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지중해(Mediterranean Sea)와 사하라 사막(Sahara Desert)이 맞닿은 땅, 리비아(Libya)로 떠나보겠습니다. 기원전 631년, 그리스 테라 섬(Thera) 이주민들이 세운 도시 키레네(Cyrene)는 지중해와 아프리카 내륙을 잇는 관문으로 번성했습니다만, 정작 리비아 국토의 90% 이상은 사하라 사막이며 인구 대다수는 지중해 연안의 좁은 띠 모양 지대에 모여 살아갑니다. 서기 193년 렙티스 마그나에서 태어나 로마 황제에 오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ptimius Severus, 145~211)는 유럽과 이라크까지 원정했으나 정작 고향과는 먼 영국 요크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로마인이면서 끝내 아프리카인이었던 그의 생애는 지중해와 사하라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으면서 양쪽을 품어온 리비아 역사를 상징합니다.
사하라 한복판의 오아시스 도시 가다메스(Ghadames) 옛 시가지는 1986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진흙 벽돌 건물들은 뜨거운 태양을 막도록 서로 맞닿아 늘어섰고, 지붕과 지붕을 잇는 통로로 여성들이 이웃집을 오가던 독특한 구조는 사막의 혹독함이 공동체의 지혜로 승화된 결과입니다. 이븐 바투타(Ibn Battuta, 1304~1369)의 ‘알 리흘라(The Rihla)’ 한권 들고, 가다메스의 미로 같은 골목길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 시리즈와 함께 멋진 여행을!
▶ 모래폭풍 앞에서도 꺾이지 않은 뿌리, 수무드(Ṣumūd: The Root That Does Not Break Before the Sandstorm) : 리비아를 이해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아랍어로 '굳건히 버팀', '흔들리지 않는 의지'를 뜻하는 수무드(صمود, Ṣumūd)입니다. 본고에서는 수무드를 리비아 역사 전체를 설명하는 고정된 민족적 특성이라기보다, 혹독한 환경과 외부의 압력 속에서도 삶과 공동체를 이어온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겠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수무드라는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리비아의 세계유산은 1985년 등재된 '타드라르트 아카쿠스 암각화군(Rock-Art Sites of Tadrart Acacus)'입니다. 리비아 남서부 페잔(Fezzan)의 가트(Ghat) 인근, 알제리의 타실리 나제르(Tassili n'Ajjer)와 맞닿은 타드라르트 아카쿠스에는 수천 점의 동굴벽화와 암각화가 남아 있습니다. 유네스코는 이 유적의 연대를 약 기원전 1만 2,000년부터 서기 1세기까지로 설명하며, 그림과 암각화가 이 지역의 동식물 변화와 시대별 생활양식의 변화를 보여준다고 평가합니다.
놀랍게도 기린과 코끼리, 코뿔소 등 오늘날의 사하라에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동물들이 암벽에 등장합니다. 이 장면들은 사하라가 현재와 같은 초건조 환경으로 변하기 전, 훨씬 습윤한 기후와 다양한 동식물이 존재했던 시기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중요한 것은 이 그림들을 단순히 '사막에 남은 동물 그림'으로 보는 데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암각화의 양식과 소재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은 이곳의 환경과 인간의 생활 방식 역시 오랜 시간 동안 변화해 왔습니다. 타드라르트 아카쿠스의 암각화는 여러 시기의 양식적 변화로 구분됩니다. 초기에는 야생동물과 대형 포유류가 중심이 되고, 이후에는 이른바 '둥근 머리(Round Head)' 양식과 목축을 반영하는 장면들이 등장하며, 더 후대에는 말과 낙타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미술 양식의 변천을 넘어 사하라의 기후와 동물상, 인간의 생업과 이동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같은 사하라의 선사시대 암각화 유산으로 알제리의 '타실리 나제르(Tassili n'Ajjer)'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두 유산은 국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인접한 사하라의 암각화 지대로, 각각 독립된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수무드의 정신은 고대 암벽화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리비아의 근현대사는 이 정신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피로 증명합니다. 1911년 이탈리아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리비아를 빼앗으려 침공했을 때, 리비아인들은 사누시야(Sanusiyya)와 지역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이탈리아에 대한 저항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키레나이카(Cyrenaica) 지방의 지도자 오마르 무크타르(Omar Mukhtar, 1858~1931)는 이탈리아군에 맞선 게릴라전을 이끌다가 1931년 체포되어 9월 16일 공개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타드라르트 아카쿠스의 암각화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특정 민족의 저항을 직접 기록한 기념물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기후와 환경이 바뀌고 사람들이 세대를 거듭해 이동하는 동안에도 인간의 삶이 이 땅에 흔적을 남겼음을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 사막이 빚은 가장 정교한 도시, 가다메스(غدامس, Ghadamès: The Most Exquisite City Sculpted by the Desert) : 리비아를 더 깊이 이해하는 두 번째 키워드는 아랍어로 '사막의 진주(Pearl of the Desert)'라 불리는 가다메스(غدامس, Ghadamès)입니다. 리비아 북서부, 알제리·튀니지 국경에 가까운 사막의 오아시스에 자리한 이 도시는 198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고대부터 사하라를 가로지르는 교역로의 중요한 거점이었으며, 로마 시대에는 키다무스(Cydamus)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비잔티움, 이슬람, 오스만 시대를 거치며 사하라 교역의 교차로로 발전했습니다. 가다메스의 구도시(Old Town)는 인류가 사막이라는 극한 환경에 어떻게 적응했는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건축 사례입니다. 유네스코는 이곳의 전통 주거가 기능을 수직적으로 분리하고 있다는 점을 특히 강조합니다. 지상층은 물자와 식량을 보관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그 위에는 가족의 생활공간이 자리하며, 서로 연결된 지붕과 덮개가 있는 골목이 도시 곳곳을 이어줍니다. 가장 높은 층의 테라스는 전통적으로 여성과 어린이가 사용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히 건물을 위로 쌓아 올린 것이 아닙니다. 가다메스의 주거와 골목은 뜨거운 사막의 햇볕을 차단하고 도시 내부에 그늘을 만들면서 동시에 사생활을 보호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지붕과 테라스가 연결된 구조는 여성과 어린이가 이동할 수 있는 별도의 동선까지 만들어냈습니다. 이처럼 가다메스에서는 건축 구조와 사회적 생활방식이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있었습니다. 가다메스의 옥상 테라스는 여성의 생활공간이라는 사회적 기능도 지녔습니다. 지상부의 골목과 공공공간이 주로 남성과 어린이의 활동 공간이었다면, 지붕 위의 연결된 테라스는 여성과 어린이가 이동하고 교류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으로 기능했습니다. 이곳에서는 건축과 사회적 관습이 서로 결합해 독특한 도시 생활을 만들어냈습니다.
도시 전체를 유지하는 또 하나의 핵심은 ‘물’입니다. 가다메스의 도시 구조는 아인 알파라스(Ain al-Faras) 샘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오아시스의 수자원과 대추야자 농장은 도시의 생존을 뒷받침했습니다. 유네스코는 가다메스의 도시 형태와 건축이 기후 조건과 물 관리에 의해 결정되었으며, 주변의 대추야자 농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지역 공동체가 사회적으로 조직한 물 관리 체계가 유산의 중요한 무형적 속성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합니다.
▷ 사막의 끝자락에 선 두 도시, 극한 속에서 피운 건축의 꽃(Two Cities on the Edge of the Desert: Architecture Blooming in Extremity) : 가다메스의 독창적인 건축 철학은 사하라의 다른 세계유산과 비교할 때 더욱 선명해집니다. 198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말리(Mali)의 '젠네 구도시(Old Towns of Djenné)' 역시 흙을 주요 건축 재료로 활용해 독특한 도시 경관을 형성했습니다.
▶ 바위에 새긴 기억, 나크샤(Memory Engraved in Stone, Naqsh) : 수무드의 상징으로 역사의 파고를 버텨낸 사람들, 가다메스의 건축적 지혜로 사막의 환경에 적응한 도시를 살펴보았다면, 세번째 키워드로 리비아 문명을 바라보는 나크샤(نقش, Naqsh)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랍어에서 새김이나 조각, 무늬를 가리키는 이 단어를 상징적으로 사용한다면, 리비아의 역사는 암각화에서 로마 시대의 부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흔적을 남겨온 역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원전 수천 년 전 아카쿠스의 바위에 새겨진 동물과 인간의 모습에서 로마 시대 건축물의 부조와 장식에 이르기까지, 리비아의 세계유산은 서로 다른 시대의 시각적 기록을 보여줍니다. 특히 렙티스 마그나의 세베루스 바실리카와 개선문에는 조각과 건축 장식이 결합된 정교한 작품들이 남아 있으며, 이곳의 조각과 장식에서는 포에니, 로마, 그리스, 헬레니즘 전통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8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사브라타 고고유적지(Archaeological Site of Sabratha)'는 이러한 문화적 교류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유적입니다. 사브라타는 페니키아의 교역 거점으로 출발해 누미디아 왕국의 영향 아래 놓였고, 이후 로마화되면서 2~3세기에 대대적으로 재건되었습니다. 오늘날 남아 있는 극장과 신전, 광장 등은 이 도시가 로마 시대에 누렸던 번영을 보여줍니다. 특히 사브라타의 극장(Theatre of Sabratha)은 이 유적을 대표하는 건축물입니다. 3층으로 이루어진 무대 배경 건축과 다층의 기둥 장식은 로마 시대 북아프리카 극장 건축의 화려함을 보여줍니다. 유네스코 자료에서도 사브라타가 2~3세기에 로마화되고 재건되었으며, 극장이 주요 기념비적 건축물 가운데 하나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모래바람도 지우지 못한 것(What Even the Sandstorm Could Not Erase) : 렙티스 마그나의 개선문을 지나 항구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지중해를 향해 펼쳐진 거대한 도시의 흔적이 눈앞에 들어옵니다. 한때 북아프리카의 중요한 항구였던 곳입니다. 오늘날 항구에는 모래와 퇴적물이 쌓여 있고, 그 주변으로 고대의 부두와 인공 항만 시설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유네스코는 렙티스 마그나의 고대 항구가 인공 저수지와 방파 시설, 와디 레브다(Wadi Lebda)의 물길을 조절하는 운하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로마의 뛰어난 토목기술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이라고 평가합니다.
الصبر مفتاح الفرج
Patience is the key to relief.
인내는 고난을 견디고 마침내 길을 여는 열쇠다.