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아프리카의 빵 바구니(Breadbasket of Africa)라고 불릴 정도로 풍요로웠던 짐바브웨(Zimbabwe)로 떠나보겠습니다. ‘짐바브웨’라는 국명은 쇼나어(Shona)로 ‘돌로 만든 큰 집’ 또는 ‘돌 궁전’을 뜻하는 ‘지체바웨(Dzimba-dza-mabwe)’에서 유래했습니다. 짐바브웨의 국명이 유래한 대짐바브웨 국립기념물(Great Zimbabwe National Monument, 1986)은 11세기부터 15세기까지 접착제나 시멘트 없이 오직 돌을 맞물려 쌓아 올린 고대 문명으로 아프리카 석조 건축 기술의 정점을 웅변합니다. 짐바브웨는 남로디지아(Southern Rhodesia, 1923~1965), 로디지아(Rhodesia, 1965~1970), 로디지아 공화국(epublic of Rhodesia, 1970~1979), 그리고 짐바브웨 로디지아(Zimbabwe Rhodesia, 1979) 등을 거쳐 1980년 로버트 무가베(Robert Gabriel Mugabe, 1924~2019)의 지휘 하에 비로소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습니다. 세계 역사상 명목 액면가가 가장 높은 100조 짐바브웨 달러(100,000,000,000,000 Zimbabwean Dollar) 한 장 들고, 짐바브웨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위대한 돌의 집합, 짐바브웨(Dzimbadzemahwe, the architectural mastery) : 가장 먼저 주목할 고유어는 국가 명칭의 뿌리가 된 '짐바브웨(Dzimbadzemahwe, 돌출된 거대한 석조 가옥)'입니다. 이 명칭은 단순히 시각적인 석조 건물을 가리키는 데 그치지 않고, 11세기부터 15세기에 걸쳐 아프리카 남부를 호령했던 거대 제국의 심장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 '대짐바브웨(Great Zimbabwe)'를 관통하는 핵심 상징입니다. 오늘날 마스빙고(Masvingo)시 인근의 남동쪽 구릉지에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대짐바브웨는 식민 통치 이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축조된 모든 석조 구조물 중 단연 최대 규모를 자랑합니다.
서기 1000년 무렵 현대 쇼나족의 분파인 카랑가(Karanga)계 조상들이 본격적인 정착촌을 형성하며 시작된 이 위대한 도시는, 13세기에 이르러 짐바브웨 왕국의 찬란한 수도로 만개했습니다. 무려 7.22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광활한 대지 위에 세워진 유적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뉩니다. 신성한 제례가 거행되던 언덕 복합단지(Hill Complex), 대다수의 인구가 거주하던 계곡 복합단지(Valley Complex), 그리고 왕실의 절대적인 권위를 뿜어내는 육중한 원형 성벽 대포위벽(Great Enclosure)입니다. 가장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대포위벽은 접착 역할을 하는 모르타르(Mortar, 회반죽)를 일절 배제한 채, 수만 개의 화강암 블록을 맨손으로 다듬어 톱니바퀴처럼 빈틈없이 맞물려 쌓은 건식 석축 기법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최대 높이 11미터, 둘레 250미터에 이르는 이 거대한 장벽은 당대 아프리카의 놀라운 공학적 수준을 증명합니다.
▷ 식민주의의 장막을 걷어낸 진실(The truth lifting the veil of colonialism) : 대짐바브웨 유적이 품은 진짜 서사는 건축물의 미학을 넘어, 아프리카인들의 주체성을 짓밟으려 했던 서구 제국주의의 치밀한 역사 왜곡과 이에 맞선 학문적 투쟁에 있습니다. 19세기 후반 서구 열강이 아프리카 대륙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던 시절, 영국의 광신적인 제국주의자 세실 존 로즈(Cecil John Rhodes, 1853~1902)를 위시한 식민 관료들은 이처럼 웅장한 석조 건축물을 토착민의 지능으로 축조했을 리 만무하다고 폄하했습니다. 그들은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발굴단을 꾸린 뒤, 이 유적이 구약성서에 나오는 시바의 여왕(Queen of Sheba)의 궁전이라거나 페니키아인, 이집트인 등 비(非)아프리카 문명이 남긴 유물이라는 허무맹랑한 기원설을 유포했습니다. 이는 아프리카 대륙의 거대한 성취를 외부 문명의 공적으로 돌림으로써 흑인들을 미개한 야만인으로 낙인찍고, 자신들의 참혹한 식민 지배를 문명개화의 과정으로 미화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사기극이었습니다.
그러나 덮인 진실은 영원히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1905년 이집트 고고학에 조예가 깊었던 학자 데이비드 랜들매카이버(David Randall-MacIver, 1873~1945)가 정밀 조사를 벌인 뒤 이 유적이 100% 아프리카 토착민의 창조물이라는 학술적 견해를 최초로 피력했습니다. 뒤이어 1929년 여성 고고학자 거트루드 케이턴톰슨(Gertrude Caton-Thompson, 1888~1985)이 체계적인 층위 발굴을 주도하며 철기 유물과 전통 토기 등 쇼나족의 뚜렷한 생활 유물들을 쏟아냈습니다. 그녀는 건축 양식과 출토 유물 간의 연관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내며 식민주의 관변 학자들의 기만적인 주장을 산산이 조각냈습니다. 서구 학계의 맹목적인 편견을 붕괴시킨 이 학문적 승리는 훗날 짐바브웨 민족주의 진영에 거대한 자긍심의 뿌리가 되었고, 198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영광스러운 결실로 이어졌습니다.
▶ 불굴의 투쟁을 이끈 대지의 영혼, 스비키로(Svikiro, the spirit leading struggles) : 짐바브웨가 품고 있는 역사와 내면을 관통하는 두 번째 핵심어는 '스비키로(Svikiro, 영매)'입니다. 전통 쇼나족 사회에서 스비키로는 앞날을 예언하거나 주술을 부리는 단순한 무당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거대한 위기 상황마다 공동체의 나아갈 길을 밝히고 분쟁을 율법으로 다스리는 사회의 양심이자, 절대적인 정치·종교적 구심점이었습니다. 민중들은 스비키로가 위대한 선조들이나 대지의 정령과 물리적으로 교감하는 신성한 통로라 믿었습니다. 19세기 말 대영제국의 압도적인 기관총 사격 앞에서도 짐바브웨 민중이 피를 흘리며 결사항전을 굽히지 않았던 이면에는, 이 대지의 영혼들이 불어넣은 강인한 자주의식과 불굴의 항쟁 정신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스비키로가 발휘한 초월적인 구심력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은 영국풍 남아프리카 회사(British South Africa Company)의 야만적인 착취에 항거하여 1896년부터 이듬해까지 짐바브웨 전역을 피로 물들인 제1차 치무렝가(First Chimurenga, 제1차 독립 전쟁)의 영웅 네한다 차르웨 냐카시카나(Nehanda Charwe Nyakasikana, 1840~1898)입니다. 당시 서구 식민 세력은 흑인들의 통치 기반을 와해하고 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고자 전통 가옥에 부과하는 오두막세(Hut tax)라는 살인적인 세금을 신설해 가혹하게 수탈했습니다. 일상적인 핍박에 신음하던 쇼나족 계열 제주루(Zezuru) 부족의 영매였던 그녀는 조상신의 신성한 영력을 이어받은 지도자로서, 뿔뿔이 흩어져 있던 부족장들의 서약을 받아내고 경쟁 관계였던 은데벨레(Ndebele)족과 극적인 연합을 이뤄내며 백인 정착촌을 휩쓰는 전국적 무장 봉기를 지휘했습니다.
초기에는 원주민과 백인 정착민 간의 유혈 사태를 막으려 중재하던 그녀였지만, 식민 지배의 횡포가 민중의 숨통을 조여오자 전통 신앙의 최고신 '음와리(Mwari)'가 백인들의 총알을 물로 변하게 할 것이라는 강렬한 주술적 신념을 전사들에게 이식하며 죽음의 공포를 지워버렸습니다. 그러나 1897년 무자비한 근대식 화력을 퍼부은 영국군의 맹공에 봉기군은 궤멸하였고, 그녀 역시 핵심 동지 세쿠루 카구비(Sekuru Kaguvi)와 함께 포로로 전락하고 맙니다. 약식으로 치러진 재판에서 영국 원주민 통제관 폴러드(Pollard)를 암살하도록 사주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그녀는 1898년 4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교수대의 밧줄이 목을 조여오는 마지막 순간에도 그녀는 총독부를 향해 "내 뼈들이 다시 일어나리라!(My bones shall rise again!)"라는 서늘한 저주의 예언을 뱉어냈습니다. 이 핏빛 유언은 허공에 흩어지지 않고 깊은 땅속에 묻혔다가, 1960년대와 70년대 아프리카 대륙을 뒤흔든 짐바브웨 현대 해방 투쟁의 맹렬한 사상적 횃불로 되살아났습니다. 오늘날 짐바브웨 국민들은 그녀의 이름에 존경받는 노부인을 뜻하는 존칭 '음부야(Mbuya)'를 헌정하여, 음부야 네한다를 민족의 영원한 국모로 가슴속에 새기고 있습니다.
▶ 척박한 땅을 달래는 영혼의 울림, 엠비라(Mbira & Mbende, soulful echoes) : 천 년을 버텨낸 석조 문명의 흔적과 피눈물로 얼룩진 항쟁의 역사를 넘어, 우리가 마지막으로 귀 기울여야 할 짐바브웨의 유산은 '엠비라(Mbira, 금속 건반 악기)'와 '엠벤데 예루사레마(Mbende Jerusarema, 전통 안무)'로 대표되는 영적인 리듬과 춤사위입니다. 척박한 기후와 고단한 노동의 굴레 속에서도 짐바브웨인들은 끊임없이 생동감 넘치는 리듬을 엮어내며 공동체의 연대감을 묶고 지친 영혼을 위로해 왔습니다.
서양 음악학의 기준에서 체명악기(Lamellaphone, 體鳴樂器)에 속하는 엠비라는 종종 손가락 피아노라 불리거나, 1950년대 에스노뮤직올로지스트(민족음악학자) 휴 트레이시(Hugh Tracey)가 상업적으로 개량한 칼림바(Kalimba)라는 명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짐바브웨 토착민들에게 이 악기는 서구식 악기 분류표로 재단할 수 없는 깊은 종교적 철학을 내포합니다. 단단한 나무판이나 울림통 위에 길고 짧은 철판 건반들을 엇갈리게 고정한 뒤 양손으로 움켜쥐고 엄지와 검지로 건반을 퉁기는 이 악기는, 무려 3,000년 전 서아프리카 연안에서 대나무로 엮어 만들던 원형이 기원입니다. 이후 약 1,300년 전 잠베지(Zambezi)강 유역으로 전파되며 오늘날의 금속 건반 형태로 완성되었습니다.
쇼나족 사회에서 엠비라는 단순한 오락용 악기가 아니라 마을의 대소사나 제례 의식에서 조상신(무지무)을 현실 세계로 불러들이는 거룩한 주술적 도구입니다. 말린 조롱박 속에 씨앗을 채워 넣은 타악기 호쇼(Hosho)의 둔탁하고 규칙적인 타격음 위로 엠비라의 날카로운 쇳소리가 덧입혀지면, 연주자와 청중은 극도의 영적 황홀경(Trance) 상태로 빠져들며 현세의 후손과 과거의 조상이 시공을 초월해 하나로 이어지는 신비로운 합일을 경험합니다. 이처럼 독창적이고 주술적인 예술성을 국제 사회로부터 인정받아, 2020년 짐바브웨와 인접국 말라위가 공동으로 보존 중인 엠비라 예술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 연대와 화합으로 그리는 미래의 궤적(Future trajectories drawn by solidarity) : 마풍구브웨의 쇠락을 딛고 고원 지대에 새로운 심장을 이식하며 진화해 온 짐바브웨의 역사는, 혹독한 기후 변화와 서구 열강의 잔혹한 착취라는 무자비한 폭풍우 속에서도 결코 자신들의 근원적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았던 불타는 생명력의 증서입니다. 거대한 바윗덩어리를 날라 빈틈없는 성벽을 조립했던 무명의 석공들, 식민주의의 총탄 앞을 맨몸으로 막아서며 해방의 도화선이 되었던 토착민 전사들, 오만한 지배자들의 핍박을 유연한 지혜로 회피하며 조상들의 발구름을 끝끝내 사수한 현명한 부족민들까지. 이 웅장한 아프리카의 서사는 결단코 소수의 지배 권력이나 단 한 명의 걸출한 영웅이 독단으로 써 내려간 기록이 아닙니다.
Rume rimwe harikombi churu.
One man cannot surround an anthill.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거대한 개미집을 에워쌀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