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대서양 서쪽 끝의 섬나라, '녹색의 곶' 카보베르데(Cabo Verde)로 떠나보겠습니다. 카보베르데라는 국명은 아프리카 대륙 최서단 세네갈의 카보베르데 곶(Cap-Vert)에서 유래하였습니다. 화산이 만들어낸 독특한 지형과 열대 기후가 어우러진 카보베르데는 10개의 화산섬과 8개의 작은 부속 도서로 구성된 ‘크레올(Creole) 문화의 요람'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리베이라 그래미/시달리 벨랴(Ribeira Grande, Cidade Velha, 2009)는 열대 지방에 최초로 건설된 유럽식 식민 도시로, 억압과 적응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합니다. 맨발의 디바 세자리아 에보라(Cesária Évora, 1941~2011)의 선율이 흐르는 푸른 상어 (Tubarões Azuis), 카보베르데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가혹한 역사를 품어낸 따뜻한 환대, 모라베자(Morabeza: Warm hospitality embracing a harsh history) : 카보베르데 사람들의 본질을 함축한 첫 번째 키워드는 단연 ‘모라베자(Morabeza)’입니다. 외부인의 시선에서 이 단어는 단순한 환대나 친절함 정도로 번역될 수 있지만, 현지인들에게 모라베자는 일상적인 예의범절을 훌쩍 뛰어넘어 세상을 이해하고 관계를 맺는 고유한 삶의 방식 그 자체입니다. 타인에 대한 깊은 존중, 경쟁을 내려놓은 내면의 평온함, 그리고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인간적 관계 맺기를 포괄하는 거대한 철학에 가깝습니다. 이토록 다정하고 따뜻한 문화가 섬 전체에 뿌리내리게 된 배경에는 역설적이게도 카보베르데의 척박한 자연환경과 억압적인 역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잦은 가뭄과 만성적인 식량 부족, 그리고 식민 지배의 폭력 속에서 사회적 약자인 섬사람들이 벼랑 끝 생존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서로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뿐이었습니다. 내가 가진 음식이 아무리 적고 보잘것없더라도 기꺼이 이웃의 빈 그릇을 채워주고, 거친 바닷바람에 길을 잃은 나그네에게 스스럼없이 쉴 곳을 내어주는 행위는 고난에 맞서는 카보베르데만의 집단적 치유 방식이었습니다.
▷ 고립된 화산섬을 묶는 투명한 연대의 실타래(The invisible thread of solidarity binding isolated volcanic islands) : 오늘날 카보베르데를 방문하는 이방인들은 공항을 빠져나와 섬의 공기를 마시는 순간, 도시의 날 선 시간 흐름이 마법처럼 느려지는 기묘한 감각을 경험하게 됩니다. 길에서 우연히 낯선 여행객과 마주치더라도 현지인들은 다정하게 뺨을 맞대며 "투두 드레투(Tudo dretu?, 모든 것이 괜찮은가요?)"라고 인사를 건넵니다. 의례적인 인사말을 툭 던지고 지나가는 대신,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상대방의 대답을 진심 어린 눈빛으로 기다려줍니다. 길거리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진 아이가 있으면 곁을 지나가던 누구든 친부모처럼 다가가 아이를 안아 올리고 옷의 먼지를 털어줍니다. 이러한 일상의 풍경 속에서 모라베자가 이들의 삶 깊숙한 곳까지 얼마나 완벽하게 체화되어 있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20세기 초 카보베르데의 식자층과 지식인들이 이 민중의 모라베자 정신을 국가를 지탱하는 핵심 정체성으로 적극 승화시켰다는 점입니다.
▶ 떠남과 남겨짐이 빚어낸 숭고한 그리움, 소다드(Sodade: Sublime longing forged by leaving and being left behind) : 두 번째 키워드는 바로 ‘소다드(Sodade)’입니다. 포르투갈어 단어인 사우다드(Saudade)에서 파생되어 카보베르데만의 독자적인 감성으로 정착한 이 크리올루 어휘는 향수, 그리움, 깊은 상실감, 그리고 잃어버린 누군가를 향한 애틋한 애정이 겹겹이 얽힌 복합적인 감정 상태를 뜻합니다. 카보베르데 사람들에게 소다드에는 과거를 향한 맹목적인 감상주의를 넘어선 묵직한 생명력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다름 아닌 평생을 누군가와의 이별과 동거해야만 했던,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 사람들의 숙명적인 슬픔이자 삶을 지탱하는 비극적 에너지입니다. 생명체가 살아남기에 턱없이 부족한 식수와 자원이라는 섬의 치명적인 한계 때문에, 카보베르데 사람들은 굶주림을 피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향을 등져야만 했습니다. 특히 1950년대 대가뭄 이후 수많은 사람이 생존을 위해 미국,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지의 험한 일자리를 찾아 대규모 이주를 감행했습니다. 그 결과 현재 카보베르데 본토 거주 인구인 약 50만 명보다 해외에 둥지를 튼 이민자 숫자가 60만 명을 훌쩍 넘어서는 기형적인 인구 구조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토록 가슴 시린 소다드의 정서를 가장 완벽하고도 구슬프게 담아낸 음악 장르가 바로 ‘모르나(Morna, musical practice of Cabo Verde)’입니다. 201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모르나는 서정적인 시와 유려한 춤, 그리고 기타(violão), 바이올린, 카바키뉴(Cavaquinho) 등의 악기 연주가 하나로 어우러진 카보베르데 고유의 전통 음악입니다. 사랑의 기쁨보다는 뼈아픈 이별, 그리고 바다 건너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유장하고 우수 어린 단조의 선율에 실어 노래합니다. 흥미롭게도 모르나의 악기 구성과 표면적인 멜로디 전개는 다분히 유럽적이지만, 그 이면에 은은하게 흐르는 리듬감과 가수의 독특한 발성은 강인한 서아프리카의 영혼을 원형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 맨발의 디바가 전 세계에 띄운 눈물의 편지(A tearful letter sent to the world by the barefoot diva) : 섬 구석구석에서 불리던 소박한 초기 민속 음악에 불과했던 모르나를 문학적이고 세련된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선구자는 에우제니우 타바레스(Eugénio Tavares, 1867~1930)입니다. 브라바(Brava)섬 출신의 천재적인 시인이자 음악가였던 그는 소외받던 언어인 크리올루어를 적극 활용해 거친 바다와 불가피한 이별, 낭만적인 사랑의 감정을 고도의 시적 언어로 섬세하게 표현해냈습니다. 그의 눈부신 혁신 덕분에 모르나는 흙먼지 날리는 시골의 비포장도로에서 벗어나, 화려한 라디오 전파를 타고 지식인들의 문학 살롱으로 널리 퍼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경을 넘어 모르나와 소다드의 짙은 감성을 전 세계인의 가슴속에 영원히 각인시킨 결정적 인물은 세자리아 에보라(Cesária Évora, 1941~2011)입니다. 가난한 항구 도시 민델루(Mindelo)의 낡은 술집에서 노래하며 생계를 이었던 그녀는, 훗날 세계 최고의 무대에 올랐을 때도 화려한 구두 대신 항상 맨발을 고집하여 ‘맨발의 디바’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무대 위 그녀의 맨발은 가난에 시달리는 조국, 그리고 세계 곳곳의 빈민들을 향한 굳건하고 진정성 있는 연대의 표시였습니다. 1992년 쉰을 넘긴 나이에 발표한 앨범 ‘미스 페르푸마두(Miss Perfumado)’가 프랑스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수십만 장 이상 판매되며 상업적 대성공을 거두자, 카보베르데 조그만 섬마을 음악이었던 모르나는 단숨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월드 뮤직의 반열로 솟아올랐습니다.
▶ 아프리카와 유럽이 융합된 문화적 DNA, 크리올루(Kriolu: The cultural DNA fusing Africa and Europe) : 카보베르데의 문화를 가장 거시적인 관점에서 관통하는 세 번째 키워드는 바로 ‘크리올루(Kriolu)’입니다. 15세기 대항해시대의 물결을 타고 유입된 포르투갈의 식민 제국주의자들과 서아프리카 각지에서 쇠사슬에 묶여 끌려온 노예들이 조우하며 폭발적으로 탄생한 크리올루는,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크리올(서로 다른 언어가 섞여 형성된 혼성어) 언어입니다. 언어와 풍습이 전혀 다른 만딩카(Mandinka), 월로프(Wolof) 부족 등 수많은 아프리카인은 잔혹한 노예선과 가혹한 농장에서 소통하고 감시망을 피하고자 필사적으로 새로운 언어 체계를 창조해야만 했습니다.
카보베르데 크리올루는 고대 포르투갈어의 어휘를 광범위하게 차용하되, 서아프리카 토착 언어들의 복잡하고 고유한 문법 체계와 특유의 리듬을 절묘하게 결합하여 만들어졌습니다. 권력을 쥔 식민 지배자들은 이 언어를 수준 낮고 천박한 방언이라 멸시하며 공식 석상에서는 오직 포르투갈어만을 사용할 것을 가혹하게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크리올루는 굴복하지 않고 수백 년간 농부들의 구전과 어머니들의 자장가를 통해 사람들의 뜨거운 심장 속에 살아남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카보베르데의 학교나 관공서 공식 문서에서는 포르투갈어가 사용되지만, 가정의 식탁 위와 활기찬 길거리, 뜨거운 사랑과 뼈아픈 슬픔을 표현하는 감정의 교류에서는 100% 크리올루가 사용됩니다.
아프리카의 위대한 독립투사이자 날카로운 지성을 소유한 사상가였던 아밀카르 카브랄(Amílcar Cabral, 1924~1973)은 이러한 크리올루 문화가 지니고 있는 정치적, 사회적 폭발력을 누구보다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력에 앞서 한 민족의 문화를 억압하고 말살하는 것이 식민주의의 가장 악랄한 본질이라고 규정하였고, 완전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민중의 언어인 크리올루와 전통 음악을 저항의 최전선 무기로 내세웠습니다.
▷ 검은 무쇠 냄비 속에서 끓어오르는 생존의 역사(A history of survival boiling in a black iron pot) : 크리올루 언어가 각기 다른 대륙에서 온 사람들의 정신을 융합했다면, 식문화는 그들의 육체와 생존 방식을 완벽하게 융합시켰습니다. 크리올루 문화의 정수를 혀끝으로 가장 직관적이고 강렬하게 맛볼 수 있는 상징은 단연 국민 요리 ‘카추파(Cachupa)’입니다. 카추파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건너온 옥수수와 콩,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입된 카사바와 고구마를 거대한 냄비에 한가득 넣고, 그 위에 포르투갈식으로 절인 고기나 풍미가 강한 소시지(초리조), 갖은 향신료를 듬뿍 더해 뭉근한 장작불에 오랫동안 끓여내는 전통 찌개 요리입니다.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자라기 힘든 화산섬에서 혹독한 가뭄과 치명적인 식량난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돌밭에서 간신히 거둘 수 있는 작은 수확물조차 결코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곳간에 조금씩 남은 식재료를 커다란 한 냄비에 몰아넣고 오랜 시간 정성껏 끓여낸 카추파는, 턱없이 적은 양의 고기와 채소로도 마을 사람들이 배불리 나누어 먹을 수 있는 눈물겨운 생존 요리였습니다. 가난한 민중은 값싼 채소와 콩 위주의 '카추파 포브르(Cachupa Pobre, 가난한 카추파)'로 허기를 달래야 했고, 주머니 사정에 여유가 있는 상인이나 지주들은 고기와 신선한 해산물이 듬뿍 들어간 '카추파 히카(Cachupa Rica, 부유한 카추파)'를 즐겼습니다. 그러나 빈부 격차와 무관하게 그들은 결국 옥수수와 콩이라는 같은 뿌리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단단한 공동체의 소속감을 다졌습니다.
▶ 척박한 대지가 잉태한 기적의 메아리(The echo of miracles conceived by barren earth) : 대서양의 거센 바람과 생명이 자랄 수 없는 검은 화산재로 뒤덮인 카보베르데는 애초에 인간이 뿌리내리고 살아가기에는 너무도 가혹한 땅이었습니다. 15세기 대항해시대의 돛을 올리며 노예무역의 기착지로 전락하며 강제로 시작된 이 섬의 역사는, 억압과 착취,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가뭄과 기아로 얼룩진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카보베르데 사람들은 역사가 무책임하게 던져준 비극적인 조건에 결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피할 수 없는 가난과 결핍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도, 자원을 두고 타인을 배척하는 대신 이웃에게 기꺼이 어깨를 내어주고 슬픔을 나누는 모라베자의 따뜻한 연대를 발명해 냈습니다.
A esperança é a última a morrer.
Hope is the last to die.
희망은 가장 마지막에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