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영국 前 총리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이 아프리카의 진주(The Pearl of Africa)라고 찬탄한 우간다(Uganda)로 떠나보겠습니다. ‘우간다’란 국명은 아프리카의 고대 왕국 ‘부간다(Buganda)’에서 유래했습니다. 카스비의 부간다 왕릉(Tombs of Buganda Kings at Kasubi, 2001)은 부간다 왕조의 영적인 중심지이자 유기물 소재만으로 지어진 웅장한 건축물로서, 아프리카 고대 왕국의 건축 기술을 증언하는 우간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입니다. 우간다는 바투쿠족(Batuku)과 바뇨로족(Banyoro)을 아우르는 반투어군(Bantu)과 북부의 나일어군(Nilotic)을 비롯해 50여 개가 넘는 다채로운 부족과 언어가 공존하는 다층적 사회입니다. 동아프리카의 내륙국이자 멸종위기종 산악고릴라(Mountain gorilla)의 마지막 안식처, 우간다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타인을 품어 완성하는 거대한 생태계, 오분투불라무(Obuntubulamu: A massive ecosystem completed by embracing others) : 우간다인들이 삶과 자연을 대하는 거시적 태도를 짚어보기 위한 첫 번째 키워드는 루간다어(Luganda) ‘오분투불라무(Obuntubulamu)’입니다. 이는 관대함, 타인을 향한 사려 깊은 배려, 일체감, 그리고 진정한 인간다움을 포괄하는 가치 체계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비롯해 대륙 전역에 스며든 ‘우분투(Ubuntu,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 철학과 궤를 같이하는 이 개념은, 개인의 가치가 독단적으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이웃 및 자연 생태계와의 유기적인 연결망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는 우간다인들의 세계관을 증명합니다.
▶ 소멸하지 않는 제국의 숭고한 자부심, 에키티브와(Ekitiibwa: The sublime pride of an inextinguishable empire) : 우간다의 심연을 직시하기 위한 두 번째 키워드는 ‘에키티브와(Ekitiibwa)’입니다. 루간다어로 영광, 명예, 존엄, 그리고 결코 타협하지 않는 숭고한 자부심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과거 우간다 중남부를 호령하며 가장 강력한 제국을 이룩했던 부간다 왕국(Kingdom of Buganda)의 공식 국가(國歌) 제목이 ‘에키티브와 캬 부간다(Ekitiibwa kya Buganda, 부간다의 영광)’일 정도로, 이 언어는 외세의 무자비한 침탈과 굴곡진 식민 통치 속에서도 우간다인들이 절대 꺾지 않았던 치열한 민족적 자존심을 대변합니다. 선조들이 피땀으로 일궈낸 대지에 대한 무한한 긍지, 그리고 현세대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역사적 책임감이 에키티브와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 영혼이 깃든 건축, 카수비의 부간다 왕릉(Architecture imbued with soul, Tombs of Buganda Kings at Kasubi) : 이러한 에키티브와의 정신이 물질적 형태로 가장 웅장하게 구현된 성소가 바로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카수비의 부간다 왕릉(Tombs of Buganda Kings at Kasubi)’입니다. 번잡한 수도 캄팔라(Kampala) 외곽에 고요히 자리한 이 유적은 단순한 과거의 무덤을 넘어, 오늘날까지 부간다 왕국의 정신적·영적 중심지로 맹렬히 숨 쉬는 공간입니다. 능역의 심장부를 이루는 거대한 구조물인 ‘무지부 아잘라 음팡가(Muzibu Azaala Mpanga)’는 나무, 갈대, 짚, 진흙 등 온전히 자연에서 채취한 유기적 재료만으로 축조된 간다(Ganda) 전통 건축 양식의 최고봉입니다. 이 우아한 돔 형태의 전각 안에는 아랍 상인 및 영국 식민 세력과 맞서며 격변의 시대를 이끌었던 무테사 1세(Muteesa I, 1837~1884)와 에드워드 무테사 2세(Edward Muteesa II, 1924~1969)를 비롯한 4명의 카바카(Kabaka, 부간다의 국왕)가 영면해 있습니다.
이 군주들의 생애는 그 자체로 우간다의 격렬한 근현대사였습니다. 80명이 넘는 아내를 두었던 무테사 1세는 치세 동안 60여 차례의 치열한 전쟁을 치르며 군사적 정점을 찍는 동시에 이슬람, 가톨릭, 개신교, 전통 신앙이라는 네 갈래의 종교적 파벌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로 권력을 다졌습니다. 반면 에드워드 무테사 2세는 1962년 영국의 보호령에서 벗어나 독립한 우간다의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는 영광을 누렸으나, 이어진 정치적 격변과 쿠데타로 인해 런던으로 망명하여 쓸쓸히 생을 마감해야 했던 비운의 군주였습니다.
2010년, 이 숭고한 왕릉은 예기치 못한 화마에 휩싸여 중심 전각이 잿더미로 무너져 내리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우간다 국민들은 비용과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는 현대적 건축 자재의 사용을 단호히 배격하고, 오직 전통적인 유기농 재료와 수작업에 의존하여 능을 오랜 시간에 걸쳐 복원하는 고단한 길을 택했습니다. 이는 문화유산의 진정성이란 견고한 콘크리트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거듭하며 전승되는 지식과 공동체의 자발적 헌신에서 발원함을 만방에 일깨운 위대한 사건이었습니다.
▶ 상처를 꿰매고 평화를 직조하는 영혼의 언어, 엠파코(Empaako: The soul's language that stitches wounds and weaves peace) : 우간다의 상처 입은 영혼을 다독이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세 번째 키워드는 ‘엠파코(Empaako)’입니다. 엠파코는 우간다 서부의 바토로족, 바뇨로족, 바투쿠족 등 여러 공동체에서 아이가 태어났을 때 가문의 성씨 외에 추가로 부여하는 ‘애칭이자 영혼의 이름’을 뜻하는 독특한 문화입니다. 고대 루오어(Luo)에서 기원한 아모오티(Amooti), 아보오키(Abbooki), 아챨리(Acaali), 아디에리(Adyeri) 등 12개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엠파코는 부모가 임의로 짓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의 어른들, 특히 고모들이 며칠 밤낮으로 갓난아기의 외모와 미세한 기질을 관찰하여 조상 중 누구의 환생인지 가늠한 뒤, 부족장 주재하의 성스러운 명명식을 통해 신중히 부여합니다. 이름이 정해지면 마을 사람들은 기장과 훈제 소고기를 나누며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고 아기의 이름으로 나무를 심습니다. 길에서 이웃과 마주쳤을 때 일상적인 인사 대신 상대의 고유한 엠파코를 다정히 부르는 행위는, 상호 간의 무한한 애정과 존중, 그리고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운명 공동체임을 선언하는 강력한 사회적 접착제로 작용합니다. 치솟는 분노나 껄끄러운 갈등조차 상대의 엠파코를 나지막이 호명하는 순간 눈 녹듯 사그라지며 화해의 마법이 펼쳐집니다.
▷ 평화와 연대를 직조하는 이름, 엠파코(The name weaving peace and solidarity, Empaako) : 이토록 경이로운 평화의 언어인 엠파코는 그 소중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긴급보호목록으로 등재되었습니다. 현대화와 서구식 교육의 확산으로 전통 언어가 소멸할 위기에 처했음에도, 우간다인들은 자발적으로 축제를 열고 기금을 조성하며 이 영혼의 이름을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치열하게 연대합니다. 엠파코 명명식이 고유의 언어와 영적 의식을 통해 친족 간의 끈끈한 유대와 사회적 통합을 직조하는 무형의 행위라면, 한국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한산모시짜기(Fine ramie weaving of Hansan)’는 여성들의 고되고 신성한 노동과 공동체의 협동으로 물리적 직물을 짜내는 숭고한 행위라는 점에서 절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충남 한산 지역의 중년 여성들을 중심으로 수백 년간 전승되어 온 이 기술은, 덥고 습한 한여름 통풍이 차단된 밀폐된 공간에서 식물의 질긴 섬유를 입술과 치아로 가늘게 쪼개고 베틀 위에서 수만 번 교차시키는 극한의 인내를 요구합니다. 두 유산 모두 공동체의 단단한 결속과 윗세대 여성들의 빛나는 지혜가 일군 인류의 위대한 성취입니다.
▷ 어둠의 시대를 딛고 선 기록의 무게, 우간다 국립 미디어 기록물(The weight of records overcoming the dark era: Uganda National Media Archive) : 연대와 절대적 평화를 상징하는 엠파코의 이면에는, 그토록 끈끈했던 공동체가 산산이 조각나고 불신이 팽배했던 우간다의 뼈아픈 현대사가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습니다. 1971년 잔혹한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이디 아민(Idi Amin, 1925~2003)의 폭압적인 8년 통치기 동안, 무려 30만 명에 달하는 무고한 우간다 국민이 처참하게 희생되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이웃이 이웃을 밀고하고 영혼의 이름이 피 묻은 군화에 짓밟혔던 그 시절의 참혹한 인권 유린과 강압 정치의 실상을 낱낱이 담아낸 자료가 바로 ‘우간다 국립 미디어 기록물(Uganda National Media Archive)’입니다.
1947년부터 1986년까지 군부의 선전과 시민의 일상을 포착한 6만여 장의 사진과 수천 편의 영상, 라디오 테이프로 구성된 이 방대한 기록은 우간다 방송공사(UBC)의 지하 창고에 방치되어 소실된 줄 알았으나 2015년 학자들에 의해 극적으로 발굴되었습니다. 우간다 사회는 가장 수치스럽고 참혹한 상처를 은폐하지 않고, 세심히 복원하고 디지털화하여 전 세계에 공개함으로써 지옥 같던 독재와 분열이 재발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맹렬히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디 아민 축출 후 이어진 내전을 딛고 1986년 취임한 요웨리 무세베니(Yoweri Museveni) 대통령 체제하에서 우간다는 점진적인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습니다.
국가 폭력의 아픈 역사를 소중한 기록으로 남겨 민주주의와 인권 수호의 이정표로 삼으려는 우간다의 뼈를 깎는 노력은,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Human Rights Documentary Heritage 1980 Archives for the May 18th Democratic Uprising)’과 지극히 닮아 있어 깊은 숙연함을 자아냅니다. 1980년 신군부의 무자비한 총칼에 맞서 광주 시민들이 피 흘리며 수호한 민주화의 열망은 수많은 흑백 사진, 육필 선언문, 처참했던 병원 진료 기록 속에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습니다.
우간다의 미디어 기록물이 국가 권력에 의해 자행된 폭력의 일상을 고발하는 차갑고도 건조한 감시관의 렌즈라면, 한국의 5·18 기록물은 불의에 항거하며 공동체를 지키려 했던 이름 없는 시민들의 펄펄 끓는 피와 눈물입니다. 국경과 피부색은 비록 다를지언정, 과거의 어두운 진실을 명명백백히 밝히고 영구히 기억함으로써 진정한 평화(엠파코)를 기원하는 두 국가의 기록 정신은 인류 보편의 인권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강물 속에서 감동적으로 합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