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아프리카 대륙 남부의 내륙국, 잠비아 공화국(Republic of Zambia)로 떠나보겠습니다. ‘잠비아’라는 국명은 아프리카에서 네 번째로 긴 강 잠베지강(Zambezi River)에서 유래했습니다. 1964년 영국의 통치에서 벗어나 독립을 맞이한 잠비아는 국토 전역에 거대한 강줄기와 원시림을 품은 아프리카 내륙의 보석입니다. 특히 세계 7대 자연경관(New7Wonders of Nature, 2011)이자 유네스코 자연유산인 모시 오아 툰야/빅토리아 폭포(Mosi-oa-Tunya/Victoria Falls, 1989)는 초당 수백만 톤의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대자연의 경이로 손꼽힙니다. 콰르르릉!! '천둥 치는 연기'와 함께 잠베지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생명의 물길을 여는 위대한 항해, 쿠옴보카(Kuomboka, the Great Voyage Opening the Waterways of Life) : 잠비아 서부에 넓게 자리한 바롯세 범람원(Barotse Floodplain)에 지루한 건기가 물러가고 우기가 당도하면, 메말랐던 대지는 일대 변혁을 맞이합니다. 앙골라 고원에서 굽이쳐 내려온 상류의 강물이 급격히 불어나면서, 잠베지강은 마침내 평원을 집어삼키고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내륙 호수를 형성합니다. 현대 문명의 기술적 잣대로 볼 때 강물의 범람은 거대한 댐이나 제방을 쌓아서라도 반드시 통제해야 할 재해로 치부됩니다. 그러나 17세기부터 이 거친 습지에 군장 사회(Chiefdom Society)를 이루며 정착해 온 로지(Lozi)족에게 범람은 파괴나 죽음의 징조가 아닙니다. 도리어 메마른 땅에 생명을 다시 잉태시키는 축복이자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이들은 거센 물결을 거슬러 싸우는 대신, 물의 흐름에 자신들의 운명을 기꺼이 맡기는 위대한 항해를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로지어로 '물에서 빠져나오다' 혹은 '마른땅으로 이동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잠비아 최고의 전통 의식 '쿠옴보카(Kuomboka)'입니다.
매년 부활절 무렵 거행되는 쿠옴보카는, 저지대에 위치한 여름 궁전 렐루이(Lealui)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할 때 지대가 높은 겨울 궁전 리물룽가(Limulunga)로 온 백성이 대이동을 감행하는 장엄한 수상 축제입니다. 이 성대한 의식의 한가운데에는 로지 왕국의 절대적 지도자인 리퉁가(Litunga, 국왕)가 탑승하는 거대한 왕실 바지선 '날리콴다(Nalikwanda)'가 자리합니다. 잠비아 국가 문장을 연상케 하는 흑백 줄무늬로 도색된 날리콴다의 뱃머리에는 국왕의 위엄을 상징하는 검은색 코끼리 모형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선창 내부에서 조종사가 끈을 당기면 코끼리 귀가 펄럭이도록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어,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짐승이 강물을 가르며 나아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국왕의 배 중앙에서는 끊임없이 모닥불이 피어오릅니다. 하늘로 곧게 솟는 하얀 연기는 리퉁가가 거친 물결 속에서도 평안하게 항해하고 있음을 멀리 있는 백성들에게 알리는 확실한 안도의 표식입니다. 그 뒤를 따르는 왕비의 바지선에는 다산과 평화를 상징하는 하얀 새 모형이 장식되어, 흑과 백, 남성과 여성이 어우러지는 음양의 조화로운 풍경을 연출합니다. 의식 전날 밤, 심장 박동처럼 묵직한 마오마(Maoma, 왕실 북) 소리가 범람원 전역에 울려 퍼지면 뱃사공을 자처하는 수많은 장정이 사방에서 모여듭니다. 짐승 가죽을 허리에 두른 이들은 국왕을 모시고 험난한 물살을 헤친다는 자부심을 품은 채, 장장 6시간에서 7시간 동안 일사불란하게 노를 젓습니다. 이 치열한 여정은 단순한 거처 이동을 넘어, 위기 상황에서도 흩어지지 않고 지도자를 중심으로 강하게 결속하는 로지족의 연대 의식 그 자체입니다.
▶ 공동체의 기원과 성장을 그리는 가면극, 마키시(Makishi, a Masquerade Depicting the Origins and Growth of the Community) : 안전한 부모의 품에서 자란 미성숙한 아이가 유약한 껍질을 깨고 공동체의 온전한 성원으로 인정받으려면, 물리적 성장을 넘어선 정신적 탈바꿈이 필수적입니다. 잠비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중부의 다수 부족 사회는 이 중대한 생애 주기의 전환점을 기념하고 선조의 지혜를 물려주기 위해 비밀스럽고도 엄숙한 통과의례를 치릅니다. 그중에서도 잠비아의 루발레(Luvale), 초퀘(Chokwe), 루차지(Luchazi) 부족이 공유하며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마키시 가면극(Makishi masquerade)'은, 인류가 다음 세대에게 사회적 규범을 어떻게 물려주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문화적 결정체입니다.
소년들의 험난한 성장 여정은 8세에서 12세 무렵, 마을을 떠나 인적이 드문 야생 덤불 속에 마련된 '무칸다(Mukanda)'라는 은밀한 성인식 캠프에 입소하며 본격화됩니다. 짧게는 1개월, 길게는 4개월까지 이어지는 철저한 격리 기간 동안 소년들은 과거의 자아를 상징적으로 소멸시키고 진정한 어른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할례(Circumcision)라는 고통스러운 신체적 의식을 감내해야 합니다.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리는 뼈아픈 인고의 시간 동안, 원로들은 야생 동물을 사냥하는 생존 기술, 약용 식물을 판별하는 지식, 부족의 웅대한 구전 역사, 그리고 미래의 가장으로서 짊어져야 할 막중한 사회적 책임을 집중적으로 전수합니다.
▷ 영혼의 귀환이 완성하는 화합의 카타르시스(The Catharsis of Harmony Completed by the Return of Souls) : 무칸다 캠프에서의 혹독한 교육이 막을 내리고 소년들이 마을로 귀환하는 날, 공터에는 죽음을 초월한 조상들의 영혼을 상징하는 마키시(Makishi) 정령들이 강림하여 거대한 축제의 서막을 올립니다. 식물의 질긴 뿌리, 야생 동물의 털, 진흙 등으로 극도로 정교하게 제작된 기괴하고도 화려한 가면들은 단순한 변장 도구가 아닙니다. 원로 무용수가 가면을 뒤집어쓰는 순간, 그는 일개 인간의 한계를 벗고 부족의 안녕을 수호하며 길 잃은 자를 인도하는 초월적 존재로 탈바꿈합니다. 정령들은 혹독한 과정을 무사히 마친 소년들을 열렬히 환영하고 이들이 어엿한 어른이 되었음을 공동체에 선포하며 격렬하고 기하학적인 춤사위를 선보입니다. 이 장엄한 군무는 근원적인 공포와 경외심, 그리고 새로운 생명 탄생의 기쁨이 교차하는 서사시가 되어 공동체의 흔들림 없는 결속을 견고하게 다집니다. 잠비아에는 마키시 외에도 가면과 비밀결사대가 주축이 되는 또 다른 훌륭한 공유 유산이 존재합니다. 말라위, 모잠비크와 함께 3개국 공동으로 등재한 체와(Chewa)족의 '굴레 왐쿨루(Gule Wamkulu)'가 그것입니다. 야생 동물과 조상의 혼을 형상화한 거대한 목각 가면을 쓰고 도덕적 가르침을 설파하는 냐우(Nyau) 비밀결사대의 춤 역시 심오한 사회적 기능을 담당합니다. 잠비아의 체와족은 이 의식을 통해 외부 문물의 유입 속에서도 고유의 도덕관념이 무너지지 않도록 내부 기강을 엄격히 다잡습니다. 두 유산 모두 잠비아인들이 '가면'이라는 영적 매개체를 활용해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갈등을 봉합하는 탁월한 방식을 증명합니다.
▷ 껍질천과 가면이 이어주는 세대 간의 위대한 유산(The Great Intergenerational Heritage Connected by Bark Cloth and Masks) : 마키시 가면극에서 초월적 영혼을 현실로 소환하기 위해 무용수들이 두르는 의상과 주술적 도구들은, 수백 년을 이어온 아프리카 물질문화의 정수이자 장인 정신의 집약체입니다. 이와 유사한 맥락의 장인 정신은 우간다 남부 바간다(Baganda)족이 전승해 온 유네스코 무형유산 '껍질천 제작(Bark Cloth Making)'에서도 완벽하게 확인됩니다. 은공게(Ngonge) 가문의 장인들은 카보고자(Kaboggoza)라는 수석 장인의 지휘 아래 무화과나무 계열의 특정 나무껍질을 나무망치로 수만 번 두드려 부드러운 직물을 완성해 냅니다. 테라코타 색상을 띤 이 껍질천은 대관식, 장례식 등 신성한 의례에서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매개물입니다. 잠비아의 마키시 가면이 보이지 않는 영혼을 시각적으로 불러오는 장치라면, 우간다의 껍질천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영적 교감을 촉각적으로 이어주는 신성한 옷감인 셈입니다. 자연의 거친 재료에 인간의 끈질긴 인내를 더해 신성함을 불어넣는 이들의 노동은, 아프리카의 의례가 자연과 얼마나 긴밀히 결착되어 있는지를 엄숙히 증명합니다.
▶ 영혼을 치유하고 하나 되는 공명, 무바(Mooba, the Resonance That Heals Souls and Unites Us as One) : 아프리카의 전통 춤은 구경꾼들의 눈요기를 위한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닙니다. 그것은 어머니인 대지와 닿은 강렬한 발구름을 통해 대자연의 원초적 리듬을 몸에 새기고, 영혼 깊숙한 상처를 위로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초월적 존재와 소통하는 가장 직관적이고 강력한 육체 언어입니다. 잠비아 중부 센트럴주(Central Province)에 넓게 거주하는 렌제(Lenje)족의 대표적인 춤 '무바(Mooba)'는 아프리카 무용의 이러한 주술적, 치유적 본질을 완벽히 보여주는 예술로서 201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식민 지배 이전 시기부터 끈질기게 전승되어 온 이 무바 춤은, 축제 초반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손뼉을 치며 참여할 수 있는 개방적이고 사교적인 분위기로 출발합니다. 형형색색의 구슬 장식과 부욤보(Buyombo)라는 전통 털실 치마를 두른 무용수들이 종아리에 매단 쇳조각 방울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리듬을 타기 시작하면 관중들 사이에서 환호가 터집니다. 그러나 다채로운 타악기가 만들어내는 북소리가 점차 거세지고 땀범벅이 된 무용수들의 몸짓이 절정에 달하면, 공기의 흐름이 서늘해지며 논리로는 설명 불가한 마법 같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군무를 이끌던 주연 무용수들이 어느 순간 이성적 의지를 내려놓고 무아지경(Trance)에 빠져들며, 바초바(BaChooba)라 불리는 숭고한 조상의 영혼에 온전히 빙의하게 되는 것입니다.
▶ 미래를 밝히는 오래된 지혜(Old Wisdom Illuminating the Future) : 지금까지 쿠옴보카, 마키시, 무바라는 세 가지 빛나는 고유어 키워드를 통해 아프리카의 거인 잠비아가 품고 있는 무형 문화 유산의 심오한 우주를 탐험했습니다. 범람하는 우기의 물결에 맞서 폭력적으로 저항하는 대신 순리에 몸을 맡기며 생명의 물길을 여는 로지족의 지혜는, 기술의 이름으로 자연을 오만하게 통제하려는 현대 사회에 묵직한 반성을 안깁니다. 또한 야생의 덤불 속에서 혹독한 신체적 시련을 겪고 마키시 정령의 축복 아래 비로소 진정한 성인으로 거듭나는 루발레족 소년들의 통과의례는, 파편화된 개인주의 속에서 타인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공동체 결속의 참의미를 되묻게 합니다. 나아가 북소리의 절정 속에서 조상의 영혼과 동화되어 억눌린 상처를 보듬는 렌제족의 무바 춤은, 물리적 치료를 넘어선 연대 의식이 인류 생존에 얼마나 필수불가결한 요소인지를 극명히 보여주었습니다.
잠비아의 다채로운 전통문화는 과거의 특정 시점에 찬란하게 빛나고 멈춰버린 화석화된 유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서구 열강의 거센 식민 지배와 급속한 현대화의 파도 속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언어와 리듬을 지켜낸 사람들의 굳건한 반석입니다. 아프리카 중심부에서 태동한 이 지혜는 바다 건너 한국의 제주 해녀들이 체득한 자연과의 조화, 탈춤이 선사하는 해학적 카타르시스, 그리고 동의보감의 철학적 치유 원리와 훌륭하게 공명하고 있습니다.
Mutu umodzi susenza denga.
One head cannot carry a roof.
머리 하나로는 지붕을 온전히 떠받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