게 보여주는 세 번째 키워드는 바로 '체베레(Chévere)'입니다. 테푸이와 볼리바르의 유산이 거시적인 역사를 대변한다면, 체베레는 그 모든 풍파를 거쳐온 현대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가장 애정을 담아 사용하는 일상의 마법 주문입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인사, 기쁨, 동의의 감정 표현에 이르기까지 온통 '체베레'와 마주치게 됩니다. "체베레(아주 좋아)", "무이 체베레(정말 끝내주게 멋져)" 등 폭넓게 사용되는 이 단어의 이면에는 카리브해 일대의 슬프고도 매혹적인 이주사와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의 애환이 얽혀 있습니다.
놀랍게도 베네수엘라 스페인어를 대표하는 이 속어는 스페인어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언어학적 추적에 따르면, 체베레의 어원은 서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일대에 거주하던 에피크(Efik)족이나 이그보(Igbo)족의 단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19세기 대서양 노예무역의 쇠사슬에 묶여 카리브해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강제 이주된 이들은, 1836년경 쿠바에서 '아바쿠아(Abakuá)'라는 비밀결사를 결성했습니다. 이들은 가혹한 감시를 피해 고향의 언어로 저항과 연대의 노래를 불렀고, 그 가사 속에 '훌륭하다'는 의미를 품은 '체베레'가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 지혜의 메아리: 과거를 품고 미래를 향하다(Echoes of Wisdom: Embracing the Past, Heading for the Future) : 지금까지 우리는 '테푸이', '파란다', '체베레'라는 세 가지 강력한 나침반을 들고, 베네수엘라가 품고 있는 아득한 지형적 깊이, 역사적 무게, 그리고 문화적 역동성을 다각도로 조명했습니다. 대륙 분리의 고통을 견뎌낸 테푸이 위에는 희귀한 생명이 피어나고, 억압적인 노예 노동 속에서 탄생한 파란다의 리듬 속에는 강렬한 연대 의식이 박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굴곡진 파고를 넘어온 오늘의 거리는 가혹한 현실마저 미소로 승화시키는 '체베레'라는 긍정의 마법으로 찬란하게 빛납니다.
Pa'lante es pa' allá.
Forward is that way.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