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케냐산(Mount Kenya)을 품은 케냐(Republic of Kenya)로 떠나보겠습니다. 케냐라는 국명은 '흰 산' 혹은 '빛나는 산'을 뜻하는 키리냐가(Kĩrĩmanyaga), 일명 케냐산(Mount Kenya)에서 유래했습니다. 케냐는 동아프리카 대지구대(Kenya Lake System in the Great Rift Valley, 2011)의 거대한 절경부터 해마다 수백만 마리의 야생동물이 생존을 건 대이동을 펼치는 마사이마라(Maasai Mara Game Reserve, 2023)까지, 생명의 거친 숨소리가 살아 숨 쉬는 '동물의 낙원'입니다. 특히 인도양에 위치한 라무 구시가지(Lamu Old Town, 2001)는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되고 보존이 잘 된 스와힐리 정착지(Swahili settlement)입니다. 태양 아래 녹색 도시(Green City in the Sun), 나이로비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공동체의 숨결로 직조해 낸 연대 정신, 하람베(Harambee, the solidarity woven by the breath of the community) : 케냐 사회를 이해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하람베(Harambee)'입니다. 스와힐리어로 "우리가 다 함께 힘을 모아 당기자(Let us all pull together)"라는 뜻의 이 단어는 현지인들의 이타적인 공동체(共同體) 연대 의식을 대변합니다. 이 어휘의 뿌리는 1890년대 영국 식민지 시절, 케냐-우간다 철도(Kenya-Uganda Railway) 부설 현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강제 노역에 투입된 인도계 노동자들이 창조신 '하레(Hare)'와 여신 '암베(Ambe)'의 이름을 부르던 기도문이 아프리카 인부들에게 이식되었고, 이후 극한의 노동 환경에서 무게를 지탱하기 위한 협동의 구음 '하람베'로 토착화되었습니다. 1963년 독립 후, 초대 대통령 조모 케냐타(Jomo Kenyatta, 1893~1978)는 분열된 부족들을 통합하고 국토를 복구하기 위해 이 단어를 국가 공식 슬로건으로 채택했습니다. 하람베는 국가 문장(Coat of arms)에 새겨졌으며, 오늘날에는 교육 및 의료 시설 건립이나 이웃 지원을 위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자조적(自助的) 공익 모금 문화로 정착했습니다.
▷ 춤과 의례, 그리고 성소에 깃든 이타적 공유 정신(The spirit of altruistic sharing imbued in dances, rituals, and sanctuaries) : 타인을 포용하는 연대의 철학은 케냐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人類無形文化遺産)에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2014년 긴급보호무형유산 목록에 오른 서부 케냐 이수카와 이다코 공동체의 이수쿠티 춤(Isukuti dance of Isukha and Idakho communities of Western Kenya)은 하람베 정신이 축제로 승화된 사례입니다. 타악기 박자에 맞춰 마을 전체가 격렬한 율동을 선보이는 이 전통 공연은 출산, 혼례, 장례 등 주요 행사마다 열려 부족의 유대감을 증폭시키는 매개체가 됩니다. 2018년 목록에 추가된 마사이 공동체의 3가지 남성 통과 의례: 엔키파타, 에우노토, 올응게셰르(Enkipaata, Eunoto and Olng'esherr, three male rites of passage of the Maasai community) 또한 강력한 연대의 산물입니다. 소년들이 성인으로 발돋움하는 험난한 과정을 부족 전원이 합심해 이끌어주며, 이를 통해 젊은이들은 부족 수호와 지혜 계승의 사명감을 부여받습니다. 200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미지켄다 카야의 성스러운 숲(Sacred Mijikenda Kaya Forests)은 웅장한 연대 철학을 생태계 전반으로 확장합니다. 16세기 이민족의 약탈을 피해 미지켄다(Mijikenda) 부족민들이 밀림에 구축한 요새형 촌락 '카야(Kaya)'의 역사를 증언합니다. 현재 거주 공간으로서의 역할은 상실했으나, 원로 회의의 엄격한 금기 사항을 통해 벌목과 수렵을 통제하며 생태계 피난처이자 선조들의 영적 성역으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 작열하는 태양 아래 피어난 창조성, 주아 칼리(Jua Kali, creativity blooming under the scorching sun) : 두 번째 키워드는 "맹렬한 태양(Fierce sun)"을 뜻하는 '주아 칼리(Jua Kali)'입니다. 초기 이 단어는 열악한 길거리에서 고철을 두들겨 생필품을 만들던 노점 장인(匠人)들을 지칭했습니다. 이들은 버려진 타이어로 '아칼라(Akala)' 샌들을 만들고, 구멍 난 양철판으로 조리용 화덕을 제작했습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이들의 억척스러운 생존 방식은 현재 케냐의 비공식 경제(Informal sector) 전체를 대변하는 용어로 확장되었습니다.
▷ 무에서 유를 창조한 석조 성채와 해안의 융합 예술(Stone fortresses creating something out of nothing and the fusion art of the coast) : 주아 칼리의 직관적인 응용력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건축물에 명확히 남아 있습니다. 201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팀리치 오힝가 고고학 유적(Thimlich Ohinga Archaeological Site)은 16세기 유목민들이 야생 맹수와 외적으로부터 가축을 보호하기 위해 광활한 사바나에 쌓은 건식 석조(Dry-stone) 방어벽입니다. 현대적 인공 접착제 없이 둥근 현무암을 중력과 마찰력만으로 정교하게 짜맞춰 4미터가 넘는 성벽을 완성했습니다. 이는 폐기물 속에서 쓰임새를 찾아내는 현대 주아 칼리 장인들의 기지를 훌쩍 뛰어넘는 고대의 마스터피스입니다.
200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인된 북부 해안의 라무 구시가지(Lamu Old Town)는 14세기부터 무역항으로 번성한 스와힐리 정착 마을입니다. 직사광선과 열풍을 상쇄하기 위해 비좁고 굽이치는 골목을 설계했습니다. 산호 암석(Coral stone)과 맹그로브(Mangrove) 목재를 뼈대로 삼은 가옥은 실내 통풍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아프리카 토착 미술과 아라비아반도, 페르시아, 인도의 미학이 혼합된 이 퓨전 예술 도시는 거센 근대화의 파도 속에서도 전통을 사수하는 회복탄력성을 대변합니다.
1593년 건설되어 201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포트 지저스, 몸바사(Fort Jesus, Mombasa)는 외세 침략의 역사를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한 요새입니다. 이탈리아 건축가의 도면과 스페인 펠리페 2세(Felipe II)의 명령으로 지어졌으나, 실제 붉은 산호석을 자르고 운반한 주역은 억압받던 스와힐리 노역자들이었습니다. 포르투갈, 오만, 대영제국에 이르기까지 9번이나 지배 권력이 바뀌는 피의 살육전을 거치며, 아프리카 원주민의 토목 기술, 아랍의 이슬람 장식, 유럽의 군사 공학이 결합된 독보적인 문화 융합의 상징으로 남았습니다.
▶ 대자연과 함께 걷는 끝없는 여정, 사파리(Safari, an endless journey walking with Mother Nature) : 현대 사회에서 '사파리(Safari)'는 야생동물 관람 패키지를 의미하지만, 스와힐리어의 원형은 아랍어 '사파르(Safar)'에서 파생된 "기나긴 여정(Journey)"을 뜻합니다. 넓은 초식동물의 이동부터 생명 진화의 역사까지 모두 거대한 사파리의 일부입니다. 케냐의 다채로운 자연 유산은 지구 표면의 변화와 진화의 궤적을 보존한 거대한 타임캡슐입니다. 1997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투르카나호 국립공원(Lake Turkana National Parks)은 인류 진화의 사파리를 역추적하는 고인류학의 성지입니다. 전 세계 사막 지대 호수 중 최대 면적을 점유한 이곳의 쿠비 포라(Koobi Fora) 퇴적층에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하빌리스 등 플리오세와 홍적세(Plio-Pleistocene)를 거친 초기 인류 화석이 무더기로 발굴되었습니다. 이는 기후 변화 속에서 인류 조상이 어떻게 직립 보행을 시작했는지를 증명합니다. 2011년에 목록에 합류한 대지구대의 케냐 호수계(Kenya Lake System in the Great Rift Valley)는 나쿠루(Nakuru), 보고리아(Bogoria), 엘레멘타이타(Elementaita) 3개의 얕은 알칼리성 염수호로 구성됩니다. 염도가 높은 독성의 물속에서 증식하는 스피룰리나(Spirulina) 계열 미세 조류(Algae)를 섭취하기 위해 수백만 마리의 홍학(Flamingo)과 흰펠리컨 무리가 운집한 장관은 조류(鳥類) 생태 사파리의 하이라이트입니다.
▷ 숲속으로 사라진 고대 도시와 생태 복원을 향한 현대의 발걸음(The ancient city vanished into the forest and modern steps toward ecological restoration) : 2024년 8번째 세계유산으로 추가된 게디의 역사 도시와 고고학 유적(Historic Town and Archaeological Site of Gedi)은 문명의 쇠락과 자연의 순환을 증명합니다. 10세기에서 17세기까지 인도양 해상 교역을 주도했던 이 스와힐리 도시는 정교한 이슬람 사원과 진보적인 상하수도 시스템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원인 미상의 이유로 주민들이 증발해 버렸고, 유적은 해안가 열대림(Coastal forest)에 잠식되었습니다. 이슬람력 802년(서기 1399년)이 각인된 묘석(Dated tomb)만이 찰나에 불과한 인간 문명의 덧없음을 상기시킵니다. 그러나 현대의 케냐인들은 훼손된 대지를 인위적으로 복원하는 새로운 '치유와 회복의 사파리'를 개척 중입니다. 아프리카 여성 최초의 2004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왕가리 마타이(Wangarĩ Muta Maathai, 1940~2011)가 대표적입니다. 그녀는 무분별한 천민자본주의 개발로 사막화가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1977년 '그린벨트 무브먼트(Green Belt Movement)'를 조직했습니다. 1997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케냐산 국립공원 및 자연 숲(Mount Kenya National Park/Natural Forest) 일대의 벌목을 저지하고자 극빈층 농촌 여성들과 5천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었으며, 이는 생태 복원과 여성 인권 향상을 이뤄낸 실천적 사파리로 평가받습니다.
▶ 지혜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내일(The tomorrow pointed by the compass of wisdom) : 지금까지 세가지 스와힐리어 키워드를 필터 삼아 케냐의 붉은 대지 위에 찬연하게 흩뿌려진 세계유산들을 탐구해 보았습니다. 상처 입은 이웃을 향해 기꺼이 손을 내미는 공동체의 영혼 '하람베(Harambee)', 혹독한 적도의 자외선 폭격 아래서도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고 돌파구를 빚어낸 불굴의 창의성 '주아 칼리(Jua Kali)', 그리고 거스를 수 없는 대자연의 순환 법칙에 경외심을 품은 채 생태계와 조화롭게 호흡하며 현생 인류 진화의 기나긴 경로를 통과해 온 영원불멸의 여정 '사파리(Safari)'. 이 세 가지 사상적 기둥은 식민의 뼈아픈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눈부신 미래를 향해 진군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지혜의 나침반이었습니다. 야생의 맹수와 이민족의 약탈을 방어하기 위해 투박하고 거친 현무암으로 다급하게 뭉쳐 올린 성벽, 무자비한 열대우림에 삼켜져 잠시 잊혔던 고대 도시의 흔적, 그리고 제국주의의 야만적인 수탈이라는 상흔을 총탄 자국으로 온몸에 훈장처럼 새긴 차가운 요새……. 이 모든 참혹한 수난과 가혹한 시련은 종국에 그들을 무너뜨리지 못했으며, 오히려 케냐라는 국가를 세상 그 어느 곳보다 단단하고 매력적인 정체성으로 무장시켜 준 강력한 영혼의 거름이 되었습니다.
Penye nia ipo njia.
Where there is a will, there is a way.
확고한 뜻이 있는 곳에 마침내 새로운 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