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세계 최대의 카카오 생산국(The world's largest cocoa producer)’ 코트디부아르(République de Côte d'Ivoire)로 떠나보겠습니다. ‘코트디부아르’라는 국명은 15세기 항해 시대 포르투갈 상인들이 상아(Ivory)를 거래하면서 부른 상아 해안(Ivory Coast)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코트디부아르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그랑바상 역사 도시(Historic Town of Grand-Bassam, 2012)는 19세기 말 프랑스 식민지의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야무수크로의 평화의 성모 대성당(Basilica of Our Lady of Peace)과 북부 지역의 이슬람 양식 모스크들은 이 땅이 지닌 문화적 다원성을 보여줍니다. 프랑스 건축물 사이로 식민지 역사의 아픔이 공존하는 곳, 그랑바상으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황금과 권위의 상징, 난드와 블라와(Nandwa blawa: Symbol of gold and authority) : 코트디부아르를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키워드는 바울레(Baoulé)족의 고유 언어인 '난드와 블라와(Nandwa blawa)'입니다. 직역하면 '말총 먼지떨이(Horse-tail fly whisk)'를 의미하는 이 도구는 표면적으로는 날벌레를 쫓기 위한 실용적인 물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정교하게 조각된 나무 손잡이에 순도 높은 금박을 입히고 코끼리나 말의 꼬리털을 엮어 만든 신성한 의물(Ritual object)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코트디부아르 전통 군장 사회(Chiefdom Society)의 최고 권위를 시각적으로 응축한 상징입니다. 왕이나 족장이 부족의 중요한 의식에서 난드와 블라와를 부드럽게 흔드는 행위는 물리적인 해충을 쫓아내는 것을 넘어, 공동체를 위협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악령과 불운을 떨쳐내고 백성들을 영적으로 강력하게 보호하겠다는 통치 철학의 발현이었습니다. 불변하는 부를 상징하는 황금과 야생의 생명력을 뜻하는 짐승의 털이 결합된 이 상징물은, 전통 시대의 권력이 자연의 질서와 얼마나 긴밀하고 신비롭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증명합니다.
이러한 코트디부아르 토착 권력의 고유한 세계관은 19세기 후반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거센 팽창과 마주하며 거대한 역사적 변곡점을 맞이합니다. 그 치열했던 충돌과 타협, 그리고 문화적 융합의 궤적이 지층처럼 겹겹이 쌓인 공간이 바로 2012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그랑바상 역사 도시(Historic Town of Grand-Bassam)입니다. 코트디부아르 남동부의 좁은 반도에 위치한 그랑바상은 본래 은제마(Nzema)족을 비롯한 원주민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러나 1880년대 후반 프랑스가 진출하며 식민 통치의 첫 번째 수도이자 핵심적인 군사·상업 거점으로 요새화되었습니다. 1893년부터 정식 수도로 기능했던 이 도시는 황열병 창궐로 인해 수년 만에 행정 중심지로서의 지위를 잃었지만, 1950년대까지 유럽과 아프리카, 중동의 상인들이 쉴 새 없이 모여드는 코트디부아르 최대의 항구이자 상업 허브로 번영을 누렸습니다.
▶ 리듬 속에 피어난 궁극의 미, 자울리(Zaouli: Ultimate beauty blooming in rhythm) : 코트디부아르 문화가 도달한 예술적 성취와 공동체적 연대를 가장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두 번째 키워드는 '자울리(Zaouli)'입니다. 2017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자울리는 코트디부아르 중부의 부아플레(Bouaflé)와 주에눌라(Zuénoula) 지역에 주로 거주하는 구로(Guro)족 공동체의 전통 음악이자 가면춤입니다. '젤라의 딸(Daughter of Djela)'이라는 시적인 의미를 품은 자울리는 본질적으로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가이며, 구로족 사회의 신화와 전설을 공감각적으로 재현하는 종합 무대 예술입니다. 이 경이로운 예술은 결코 한 사람의 천재성에 의해 완성되지 않습니다. 조각가가 나무의 결을 살려 정교하고 화려한 가면을 깎아내면 직조 장인은 전통 문양이 새겨진 의상을 짜고, 악기 연주자와 가수들이 흥을 돋우는 가운데 무용수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듯한 신들린 발놀림으로 가면춤에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열리는 마을 공연과 경연 대회는 아마추어들이 숙련된 장인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는 살아있는 학교이자, 세대 간 소통을 잇는 강력한 사회적 접착제 역할을 합니다.
▶ 대지를 품은 어머니의 손맛, 아체케(Attiéké: Mother's touch embracing the earth) : 코트디부아르인들의 육체를 지탱하는 든든한 기반이자, 모계 중심의 지혜가 농축된 식문화를 대변하는 세 번째 키워드는 '아체케(Attiéké)'입니다. 2023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아체케 제조 기술(Skills related to Attiéké production in Côte d'Ivoire)은, 코트디부아르 남부 석호(Lagoon) 지대에 거주하는 민족들이 카사바(Cassava) 뿌리를 가공하여 북아프리카의 쿠스쿠스(Couscous)와 유사한 포슬포슬한 질감으로 쪄내는 복잡하고 고된 과정을 의미합니다. 아체케 한 그릇이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완벽한 성별 분업과 정교한 기술이 요구됩니다. 남성들이 뜨거운 태양 아래 밭을 일궈 카사바를 재배·수확해 마을로 운반하면, 여성들은 이를 곱게 빻아 발효시킨 후 증기로 쪄내 음식으로 완성합니다. 이후 카사바 잎을 깐 바구니에 보기 좋게 담아 포장하고 유통하는 것까지 모두 여성의 몫입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요리의 차원을 뛰어넘습니다. 어머니가 딸에게 아체케를 만드는 비법을 구전과 관찰을 통해 전수하는 시간은, 곧 여성으로서 삶의 지혜와 결혼, 공동체 내에서의 역할을 가르치는 훌륭한 가정 교육의 현장입니다. 더불어 아체케 생산 기술을 온전히 습득하는 것은 코트디부아르 여성들이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 사회의 주역으로 통합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일상적인 가족 식사부터 세례식, 결혼식, 장례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중요한 행사에 빠지지 않는 아체케는, 저렴하고 영양가 높은 식량으로서 국가 식량 안보에 기여할 뿐 아니라 '이보리안(Ivorian)'이라는 국민적 정체성을 묶어주는 강력한 매개체입니다.
▷ 생명력을 품은 대자연의 보호막(The protective shield of Mother Nature embracing vitality) : 아체케의 뼈대가 되는 카사바가 건강하게 뿌리내릴 수 있는 코트디부아르의 비옥하고 풍요로운 대지는 유네스코 자연유산이라는 거대한 생태적 보호막 안에서 숨 쉬고 있습니다. 코트디부아르 서남부에 위치한 타이 국립공원(Taï National Park, 1982)은 과거 서아프리카 전역을 덮고 있던 1차 열대우림의 마지막 남은 거대한 파편입니다. 강수량이 풍부한 호우성(Ombrophilous) 상록수림으로 이루어진 이 공원은 150여 종 이상의 고유종(Endemic species) 식물이 서식하는 생물 다양성의 보고입니다. 무엇보다 돌과 같은 도구를 능숙하게 사용해 단단한 견과류를 깨 먹는 뛰어난 지능의 침팬지 11개 무리와 피그미하마 등 희귀 포유류의 필수적인 안식처로서, 영장류 연구의 세계적 중심지로 꼽힙니다. 동북부에 광활하게 펼쳐진 코모에 국립공원(Comoé National Park, 1983)은 코모에 강(Komoé River)을 젖줄 삼아 열대우림과 사바나, 수변 초원, 그리고 강기슭을 따라 띠 모양으로 형성된 갤러리 숲(Gallery forest)이 모자이크처럼 얽힌 독특한 생태계를 자랑합니다. 이곳은 내전으로 인한 관리 부재와 심각한 밀렵 탓에 2003년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World Heritage in Danger)' 목록에 등재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코트디부아르 정부와 국제사회의 치열한 보존 노력 덕분에 멸종 위기종(Endangered species)인 아프리카 들개(African wild dog)와 침팬지 개체 수가 눈에 띄게 회복되었고, 2017년 마침내 위험 목록에서 해제되는 감동적인 쾌거를 이뤘습니다.
▶ 상처를 넘어 평화의 연대로(Beyond scars, towards a solidarity of peace) : 우리가 지금까지 짚어온 코트디부아르의 유네스코 유산들은 단순히 보기 좋은 풍경이나 신기한 과거의 유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대자연의 압도적인 경이로움과 폭력적이었던 식민 지배의 상흔, 그리고 그 모든 시련을 극복해 낸 토착민들의 눈부신 예술적 성취와 일상적 지혜가 농축된 인류의 거대한 자산입니다. 난드와 블라와가 조용히 웅변하는 토착민의 역사적 권위와 긍지, 자울리의 역동적인 발걸음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자아내는 긍정의 미학, 하얀 아체케 한 그릇에 담긴 숭고한 어머니들의 헌신과 자립의 정신은 오늘날 코트디부아르 사회를 흔들림 없이 지탱하는 강력한 문화적 기둥이자 미래를 향한 나침반입니다.
특히 코트디부아르는 유형의 건축물이나 무형의 춤사위를 넘어, 과거 세대가 축적한 무형의 철학과 사상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한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In Africa, when an old man dies, a library burns)"는 명언으로 잘 알려진 말리 출신의 아마두 함파테 바(Amadou Hampâté Bâ, 1900~1991)의 정신은 오늘날 코트디부아르 아비장(Abidjan)에 위치한 그의 재단을 통해 숭고하게 계승되고 있습니다. 그가 평생을 바쳐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서 수집한 방대한 구전 문학, 전통 종교, 민족학 관련 원고들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프로그램과 국제적 파트너십을 통해 디지털화되어 보존되고 있습니다. 풀라르(Pulaar)어, 아랍어, 프랑스어 등으로 남겨진 4,000점 이상의 귀중한 문서를 해독하고 복원하는 이 프로젝트는, 잊혀가는 아프리카의 내밀한 목소리를 인류 공동의 영구적인 기억으로 격상시키는 숭고한 작업입니다.
결국 과거의 뼈아픈 기록을 투명하게 보존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왔던 전통의 가치를 되살리는 일은 내일을 살아갈 후세에게 더 나은 이정표를 제시하기 위한 인류 공동의 책무입니다. 수세기에 걸친 외세의 침탈과 광복 이후 겪어야 했던 내전이라는 혹독한 역사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코트디부아르 사람들은 서로를 향한 파괴적인 복수 대신 용서와 타협이라는 성숙하고도 고단한 길을 걷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습니다.
La paix n'est pas un mot, c'est un comportement.
Peace is not a word; it is a behavior.
평화는 단순한 단어가 아니라, 행동 그 자체다.
펠릭스 우푸에부아니(Félix Houphouët-Boigny, 1905~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