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하늘과 땅이 맞닿은 거대한 거울의 땅(Land of Mirrors), 볼리비아(Bolivia)로 떠나보겠습니다. 볼리비아는 남미를 스페인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시킨 '해방자(El Libertador)' 시몬 볼리바르(Simón Bolívar, 1783~1830)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1825년 독립을 쟁취할 무렵, 그의 숭고한 공로를 영원히 기억하고자 '볼리바르의 땅'을 의미하는 지금의 국호가 채택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점은 그가 에스파냐 제국 누에바그라나다 부왕령에 속했던 카라카스(현재의 베네수엘라 영토)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이후 대콜롬비아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1819~1830)을 지냈을 뿐만 아니라, 페루와 볼리비아 등 여러 국가에서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올랐습니다.
안데스의 험준한 고산 지대와 척박함을 씻어내는 아마존 열대우림이 맞닿아 있는 이곳은 지리적 다양성을 자랑합니다. 나아가 2009년에는 서른여섯 개에 달하는 토착 원주민의 언어를 모두 공식어로 채택하며 '볼리비아 다민족국(Plurinational State of Bolivia)'으로 거듭났습니다. 이곳에서는 잉카 제국이 태동하기 전부터 찬란하게 꽃피웠던 티와나쿠(Tiwanaku)의 고대 문명 유적, 16세기 무렵 유럽 전역의 경제 체제를 요동치게 했던 은광 도시 포토시(Potosí)의 세로 리코(Cerro Rico, 풍요의 산),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소금 사막 우유니(Salar de Uyuni)의 비현실적인 자태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자유를 향한 투쟁의 숨결이 아로새겨진 이 위대한 대지로 발걸음을 내디뎌 보시지 않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우주의 자궁, 파차마마의 무한한 숨결(The Cosmic Womb, the Infinite Breath of Pachamama) : 볼리비아 사람들의 영혼과 의식 기저에 가장 깊고 단단하게 뿌리내린 첫 번째 사상적 뼈대는 단연 '파차마마(Pachamama)'입니다. 서구 언어권에서는 이를 흔히 '어머니 자연(Mother Nature)' 혹은 '어머니 대지(Mother Earth)'로 번역하지만, 아이마라어와 케추아어의 어원적 맥락을 엄밀히 따져보면 이는 훨씬 다차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내포합니다. '파차(Pacha)'는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물리적인 흙이나 땅을 지칭하는 것을 넘어, 세계, 우주, 시공간의 흐름, 만물의 총체성, 그리고 시대적 순환을 모두 아우르는 거대한 개념입니다. 여기에 숭고한 생명력을 지닌 위대한 여성을 뜻하는 '마마(Mama)'가 결합된 파차마마는, 이 세상의 모든 생명과 우주적 질서를 잉태하고 보살피며 궁극적으로는 다시 거두어들이는 '시공간의 어머니(Mother of Time and Space)'이자 만물의 '우주적 자궁'을 의미합니다.
볼리비아는 2010년 세계 최초로 자연을 권리의 주체로 명시한 '어머니 대지의 권리법(Law of the Rights of Mother Earth)'을 제정했으며, 2012년 이를 더욱 확장한 기본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인접국 에콰도르(Ecuador)가 2008년 헌법에 자연의 권리를 직접 명시해 이념적으로 다소 앞서 나갔던 반면, 볼리비아는 천연자원 수출에 의존해야 하는 국가 경제의 현실과 원주민들의 생존권 사이에서 치열한 정치적 조율을 거쳤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볼리비아의 법안은 자연을 인간의 보호를 받는 객체가 아니라 생명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깨끗한 물과 공기를 향유하며 스스로 재생될 권리를 지닌 주체적인 '법적 인격체'로 승격시켰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적 개발 논리에 맞선 숭고한 저항의 산물로 평가받습니다.
▷ 체 게바라 일기에 깃든 파차마마의 포용(The Embrace of Pachamama in Che Guevara's Diary) : 더 나아가 파차마마의 대지가 지닌 강인한 생명력은 외세의 억압과 불의에 저항하는 피맺힌 투쟁의 역사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볼리비아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世界記錄遺産)으로 등재시킨 '체 게바라 일기: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의 삶과 저작(Documentary Collection “Life and Works of Ernesto Che Guevara”)'은 이념의 잣대를 초월하여, 이 거친 대지 위에서 고통받는 자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웠던 한 인간의 치열한 육필 기록입니다.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Ernesto "Che" Guevara, 1928~1967)는 식민 지배의 잔재 속에서 신음하는 안데스의 농민과 원주민들을 해방시키고자 볼리비아의 험준한 산맥과 울창한 밀림, 즉 파차마마의 심장부로 기꺼이 뛰어들었습니다. 그의 일기장에는 숨이 멎을 듯한 천식 발작과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릴라전의 극한 공포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인간 해방에 대한 절절한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비록 그의 혁명적 시도는 정부군에 의해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지만, 가난하고 소외된 생명들을 기꺼이 품어 안으려 했던 그의 정신은 생명을 차별 없이 기르고 품어주는 파차마마의 자비로운 속성과 맞물려 볼리비아 민중들의 가슴속에 시들지 않는 신화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 무한 경쟁을 넘어, 수마 카마냐의 공존 철학(Beyond Endless Competition, the Coexistence Philosophy of Suma Qamaña) : 파차마마가 우주와 대지의 섭리를 규정하는 형이상학적 토대라면, 이를 인간의 구체적인 삶의 양식과 사회적 규범으로 번역해 낸 실천적 이데올로기가 바로 두 번째 키워드인 '수마 카마냐(Suma Qamaña)'입니다. 아이마라어에서 유래한 이 표현은 스페인어로 '부엔 비비르(Buen Vivir)', 영어로는 'Living Well(잘 살기)'로 통용됩니다. 이 철학의 진정한 가치는 서구적 근대화가 추구해 온 선형적 발전관과의 선명한 대비를 통해 드러납니다. 자본주의 경제학이 개인의 물질적 부를 축적해 타인보다 '더 잘 사는 것(Living Better)'을 절대선(絶對善)으로 상정한다면, 수마 카마냐는 이웃 인간은 물론이고 강과 숲, 동물과 산천의 정령들까지 포함한 거대한 생명 공동체 내에서 '올바르게, 조화롭게 잘 사는 것'을 궁극적인 지향점으로 삼습니다.
누군가를 착취하여 얻은 풍요는 필연적으로 불균형을 초래하므로, 타인의 결핍을 나의 결핍으로 인식하고 이를 나누어 수평적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곧 행복이라는 사상입니다. 1970년대부터 시몬 얌파라 화라치(Simón Yampara Huarachi)를 비롯한 볼리비아의 선구적인 원주민 사상가들은, 마르크스주의(Marxism)의 계급투쟁 이론과 서구의 사회학만으로는 안데스의 복합적인 다원성을 포착할 수 없음을 깨닫고 고유한 삶의 철학을 맹렬히 체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치열한 지적 탐구의 결과, 수마 카마냐는 2009년 제정된 볼리비아 헌법 제8조에 플루리나시오날(Plurinational, 다민족) 사회를 이끌어갈 국가적 윤리이자 도덕적 대원칙으로 당당히 명문화되었습니다.
▷ 카팍 냥과 안데스의 저항 예술: 공존을 위한 연대(Qhapaq Ñan and Andean Resistance Art: Solidarity for Coexistence) : 수마 카마냐의 철학이 관념의 영역을 넘어 국가적 단위의 물리적 인프라로 구현된 역사적 기적은 공동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카팍 냥, 안데스 도로망(Qhapaq Ñan, Andean Road System)'에서 선명하게 입증됩니다. 잉카 제국 전성기에 완성된 이 3만 킬로미터 이상의 방대한 거미줄 같은 도로망은 페루, 에콰도르, 칠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그리고 볼리비아라는 6개국을 하나의 맥박으로 연결했던 대륙의 대동맥이었습니다. 특히 볼리비아 영토를 관통하는 카팍 냥 구간들은 깎아지른 듯한 코르디예라(Cordilleras) 산맥의 험준한 능선과 황량한 알티플라노(Altiplano) 고원을 가로지르며, 서로 단절될 수밖에 없었던 다양한 고도의 미기후(Microclimate) 생태계들을 긴밀하게 직조해 냈습니다.
이와 유사한 시각의 연장선에서, 세계적인 거장 호르헤 산히네스(Jorge Sanjinés, 1936~) 감독이 1969년에 발표한 영화 『콘도르의 피(Yawar Mallku)』는 다국적 제국주의 세력이 의료 봉사를 위장하여 원주민 여성들을 비밀리에 불임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은밀한 문화적 제노사이드(Genocide)를 고발하며 볼리비아 사회에 거대한 폭풍을 일으켰습니다. 산히네스 감독은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영웅주의적 개인 서사 기법을 과감히 타파하고, 공동체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적 주인공으로 기능하는 집단적 시퀀스 숏(sequence shot) 기법을 미학적으로 채택했습니다.
▶ '나'를 지운 자리에 피어난 '우리', 아이니의 순환(The 'We' Blossoming Where 'I' Was Erased, the Cycle of Ayni) : 볼리비아 원주민들의 철학적 세계관을 현실의 삶 속에서 매일같이 작동하게 만드는 세 번째이자 가장 역동적인 실천 원리는 '아이니(Ayni)'입니다. 아이니는 대자연과 인간, 인간과 신,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끝없는 '상호호혜(相互互惠)'와 순환적 교환을 의미합니다.
볼리비아의 아이마라족 사회에는 이러한 아이니의 정신을 뒷받침하는 매우 독특하고도 강력한 언어적 코드가 존재하는데, 바로 모든 것을 포괄하는 '우리'를 뜻하는 대명사 '지와사(Jiwasa)'입니다. 영어나 스페인어 등 서구의 언어가 '나(I)'라는 독립적 주체를 문장의 중심에 세우고 배타적인 성격을 띤다면, 지와사의 언어 구조 속에서는 "나의 삶"이라는 표현이 사라지고 언제나 "우리의 삶"으로 인식됩니다. 책임을 추궁할 때도 "내가 책임진다"가 아니라 "우리가 책임진다"고 말하며, 심지어 금지된 행위를 경고할 때조차 "너는 하지 마라"가 아니라 "우리는 하지 말자"라고 부드럽지만 강력하게 표현하여 공동체 전체에 연대 책임을 부여합니다.
▶ 시간의 물결을 거슬러 오르는 지혜의 항해(Sailing Up the Waves of Time with Wisdom) : 볼리비아의 헌법이 무생물로 여겨지던 자연에 생명과 법적 인격을 부여하고, 기나긴 식민 지배를 이겨낸 원주민 철학을 한 국가의 주류 담론으로 과감히 끌어올린 정치적 모험은, 단순히 낭만적인 과거의 향수나 민족주의적 감상에 젖기 위함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파괴되어 가는 지구 환경과 파편화되어 무너져 내리는 공동체의 미래를 구원하기 위한, 가장 능동적이고도 절박한 실천적 해답을 '오래된 미래'에서 채굴해 낸 위대한 인류학적 결단입니다.
안데스에 거주하는 아이마라 사람들은 세계의 주류 언어권 사용자들과는 완전히 차별화되는 방식으로 시간의 흐름을 신체적으로 감각합니다. 서구인들은 과거를 이미 지나가 버린 등 뒤의 것으로 여기고 미래를 향해 앞으로 전진한다고 상상하지만, 아이마라족은 우리가 이미 겪어서 알고 있고 두 눈으로 분명히 목격할 수 있는 명확한 '과거'야말로 내 눈앞의 '전방(앞)'에 위치해 있다고 확신합니다. 반면 아직 우리에게 도래하지 않아 알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미지의 '미래'는 볼 수 없는 내 등 '뒤'에 있다고 굳게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들의 우주관에서 진정한 진보란, 실체 없는 미지의 미래를 향해 맹목적으로 질주하며 현재를 소외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내 눈앞에 또렷하게 펼쳐진 선조들의 명확한 역사적 교훈과 파차마마가 간직한 대지의 숭고한 기억들을 똑바로 응시하고 성찰하며, 아주 조심스럽게 뒷걸음질 치듯 한 걸음씩 연대하여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류의 항해법이라 믿는 것입니다.
Qhipa urunakax nayra urunakat yatiqatawa.
Future days are learned from past days.
다가올 미래의 날들은 지나온 과거의 날들로부터 배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